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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딸에게 / 오세영

by 혜강(惠江) 2020. 7. 15.

 

<출처 네이버 블로그 '더베일컴퍼니'>

 

 

딸에게

 

 

- 오세영

 

 

가을바람 불어

허공의 빈 나뭇가지처럼 아빠는

울고 있다만 딸아

너는 무심히 예복을 고르고만 있구나.

이 세상 모든 것은 붙들지 못해서 우는가 보다.

강변의 갈대는 흐르는 물을, 언덕의 풀잎은

스치는 바람을 붙들지 못해

우는 것, 그러나

뿌리침이 없었다면 그들 또한

어찌 바다에 이를 수 있었겠느냐.

붙들려 매어 있는 것치고

썩지 않은 것이란 없단다

안간힘 써 뽑히지 않은 무는

제자리에서 썩지만

스스로 뿌리치고 땅에 떨어지는 열매는

언 땅에서도 새싹을 틔우지 않더냐

막막한 지상으로 홀로 너를 보내는 날,

아빠는 문득 뒤꼍 사과나무에서

잘 익은 사과 하나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 시집 《시간의 쪽배》(2005)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곱게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허탈한 마음과 아울러 한편으로는 새 출발 하는 딸을 격려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로 허탈한 마음과 이를 극복하려는 마음을 자연물에 의탁하여 표현하면서 딸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이 시는 결혼을 앞둔 아빠의 심경 변화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딸의 결혼을 앞둔 자신의 심정이 마치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허공의 빈 나뭇가지'와도 같다고 한다. 정성을 다해 곱게 키운 딸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빠의 심정이 그만큼 허전하고 공허함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아빠와는 달리 딸은 ‘무심히’ 예복을 고를 뿐이다. 아빠와 딸의 대조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런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는 아빠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붙들지 못해서 우는가 보다’라고 자신의 섭섭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어서 화자는 붙들지 못하는 자신의 심정을 ‘강변의 갈대’와 ‘언덕의 풀잎’에 비유하여, ‘흐르는 물’과 ‘스치는 바람’처럼 떠나갈 딸을 생각하며 슬픔에 울고 있다.

 

  그런데 화자인 아버지는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나타낸다. ‘뿌리침이 없었다면 그들 또한/ 어찌 바다에 이를 수 있겠느냐’라고. 이것은 딸의 결혼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대 전환이다. ‘뿌리침’과 ‘놓아줌’이 있었기에 ‘바다’라는 새로운 세상에 이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이란 깨달음을 얻은 화자는 ‘붙들려 매여 있는 것치고/ 썩지 않는 것이란 없단다’라며,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스스로 위로한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썩는 ‘무’와 비교하며, ‘스스로 뿌리치고 땅에 떨어지는 열매’가 ‘언 땅’과 같은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새싹’을 틔우는 비유를 통해 슬픔의 극복을 위해 애쓰는 아빠의 심정을 드러내며, 한편으로는 딸의 새로운 출발에 응원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것은 화자가 인식의 전환을 통해 서운함과 허전함을 새로운 의미로 상쇄시키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딸의 결혼을 마냥 슬피 하기만 하던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딸의 새 인생에 대해 축복해 줄 수 있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자 오세영(吳世榮, 1942 ~ )

 

 

  시인. 전라남도 영광 출생. 1968년 《현대문학》에 <잠 깨는 추상>으로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언어의 예술성에 철학을 접목시키는 방법론적 문제로 고민하다가 동양 사상, 즉 불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사물의 인식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여 현대 문명 속에서 아픔을 느끼는 인간 정서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하는 시적 변모를 모색하였다. 이후에는 절제와 균형이 미덕인 동양적 중용의 의미를 형상화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삶의 체취가 느껴지는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반란하는 빛》(1970),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1983), 《모순의 흙》(1985), 《무명연시(無名戀詩)》(1986), 《불타는 물》(1988) 《사랑의 저쪽》(1990) 《신의 하늘에도 어둠은 있다》(1991) 《꽃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1992) 《어리석은 헤겔》(1994) 《벼랑의 꿈》(1999) 《적멸의 불빛》(2001), 《시간의 쪽배》(2005) 등이 있다. 이 밖에 평론집 《한국낭만주의 시 연구》(1981) 《20세기 한국시 연구》(1987) 《한국현대시의 해방》(1988) 《상상력과 논리》(1991) 《문학연구방법론》(1993) 등이 있고, 산문집 《꽃잎우표》(2000)와 시론집 《시의 길 시인의 길》(2002)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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