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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겨울 노래 / 오세영

by 혜강(惠江) 2020. 7. 14.

 

 

 

겨울 노래

 

 

- 오세영

 

 

산자락 덮고 잔들

산이겠느냐

산 그늘 지고 잔들

산이겠느냐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아침마다 우짖던 산까치도 이제는

간데없고

저녁마다 문살* 긁던 다람쥐도 지금은

온데없다.

길 끝나 산에 들어섰기로

그들은 또 어디 갔단 말이냐

어제는 온종일 진눈깨비* 뿌리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내리는 폭설(暴雪)

빈 하늘 빈 가지엔

홍시(紅柿)* 하나 떨 뿐인데

어제는 온종일 난(蘭)을 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물소릴 들었다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 시집 《벼랑의 꿈》(1999) 수록

 

 

◎시어 풀이

 

*문살 : 문짝의 뼈대가 되는 나무오리나 대오리.

*진눈깨비 : 비가 섞여 내리는 눈.

*홍시 : 흠뻑 익어 붉고 말랑말랑한 감. 연감. 연시

*치다 : 식물이 가지를 내 돋게 하다. 기르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동양적인 허무 의식과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합일된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지향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겠느냐’, ‘~말이냐’ 등 의문형 어미를 반복 사용하여 자문자답(自問自答)하는 형식과 변형된 수미상관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푸른 산’과 ‘흰 눈’ 등 색채의 대비를 통해 시적 의미를 강조하여, 인간 세계와 단절된 ‘산’이라는 공간에서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고 있다.

 

 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5행에서는 ‘산자락 덮고 잔들/ 산이겠느냐/ 산그늘 지고 잔들/ 산이겠느냐/ 산이 산인들 또어저겠느냐’ 라며, 수사 의문문(~겠느냐)으로 동양적 허무와 달관의 정신을 역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산’은 자연의 세계로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 아니오 물은 물이 아니로다’라는 불교적 화두를 바탕으로 산이 산이 아닐 수도 있고, 산이어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일상적인 언어나 세속의 논리를 초월한 것으로 동양의 허무와 달관의 정신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과 자연이 합일된 경지를 지향하는 화자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그리고 6~11행에서는 적막하고 고요한 산사(山寺)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침마다 우짖던 산까치도 이제는/ 간데없고/ 저녁마다 문살 긁던 다람쥐도 지금은/ 온데없다’라는 표현은 댓구와 ‘없음’의 반복을 통해 화자가 느끼는 고독감을 강조하는 것으로, 존재의 본질이 눈에 보이는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동양적 허무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화자는 ‘길 끝나 산에 들어섰기로 그들은 또 어디 어디 갔단 말이냐’고 묻고 있다. 여기서 ‘길’은 자연의 세계, 인간 세계와 단절된 ‘산’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위적인 세계,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발한 문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길 끝나 산에 들어’선 화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인간 세계와 단절된 곳에서 적막하고 고요한 고독을 느끼게 된다.

 

 시적 화자의 이러한 고독한 내면 심리는 12~17행에서 절대 고독과 허무의 공간으로서의 산사의 풍경 묘사와 시적 화자의 무위자연 태도의 묘사를 통해 더 구체화한다. ‘산까치’와 ‘다람쥐’도 사라진 적막한 산사에 연이틀 ‘진눈깨비’와 ‘폭설’이 내린다. 이들은 불완전하고 어지러운 현실 세계를 표상한다. 그런가 하면 ‘빈 하늘 빈 가지엔/ 홍시(紅柿) 하나 떨고 있다’라고 동양적인 허무 의식이 시각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여기서, ‘빈 하늘 빈 가지’는 모든 것이 떠나버린 절대 고독의 공간이며, 떨고 있는 ‘홍시’는 고독한 화자의 모습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절대 고독의 공간에서 화자는 ‘난(蘭)’을 치고 ‘물소리’를 듣고 있다. 이것은 동양적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정신으로, 절대 고독의 공간에서 자연에 동화되어 있는 달관의 경지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일종의 변형된 수미 상관식 구성으로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라고 반복하며 시상을 완결짓는다. 이것은 절대 고독의 세계에서 빚어지는 동양적인 허무 의식과 달관의 정신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이다.


  시인이 성장한 1990년대는 높은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산업 사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로써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고, 도시의 상공업 중심으로 구조화되었다. 이에 따라 국민 다수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환경에서 시민으로서 자유와 권리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부작용과 폐해도 매우 컸다. 전통적 문화가 파괴되고 대중문화가 자리 잡게 되면서 개인주의와 인간소외 현상이 대두되었다.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자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자연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따라서, 시인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모색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넘어선 조화와 합일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작자 오세영(吳世榮, 1942 ~ )

 

 

 시인. 전남 영광 출생. 1968년 《현대문학》에 <잠 깨는 추상>으로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언어의 예술성에 철학을 접목시키는 방법론적 문제로 고민하다가 동양 사상, 즉 불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사물의 인식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여 현대 문명 속에서 아픔을 느끼는 인간 정서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하는 시적 변모를 모색하였다. 이후에는 절제와 균형이 미덕인 동양적 중용의 의미를 형상화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삶의 체취가 느껴지는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반란하는 빛》(1970),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1983), 《모순의 흙》(1985), 《무명연시(無名戀詩)》(1986), 《불타는 물》(1988) 《사랑의 저쪽》(1990) 《신의 하늘에도 어둠은 있다》(1991) 《꽃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1992) 《어리석은 헤겔》(1994) 《벼랑의 꿈》(1999) 《적멸의 불빛》(2001), 《시간의 쪽배》(2005) 등이 있다. 이 밖에 평론집 《한국낭만주의 시 연구》(1981) 《20세기 한국시 연구》(1987) 《한국현대시의 해방》(1988) 《상상력과 논리》(1991) 《문학연구방법론》(1993) 등이 있고, 산문집 《꽃잎우표》(2000)와 시론집 《시의 길 시인의 길》(2002)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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