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
- 오세영
마지막으로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주소에 엔터 키를 치면
모니터*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공간
그 공간에도 비가 오는지
빗속의 너는 자꾸 멀리 달아나는데
가냘픈 코드를 붙잡고
덧없는 서핑*을 반복한다
세상은 거대한 와이드 웹*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 보이지 않는 올가미를 씌우며
인연을 확인한다
오늘의 검색 항목은 ‘사랑’
자꾸만 자꾸만 달아나는 너를 좇아
윈도우를 열어보지만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너의 빈
사이버 공간*
- 시집 《봄은 전쟁처럼》(2004) 수록
*패스워드(password) : 특정한 시스템에 로그인(login)을 할 때, 사용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입력하는 문자열. 암호.
*모니터(monitor) : 텔레비전 따위의 화면. 중앙 처리 장치로 제어되는 디스플레이 장치.
*서핑(surfing) : 텔레비전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며 조금씩 시청하는 일. 혹은 인터넷에서 이곳저곳 사이트를 접속해 들여다보는 행위.
*웹(web) : ‘월드 와이드 웹’의 준말. 인터넷 정보를 동영상이나 문자·그래픽·음성 등의 멀티미디어 환경으로 찾아볼 수 있게 해주는 인터넷 정보 검색 서비스의 이름
*윈도우(Windows) :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한 컴퓨터 운영 체제의 하나.
*사이버(cyber) 공간 : 실제 세계와 비슷하게 만들어 내는 인터넷상의 가상공간.
결국, 이 작품은 진정한 관계 형성을 소망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나 매번 좌절당하는 화자를 통해 바람직한 인간관계 형성이 요원해진 시대적인 문제를 비판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시인. 전남 영광 출생. 1968년 《현대문학》에 <잠 깨는 추상>으로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언어의 예술성에 철학을 접목하는 방법론적 문제로 고민하다가 동양 사상, 즉 불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사물의 인식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여 현대 문명 속에서 아픔을 느끼는 인간 정서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하는 시적 변모를 모색하였다. 이후에는 절제와 균형이 미덕인 동양적 중용의 의미를 형상화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삶의 체취가 느껴지는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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