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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등산(登山) / 오세영

by 혜강(惠江) 2020. 7. 18.

 

 

 

등산(登山)

 

 

- 오세영

 

 

 

자일*을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생애의 중량

확고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때는 흔들린다

 

절벽을 더듬는다

빛을 찾아서 조금씩 움직인다

결코 쉬지 않는

무명(無明)*의 벌레처럼 무명을 더듬는다

 

함부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바람에 뜨는 별이나

피는 꽃이나

이슬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으며

가까이 접근한다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발 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다만,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이다

 

 

- 시집《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1983) 수록

 

 

 

◎시어 풀이

 

*자일(독 Seil) : 등산용의 밧줄. 로프

*무명(無明) : 잘못된 의견이나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됨(불교 용어).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삶이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라는 소박한 비유를 통하여 삶이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에 있다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자일을 타고 암벽을 오르며 ‘빛’에 도달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조금씩 이동하고 있으며, ‘빛’을 향하여 조금씩 올라가는 과정에 의미가 있음을 깨닫고 있다.

 

  시상의 전개 과정을 따라가 보면, 1, 2연과 3, 4연을 대조해 분석해 볼 수 있다. 1, 2연에서는 이제까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드러나 있고, 3, 4연에서는 성찰의 결과 즉 주어진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표현되어 있다. 이 모든 시작 진술은 산을 오르는 것, 즉 제목인 ‘등산’에 비유되어 시상과 주제가 전개되고 있다.

 

  1연은 흔들리는 삶을 드러내고 있다. ‘자일을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생애의 중량/ 확고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때는 흔들린다’라고 진술한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무게를 지니고 살아간다. 그래서 ‘밧줄’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목표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도 가끔 흔들려 불안감 속에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쉬지 않고 ‘빛’을 찾아가는 존재인 것을 2연에서 보여준다. 화자는 불교적인 관점에서 ‘빛을 찾아서 조금씩 움직인다/ 결코 쉬지 않는/ 무명의 벌레처럼 무명을 / 더듬는다’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빛’은 정상이거나 목표인 동시에 깨달음과 해탈의 경지를 의미하며, ‘무명의 존재’는 현세에 대한 집착으로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존재를 상징한다. 그래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무명’을 더듬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3~4연에서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화자는 ‘함부로 올려다보지도/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이것은 삶을 쉽게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쉽게 초월할 수도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벼랑에 뜨는 별이나/ 피는 꽃이나/ 이슬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한다. 여기 등장하는 ‘별, 꽃, 이슬, 세상의 모든 것’은 소유하고 싶지만 소유할 수 없는 세속적인 것, 화려하지만 쉽게 사라져 버리는 유한한 것, 세속적인 유혹과 욕망을 드러내는 것으로 화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대상은 아니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화자는 세속적인 세상의 행불행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으며 목표를 향하여 전진한다. 이러한 모습은 목표만을 위해 나아가는 구도자로서의 진지하고 겸손한 태도이다.

 

  그래서 화자는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발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안간힘을 다해, ‘다만/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이라고 반복 표현함으로써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은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기가 쉽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이 시는 등산에서 정상에 오르기보다는 그 과정이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을 삶에 비유하여, 삶이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교훈을 ‘~ㄴ다’라는 현재형 종결어미를 사용하여 시적 상황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작자 오세영(吳世榮, 1942 ~ )

 

 

  시인. 전남 영광 출생. 1968년 《현대문학》에 <잠 깨는 추상>으로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언어의 예술성에 철학을 접목시키는 방법론적 문제로 고민하다가 동양 사상, 즉 불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사물의 인식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여 현대 문명 속에서 아픔을 느끼는 인간 정서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하는 시적 변모를 모색하였다. 이후에는 절제와 균형이 미덕인 동양적 중용의 의미를 형상화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삶의 체취가 느껴지는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반란하는 빛》(1970),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1983), 《모순의 흙》(1985), 《무명연시(無名戀詩)》(1986), 《불타는 물》(1988) 《사랑의 저쪽》(1990), 《신의 하늘에도 어둠은 있다》(1991) 《꽃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1992) 《어리석은 헤겔》(1994) 《벼랑의 꿈》(1999) 《적멸의 불빛》(2001), 《시간의 쪽배》(2005), 《문 열어라 하늘아》(2006), 《가을 빗소리》(2016)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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