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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사이버 공간 / 오세영

by 혜강(惠江) 2020. 7. 16.

 

 

 

 

사이버 공간

 

 

- 오세영

 

 

마지막으로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주소에 엔터 키를 치면

모니터*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공간

그 공간에도 비가 오는지

빗속의 너는 자꾸 멀리 달아나는데

가냘픈 코드를 붙잡고

덧없는 서핑*을 반복한다

세상은 거대한 와이드 웹*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 보이지 않는 올가미를 씌우며

인연을 확인한다

오늘의 검색 항목은 ‘사랑’

자꾸만 자꾸만 달아나는 너를 좇아

윈도우를 열어보지만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너의 빈

사이버 공간*

 

 

- 시집 《봄은 전쟁처럼》(2004) 수록

 

 

◎시어 풀이

*패스워드(password) : 특정한 시스템에 로그인(login)을 할 때, 사용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입력하는 문자열. 암호.

*모니터(monitor) : 텔레비전 따위의 화면. 중앙 처리 장치로 제어되는 디스플레이 장치.

*서핑(surfing) : 텔레비전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며 조금씩 시청하는 일. 혹은 인터넷에서 이곳저곳 사이트를 접속해 들여다보는 행위.

*웹(web) : ‘월드 와이드 웹’의 준말. 인터넷 정보를 동영상이나 문자·그래픽·음성 등의 멀티미디어 환경으로 찾아볼 수 있게 해주는 인터넷 정보 검색 서비스의 이름

*윈도우(Windows) :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한 컴퓨터 운영 체제의 하나.

*사이버(cyber) 공간 : 실제 세계와 비슷하게 만들어 내는 인터넷상의 가상공간.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영향으로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형성이 어려운 시대적 상황을 비판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이 작품은 현실 세계와는 다른 사이버 공간을 시적 대상으로 하여, 사이버 공간 내에서의 사람들 간의 소통 방식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덧없이 서핑을 반복’하면서 사이버 공간이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빈’ 공간, 즉 단절적이고 소통이 되지 않는 공간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를 통해 화자는 단절적인 사이버 공간에서의 진정한 소통의 어려움을 점층적인 사상을 전개하여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1980년대에 캐나다의 공상 과학 소설가 윌리엄 깁슨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가상현실, 인공 현실, 가상세계, 가상환경 등으로도 불린다. 사이버 공간이란 블로그, SNS, 인터넷 게시판 등과 같이, 여러 이용자가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터넷상의 가상공간이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큰 장점이 있다. 전 세계 사람이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서 사이버 공간은 이제 현실 공간만큼이나 우리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은 언제 어디서나 쉽고 빠르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편리하지만, 서로 얼굴을 보지 않거나 신분이 드러나지 않아서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이버 공간에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저작권 보호, 개인 정보 보호 등 현실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정보윤리 의식을 가지고 활동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는 개별적 인간이 다양한 비대면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인간의 피상적 관계 형성은 오히려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극대화시켜 물리적 공간에서 인간들이 대면하여 공동체를 형성할 기회를 박탈하였고, 그 결과 사이버 공간 안팎에서 모두 진정한 관계 형성을 좌절시키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화자는 진정한 인간관계의 형성이 좌절되는 사이버 공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엔터 키를 쳐서 사이버 공간에 접속한다. ‘가냘픈 코드를 붙잡고/ 덧없이 서핑을 반복한다’는 것은 화자가 사이버 공간에서 진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화자는 ‘세상은 거대한 월드 와이드 앱/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 보이지 않는 올가미를 씌우며 인연을 확인한다’는 것은 무한하게 넓은 인터넷 세상에서 ‘너’와 ‘나’는 얼굴을 내비치지 않은 채 구속된 상태로만 관계의 확인에 그칠 뿐이라는 뜻이다.

 

  이어 진정한 관계를 맺기 원하는 화자는 검색 항목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치고 ‘너’와의 진정한 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관계 맺기의 대상이 되는 ‘너’는 ‘자꾸만 달아나기’를 반복하며 상황은 점층적으로 악화한다. 그러므로 ‘너’를 찾아 헤매는 사이버 공간은 ‘너의 빈’ 공간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단절적이며 진정한 소통이 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은 진정한 인간관계의 형성이라는 화자의 소망이 좌절에 이르게 됨을 표현하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진정한 관계 형성을 소망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나 매번 좌절당하는 화자를 통해 바람직한 인간관계 형성이 요원해진 시대적인 문제를 비판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작자 오세영(吳世榮, 1942 ~ )

 

 

 시인. 전남 영광 출생. 1968년 《현대문학》에 <잠 깨는 추상>으로 등단하였다. 기에는 언어의 예술성에 철학을 접목하는 방법론적 문제로 고민하다가 동양 사상, 즉 불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사물의 인식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여 현대 문명 속에서 아픔을 느끼는 인간 정서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하는 시적 변모를 모색하였다. 이후에는 절제와 균형이 미덕인 동양적 중용의 의미를 형상화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삶의 체취가 느껴지는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반란하는 빛》(1970),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1983), 《모순의 흙》(1985), 《무명연시(無名戀詩)》(1986), 《불타는 물》(1988) 《사랑의 저쪽》(1990), 《신의 하늘에도 어둠은 있다》(1991) 《꽃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1992) 《어리석은 헤겔》(1994) 《벼랑의 꿈》(1999) 《적멸의 불빛》(2001), 《봄은 전쟁처럼》(2004), 《시간의 쪽배》(2005), 《문 열어라 하늘아》(2006), 《가을 빗소리》(2016)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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