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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땅끝 / 나희덕

by 혜강(惠江) 2020. 5. 11.

 

<사진 : 땅끝마을 일출>

 

 

땅끝  

 

- 나희덕  

 

산 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좇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 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1994)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최남단 땅끝을 소재로 한 시로, ‘땅끝에 대한 역설적 인식을 통해 절망의 끝에 아름다움이 있음을 깨닫고 삶의 희망과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땅끝은 우리니라 최남단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마을을 가리키지만, 이 시에서의 땅끝은 화자가 처한 위태롭고 절망적인 상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절망 속에 있는 화자가 땅끝에서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역설적인 인식을 통해 절망 속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

  1연에서는 노을을 동경하며 그네를 탔지만 끝내 노을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 삐걱거리는 그넷줄 소리를 들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회상하고 있다. 여기서 노을은 화자의 꿈이요 이상이요 삶의 희망으로, 이것을 보려고 노력과 열정을 기울였지만 끝내 절망적인 상황인 어둠에 묻혀 좌절하여 절망에 빠진다.

  2연에서는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후의 상황을 병치하며 땅끝의 이중적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땅끝은 아름다움을 좇아 도달하게 된 곳이기도 하고, 어른이 된 지금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와 같은, 삶의 시련에 뒷걸음치며 도달하게 된 시련과 절망의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3~4연에서는 땅끝에 대한 역설적 인식이 드러나 있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 깨닫는 역설적인 희망이다. ,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땅의 끝, 그 위태로운 공간에서 화자는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땅끝을 통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고, 이 깨달음이 살아가는 힘을 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이 시는 어린 시절 찾아갔던 아름다운 공간인 땅끝은 진정한 땅끝이 아닌,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시련과 고난으로 내몰리고 뒷걸음치는 곳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삶에서 위태로움과 절망을 느끼지만, 땅끝에 대한 역설적 인식을 통해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시인이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데서 온 것이다.

 

작자 나희덕(羅喜德, 1966~ )

 

 시인,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모성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대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고 생명의 원리를 추구하는 서정적인 작품을 주로 창작하였다.

  시집으로뿌리에게(1991),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1994), 그곳이 멀지 않다(2004), 어두워진다는 것(2001), 사라진 손바닥(2004), 야생사과(2009),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2014), 그녀에게(2015), 일명 서정시(2018)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님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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