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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희덕

by 혜강(惠江) 2020. 5. 10.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서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2001)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편견과 선입관으로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타인을 복숭아나무에 비유하여, 화자와 복숭아나무가 진정한 관계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조화에 이르고자 하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살다 보면 처음에는 몰랐던 것, 어쩌면 아무런 관심도 없이 지나쳤다가 훗날 본래의 모습 혹은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이 작품에서 '복숭아나무'는 우리가 일상에서 평범하게 만나고 접하는 타인을 비유한 것으로, 복숭아나무에 대한 화자의 인식의 변화를 통해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 형성 과정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시 속 화자인 는 처음에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가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가고 싶지 않은 이유로 지목된 여러 겹의 마음이란 어느 한 가지 색깔이 아니라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있는 나무이므로 두 마음일 것으로 생각하고, 편견으로 인한 거리감으로 그저 멀리로 멀리로만지나쳤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자꾸 보다 보니, 복숭아나무의 꽃은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즉 한 가지 색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수천의 빛깔을 가진 독특한 성질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눈부셔 눈부셔 알았다는 것은 복숭아나무의 참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여기서 화자는 여러 가지 색을 가졌으니 여러 마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아니라고 한다. 알고 보니 복숭아나무는 저만의 독특한 성격이었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꽃을 피운 것뿐이므로 그러니 외로운 줄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화자는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을 여러 마음을 가진 것이라고 오해했고, 그렇기에 화자가 마음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빛깔을 나타내는 것이 그 나무만의 독특한 개성이란 것을 안 후에는 화자도 마음을 줄 수 있었으리라.

 

 결국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즉 꽃이 다 지고 난 후, 수천 빛깔의 꽃이 다 졌으니 이제 복숭아가 열린다. 그러니 화려한 꽃이 없어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고 비록 잎과 복숭아만 무성한 그 복숭아나무 그늘이지만 화자도 그 그늘 밑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즉 화자는 복숭아나무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 그늘에 앉아 거리감이 사라진 조화로운 어울림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와 복숭아나무 사이의 조화로운 통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 작가 나희덕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편견이나 선입견을 품고 타인을 자신의 관점으로만 판단하려는 태도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타인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과 조화로운 관계의 형성이 바람직함을 드러내고 있다.

 

 

작자 나희덕(羅喜德, 1966~ )

 

 시인,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모성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대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고 생명의 원리를 추구하는 서정적인 작품을 주로 창작하였다.

 

 시집으로뿌리에게(1991),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1994), 그곳이 멀지 않다(2004), 어두워진다는 것(2001), 사라진 손바닥(2004), 야생사과(2009),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2014), 그녀에게(2015), 파일명 서정시(2018) 등이 있다.

 

*작성자 : 시인 남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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