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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서대문 안산자락길, 사색과 깨우침이 있는 길

by 혜강(惠江) 2019. 7. 12.

 

 

서대문 안산자락길

 

사색과 깨우침이 있는 길

 

글․사진 남상학

 

 

 

 

▲안산자락길 안내도

 

 

 10시 30분, 숭람회 회원 넷이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만났다. 우남일, 유재영, 이광수 세 교장님, 그리고 나. 집에서 나오기 전만 해도 35도 무더위에 무슨 걷기운동을 하느냐고 핀잔을 받았으나 때론 모험도 필요하다는 말을 남기고 나오니 기분이 좋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4번출구로 나오면 독립문이다. 

 

 

 오늘의 걷기 장소는 서대문 안산자락길, 서대문 안산(鞍山)은 서울의 서쪽 관문, 조선 초기에 한양으로 수도를 정할 때 하륜이 주장했던 ‘무악 주산설’에 나오는 무악이 바로 지금의 안산이다. 멀리서 보면 능선 모양이 말 안장을 닮았다 하여 ‘안산(鞍山)’이란다. 조선시대에는 모악산(어머니의 산)이라 불렸던 고도 295.9m의 산이다. 안산자락길은 이 안산의 산허리에 조성된 길이다.

 

 

 

서대문 독립문

 

 

 안산자락길로 오르는 길은 여러 군데다. 우리가 오른 독립공원 외에도 서대문구청, 연희숲속쉼터, 한성과학고, 금화터널 상부, 봉원사, 연세대학교 등에서 쉽게 숲길로 들어갈 수 있다. 그만큼 접근성이 뛰어나다. 접근경로가 다양한 만큼 이용하기에 용이하고 출발지에 따라 느낌도 확연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오르는 독립문사거리 옆 독립공원엔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서대문 형무소가 있다. 가파른 오르막을 몇 걸음 올라가니 이내 안산 자락길, 나무데크로 된 무장애길이 이어진다.

 

 

 

 

 

 

▲독립공원(서대문형무소) 건물 옆으로 진입했다.

 

 

 오늘 안산자락길의 안내는 서대문에 터를 잡고 오래 살고 있는 이광수 교장님이 맡았다. 본래 그의 계획은 안산자락길을 올라 정상의 봉수대까지 오르는 것이었으나 날씨가 워낙 덥고 무리일 것것 같아 자락길만 돌기로 했다.

 

 이곳 지리를 훤히 꿰고 있는 터라 우리는 그의 안내를 따라 서대문독립공원 옆 사이 길로 접어들었다. 언젠가 한성과학고 앞으로 올랐을 때보다 곧바로 숲이 이어져 좋다.

 

 

 

▲안산자락길을 오르는 친구들, 왼쪽부터 이광수, 유재영, 우남일 교장 

 

 

▲안산자락길로 접어드는 길목에 설치된 표시판

 

 

 2013년 11월에 개통된 안산자락길은 총연장 7km로 계속 거닐다 보면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온다. 이 길의 특징은 보행약자도 안산에서 산림욕을 즐기며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순환형 무장애 숲길’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마도 오르내리는 ‘편도형’이 아닌 ‘순환형’으로 완공된 무장애 숲길은 전국에서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안산 무장애자락길

 

 

 안산 무장애 자락길은 폭 2m, 경사도 9% 미만이다. 오르내리는 경사가 그리 크지 않다. 길은 비가 와도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바닥을 평평한 목재데크나 친환경 마사토, 굵은 모래 등으로 조성했다. 또, 휠체어 교차에 불편이 없도록 50m·100m마다 폭 3~4.5m의 쉼터도 만들었다. 숲길 한 바퀴를 도는 데에는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를 밀며 걸어도 대략 2시간30분 정도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다.

 

 

 

 

 

 

▲대부분의 자락길이 데크로 이어져 걷기 편하다.

 

 

 더욱이 안산 무장애 자락길에서는 꽤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길, 아까시나무 숲길, 잣나무, 가문비나무 등으로 이뤄진 숲을 즐길 수 있다. 담양에나 가야 접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고즈넉한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서울 도심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다.

 

 

 

 

 

 

 

 

 

▲메타세콰이어길

 

 

▲소나무길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가 내려다보이는 안산자락길 안산 벚꽃마당에는 소설가 만우(晩牛) 박영준(朴榮濬, 1911∼1976) 문학비를 만날 수 있다. 박영준은 1933년 연세대학교 문과 졸업을 1개월 앞두고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모범경작생〉이 당선되었고, 주로 농촌을 소재로 한 농촌소설을 많이 썼으며, 1962년 연세대 문과대학 교수에 임용되면서 많은 문인들을 길러냈고, 1975년에는 문과대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소설가 박영준 문학비, 그는 연세대 문과를 나와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또 흔들바위, 너와집쉼터, 북카페, 숲속무대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도 만날 수 있다. 안산자락길의 안산 연희숲속쉼터는 아담하고 잘 가꿔진 ‘숲속정원’과 같다. 쉼터로 가는 길엔 벚나무가 빽빽하다.

 

 

 

 

 

 

 

 

 

▲잠시 쉴 수 있고 가볍게 운동할 수 있는 쉼터  

 

 또, 연희숲쉼터 벚꽃 마당 야외무대에서는 봄철에는 벚꽃 음악회가 열린다. 홍제천에서 이어지는 안산자락길 언덕에는 철따라 갖가지 꽃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무한 감동을 준다.

 

 

 

 

 

 

 

 

 

 

 

 

 

 

 

 

 

▲홍제천에서 이어지는 안산자락길 언덕에 조성된 꽃 정원엔 철따라 예쁜 꽃이 핀다.

 

 

 

 

 

 

 

 

▲안산자락길에 자리잡은 너와 집

 

 

 그리고 안산자락길에는 청록파 혜산 박두진(1916~1998) 시인의 ‘푸른 숲에서’와 박노해 시인의 ‘너의 하늘을 보아’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어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시를 감상할 수 있다. 박두진 시비는 높이 2m 10㎝, 폭 1m 20㎝의 시비 3개에 나란히 세워진 것이 특징이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 시비 ‘푸른 숲에서’

 

 

 “찬란한 아침 이슬을 차며/ 나는 풀숲 길을 간다.// 영롱한 이슬이 내 가벼운/ 발치에 부서지고/ 불어오는 아침 바람 - / 산뜻한 풀 냄새에 가슴이 트인다. // 들장미 해당화꽃 시새워 피고 / 꾀꼬리랑 모두 호사스런 산새들이/ 자꾸 나를 따라오며 울어준다.// 머언 산엔, 뻑 꾸욱 뻑 꾸욱 뻐꾹새가 울고… // -금으로 만든 날갯죽지… / 나는 이런 풀숲에 떨어졌을/ 금 날갯죽지를 생각하며/ 옛날 어릴 적 동화가 그립다.// -쫓겨난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 떨기 고운 들장미를 꺾어/ 나는 훈장처럼 가슴에 달아본다./ 흐르는 물소리와/ 산드러운 바람결/ 가도 가도 싫지 않은/ 푸른 숲속 길// 아무도 나를 알아 찿아주지 않아도/ 내사 이제 새삼 외로울 일 없어…// 오월의 하늘은/ 가을보다도 맑고// 보이는 것은 다 나의 청산/ 보이는 것은 다아 나의 하늘이로세.”

 

 박두진의 <푸른 숲에서> 전문이다. 박두진은 박목월(1916~1978), 조지훈(1920~1968)과 함께 청록파로 널리 알려진 시인으로 60여년에 걸쳐 자연과 인간, 사회를 노래한 한국 시단의 거목이었다. 이화여대와 연세대 교수를 지내고 연희동에서 40년 넘게 거주한 서대문 토박이다. 메타세쿼이아, 아카시아, 가문비나무로 가득한 안산자락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또 박노해(1957~ )의 시 <너의 하늘을 보아>의 시비는 잠시 쉬어가는 쉼터 곁에 있다. 쉼터에 앉아 읽기에 알맞은 작품이다.

 

 

 

▲박노해 시인의 시비에는 시 <너의 하늘을 보아>가 새겨져 있다. 

 

 

 

▲시비가 서있는 쉼터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일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이 작품은 무거운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인간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와도 같은 좋은 시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박노해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노동자 시인이다.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 환경이라는 최악의 한계 상황을 기어서, 낮은 포복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노동자를 대변한다.

 

 

 

▲테마길 '여기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표지판

 

 

 또 안산자락길에는 여성에 관한 역사 이야기 등을 알리는 ‘여성친화 테마길’이 조성되어 있다. 테마길 명칭은 '여성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는 길'이라는 뜻에서 '서대문 여기로(女記路)'로 이름지었단다. '여기로'는 전체 길이 7.0km의 안산 자락길 중 만남의 장소∼박두진 시비∼전망대∼북카페쉼터로 이어지는 2.2km 구간이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인권운동가 이태영 박사, 박완서 작가 등의 내용을 담은 스토리보드를 설치했다.

 

 

 

▲양성평등의 길을 연 인권운동가 이태영 여사

 

 

 이태영 박사(1914∼1998)는 이화여전을 졸업, 이화여대 법정대학장을 지냈다. 박완서 작가(1931∼2011)는 어린 시절 개성 근교에서 현저동으로 이사를 와 서대문구와 인연이 있다. ‘서대문 여기로’를 걸으면서 여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배려한 것이리라.

 

 

 

 

 

 

 

 

 

▲주변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자락길에는 전망대가 몇 군데 있다. 

 

 

 안산자락길의 전망대에서는 인왕산, 북한산 등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길을 걸으며 잠시 발길을 멈추고 수도 서울의 주변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서 더욱 즐겁다. 그리 가파른 길을 오르지 않았음에도 먼 곳의 산과 마주하고 있다는 기분은 등산의 정상에서 느끼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쉬나무 숲속무대

 

 

 안산자락길 전망대 인근 쉬나무 군락지에 들어서면 ‘쉬나무 숲속무대’가 나타난다. 최근에 새로 조성된 무대는 300㎡에 300여명이 앉아 구경할 수 있는 규모로 숲속 무대치고는 꽤 넓은 편이다. 나인댄스 교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곳 자연의 숲 속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 상상해 본다.

 

 

 

 

▲북카페 쉼터

 

 

 전망대를 거쳐 북 카페를 지나면 한성과학고등학교 뒷길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알려주는 게시물들이 줄을 잇는다. 서대문형무소와 연계하여 독립운동의 자취와 투쟁사를 보여주는 테마로 조성되었다.

 

 

 

 

 

 

▲자락길에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공적을 알리는 현판들이 걸려있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 끄트머리에는 한국 근·현대사 비극을 간직한 붉은 담벽의 옥사가 있다. 감옥은 1908년 일제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가두기 위해 세운 것으로 유관순 열사, 백범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가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다. 숱한 민족 수난사가 배어 있는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지금은 박물관으로 조성, 1998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문을 열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낮지만 든든한 안산, 그 안산이 내어준 자락길의 한적한 숲길을 지나 독립공원으로 되돌아오는 걷기는 발로만 느끼기에는 보고 생각하고 깨우칠 일이 너무도 많다.

 

 우리 일행이 여유 있게 안산자락길을 답사하는데 2시간 30분 걸렸다. 독립문역으로 내려오면 지척에 영천시장이 있다. 시장 내 꽤 유명한 석교식당에서 유재영 교장님께서 점심을 사 주셨다. 

 

 멀리 동탄에서 올라와 동행해주고 점심까지 사 주신 유재영 교장님, 춘천에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합세한 우남일 교장님, 안내와 푸짐한 간식을 준비해주신 이광수 교장님께 감사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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