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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7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사진 : 시인이 시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 2020. 5. 4.
장편(掌篇) 2 / 김종삼 장편(掌篇) 2 - 김종삼 ​ ​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 시집 《시인학교》(1977) 수록 ◎시어 풀이 장편(掌篇) : 콩트. 매우 짧은 산문, 즉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품이라는 뜻. 균일상(均一床) : 똑같은 가격의 밥상 ▲이해와 감상 시인 김종삼은 6.25 전쟁 뒤에 모더니즘 시인으로 주목 받았다. 그의 시는 ‘여백의 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한 시’라고도 말한다. 시의 기법을 통해 비어 있는 세계를 깨닫고 독특한 미의 창조를 시도한 그의 노력은 1977년에 발표된 에 수록된 ‘장편 2’에서도.. 2020. 5. 4.
술래잡기 / 김종삼 술래잡기 - 김종삼 심청일 웃겨 보자고 시작한 것이 술래잡기였다. 꿈속에서도 언제나 외로웠던 심청인 오랜만에 제 또래의 애들과 뜀박질을 하였다. 붙잡혔다. 술래가 되었다. 얼마 후 심청은 눈가리개 헝겊을 맨 채 한동안 서 있었다. 술래잡기하던 애들은 안 됐다는 듯 심청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 《김종삼전집》 (1989)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고전 소설 속의 인물인 ‘심청’과 아이들이 술래잡기하는 모습을 통해 심 봉사와 심청의 한(恨)과 슬픔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노래한 작품이다. 에서 유추된 상상력으로 술래잡기라는 놀이를 통해 심청이의 한(恨)과 슬픔을 형상화한 시이다. 고전 소설 속의 심청이는 숙명적으로 한과 슬픔이 많은 소녀이다. 엄마 없이 성장하고 눈 멈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야 했기 때문이.. 2020. 5. 4.
묵화(墨畫) / 김종삼 묵화(墨畫) - 김종삼 ​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시집 《십이음계》(1969) 수록 ◎시어 풀이 *묵화(墨畫) : 먹으로 그린 동양화. 먹그림.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대상의 세밀한 부분을 생략하고 단 하나의 장면만으로 구성하여 제목처럼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하게 하는 시로, 할머니와 소를 제재로 하여 할머니의 쓸쓸하고 힘겨운 삶과 소와의 유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한 편의 ‘묵화(墨畵)’처럼 할머니와 소의 모습을 짧은 시행에 절제된 언어 표현하여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고, 쉼표로 마무리되어 앞으로도 이러한 삶이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시에서 ’할머니‘와 ’소‘의 관계는 단순히 가축이 아.. 2020. 5. 4.
묵화(墨畵) / 김종삼 묵화(墨畵)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1969> ▲일러스트=잠산 <해설>- 문태준·시인 김종삼(1921~1984) 시인의 시는 짧다. 짧고 군살이 없다. 그의 시는 여백을 충분히 사용해 언어가 잔.. 2020. 2. 9.
어부 / 김종삼 ▲완도타워 2층에서 만난 김종삼 시인의 시 어부 - 김종삼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면 완도타워에 올라 두 번째 희망편지를 띄웁니다. 오늘 이른 새벽 바닷가에 나갔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간밤 뒤숭숭한 꿈자리로 잠을 설쳐 새벽에 눈을 붙이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바닷가에 살면서 일찍부터 바다의 두 얼굴을 목격하며 살았습니다. 잔잔한 바다에 태풍 일어 바다가 뒤집히는 날에는 으레 새벽 바닷가 모래사장에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밀려온 물체를 .. 2014. 5. 9.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②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면 완도타워에서 띄우는 희망편지②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면 완도타워에 올라 두 번째 희망편지를 띄웁니다. 오늘 이른 새벽 바닷가에 나갔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간밤 뒤숭숭한 꿈자리로 잠을 설쳐 새벽에 눈을 붙이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바닷가에 살면서 일찍부터 바다의 두 얼굴을 목격하며 살았습니다. 잔잔한 바다에 태풍 일어 바다가 뒤집히는 날에는 으레 새벽 바닷가 모래사장에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밀려온 물체를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장면이 악몽으로 되살아났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마을 어른들은 바람이 자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물을 걷어 배에 싣고 망망한 바다로 나가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지요. 헤밍웨이의 처럼 말입니다. 아무.. 2014.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