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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7

시인(詩人) / 김광섭 시인(詩人) -김광섭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 아름 팍 안아 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篇)에 2천 원 아니면 3천 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시집 《성북동 비둘기》(1969) 수록 ◎시어 풀이 *천직(天職) : 타고난 직업이나 직분. *어릿궂은 : ‘어리궂은’의 잘못. 매우 어리광스러운 ▲이.. 2020. 4. 20.
생의 감각 / 김광섭 생의 감각 - 김광섭 여명(黎明)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빛은 장마에 넘쳐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 《성북동비둘기》(1969) 수록 ◎시어 풀이 *여명(黎明) : ① 희미하게 밝아 오는 빛. 그런 무렵. ② 희망의 빛. *황야(荒野) : 거친 들판. 황원(荒原). ▲이해와 감상 이 시 ‘생의 감각’은 생의 자각, 즉 생명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화자는 자신의 병고.. 2020. 4. 19.
산(山) / 김광섭 산(山) - 김광섭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 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 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2020. 4. 19.
저녁에 / 김광섭 <출처 : 2018. 12. 26 / 시사저널> 저녁에 - 김 광 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 2020. 2. 17.
마음 / 김광섭 마음 - 김광섭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 2020. 2. 17.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그 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 2020. 2. 8.
사랑시[15] : 저녁에 - 김광섭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15] 저녁에 - 김 광 섭 ▲ 일러스트=클로이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 2008.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