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도(1)
환상의 남해섬 해안도로 드라이브(1)
남해도 서부 : 남해대교부터 앵강만까지
글·사진 남 상 학
느림의 철학을 실천하고 싶다면,
걸음과 걸음 사이에서 휴식의 기쁨을 찾고 싶다면,
생각의 속도에
여유라는 쉼표를 넣고 싶다면,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나의 아름다웠던 모습들을 다시 발견하고 싶다면,
우리 함께, 떠납시다!
그 여행길에서 남해로의 여정은
가장 적절한 친구로 다가오리라.
바다를 바라보고 누운 부드러운 구릉위에서
숲의 향기, 저만치 발 아래 바다에서 전해지는 해풍을 음미하면서
수줍은 새색시의 몸놀림처럼 순수와 호기심으로 가득 찬 섬!
원시의 건강함이 넘쳐흐르는 곳,
자연을 닮아 평화롭기 그지없는 사람들
시간이 멈춘 듯 바다에 조용히 엎드려 있는 이곳 남해도(島)
이 글은 남해도에 있는 어느 펜션의 모시는 글의 한 구절이다.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 드라이브는 어디가 좋을까? 이런 질문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쪽빛 바다를 끼고 해안을 굽이굽이 도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남해도를 선택한다.
남해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1973년 일찍이 남해대교가 놓이면서 반 육지가 됐다고 하지만 남해는 분명 섬이다. 보물섬이라고 불리는 이 섬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더불어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고장이다. 남해군은 남해도와 창선도, 두 섬을 비롯해 유인도 3개와 무인도 65개로 이뤄져 있다. 남북 30km, 동서 26km로 나비 모양으로 생긴 해안선이 무척이나 길고 굴곡 또한 심한 편이다. 그만큼 해안은 아름답고 평온하다.
그 ‘섬’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어 해안도로 일주 드라이브를 선택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의 하나로 꼽히는 남해 해안일주도로. 해안경치가 아름다워 섬 전체가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로 불리는데 그 도로를 달리다 보면 해안 절경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남해 섬을 돌아가는 환상의 해변도로는 계절마다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고 올록볼록 오르내리는 드라이브 코스를 달리다보면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섬 천제가 깨끗한 청정지역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만 아니라 근사한 바닷가, 한적한 포구, 흥미진진한 전설이 어린 여행지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특히 남해는 충무공의 주요 활동 무대이면서 쪽빛 물결이 넘실대는 청정해역으로 조는 듯 흔들리며 지나가는 고깃배와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가 깔려 있는 해수욕장, 망망대해에 올망졸망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번 여행은 남해대교를 건너 19번 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충렬사를 먼저 탐방하고 고현에서 77번 도로로 서쪽 해안을 남쪽, 동쪽으로 돌면서 군데군데 내륙 쪽을 엿보기로 하고 진행되었다. 세 파트로 나누어 진행한 여행을 차례대로 올려본다.
* 파트(1) 남해대교 - 충렬사 - 충무공전몰유허와 이락사 - 서상리 - 선구리 - 가천 다랭이마을 - 홍현 - 두곡를 잇는 앵강만 코스
* 파트(2) 금산 보라암 - 상주, 송정해수욕장 - 남해의 미항 미조항을 잇는 코스
* 파트(3) 미조항 - 초전 - 항도 - 물건리에 이르는 해안도로 - 독일마을, 해오름예술촌 - 지족리 죽방염 - 창선대교를 넘는 코스
노량 해협을 가로지르는 남해대교
남해대교는 남해의 절경이 시작되는 관문이다. 하동 노량과 남해 노량을 이어 남해군을 육지로 바꾸어 놓은 남해대교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상징처럼 장식하는 구름다리로 한국 최초의 현수교(懸垂橋)로 1973년 6월에 준공됐다. 총 길이 660m, 높이 80m, 폭 12m로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작은 항구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그대로이다. 개통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또한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 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 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이며,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탔던 한 맺힌 곳이기도 하다.
남해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남해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30년 전부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거뜬히 물을 건너온다. 특히 봄에는 남해대교를 건너면 벚꽃터널이 반겨준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의 터널의 장관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남해대교는 태어날 때부터 붉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부식을 이유로 잿빛으로 바뀌었다가 2003년 산뜻한 선홍색으로 새로 단장을 하여 창선연륙교와 함께 섬으로 가는 남해군 최고 관광자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불멸의 이순신 그 자취들(충렬사, 이락사, 관음포)
남해대교를 건너 우측으로 돌아나가면 먼저 만나는 곳이 충무공 이순신의 유적이다. 남해대교가 서 있는 해협은 이 충무공이 장렬한 최후를 맞은 노량이다. 이순신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은 남해대교가 있는 노량 바다에서 벌어졌고 그곳에서 일본 수군을 맞아 마지막 전투를 벌여 임진왜란을 종식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자신은 일본 수군의 유탄에 맞아 1598년 12월 16일 장열하게 전사했다.
남해대교를 지나 만나는 충렬사(忠烈祠)는 정유재란(1598)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에서 장렬하게 순국한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노량리에 세운 사당이다. 노량 앞바다의 푸른 물결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노량마을 해안 언덕배기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충무공은 관음포 노량해전에서 순국하고 아산으로 운구 전에 3개월간 이곳에 안치되었다.
충렬사는 조선 선조 39년(1606년) 제7대 통제사 이운룡이 왕명으로 이충무공의 위훈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경내에는 이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비롯하여 내삼문, 외삼문, 중문, 정문, 홍살문 등 다섯 개의 문이 있으며, 중문 안에는 향사 때 제수를 준비하던 동재, 서재가 있고 외삼문 안에는 사무를 관장하던 숭무당과 인재를 양성하던 경충재가, 외삼문 좌우에는 충렬묘비를 비롯한 6동의 비각이, 외삼문 밖에는 1988년에 복원한 강한루와 전시관 등이 있다.
사당 앞에 있는 "유명조선국삼도통제사 증시충무이공 묘비"는 1660년에 숭록대부 의정부 우찬성 송시열이 글을 짓고 정헌대부 의정부 좌참찬 송준길이 쓴 것이다. 1965년에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충렬사’와 '나라를 위해 싸운 공적이 극히 크다'는 뜻의 ‘보천욕일’이라는 현판를 달았다.
충렬사 입구 바다에는 거북선을 재현해 놓았고, 사당 뒤편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임시 묻었던 자리에 장군의 가묘(假墓)가 있고, 1948년 정인보가 쓴 충열사비가 있다. 이곳에 서서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져 봄도 좋을 듯하다.
충렬사를 지나 남해읍으로 향하는 19번 도로 양 옆에는 새파란 벚나무가 터널을 이룬다. 약 5킬로미터 정도가면 이락사(李落祠)라는 이 충무공의 ‘관음포 전몰 유허(遺墟)’가 있다.
이락사는 이 충무공이 ‘이락(李落, 오얏 꽃 떨어지듯)’ 전사하신 것을 슬퍼하고 기려서 세운 사당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맨 처음 육지에 오른 곳이다. 이락사 앞뜰 잔디밭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다.
한자로 된 유언비의 글귀는 '戰方急하니 愼勿言我死하라'는 유언이다. ‘바야흐로 전쟁이 급하니, 삼가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글은 읽으면서 무릇 장수로서의 리더십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락사가 순국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사철 푸른 육송이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조국을 향한 애타는 충성스런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돌담을 쌓고 문을 단 '李落祠(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大星隕海(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다. 글씨가 힘이 있고 살아 있다. 경내 왼쪽에는 이충무공유적비가 있다.
노량해전의 전장인 관음포를 보기 위해서는 해안 쪽으로 첨망대(瞻望臺)까지 걸어가야 한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 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 한다. 첨망대에서는 노량해전의 전장인 관음포가 한눈에 보인다.
잠시 눈을 감고 노량 바다를 향해 서 있노라면 이순신 함대의 총포 소리와 파손된 채 달아나는 왜선의 다급한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당시 그 바다는 일본군과 선혈이 낭자한 일전을 벌였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평온하고 한가롭기 그지없다. 저 멀리 광양제철소도 보인다.
사계절 스포츠의 메카 남해스포츠파크를 지나며
이락사에서 남해읍 쪽으로 내려오다 고현에서 우측 77번 도로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남해 해안 드라이브가 시작된다. 양식장으로 이용되는 드넓은 갯벌 풍경이 퍽 이색적이다. 그리고 갯벌 넘어 멀리 조는 듯한 작은 섬들과 바다에 떠있는 몇 척의 배들이 한가롭다. 오른쪽으로 짙푸른 바다를 끼고 서상리에 이르면 사계절 스포츠의 메카 남해 스포츠파크에 이른다.
광양항 개발이 한창이던 1980년대 국제항로를 개설키 위한 뻘 준설을 위해 남해군 서면 서상리 마을 해안에 10만평 규모의 방조제를 만들었다. 소중한 주민 소득원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황폐한 저습지로 방치되었던 매립지에는 갈대가 무성하고 황폐되어 있었으나 군민과 관광객의 여가와 휴식을 즐기는 운동 휴양지을 황금의 땅으로 탈바꿈한 곳이 바로 남해군의 스포츠파크다.
맑은 하늘과 푸른 산, 그리고 깨끗한 바다가 어우러진 이곳은 국내외 프로팀의 겨울철 전지훈련장으로 활용할 복합 스포츠파크를 조성하였다. 사계절 잔디구장 6면, 인조축구장 1면, 97실 규모의 스포츠파크 가족호텔,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자랑하는 대한 야구캠프, 풋볼 경기장, 실내수영장, 조각공원, 어린이놀이시설 등 레포츠를 만끽할 수 있는 종합시설로 전국단위축구대회 등을 유치하여 새로운 관광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겨울철 온화한 기후와 수려한 자연경관을 활용하여 한겨울 축구 야구 등 국내 운동선수들의 동계훈련 장소로 이용된다. 기업연수, 학생 및 단체수련장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스포츠파크를 벗어나 1024번 지방도로를 달리다 다시 남면 갈림길에서 우회전해 남면 방향으로 마냥 달린다. 달리면서 느끼는 남해 섬에 대한 감탄은 점점 고조된다. 경관이 좋아 보이는 지점 해안 언덕 위 주차장에 잠시 차를 세우고 바다의 풍경을 조망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케이프타운 전망대. 이곳은 알고 보니 전망대이자 식당이다. 식당 자체가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식당 아래 만들어 놓은 씨엔드림(SEA & DREAM, 055-863-5701 )라 이름을 붙인 콘도형 팬션은 완전히 이국풍이다.
계속해서 만나는 구미 숲과 사촌해수욕장을 지나면 해안 절경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길가에 늘어선 낮은 봉우리들을 뒤덮을 듯한 붉은 황토밭도 시선을 잡아끈다. 사촌마을을 항아리처럼 둘러싸고 있는 사촌해수욕장은 주위 경관이 너무나 아름답다.
응봉산(472m).설흘산(481m) 자락으로 나 있는 이곳 도로는 국내 해안도로 중 최고다. 곡선 구간이 적당히 섞여 운전하는 재미도 있고, 더욱이 까마득히 내려다보는 바다가 상쾌하다.
전통 테마마을인 가천 다랭이 마을
꼬불꼬불 산허리를 휘감으며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아름다운 경치에 탄성을 자아다 보면 선구리를 지나 남해의 섬 끝에 자리 잡은 가천마을에 닿는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이 비탈을 따라 바다까지 이어지는 곳. 흔히 가천 다랭이 마을로 알려져 있다. 설흘산(481m)과 응봉산(412m) 사이 바다로 내달리는 급경사지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마을이다. 마을은 설흘산(485m)이 바다로 내리지르는 45도 경사의 비탈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말이 평균 45도이지 심한 곳은 70도에 이르는 가파른 곳도 있다.
'다랭이'는 '다랑이'의 사투리로 '썩 좁고 작은 논배미'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논을 지리산 등 내륙에선 다락논, 다랑이논 등으로 부른다. 그러나 가천마을에선 원래 ‘달갱이논’으로 부르다가 최근 ‘다랭이논’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망망대해가 바로 눈앞이지만 배 한 척 없는 곳이 바로 다랭이 마을이기도 하다. 앞 바다는 물살이 세고 연중 강한 바람이 불어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한다. 주민들은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포기하고 뒤쪽 산비탈 다랭이 밭에 삶을 기대고 산다. 다랭이 밭은 적게는 3평 남짓 삿갓배미부터 기껏해야 100평을 넘지 못하는 밭들이 바닷가 절벽에서부터 설흘산 8부 능선까지 층계를 이룬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인간의 삶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형성된 곳이다.
계단식으로 층층이 들어선 다랭이 밭에는 마늘을 수확한 자리에 물을 대고 벼를 심었다. 그것도 물을 대기에 조건이 맞는 낮은 지대에만 가능하고 산비탈에는 콩 등의 밭작물을 심었다. 삶을 위해 이곳의 부지런한 농부들은 주어진 환경을 이용하는 지혜를 터득했을 뿐만 아니라 성실하고 근면했다. 그들이 근면했기에 다랭이 밭의 농산물들이 푸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으리라.
층층이 계단 모양으로 만들어진 밭과 논이 산자락을 따라 빼곡히 들어차 있고, 그 너머로는 푸른 남해바다가 또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이처럼 계단 모양의 논은 보통 평지가 없는 산간 오지마을의 비탈진 경사에 만들어진다. 가천마을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차를 길옆에 세워두고 도로 아래 마을 쪽으로 내려가니 집집마다 좁은 마당에 마늘이 그득하다. 여름에 캐낸 마늘을 말려 곳간에 주렁주렁 매단 집도 있다.
다랭이 밭에 눈길을 주며 한참을 내려가니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돌로 쌓은 밥무덤이 있다. 그리고 좀 아래로 익곳 특유의 암수바위가 있다. 조선 영조 때 남해 현령이었던 조광진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 알려 준 곳을 파보니 그곳에서 바위가 나와 그것을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세우니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닮았다고 해서 암수바위라 하고 그 후로 마을이 번창하며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수바위는 꼿꼿하게 몸통을 세운 상태이며, 중간에 도드라진 형태의 경계가 나 있다. 너무나 늠름하기에 여자들이 본다면 약간 민망하다는 생각도 들 지경이다. 땅속에서 솟아난 높이만 해도 580㎝나 된다. 밑에서 중간 경계까지가 260㎝ 정도여서 귀두부에 해당하는 부분만도 240㎝나 되는 거대한 모습이다.
이와 달리 암바위는 약간 떨어진 둔덕에 눕혀진 상태다. 총 길이는 340㎝ 정도이며, 중간의 폭은 120㎝로 마치 임신한 여인의 몸처럼 불룩하다. 바위 위쪽부터 100㎝ 정도 내려온 것은 흰색으로 줄이 나 있다. 마치 사람의 얼굴과 몸통을 경계 짓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랭이 마을에도 나그네가 쉴 곳이 몇 군데 있다. 외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하여 먹거리를 파는 집들이다. 막걸리에 두부, 파전을 판다. 시골할매 막걸리집의 평상에 앉아 마늘쫑에 된장 찍어 안주 삼고, 컬컬한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키며 한잔을 권한다. 이곳에 오면 인심조차 좋아지는 걸까. 이 집에도 가천 마을의 여느 집들처럼 담 너머에 남해의 푸른 바다가 걸쳐 있다.
시간만 된다면 설흘산 산행을 해 보라. 남해도 최남단의 남면 동서로 뻗어 있는 설흘산(雪屹山·482.5m)~응봉산(매봉·472.7m) 능선은 특히 봄철에 인기를 끄는 산행 대상지다. 봄 분위기를 물씬 자아내는 부드러운 능선과 스릴이 넘치는 바윗길을 걸으며 태평양까지 펼쳐지는 바다 조망과 더불어 아늑한 내륙의 산지를 바라보는 멋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선구리 서낭 느티나무~병풍바위~칼바위~응봉산~설흘산~가천 다랭이 마을 코스는 3시간30분, 그러나 다랭이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육조문능선~응봉산~설흘산~다랭이 마을 코스를 택하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설흘산 정상에서 가천 다랭이 마을로 내려서려면 응봉산 쪽으로 향하다 첫 번째나 두 번째 갈림목에서 왼쪽 길로 빠지면 된다.
호수처럼 둘러싸인 앵강만
다랭이 마을을 지나면서 1024번 도로는 앵강만을 둘러싸고 달린다. 남해의 쪽빛 바다와 점점이 떠있는 크고 작은 섬들, 싱그러운 초록빛의 계단식 논 등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남면. 이동면. 상주면 등 세 개의 면에 둘러싸인 앵강만은 큰 호수처럼 보인다. 이곳에 오면 특별히 시인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시적 분위기에 젖어볼 수 있는 곳이다. 문득 남해가 고향인 고두현 시인의 시들이 떠오른다.
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
선천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 수레로 천 리 뱃길 시오 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 / 땅에서 나온 모든 숨 쉬는 것들 모아
화전을 만들고 밤에는 / 어머님을 위해 구운몽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 바다 / 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 고두현의 ‘남해 가는 길-유배시첩1’ -
한때 내 마음속에도 저렇게
깊고 푸른 바다가 담겨 있었던 적이 있다.
어느 날 그 바다 안쪽으로
한 여자가 돛단배처럼 미끄러져 들어왔고
내 바다는 한 번 깊게 출렁거렸다.
돛단배가 떠난 이후
내 안의 바다는 오랫동안 설레지 않았다.
- 안병기의 '첫사랑을 기억해내다-남해도 앵강만에서' 전문
그렇다. 남해도 앵강만은 서럽도록 푸른 쪽빛을 가지고 있다. 그 바다는 뭍으로 깊숙이 흘러들어와 웬만해서는 출렁거리지 않는다. 겉에서만 바라보는 앵강만은 항상 정지된 바다이다. 그러나 이 앵강만이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지만 내면은 온통 들끓고 있을지도 모른다. 앵강만의 내면에서 들끓고 있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앵강만을 바라보았을 때마다 시인의 내면이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들끓었다. 그리움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 불치의 병이다. 그리고 첫사랑은 그리움이라는 불치의 병 가장 안쪽에 붙어 있는 종양이다.
스무 살 청춘의 시절, 앵강만처럼 짙푸른 바다가 있었던 시인의 바다에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배 한 척. 그 배가 원시의 바다에 처음 닻을 내렸을 때, 시인의 수면은 얼마나 깊게 출렁거렸을까.
시종 어머니의 자궁 같은 포근한 앵강만과 여수만의 쪽빛 바다를 옆에 끼고 바닷가의 가파른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 펼쳐진다. 절벽 위를 달리는 남면 해안도로는 관광도로라는 명칭이 붙을 만큼 절경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특히 해질 무렵 이곳을 찾으면 동백꽃보다 더 붉은 노을이 가슴 깊숙이 스며들며 알 수없는 감상에 젖게 한다.
만약 때가 되어 여행의 피로를 풀겸 음식을 든다면 앵강만을 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앵강만 맛집으로는 ‘남해자연회집’( 055-863-0863 ) 을 꼽는다. 남면 홍현리 소재 전복죽 전문집. 맛도 맛이지만, 유리창 너머 앵강만 풍광에 식욕 돋는 음식점이다. 앵강만 청정해역에서 키운 전복으로 죽을 해낸다. 덤으로 날씨가 좋을 때는 해녀들의 작업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참고> 환상의 남해섬 해안도로 드라이브(2), (3)이 이어집니다.
<끝>
'섬여행기 및 정보 > - 남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최서남단 가거도(可居島) , 거기 가보지 않겠나? (0) | 2007.05.31 |
---|---|
환상의 남해섬 해안도로 드라이브(3) (0) | 2006.07.04 |
환상의 남해섬 해안도로 드라이브(2) - 남해도 남부(금산~미조항) (0) | 2006.07.04 |
여수 제일의 명소 동백섬 오동도(梧桐島) (0) | 2006.06.29 |
거문도와 백도 둘러보기 (0) | 2006.06.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