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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및 교회, 학교/- 성지순례(국내)

일제의 만행에 23명이 생명을 잃은 제암리교회

by 혜강(惠江) 2006. 4. 1.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일제의 만행에 23명이 생명을 잃은 제암리교회

 - 지역 만세 운동에 주도적 역할 담당한 교회 -

 

 

 

·사진 남상학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과 교회 전경        

 


  소래교회의 탐방을 마치고 신갈-안산 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발안 IC로 빠져 나와 경기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로 향했다. 제암리 감리교회는 일제의 만행으로 23명이 목숨을 잃은 순교의 현장이다.

 

 

일제의 탄압과 그에 항거한 독립 만세

 

 

   1880년대 전반 외래종교로 이 땅에 들어온 개신교는 한국 민족주의의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개항 이후였기 때문에 1백 년 먼저 들어온 천주교처럼 격렬한 탄압에 직면하지는 않았지만, 토착 민족주의 세력은 개신교에 여전히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두번째 지은 교회 모습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전파한 서구식 제도와 민주주의 사상은 근대 민족주의가 싹트고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선교사들이 설립한 교회와 학교를 통해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배출됐으며, 자유와 평등, 자주 사상이 대중에게 전파돼 갔다.

   1919년의 3·1운동은 개신교가 한국 민족주의 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개신교는 천도교-불교와 함께 3·1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독립만세 시위 중 상당 부분이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주도됐다. 그 만큼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의한 피해도 많았는데,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경기도 화성군의 제암리 교회이다.

 

시신과 함께 불탄 마을과 교회  

 


희생자 23인 상징 조각물



  일제 경찰은 1919년 4월 15일, 오후 제암리 교회에 신자들을 모이게 한 후 문을 폐쇄하고 교회에 불을 지르면서 무차별 총격을 가했으며, 이 때문에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4월 5일 발안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제암리 교회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었다.

   1905년 8월 제암리 이장이었던 안종후의 주도로 설립된 제암리 교회는 동족 부락이라는 특성 때문에 유난히 강한 단결력을 지녔는데, 3·1운동 때도 이 같은 성격은 그대로 나타났다. 일제 경찰은 이어 제암리의 가옥 30여 채를 불태우고 5백m 떨어져 있는 고주리에서 천도교 신자 6명을 살해하고 시체를 불태워 버렸다. 

 

 

23인 합동 순국묘지 
   
 

  이 같은 만행으로 이날 제암리 일대에서는 사람과 가옥, 가축, 의류, 곡식 등이 타는 냄새와 연기가 10여㎞ 밖까지 퍼져 나갔다고 전한다. 제암리 교회 학살 사건이 일어난 후 신자나 일반인들은 일제의 감시 때문에 사건 현장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희생자들의 시신은 사건을 전해들은 캐나다 의료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며칠 후 불탄 교회에서 유골을 수습하여 인근 공동묘지 입구에 묻을 때까지 방치됐다.

 


교회의 재건과 기념관 조성 사업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 배치도 

 

 

      기념관 입구(화성시에서 관할하고 있다)
  
 

제암리 교회는 1919년 7월 자리를 옮겨 다시 건립됐고, 1938년 현재의 위치에 기와집 예배당이 만들어졌지만,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은 광복 후까지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 사건 현장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된 ‘3·1운동 순국기념탑’이 세워졌고, 1970년 9월에는 일본의 기독교인과 사회단체들이 속죄의 뜻을 담아 보내온 1천만 엔의 성금으로 새 교회와 유족회관이 건립됐다. 또 1982년 9월 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유해 발굴 작업이 실시돼 교회 옆에 마련된 묘소에 안장됐으며, 다음해 7월 기념관과 새 기념탑이 세워졌다. 

 

 

        

새로 지은 교회의 강단과 천정

 

 

▲꽃재교회 장로단이 강단 앞에서 기념촬영

 


   이렇게 건립된 예배당과 기념관이 낡고 협소하여 이 건물들을 헐고 새롭게 신축하였는데, 모든 공사의 건축비는 국비로 충당하였다. 새롭게 신축한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는 시청각교육실과 제1, 제2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고, 야외에는 23인 상징조각물과 3·1정신교육관이 있다. 이들 시설물은 현재 화성시가 관리하고 있다. 


        

 

기념관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기념관에 잇대어 새롭게 지은 제암리 감리교회는 많은 참배객들이 모여드는 특수한 지역임을 감안하여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무대와 조명, 냉난방 시설, 천정의 시설들이 초현대식이다. 국내의 개신교 성도들은 물론, 일본인을 비롯하여 국내외에서 매년 약 4만 명이 찾는 손꼽히는 참배 장소가 되었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면서 조국의 독립과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숨진 선배들의 믿음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가 편안하게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기독교인들이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참배한다고 하지만, 어두운 시절 그들의 만행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하며, 그렇다고 이러한 기억은 증오로서 표출될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신앙적인 승화로 이어져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발길이 이어지는 순교 현장

 

 

◆가는 길


* 도로안내 : 경부고속도로 오산 I.C-발안-조암 방향으로 약 2㎞ 진행하면 제암리 마을 입구에 '3.1운동유적지 제암 교회'안내판이 있음. 마을로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있음. 서해안 고속도로 발안 I.C- 좌측 발안 방향으로 300m 진행하면 제암리 교회 안내판이 있음.
* 현지교통 : 수원 터미널에서 발안, 조암 방면 직행버스를 이용하여 발안을 경유하여 조
 방향으로 2㎞ 지점인 제암리 교회 앞에 하차. (수원→제암리 2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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