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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및 교회, 학교/- 성지순례(국내)

순교의 피로 얼룩진 괴산 연풍성지(延豊聖地)

by 혜강(惠江) 2006. 10. 20.

 


괴산 연풍성지 

 

순교의 피로 얼룩진 연풍성지(延豊聖地) 

 

 

글·사진 남상학

 

 

 

주차장에서 성지로 들어가는 입구의 표지석과 형구틀-

 

  연풍은 수안보에서 3번 도로를 이용, 경상북도 문경으로 넘어가는 문경새재의 서쪽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서울에서 직접가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I.C 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최단거리이다. 연풍은 전체가 소백산맥의 산등성이에 속한 험지이고 문경군과 접경지대에 조령산과 백화산 등 소백산맥의 주봉들이 높이 솟아 있다. 그만큼 험난하기에 예로부터 경기,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박해를 피해 충청도와 경상도로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나서는 순교자들의 피난지로 일찍부터 천주교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천주교 연풍성지(충북 괴산군 연풍면 삼풍리)는  조선 정조 15년(1791) 신해교난(辛亥敎難) 이후 연풍 땅에 은거하여 신앙을 지켜가던 교인 추순옥(秋順玉), 이윤일(李尹一), 김병숙, 金말당, 金마루 등이 순조 1년(180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처형당한 곳이다. 그 자리에 1974년부터 천주교회에서 성역화하였다. 



연풍향청



  넓은 잔디밭과 새로 조성된 진입 도로 등 시설이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는 성지  내에는 연풍향청 건물(延豊鄕廳,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3호)이 있다. 향청은 조선 전기 지방수령을 보좌하던 자문기관인 유향소의 다른 이름이다.  향촌의 풍기를 단속하고 향리를 감찰하며 마을의 관리임원을 추천하고, 조세나 요역의 부과 또는 분배 등에 대한 자문기능을 담당하였다. 연풍향청은 일제시대에는 주재소 등으로 사용하였으며, 1963년부터는 천주교 연풍공소로 쓰고 있다. 


   연풍 성지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63년 연풍공소로 옛날 향청 건물(헌병주재서와 경찰지서 등)을 사들이게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3백년이나 묵은 이 건물을 매입할 당시만 해도 이곳이 순교 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다. 하지만 매입 후 논과 집터 정리 작업 중에 박해 때 죄인들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된 형구돌이 3개나 발견됐다. 이 형구돌은 병인박해(1866)때 순교자들을 소리 없이 죽이기 위해 흥선대원군이 만들도록 명을 내림으로써 만든 것이 ‘형구돌’이다. 밧줄을 건 교우의 목이 앞 구멍에 놓이면 반대편 구멍에서 줄을 잡아당겨 죽이던 잔혹한 형구이다. 그러니 이즈음에 이르러서는 "하나님께 죄를 짓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며 신양을 지키기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했던 신앙선조들의 믿음이 배인 거룩한 돌이라 할 수 있다.

    연풍성지에서 발굴된 형구돌은 직경 1미터, 둘레는 4~4.5미터의 크기이며 방위돌 가운데에는 직경 25~30센티미터의 원추형 구멍이 뚫려 있다. 그동안 연풍성지에서 발굴된 형구돌은 모두 3개로 첫 번째 것(1963)은 절두산 성지에 기증 , 보관돼 있고, 두 번째 형구돌(1972)은 성지 내 형방건물 정면 쪽에 그리고 세 번째 형구돌(1992)은 대형십자가가 있는 치명터로부터 바로 50미터 지점에서 발굴대어 성지 내에 전시돼 있다.

 

 

대형십자가, 성모상과 사도요한

 

황석두 동상 

황석두 묘 

 

 앞뜰에는 높이 8.5m의 십자가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순조 13년(1813) 연풍현 병방(兵房)골에서 태어난 교인으로 고종 3년(1866) 충남 보령군 오천면 갈매못에서 순교한 한국천주교 103성인의 한사람인 루까 황석두(黃錫斗)의 입상과 묘가 있다.  1968년 시복식 후 황석두 성인의 고향이 연풍으로 드러남에 따라 1979년에는 평해 황씨 문중 산에 묻힌 황석두 성인의 유해를 확인, 1982년 연풍성지로 이장했다.

 

 

다섯 성인상과 반석 

 

순교현양비

 


   또 이곳 성지에는 황석두 성인과 함께 충남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한 W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등 5인의 성인상과 함께 순교현양비(殉敎顯楊碑)를 세워 순교자들의 고귀한 넋을 현양하고 있다. 그리고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대주교의 동상과 국내 최대의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으며, 사제관을 비롯한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노기남 대주교 동상 

 

 

  또 뜰에는 순례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할 수 있도록 ‘십자가의 길’((1처~13처)을 마련하였다. 이곳에는 매년 2만여명의 순례자들이 찾고 있다.

 

 

 

▲십자가의 길 표지판

 



 2006년 10월 17일, 꽃재교회 선교 사역자들은 수양회의 마지막 방문지 연풍성지에서 순례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가을날이었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하늘이 그리 맑지 않았다.     

 

 

 

▲꽃재교회 선교부 연수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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