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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인천. 경기

은행나무가 유명한 천년 고찰, 양평 용문사(龍門寺)

by 혜강(惠江) 2006. 3. 20.


양평 용문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로 이름난 천년 고찰 용문사(龍門寺)

 

글·사진 남상학

 

 

 

 

  양평 용문사는 수도권에서 많이 찾는 사찰에 속한다. 절 자체의 규모보다는 그리 멀지 않아 오가기가 쉬울뿐더러 용문사 계곡의 깨끗한 물과 공기가 도시인의 마음을 끌기 때문이다.  더구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찰 경내의 은행나무로 하여 유명해진 용문사는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의 대표적 관광코스가 된지 이미 오래다. 이 때쯤이면 용문사에 이르는 가로수나 경내는 노란 은행잎의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용문산관광단지에 가까워지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높이 1,157m의 용문산이다. 관광단지를 품에 안고 있는 용문산의 웅장한 산세와 기암괴석이 만들어 낸 절경은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 용문산 정상은 이전에 출입금지 지역이었으나 2007년에 개방되어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다.

 

  식당가 끝에 위치하고 있는 매표소를 지나면 작은 삼거리가 나온다. 위로 가면 깔끔하게 조성된 광장에는 ‘용문산관광지’ 표지석이 우뚝 서 있고, 용문팔경시비(龍門八景詩碑)가 맞이한다. 용문산관광단지는 197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관광지 내의 볼거리로는 용문사,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 정지국사 부도 및 비(보물 제531호), 용문산지구전적비 등이 있다. 또한 넓은 잔디광장과 캠핌장, 분수대, 야외공연장 등을 갖추고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특히 야외공연장은 용문산의 정취와 음악이 함께 하는 곳이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 연인과 함께 숲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문화공연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넓은 잔디광장은 여유롭게 산책하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며, 아이들이 뛰놀기 좋은 곳이다. 잔디광장 일원에 벽천 및 수로가 있어 시원하게 물소리가 들린다.

 

양평 용문산 국민관광지 안에 조성된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관은 1층은 세미나실과 체험실 위주로 되어 있고 2층은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특히 2층 제1전시실에는 한반도 중부지역 의 농업에 대한 역사와 농업이 산업발전에 어떻게 기여해 왔는지를 보여주며, 2전시실에는 양평지역의 토속신앙과 옛날의 생활 모습들을 재현해 놓았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길   

   용문사의 입구격인 일주문은 기둥을 휘감고 기세 좋게 올라가는 용이 새겨진 ‘용문(龍門)’이 사바세계와 정토(淨土)를 가르고 있는 듯 일주문의 밖과 안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일주문을 지나면 울창한 송림사이로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그 풍광이 아주 좋다. 울창한 나무 때문이겠지만 어둡고 서늘한 기운이 신령함으로 다가온다. 등산로 옆으로는 용문사에 이를 때까지 우측 계곡물이 흘러내려 흥취를 돋운다. 

  썩 뛰어난 경관은 아닐지라도 시원함과 상쾌한 맛을 선사한다. 우거진 소나무 숲길을 따라 절까지 금강경, 법구경의 구절을 새긴 현판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오히려 주변의 경관을 어설프게 한다.

  15분여를 걸어 오르면 휴게소가 있고, 5분여를 더 오르면 작은 다리 너머로 커다란 은행나무의 끝자락이 한눈에 올려다 보인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는 원통형 굴뚝이 멋진 전통찻집이다. 통나무로 지어진 찻집이어서 분위기에 어울린다.

 

 


용문사의 상징, 천년 넘은 은행나무


  사찰로 오르는 비탈길의 좌측 언덕 위로 그 자태가 우람하고 위풍당당한 은행나무가 사찰의 상징처럼 서 있다. 수령 1,100년, 높이 62m, 둘레가 14m인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암나무로서 한국의 모든 나무 중 가장 키가 크며, 가을이면 수확되는 은행만도 10가마에서 많게는 15가마정도라고 한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은행나무는 신라의 경순왕(敬順王)의 세자였던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꽃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성장한 것이라고도 전한다.  그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그 생김새 또한 독특하다. 큰 가지들이 아래로 처져 있고, 은행나무답지 않게 위로 곧게 자라있는 것도 그렇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풍광이 실로 일품이다.

   이 나무가 자라는 동안 많은 병화가 있었으나 이 나무만은 그 화를 면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천왕전이 불탄 뒤부터는 이 나무를 천왕목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는 소리를 내어 그 변고를 알린다고. 조선 세종 때는 정3품보다 더 높은 당상직첩(堂上職牒)을 하사받은 명목(名木)이다.

 

 



신라 시대의 고찰 용문사(龍門寺) 

  은행나무를 지나 ‘자비무적(慈悲無敵)’을 새긴 돌판 옆으로 계단을 오르면 곧바로 대웅전 앞마당에 서게 된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도 한다. 고려 우왕 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그 후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다시 성종 11년(1480) 처안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 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순종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翠雲) 스님이 큰방을 중건한 뒤, 1938년 태욱 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요사 등을 중건하였다

 지금은 중앙에 대웅전, 대웅전 좌측으로 삼성각, 우측으로 지장전, 지장전 앞뜰에는 불사리탑과 미륵불, 범종각, 뜰 좌측으로 관음전, 요사채, 그리고 입구에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여 새롭게 조성하였다.    또 경내에는 권근이 지은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부도 및 비와 지방유형문화재 제172호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있다.


 

용문사 정지국사부도 및 비(龍門寺正智國師浮屠-碑) 

 

 
 용문사에는 은행나무 외에 또 하나의 보물이 있다. 보물 제 531호인 정지국사(正智國師) 부도(浮屠)와 비(碑)다. 대웅전 오른쪽 산길로 올라가면 있다.  태조 7년인 1398년에 만들어졌는데, 600여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비문은 조선 초 유명한 학자이자 문신이었던 권근(權近)이 지었다.

  비문에 의하면 정지국사는 고려 말 무학대사, 나옹화상 등과 함께 중국에서 공부했던 인물로, 법력은 높았으나 자취를 숨기고 홀로 수도에만 전념해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천마산 적멸암에서 입적했는데, 다비식을 치른 후 사리를 거두지 않자 제자의 꿈에 나타나 분부를 내렸고, 이에 사리를 수습하여 당시 개축 중이던 용문사 경내로 옮겨 사리탑인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부도의 높이는 2.15 m. 비의 높이 1.2 m. 부도는 화강암, 비는 점판암이다. 정지국사는 1395년(태조 4) 천마산 적멸암(寂滅庵)에서 입적·다비(茶毘)하였으며, 이때 찬연한 사리가 많이 나오자 태조가 이를 듣고 정지국사를 추증하였다고 한다.  

  비는 비신만 남아 있으며, 글씨는 자경(字徑)이 1.8 cm로 해서체이고 음각되어 있다. 비명은 권근(權近)의 찬(撰)이라고 전한다.  용문사에 가면 은행나무와 절만 구경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리 힘들지 않으므로 용문산 산행을 하면 기쁨 두 배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산세가 웅장한 용문산(龍門山) 

  용문사를 품고 있는 용문산(1157m)은 경기도에서 화악산, 명지산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으로 기암괴석과 준령을 고루 갖추고 있다. 동쪽에 중원산(中元山), 북쪽에 봉미산(鳳尾山)이 있으며, 지질은 화강편마암과 화강암류로 이루어져 있고 석가봉· 가섭봉·아난봉 등의 봉우리가 있다. 
  본디 미지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조선을 개국하고 이태조가 등극하면서 '용문산' 이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깊으며 꽃과 나무들이 계절마다 산의 모양을 바꾸어 놓아 예로부터 명산으로 이름났다.


  용문산에는 용문사를 비롯하여 윤필암(潤筆庵)·상원암(上院庵) 등의 암자가 있다. 용문산 남쪽 계곡에 자리한 상원사는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고 조선 태조7년 조안선사가 중창하였다 한다. 절 위쪽으로는 고려 때의 사찰이었던 윤필암의 절터가 남아있다. 

  정상(1,157m)은 입산통제 지역으로, 정상을 우회하는 등산로가 이용되고 있다. 산행은 용문사 절 왼쪽 계곡길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능선마루턱에 이른다. 용문사에서 2km 거리로 약 1시간 소요. 능선마루에서 등산로가 갈린다.

   짧은 산행을 하려면 여기서 북릉 쪽으로 길을 잡아 920고지에 이른 뒤 계곡을 타고 내려오면 용문사에 이른다. 제2코스는 능선마루에서 서쪽계곡을 통해 상원사와 윤필암 터까지 둘러 볼 수 있다. 

   해발 1,064km의 용문사 중턱에 있는 상원암까지 다녀오는 데는 1시간 쯤 걸린다. 용문사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2km 올라가면 산중턱에 용의 뿔을 닮은 용각바위를 만나게 되고, 여기서 1km 더 올라가면 100명 가량 앉아 쉴 수 있는 대형바위, 마당바위가 있다. 가장 긴 제3코스는 용천리 사나사를 산행 출발점으로 하는데, 등산마니아가 아니라면 상원암이나 마당바위까지 다녀오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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