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석화촌(石花村)
꽃과 돌이 어우러진 별천지
- 다양한 모양의 석상과 꽃의 조화 -
글·사진 남상학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리 209-1. 이곳 석화촌은 글자 그대로 1만 2천여 평에 이르는 대지에 조성된 꽃과 나무, 돌로 이루어진 동산이다. 전체의 모양이 널따란 나뭇잎을 펼쳐놓은 듯한 형상이다. 매표소로부터 난 중앙로는 가운데 잎줄기가 되고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양쪽으로 산책길은 이 옆 줄기를 연상케 한다. 이 길들은 모두 둘레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환상(環狀)의 산책길과 연결되어 있다.
일정한 관람 코스는 없고, 마음 내키는 대로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또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걷기도 하고 꽃 숲에 앉아 향기를 음미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 속에는 관람객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석화촌가든과 까시비앙카페가 있어 관람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을 뿐, 모두가 꽃동산이며 왼쪽 아래쪽으로 작은 연못이 있다.
영산홍과 자산홍, 철쭉의 천국
꽃이 필 때는
딴 마음 없이
오직 일념뿐이다
곁눈 한번 팔지 않고
전력투구다
그래서 황홀하고 눈이부시다.
석화촌의 주축을 이루는 꽃은 2만 그루가 넘는 영산홍과 영산백 그리고 자산홍이 주축을 이룬다. 16개의 블록 중에서 6개 블록이 모두 영산홍 등으로 붉게 물든다. 이곳 석화촌 영산홍은 대부분 우리나라산(産) 토종 영산홍이다. 토종 영산홍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오래 전부터 길러온 원예식물이다. 일본산 영산홍과는 달리 키가 훨씬 크고 꽃 수술의 수도 7-10개나 된다.
영산홍은 엄밀하게 보면 철쭉의 일종이며, 학자들은 일본산 영산홍과 우리나라 산철쭉의 자연잡종으로 보고 있다. 일본산 영산홍은 진달래과에 속하는 상록관목으로 키가 30-90cm 정도로 작고,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오래된 사찰 경내나 민가 뜰에 심어 관상해온 영산홍은 그 색깔도 아주 다양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꽃이 붉은 것은 영산홍, 자색인 것은 자산홍, 흰 것은 영산백 혹은 백영산이라고 불렀다. 석화촌 경내에는 토종 영산홍과 함께 산철쭉 철쭉, 겹철쭉 등 온갖 종류의 철쭉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어, 이들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에는 온 산을 붉게 물들여 꽃 대궐을 이룬다.
영산홍 붉은 꽃잎에 취해 오솔길을 걷다보면, 수더분한 연분홍 빛 토종 철쭉이 눈에 들어와 반가움을 더해준다. 또 저녁이면 석화촌은 새 옷을 갈아입고 변신을 꾀한다. 노란 가로등에 불이 켜지고 그 빛을 받은 꽃들이 낮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석화촌에 영산홍과 철쭉이 만발하는 것은 5월 중순까지다. 그 뒤에는 동백꽃처럼 영산홍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진다. 그렇게 낙화(落花)로 덮인 산책로를 거니는 것도 석화촌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운치다.
각양각색의 꽃과 나무들과 어우러진 석상(石像)들
영산홍, 자산홍, 영산백, 철쭉들 외에도 매발톱 같은 소박한 야생화와 허브, 옥잠화, 수선화, 홍매화, 금낭화, 홍매화, 참나리, 원추리, 둥굴레, 섬백리향, 인동초, 접시꽃, 붓꽃, 독일 아이리스, 수선화 등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꽃들과 소나무 단풍나무, 대나무, 박태기나무 등이 그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들은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꽃을 피워 관람객들에게 항상 꽃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한 붓꽃과에 속하는 독일 아이리스는 높이 30-60cm 높이로 봄에 백색·자색 등의 창포 비슷한 꽃이 피는데 거의 한 블록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석화촌(石花村)은 이름 그대로, 이들 꽃과 나무들 속에 다양한 모양의 석상(石像)들을 조화롭게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석탑, 석등, 불상, 나한상, 달마상, 돌하루방, 돌거북, 돌사자, 해태상, 피리 부는 목동, 오줌 누는 아이, 가얏고 타는 여인, 남근석, 동자(童子)와 사물놀이패 같은 각종 모양의 돌조각과 조각상 400여 점을 이들 꽃과 나무들 사이사이에 배치시켜 자칫하면 꽃과 나무만의 밋밋한 느낌에서 변화를 주고 있다.
이들은 모두 관람자들에게 꽃구경과 함께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돌조각의 인사 받으며 꽃 터널을 산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데가 있을까.
그런데 이들 석물들 중에는 거대한 남근석(男根石)과 오줌 누는 여인, 주막집 주모와 나그네의 수작 등 너무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있어 민망한 느낌을 주는 것이 흠이다. 어린이를 대동하여 가족단위로 보기에는 적절치 않다. 오히려 설명이 없었더라면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폭포와 연못 어우러진 멋스러움
석화촌에는 규모는 작지만 삼단폭포와 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단지 위쪽에서 흐르게 한 물줄기의 낙차를 이용하여 아래쪽에서 작은 폭포를 만들어 흐르게 한 후, 폭포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단아하게 조성된 돌다리 밑을 지나 연못으로 흘러든다.
연못 한 쪽으로 연꽃이 뒤덮인 연못에서는 미꾸라지와 민물 거북이 헤엄을 친다. 그리고 연못 중앙에 분수를 만들어 여름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한다. 또한 작은 연못 위에는 황포 돛대를 매단 배 한 척을 띄워놓아 한가로운 분위기를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연못가에는 잔잔한 꽃들이 올망졸망 아름답게 피어 있다.
특히 연못가 쉼터는 편히 앉아서 쉬기에 편리하다. 여기 쉼터에는 정읍사(井邑詞), 청산별곡(靑山別曲), 만전춘(滿殿春), 쌍화점(雙花店) 등 우리의 옛 노래와 한시 등을 돌에 새겨놓아 고전문학을 감상하며 멋에 취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고려가요 중 유난히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 남녀 사이의 애욕의 정을 노골적으로 읊은 노래 )에 속하는 작품의 글귀를 선호한 것을 보면, 민망스럽기까지 한 석물들과 함께 이곳 주인장 특유의 에로티즘 취향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얼음 위에 댓잎자리 보아 임과 나와 얼어 죽을망정,
얼음 위에 댓잎자리 보아 임과 나와 얼어 죽을망정,
정둔 오늘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만전춘』 전 5절 중 1절
석화촌을 만든 김돈식씨는 어떤 분인가
석화촌을 가까우 오늘에 이른 장본인은 김돈식 씨로 그는 83세(1922년생)나 되는 고령이다. 1948년 혜화전문 문과를 졸업하여, 1950년 <국마리집>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귀촉부>로 한미 시작품 공모전에 당선된 바 있는 문인이다.
그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에 터를 잡고 영산홍, 자산홍 등 갖은 꽃나무와 돌조각이 어우러진 석화촌을 가꾸어온 지는 어느 덧 50여 년, 인부나 다름없이 허름한 옷에 모자를 눌러쓰고 정원의 풀을 뽑는 그이를 석화촌의 대표로 알아보는 이는 별로 없다.
그만큼 그는 흙과 더불어 산다. 꽃과 사는 삶이 즐거워 그는 지금 경기도 이천시 원적산 기슭에 봉래산 터를 닦고 있다. 그는 이런 생활 중에 틈틈이 써놓은 작품들을 묶어 『석화촌』(2004.1.5, 마고북스)이란 시집을 출판했다.
내가 일군 밭에
풀들이 지 땅처럼
마구 자란다
그래서 아니라고
뽑아버렸다
명아주 망초 꽃다지 쇠비듬 등
들풀에겐 미안하지만
도리가 없다
-『김』전문)
그래서 그는 눈 드고 있는 시간이면 엎드려 김을 매고 있다.
◆ 대중교통 ◆
- 경춘선 금곡역 1번출구 건너편 23, 55, 64, 77번 → 조선왕릉사릉·송능2리 버스정류장 하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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