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및 정보/- 터키.그리스

터키 파묵칼레 : 목화(木花)의 성, 터키의 휴양온천지

by 혜강(惠江) 2005. 12. 7.

 

터키  파묵칼레

 

목화의 성, 터키의 휴양온천지 파묵칼레

-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 석회암 온천, 기타 -

 

 

글 · 사진 남상학

 

 

 

 

 

 

  파묵칼레는 아나톨리아 남서부 데니즐리주에 위치한다. 이스탄불에서 580㎞, 앙카라에서도 480㎞가량 떨어져 있는 외딴 시골 마을이 터키의 최고 명승지가 된 이유는 명료하다. 푸른 연못을 가득 매단 순백의 '목화의 성'(Cotton Castle)이 자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본래 이 지역은 온천이 많아 치료 휴양의 도시이자 상업의 도시였다. 주변 어느 곳이나 목화밭을 볼 수 있듯이, 이곳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모직 산업에 종사하였고, 섬유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였으나, 최근에는 ‘목화의 성’이라 불리는 파묵칼레의 석회붕을 보기 위해 세계의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면서 주민 대부분은 관광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소박한 풍경으로 채워진 마을 골목골목을 지나 파무칼레로 향한다. 한낮의 태양에 이글대는 아스팔트 도로 너머로 새하얗고 거대한 언덕이 우뚝 솟아 있다. 마치 사막 위에 만년설을 만난 듯,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뭉게구름을 한 점 뚝 떼어놓은 듯 그저 신비롭고 생경하다. 수많은 매체 속에서 수도 없이 봐온 풍경이건만 실제 마주한 파무칼레의 모습은 예상보다 훨씬 놀랍고 낯설기만 하다.

 

  바로 이곳, 로마인들은 기원 전 190년, 이 휴양지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다. 이 도시 이름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원형경기장, 아폴로 신전, 석관으로 가득한 노천 공동묘지가 온천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고대 도시인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라고 알려져 있는 자연의 일부이다. 

   또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제자 빌립이 히에라폴리스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지며, 가까운 곳에 있는 라오디게아는 기독교의 초대 일곱 교회가 있던 곳이다.  따라서 파묵칼레 관광은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의 유적과 신이 빚은 온천지 석화암 지대의 노천온천을 둘러보는 것이 초점이 되며, 아울러 관련 기독교 유적을 돌아보는 것이 될 것이다.

 

 

 


폐허로 변한 히에라폴리스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은 파묵칼레의 석회붕 위쪽 산언덕 넓은 지역에 퍼져 있다. 히에라폴리스 유적지는 수차례에 걸쳐 발생한 지진과 제국 간의 전쟁으로 도시는 급격히 황폐해져 지금은 몇 개의 건물 잔해들만 서 있다.

 

 오랫동안 잊혔던 이 고대도시는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히에라폴리스 안에는 아폴론 신전, 순교자 성 빌립보 기념성당, 1000여 개 석관묘 등 수천 년 전의 흔적이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히에라폴리스의 유물 중 가장 이채로운 것은 성문 밖 광범위한 언덕에 세워진 거대한 무덤 네크로폴리스이다. 1,200여 개의 이들 대리석 석관(石棺)의 무더기는 가히 장관이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 나오는 온천수의 치료효과 때문에 수천 명의 환자들이 병 치료를 위해 이곳 히에라폴리스에 왔다. 섭씨 35의 탄산수는 여러 질병에 효험이 있어 로마 황제들도 치료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다행이 병이 나은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낫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장례 습관에 따라 이곳 도시의 광범위한 묘지에 매장된 것이다. 그래서 네크로폴리스는 다양한 매장 방법과 고분, 뒤집어진 배 모양의 리시아 석관, 집 모양의 무덤 등 각기 다른 모양의 무덤들이 산재해 있다. 

 히에라폴리스에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2세기경에 건축된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원형극장이다. 이곳에선 완벽하게 음각된 대리석 부조물을 볼 수 있다. 양 옆에 둥근 탑이 있는 기념문은 하드리안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고, 그 뒤의 열 주랑이 있는 길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둥근 관객석 위에서 내려다 보는 파묵칼레의 전망은 정말 압권(壓卷)이다.

 

 온천 휴양지로 명성을 떨쳤던 곳답게 목욕탕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는 관광객을 위한 노천 목욕탕으로 사용되는데, 대리석 기둥 같은 유적이 물속에 담겨 있어 오묘함을 더한다. 이곳을 찾아온 휴양객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목욕을 즐긴다. 목욕탕에 딸린 건물은 비잔틴 시대에 교회로 사용된 것인데,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석관이 무수히 흩어져 있는 네크로폴리스
히에라폴리스 유적들
박물관
온천 겸 수영장

 

사도 빌립 순교기념교회와 그의 무덤 및 무덤교회

 

 

  또 예수의 제자 사도 빌립이 이곳에서 순직했는데, 이 무덤(마르트리움)은 완벽한 설계로 세워진 것들이다. 히에라폴리스의 산기슭에는 빌립사도 순교 기념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사도 빌립이 순교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두 딸과 함께 순교 당한 곳에 세워진 것이다.

 빌립의 순교 내력과 장소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기독교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에서 에베소 교회 감독 폴리갑의 글을 인용,빌립이 히에라볼리에서 두 딸과 함께 잠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어디인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2011년, 이탈리아 고고학자인 프란체스코 단드리아(D'Andria)에 의하여 폐허가 된 빌립 순교 기념교회를 발굴하다 교회 아래쪽 40m 지역에서 빌립 사도의 무덤을 발견했다.

 

  빌립은 본래 안드레 베드로 등과 함께 갈릴리 벳새다 출신이다.  갈릴리 벳새다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그가 예수님 사후 어떻게 터키 히에라볼리까지 가서 순교하게 됐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예수님 승천 후 제자들은 복음을 들고 각자의 전도지를 맡아 흩어지게 될 때 빌립이 파송지가 히에라볼리였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빌립은 예수님께서 벳새다 들녘에서 5000명을 먹이시고자 할 때 주님의 능력보다는 현실적 여건을 돈으로 먼저 계산할 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함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리이다”(요 6:5〜7) 빌립의 사도적 상징이 ‘광주리’인 것은 바로 이 벳새다 들녘의 사건에서 연유한다.

 

  아마도 빌립은 ‘광주리’를 볼 때마다 그것에 넘치도록 채우시고도 넉넉히 남기신 주님의 능력을 떠올리며 자신의 인간적인 계산을 부끄러워했으리라.이처럼 빌립은 계산에 밝은 논리적인 타입의 인간이었다. 어쩌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보다는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를 더 의존하는 현대인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러한 빌립을 두고 주석가들은 하나님 나라를 전심으로 믿지 못한 인물로 보고 있다. 빌립은 ‘생명의 양식’이신 주님 앞에서 떡값을 더 걱정했으며 성육신하신 주님을 보고도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요 14:8). 그것도 최후의 만찬을 나누는 숙연한 자리에서 “주여,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하고 요청한 인물이다.

 

  그러나 빌립은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요 1:45)인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전도했으며, 예루살렘 입성시 예수를 만나러 온 헬라인들을 주께 인도할 만큼 전도에 열성적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빌립의 믿음을 떠올리며 그가 순교한 지역을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빌립 순교기념교회 유적과 복원 계획
빌립 무덤 및 빌립무덤교회 유적

 

 

놀라운 자연의 기적, 석회암 온천들

 

 

파묵칼레에는 이곳만이 지닌 자연의 놀라운 기적이 있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 기적은 다름 아닌 목화성(木花城, Cotton Castle)이라 불리는 파묵칼레의 석회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연이 오랜 시간 몽글몽글 빚어낸 이 새하얀 언덕이 옛 터키인 눈에는 목화솜처럼 보였던 것일까. 

 

 터키어로 파무칼레는 `목화의 성`이란 뜻을 지녔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고, 어줍쟎은 찬사를 거부하는 대자연의 걸작품이다. 파무칼레의 기묘한 지형은 고원 정상에서 칼슘과 중탄산염이 함유된 온천수가 분출되어 아래로 흐르면서  그 안에 함유된 광물이 퇴적돼 형성된 결과물이다.

 

 온천수가 산 절벽을 수천 년간 타고 흐르다 분지에 고이기를 반복하며 절벽·폭포·단구와 같은 신비롭고 다양한 지형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경사면에 형성된 일명 트래버틴 테라스(travertine terrace)다. 넓적한 접시 모양의 못 안에는 고인 물이 빛의 움직임을 따라 시리도록 푸른 쪽빛이 되거나 꿈같은 분홍빛으로 변하기도 하며 강렬한 금빛을 띠기도 한다. 예전만큼 물이 넘쳐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습은 여전히 신들이 노니는 욕조를 보는 듯 신비롭다. 자연이 만든 불가사의, 놀랍게도 자연의 기적을 창조한 것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웅덩이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었으나, 과도한 개발로 인해 온천수가 줄어들어 무미건조한 하얀 석회붕만 남아 있다.  다만 관광객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도랑이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유네스코 세계 유산 지정과 함께 출입이 금지됐다. 

 

  관광객들은 석회붕의 도랑에 흐르는 따뜻한 온천수(광천수)에 발을 담그고 맨발로 걸으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이곳 자연이 이루어 낸 기적들을 계속 볼 수 있기 위해서도 앞으로 난개발을 막고 수자원을 보존하는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7대 교회 라오디게아

 

 

 히에라폴리스에서 7㎞ 가량 떨어진 곳에 초대 일곱 교회의 하나가 있었던 라오디게아가 있다. 라오디게아는 한때 소아시아의 프리지아(성서명 부르기아)의 수도였으며, 수리아의 셀리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2세가 이곳 리쿠스 골짜기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도시를 건설한 곳이다. 그리고 자기 아내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이름 라오디게아라고 명명했다.

   이곳은 일찍이 동서 교통로와 남북 교통로가 서로 교차하는 요충지로 군사적인 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각광을 받아온 곳이다. 그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도 풍요한 생활을 하였다.   이곳 라오디게아에서 사용한 물은 히에라폴리스의 온천수였다. 온천수를 이곳까지 끌어온 돌로 만든 수로(水路)가 지금도 일부 남아 있다. 그리고 고대 라오디게아에는 병원도 있었으며, 특히 눈병을 고치는 안약(眼藥)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성경 골로새서(4:15)에 적은 내용으로 볼 때, 이 지역 '눔바'라는 여자의 집에 교회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도시의 유적은 오늘날 거의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땅 속에 파묻힌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필자가 방문했던 2002년에는 엉겅퀴 우거진 낮은 언덕에 무너진 돌무더기의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디게아 교회는 7년간의 복원 작업을 통해 2017년 7월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로폐허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사도 요한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게시록 3:19)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

   신앙의 열도를 그곳에 공급된 미지근한 물에 비교하여, 영적인 눈을 뜨기 위해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계 3:19)고 적고 있다. 아마도 사도 요한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이 지역의 특산품인 목화와 안약을 이용하여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빈곤 상태를 책망한 것이리라. 이 책망이 경제적인 풍요와 육신의 안락에 빠져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던지는 말씀이라 생각하니, 내딛는 발길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라오디기아 지역의 수로, 다른 지역에 비해 물이 풍부하다.

▲왼쪽 하단 구석에 작은 사진이 발굴된 2010년 당시상태이며 큰 사진이 최근 모습이다. 복원 후 보호덮개를 설치했다.(사진 출처 : 2017.8.5 / 연합뉴스)

 

발굴 당시의 바닥과 모자이크

 

 

  파묵칼레는 나에게 신앙적인 깊이와 무한한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라오디기아 교회를 탐방한 뒤 우리는 지중해 연안의 관광도시인 안탈랴로 서둘러 떠났다.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