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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터키.그리스

터키 안탈랴(앗시리아), 지중해 연안의 세계적 관광도시

by 혜강(惠江) 2005. 12. 7.

 

터키 안탈랴(앗시리아)


지중해 연안의 세계적 관광도시

 

- 안탈랴 해안 유적과 아스펜도스 원형극장 -

 

 


·사진 남상학

 

 

 

 

저녁무렵의 안탈랴 해변

 

  안탈랴는 터키 지중해 연안의 중요한 관광 도시이다. 은은한 바람과 바닷내음이 도시 정체의 분위기를 만든다. 야자 가로수가 늘어선 큰길과 일급 수준의 마리나가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길게 넓게 펼쳐진 공원과 해변은 짙푸른 빛으로 출렁이고, 비치파라솔이 숲을 이룬다. 푸른 비취빛 해변에는 수영을 즐기는 피서객들로 북적거린다. 그리고 그 뒤로 해안을 따라 유명한 고급 휴양 시설이 잘 발달되어 있다.

  그렇다고 안탈랴는 휴양지로서의 명성만을 갖는 것이 아니다. 안탈랴는 기원전 1세기 베르가몬 왕국의 아타루스 2세가 그의 이름을 따서 아텔레이아로 명명하고 이 도시를 세운 후 로마, 비잔틴, 셀주크, 몽골, 오스만 등 많은 시대를 거쳐 이어져 온 도시로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도시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사계절 날씨가 너무 좋기 때문에 세계인이 휴양을 겸하여 문화 유적을 둘러보기 위하여 가장 많이 몰려오는 곳이 되었다. 안탈랴의 성서상의 이름은 앗시리아이다.

 

 

산책하며 둘러보는 안탈랴 해안 유적

 

 

  안탈랴 주변에는 볼 만한 유적지가 많다.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항구 주변에 산재해 있는 유적들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오스만투르크 시대의 모스크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일 장식의 아름다운 16세기 무랏파샤 모스크와 18세기의 테케리 메스켓 파샤 모스크가 있다. 항구 바로 옆에는 천연 샘 위에 네 개의 기둥을 세운 뒤 그 위에 잘라낸 돌을 얹어서 만든 19세기 후반의 매력적인 우스케레 모스크가 있다.

   또 후두를룩 탑은 2세기 때 등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케시크 미나레트 모스크는 로마, 비잔틴, 셀주크, 오스만투르크 시대에 이르는 이 도시의 긴 역사를 말해준다.

 

  안탈랴 항구 성벽 안에 세워진 세 개의 아름다운 아치형 문은 기원전 130년 하드리안 황제가 안탈랴를 침입했을 때 그의 영예를 칭송하기 위하여 세운 것인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항구 근처에는 이 문과 성벽의 다른 부분을 나누는 두 개의 탑이 남아 있다.

   칼카푸수 광장에 있는 시계탑도 오래된 요새의 일부이다. 이 시계탑은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을 감시하는 탑으로 사용된 것이라 한다. 아름다운 옛 모습이 남아 있는 칼레이치 지역(고 도시)은 좁고 구부러진 길과 오래된 목조 가옥들이 고대 로마 시대에 세운 성벽과 인접해 있다. 아늑하게 보이는 고풍스런 집들은 지금은 대부분 분위기 좋은 카페나 음식점으로 바뀌어 있었는데, 안탈랴의 젊은이들이 가장 찾고 싶어 하는 데이트 장소이다.

 

   아타투르크 공원과 칼라라올 공원에는 각양각색의 이국적인 꽃들이 만발하여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눈앞에 펼쳐진 부신 바다 뒤로 산들이 이어져 있어 많은 서구인들이 안탈랴를 찾아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공원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짙은 보석의 색깔이다. ‘헉!’ 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바다가 터키의 하늘 아래 또 어디 있을까. ‘지상낙원이 바로 이런 곳이구나’ 할 정도다.  해질 무렵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쌍의 연인이 거닌다. 그것 도한 한 폭의 그림이다. 

 

 

무랏파샤모스크

 

후두를록탑
하드리안 황제의 문과 아치의 문양

 

칼레이지역의 상가골목
아타트루크 거리(상)와 기마상(하)

 

 

안탈랴의 상징, 이블리미나레(Yivli Minare, 사원)

 

 

   안탈랴 도시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블리미나레이다. 도시 한 가운데 안탈랴의 상징처럼 서 있는 이블리미나레(사원)는 13세기 초 셀주크 터키인들이 세운 것이다.  45m 높이의 첨탑을 지니고 있어 안탈랴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이블리미나레는 이정표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우아한 플롯 모양을 한 첨탑은 술탄 알라딘 케이크바트에 의해 세워진 것인데, 사각 받침대 위에 만들어진 벽돌 첨탑은 세로로 홈이 파져 있고, 모자이크 형태로 된 푸른 돌과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본래 동로마 시대 교회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는데, 셀주크 왕조시대에 이스람 사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첨탑을 세운 것이라 한다. 오늘날 보이는 사원은 14세기에 교회 터 위에  지어진 것이다.

 

 

 

아래 사진은 새벽에 바라 본 풍경

 

안탈랴 고고학 박물관


   안탈랴 고고학 박물관은 터키에 있는 최고의 박물관 중의 하나로, 이 박물관은 1895년에 재건되었다.   안탈랴 주변 유적지에서 발굴한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유물들이 많이 전시 되어 있으며, 페르게의 유적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특히 제우스신을 비롯한 고대 그리스 신의 석상이 매우 인상적이며, 황제의 기념상들도 전시되어 있다.

   몇 만 년 전의 화석부터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다양한 유물, 로만, 투르크 시대에 걸친 유물들이 연대순으로 총 망라하여 진열되어 있고, 특히 전시물 중에는 예수의 제자들을 그린 성화가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성화들을 보며 제자들의 인품과 삶을 어떻게 그림으로 형상화했는지 곰곰히 살펴보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식기, 의상, 보석, 카펫, 악기, 직물 제품등 유물과 역사에 관심이 많이 사람이라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뒤쪽에 전시장 겸 카페테리아가 그늘에 조성되어 있어 여유있게 작품들을 감상하며 갈증을 풀기에 좋다.

 

 

 

 

로마의 아스펜도스(Aspendos) 원형극장 

 


 
안탈랴 시내를 빠져나와 동쪽으로 이동했다. 또 하나의 유적인 원형극장 아스펜도스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스펜도스는 안탈랴의 동쪽 47킬로 지점, 고대 유리메돈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고대 도시 아스펜도스는 위 부분에 위치한 아크로폴리스와 아랫부분의 로우어 시티(Lower City)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관광해야 한다. 아고라, 불레테리온, 예배당, 기념분수는 도시의 윗부분인 아크로폴리스에 있고, 극장, 스타디움, 로마 목욕탕과 수로(水路)는 아랫부분에 있다.

   원형 극장 아스펜도스는 약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로서, 로마 시대(AD 2세기 후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AD 121-180) 황제 재임 시 유명한 건축가 제논에 의해 세워졌다. 관중석의 일부는 아크로폴리스 열의 언덕에 의지하여 만들어졌고, 나머지 부분은 둥근 지붕이 있는 하부구조 건물로 만들어졌다.

   높은 무대 건물은 대부분의 다른 극장과는 달리 관중석과 분리되어 있다. 구조물은 일반 원형 극장과 별다른 것이 없지만, 입구부터 그 시대 귀족과 평민이 사용하는 문이 구별되어 있고, 관객석 역시 다르게 구별되어 있다.

   무대 건물은 셀주크 시대에는 대무역상들을 위한 숙소로도 사용되었고, 끊임없이 복구한 덕분에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고대에 세워진 극장 중 보존이 가장 잘 된 것이다. 특히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복구하여, 그 후 야외 공연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가을에 이곳 아스펜도스에서 열리는 안탈랴 황금 오렌지 아트 축제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또 여기서는 연극과 콘서트가 열린다. 이 극장의 음향효과는 현대의 기술로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음향 효과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계단을 올라  위쪽 관중석에 서니 아래쪽에서 나누는 보통의 말소리가 명료하게 들린다. 당시의 건축술이 대단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시간에 쫓겨 이 일대에 산재해 있는 아스펜도스의 다른 유적을 보지 못한 채 발길을 옮겼다.

 

 

 

 

 

   관광을 마치고 호텔(IC HOTEL)로 돌아와 이국의 호텔 뷔페식당에서 각 나라에서 몰려든 많은 관광객들과 어울려 품격 높은 저녁식사를 했다.  특히, 이 날 뷔페식사에 이어 국어과 교사를 비롯하여 여행에 참가한 교사 모두가 내 35년 교직생활의 퇴직을 기념하는 행사를 성대하게 치뤄준 것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한다.

 

  실내 행사에 이어 호텔 잔디밭에서 우리 일행은 서로 손을 마주잡고 이국의 밤하늘에 불꽃을 밝히며 서로가 하나되어 정감 어린 노래를 불렀던 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지중해 연안 안탈랴의 밤은 많은 추억을 간직한 채 그렇게 깊어 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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