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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부산. 경남

지리산 대원사계곡 '하늘 아래 첫 동네'를 가다

by 혜강(惠江) 2005. 11. 21.

 

지리산 대원사(大源寺)계곡

 

‘하늘 아래 첫 동네’  윗새재를 가다

 

·사진 남상학

 

 



   무르익은 가을 경치를 감상하며 차는 지리산 동쪽에 있는 대원사 계곡을 찾아가는 길이다. 산청 IC에서 59번 지방도로로 우회전하여 밤머리재를 넘었다.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은 지리산 한 자락에 오르고 있음을 증명하듯 만만치 않았으나, 길 양옆으로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의 아름다움으로 오히려 즐거움을 주었다.

  고개를 넘어서니 길옆으로 집집마다 빨갛게 익은 감들이 멀리서 온 손님을 환영이라도 하듯 주렁주렁 열렸다. 삼장면 평촌리에서 우회하여 4 km정도에 이르는 대원사 입구까지는 왼쪽으로 저녁 해를 받고 있는 계곡의 모습이 한가롭고 정겨운 모습이다.



기암괴석과 계곡이 맑은 대원사 계곡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와 새재, 왕등재, 밤머리재로 해서 웅석봉으로 30여리에 이르는 대원사계곡은 산자락 곳곳에서 발원한 계류가 암석을 다듬으며 흘러내린다.

 조그만 샘에서 출발한 물길이 낮은 곳을 향해 흐르면서 신밭골과 조개골, 밤밭골로 모여들어 새재와 외곡마을을 지나면서 수량을 더한다. 대원사가 있는 유평리에서부터 청정 비구니가 독경으로 세상을 깨우듯 사시사철 쉼 없이 흐르는 물소리로 깊은 산중의 정적을 깨운다. 

  기암괴석을 감도는 계곡의 옥류소리, 울창한 송림과 활엽수림을 스치는 바람소리, 산새들의 우짖는 소리가 어우러지는 대자연의 합창을 들을 수 있는 계곡이 대원사계곡이다. 특히 대원사 입구 주차장에서 대원사에 이르는 약 2km의 구간은 기암괴석과 희귀한 고산식물 등 절경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이다.

  차는 이 계곡을 오른 쪽으로 끼고 힘차게 오른다. 다행히 콘크리트 포장도로여서 큰 어려움은 없으나 좁은 오르막길은 잠시도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계곡의 장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를 멈출 수 있는 공간이 날 때마다 차를 세우고 가을이 깃든 계곡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한참을 오르니 길옆 왼쪽 언덕에 있는 대원사가 보인다.        
  

 

 


비구니의 도량 대원사(大源寺)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지리산 천왕봉 동쪽 기슭의 대원사는 예스러움과 정갈한 산사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신라 진흥왕 9년(548년)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평원사였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조선 숙종 11년(1685년)에 새로 짓고 대원암이라 했다가 고종 27년(1890년)의 중창을 거쳐 대원사가 되었다.

  경내에는 다층석탑, 3층 석탑 등이 있으며, 여승들만이 수도하는 절이다. 높이 6.6m의 다층석탑(보물1112호)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의 불타사리를 모신 화강암 탑이며, 조선시대에 재건을 거쳐 1972년에 보수한 것이다. 2중 기단 위에 옥개석이 여덟 개 놓여 있고, 상층 기단 탑신에는 4면에 공양상 등이 조각되었다.  

   청정 비구니 도량답게 금강소이라는 소나무 숲과 대나무로 둘러싸인 주변 경치하며 대웅전과 원통보전(圓通寶殿)에서 산왕각(山王閣)에 이르는 돌계단과 절 뒤편의 차밭,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힘찬 글씨가 돋보이는 요사채는 청결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원사는 지리산 등반의 기점이기도 하다. 대원사에서 무재치기 폭포―치밭목 산장―써리봉―중봉을 거쳐 대청봉까지는 약 7~8시간이 걸리는 등산 코스다. 천왕봉까지는 약 18km에 달하는 멀고 험한 능선길이지만 주변경관이 뛰어나 많은 등반객이 애용하는 코스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원사의 아름다움은 ‘절보다 계곡’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주변 경관이 자랑이다. 주변의 희귀한 고산식물, 기암괴석을 감도는 청류, 울창한 송림과 활엽수림, 산새 우짖는 소리가 어우러져 대자연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대원사와 밤밭골 사이에 있는 바위가 뚫려서 굴처럼 되어 옹기 모양을 연상케 하는, 길이 5m기 되는 ‘용소’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용소는 용이 백년동안 살다가 승천했다고 전해 온다. 이밖에 대원사 계곡에 있는 선녀탕, 세신대, 세심대, 옥녀탕 등의 지명도 대원사의 탈속한 기풍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대원사계곡을 일컬어 남한 제일의 탁족처(濯足處)로 꼽으면서 “너럭바위에 앉아 계류에 발을 담그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먼데 하늘을 쳐다보며 인생의 긴 여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 보다 더한 행복이 있으랴”고 했다. 그러나 대원사 계곡의 깊은 맛은 이러한 외형적인 모습에 있지 않다.

 

 


민족 수난의 역사를 아는지, 계곡은 말이 없고  



  행정 지명을 따라 유평계곡이라 하지 않고 통상 대원사계곡으로 부르는 연유가 된 대원사 역시 수난의 지리산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원사 계곡에서 유래한 ‘덕산 유독골’과 ‘골(계곡)로 갔다’라는 말 속에 우리 민족의 현대사와 지리산을 바라보는 민초들의 심성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죽었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골(계곡)로 갔다’라는 말 역시 골짜기의 깊음과 골짜기에 들어갔다 하면 죽어서야 나올 수 있었던 현대사의 단면을 느낄 수 있다.

  빨치산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토벌을 하기 위해 골짜기에 들어갔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빨치산이 되었건 골짜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살아서는 못 나왔기에 ‘죽는다’는 말과 ‘골짜기로 갔다’의 줄임말인 ‘골로 갔다’를 동의어로 썼다. 이렇듯 대원사계곡은 그 골짜기가 깊다 보니 변환기 때마다 중요 피난처이자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화전민이 있었던 이곳은 1862년 2월 산청군 단성면에서 시작해 진주로 이어지면서 전국적인 규모로 발전한 농민항쟁에서부터 동학혁명에 이르기까지 변혁에 실패한 사람들끼리 모여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며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일제시대에는 항일의병의 은신처가 되었고, 6·25전란에 이어 빨치산이 기승을 부릴 때는 낮에는 반역의 땅이 되고, 밤에는 해방구가 되었다. 

  이런 사연을 가진 대원사계곡도 이젠 자동차로 한달음에 계곡의 끝인 새재마을까지 오를 수 있으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계곡이야 여름이면 더위를 씻어 주는 피서지이고, 가을이면 단풍 구경 가는 길일 뿐이다. 

  유평리를 거쳐 밤밭골 식당 민박촌을 오르면 새재 사과단지에 이른다. 예전 화전 밭이었던 곳에 사과나무를 심어 딴 유평 꿀사과는 과육이 단단하고 짙은 향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리산 맑은 정기를 받아 익은 탓일까.


 

 

'하늘 아래 첫 동네’에서 발길을 돌리다

  우리의 발길은 찻길이 끝나는 곳에서 끝났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마지막 종착지. 이름하여 ‘하늘 아래 첫 동네’였다.  산사람들을 위한 민박 식당촌이 마지막으로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지리산 사과단지를 지나 아랫새재, 윗새재로 이어진다.

   불과 다여섯 집이 모여 사는 곳. 찻길은 끊기고 여기서부터는 등산객들의 등산이 시작되는 곳이다. 등산객들이 하루를 머물며 내일 정상정복의 꿈을 다듬는 곳이기도 하다.   대원사 새재에서 천왕봉까지 9km,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25.5km, 노고단에서 화엄사 주차장까지 9km, 총43.5km의 지리산 종주의 대미는 화엄사 옆 시냇가에서 끝난다.

   그러나 11월부터 이 코스는 등산코스로 폐쇄되어 사람의 발길이 없어 호젓하기 그지없다. 어렵게 이곳까지 왔으니, ‘하늘 아래 첫 동내’에서 하루밤을 묵을까 하여 굴뚝에 연기가 오르는 조갯골 식당 문을 두드렸으나 사람의 기척이 없다.

   손님이 없으니 곶감을 만들 감이라도 사러 아랫마을이라도 내려간 것일까. 사람이 없는 집 뒤꼍에는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깎아 매달아 놓았다.  하는 수 없이 유천마을로 내려와 갑을식당( 055-972-9382 )에 묵기로 했다. 이 마을은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깎아 말리는 일이 한창이었다. 계곡 건너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는 몇 그루는 동화 속 광경처럼 아름답다.

   ‘한 나무에 열린 감이 어느 정도냐’고 물으니, 주인어른이 ‘아마 30접은 될 것’이라고 한다. 탄성을 지르며 ‘아저씨는 부자’라고 하자 따서 껍질을 까서 말리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흐뭇해하는 표정이었다.

   이 식당에서 주문한 메기매운탕에 딸려 나온 반찬 중에 생전 처음 먹어보는 것 하나. 깻잎이나 콩잎을 된장에 재운 장아찌 같은데 독특한 향이 있어 물었더니, 깊은 산 속에서만  나는 병풍나무 잎이란다. 봄에 채취해다가 된장에 묻어두고 1년내내 이곳 지리산 유평마을 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내놓는다고 한다. 지리산 자락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향기라고나 할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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