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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이육사문학관, 치열했던 항일 민족 시인을 찾아서

by 혜강(惠江) 2005. 11. 15.

 

이육사문학관

 

치열했던 항일 민족시인을 찾아서

 

글·사진 남상학

 

 

 

 

  <청포도>의 작가 <이육사문학관>( 054-852-7337 )을 찾아나선 날은 포도 수확이 다 끝나고, 마른 잎이 바람에 날리는 가을이었다.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遠川里), 도산서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찾아가기가 수월했다. 도산의 학문적 자취를 둘러보고 난 다음이라 가벼운 발길로 이육사 문학의 향기를 맡을 수 있어 좋았다.

 

  이육사문학관은 선생의 고향인 원천리 일대 7천669㎡ 생가 터에 연면적 580㎡ 규모로 자리를 잡았다. 내다 보이는 벌판은 낙동강 물이 범람할 때는 물에 잠기지만, 여느 때는 잡초들만 우거진다.

 

 

 


이육사문학관의 개관

 
  이육사 문학관은 항일 민족 시인이자 독립 운동가인 이육사(李陸史.1904∼1944)선생의 문학사상과 나라사랑 정신을 길이 전하고자 그의 고향마을에 육사 탄신 100주년을 맞아 2004년 7월 30일 문을 열었다.

  이육사 탄신 100주년을 맞아 2층 현대식 건물로 지은 이육사 문학관은 선생의 흉상과 함께 ‘광야’ 등 대표적인 시를 새긴 조각품, 육필원고, 독립운동 자료 등이 전시됐다. 2층에 올라서면 낙동강이 흐르는 선생의 고향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문학관 외부에는 연못과 분수대, 육사의 6형제가 살던 모습을 재현한 육우당(六友堂) 생가 모형, 청포도 샘과, 이육사 동상과 <절정> 시비, 그리고 뒤편으로는 선생의 묘소까지 2.8km를 ‘청포도 오솔길’로 조성했다. 육사는 자신의 고향인 원촌마을 뒷산에 아내 안일양(安一陽)과 함께 나란히 누워 있다. 

 
  그런데 실제 이육사 생가는 안동댐으로 인해 1995년 안동시 태화동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으며, 생가 자리에는 흙을 돋워 잔디밭을 조성하고 <청포도> 시비(詩碑)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문학관은 육사의 생애, 육사의 문학세계, 육사의 독립운동 등의 3개 테마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육사의 생애’ 코너에는 동선을 따라 이육사 삶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일제 암흑기를 살다간 육사의 일생

 
  본명이 원록(源祿)인 이육사 시인은 1904년 도산면 원천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조부 치헌 이중직(李中稷)에게 한학을 배우고, 보문의숙을 거쳐 도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1년(18세 때) 결혼 후 백학학원에서 수학한 후 9개월 동안 교편을 잡았으며, 1924년 4월 일본으로 유학했다가 관동대지진을 겪은 후 귀국하여 대구에서 문화 활동을 벌였다.

  1926년부터 중국 북경 등지에서 유월한국혁명동지회에 참가해 조직적으로 활동을 펼쳤으며, 이듬해 여름에 귀국,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때의 수인번호 二六四를 따서 호를 육사(陸史)로 지었다. 육사는 전 생애를 통해 17회나 투옥되었다. 

   1930년 중외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첫 시 <말>을 발표했고, 이후 총 39편의 시를 남겼다. 1931년에는 북경, 남경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3년 6월 체포되어 이듬해 1월 마흔의 나이에 북경주재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으로, 목가적이면서도 강인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암흑 속에서 찬란히 빛난 육사(陸史)의 문학세계 

 
  ‘육사의 문학세계’ 테마에서는 민족시인 이육사의 시세계와 문학정신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육사문학의 의의(意義)와 <절정>, <광야>, <청포도>, <황혼> 등 대표작품에 대한 해설, 시, 수필, 평문 등이 시기별로 어느 매체를 통해 발표됐는지도 속속들이 알 수 있도록 했다.

  육사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황혼(黃昏)>, <교목(喬木)>, <호수(湖水)>등에는 침울한 정신세계를 추상적인 말로 표현했다.



  네 골방의 커어틴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 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내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게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중략)


  고비사막(沙漠)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行商)에게나
  아프리카 녹음(綠陰) 속 활 쏘는 토인(土人)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득도 하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 푸른 커어틴을 걷게 하겠지
  암암(暗暗)히 사라지던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 <황혼(黃昏)>에서

 

 

 


  그러나 그는 중기에 이르러 <청포도> 등 서정의 밀도가 한층 높은 작품을 발표했으나, 일제 암흑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절정(絶頂)>, <광야(曠野)>, <꽃> 등 저항의 의지를 담은 작품들을 내놓는다. 피를 토해내는 듯한 거천 육성이 시 내면에 녹아 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梅花) 향기 홀로 가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 전문

 

 그리고, <절정(絶頂)>에서 

  매운 계절의 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절정(絶頂)> 전문


 이렇듯, 육사 문학은 그 출발에서부터 인간과 시대상황과 상관관계를 맺고 이루어졌다. 그는 실제 행동은 민족 운동에 앞장선 투사였고, 이런 시대정신을 시 속에 용해시킨 대표적 시인이었다.

 

 


  문학관 2층에는 사색의 창, 체험코너, 휴게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색의 창에는 육사가 남긴 시 중 한시를 제외한 36편을 영상 및 자막과 함께 성우의 음성으로 감상할 수 있다. 또, 체험코너에는 고무로 만들어 놓은 육사의 얼굴, 시, 그림 등을 한지에 탁본을 직접 떠서 기념품을 간직할 수 있다. 이육사문학관은 선생의 문학사상과 민족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산 교육장이다.

  문학관을 둘러보고, 옥외에 생가를 재현한 육우당(六友堂)과 청포도 샘, 그리고 이육사 동상과 <절정> 시비를 둘러보고, 청포도 오솔길’을 밟으며, 어둠의 시기에 빛났던 그의 시혼을 음미해 보았다. 

 

 

 


   그리고 문학관에서 100여 미터쯤에 있는, 시인의 생가터에 조성한 잔디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서쪽으로 기우는 가을 해가 <청포도> 시비(詩碑)를 아름답게 비치고 있다. 그 뒤로 이웃집 울타리 탱자 열매가 시인의 열정적인 시정신처럼 야무진 모습으로 매달려 있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청포도> 全文 - 

 

 

 

  이 작품은 청포도를 통해 풍요롭고 평화로운 미래 세계에 대한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청포도’라는 사물 속에는 화자의 꿈과 소망이 담겨 있으며, 선명한 색채감도 드러나 있다. ‘이 마을 전설’은 잊혀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에 찾아올 청포도와 같은 세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화자는 청포도를 푸른 바다와 연결 지으면서 미래의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화자가 바라는 손님은 그가 기다리는 대상으로, 미래 세계를 상징하는 소재이다. 역사적으로는 광복을, 일반적으로는 평화로운 세계를 상징한다. 희망한 평화의 세계가 찾아온다면 화자는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을 만큼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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