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경주 가볼 만한 곳 총 정리, 신라 천 년의 고도(古都) 경주에 가다

by 혜강(惠江) 2025. 4. 15.

 

경주 가볼 만한 곳 총 정리

 

신라 천 년의 고도(古都) 경주에 가다

 

글·사진 남상학

 

 

 경주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로, 수많은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방문객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불국사는 석가탑과 다보탑 등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토함산 중턱의 석굴암에는 본존불과 보살상 등 정교한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신라 불교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 엄청난 크기의 대릉원, 야경이 특히 아름다운 신라 왕궁의 동궁과 월지는 가히 환상적이다. 이외에도 경주에는 국립경주박물관, 경주 양동마을, 보문관광단지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명소마다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어,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경주 불국사권 볼거리

 

불국사 / 석굴암 / 동리·목월 문학관 / 영지&영지석불좌상 / 경주 원성왕릉 / 추억의 달동네 / 경주 풍력발전(바람의 언덕)

 

●불국사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진현동 15-10), 054-746-9913

 경주 불국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 법흥왕(514-540) 대에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눌지마립간(417-458) 대에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지며, 751년(신라 경덕왕 10) 때 김대성(金大城)에 의해 크개 개수되었다. 경주 불국사는 2009년 12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불국사고금창기』에 따르면, 당시의 전당·문루·낭곽·실료·석조물 등이 90여 기에 이르렀다. 이 웅대한 규모의 대가람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의 전화로 거의 없어졌고, 종전의 목조전당들은 l659년(효종 10) 그 일부가 재건된 것이며, 1972년 대복원 사업으로 무설전·관서전·각 회랑 등이 새로 세워졌다. 청운교·백운교와 칠보·연화교라 일컫는 동·서 석교와 그 사이를 잇는 대석단·범영루를 받친 석주와 석축, 각 전당의 기단과 다보·석가·쌍탑 등은 창건 당시의 모습 그대로이다.

 경주 불국사에는 등록된 국가유산이 많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경주 블국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 엄구 등은 국보로, 경주 불국사 사리탑, 경주 불국사 대웅전, 경주 불국사 가구식 석축, 경주 불국사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 경주 불국사 삼정보살도는 보물로 불국사 당간지주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인 사천왕상이 위용 있게 양옆으로 서 있는 사천왕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불국사박물관이 있다. 국보 제126호인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외에 불국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과 불국사 영역을 축소해놓은 모형도 있으니 불국사에 들어가기 전 둘러보면 예습이 된다.

 

 

●석굴암

경북 경주시 석굴로 238 (진현동 999), 054-746-9933

 석굴암(국보)은 불국사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등산로로 3, 신도로로는 9거리에 있는 불국사 소속 호국암자이다. 국보로 지정된 석굴암 석굴은 신라 경덕왕 10년에 당시의 재상인 김대성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화강암 석굴이다.

 석굴암의 구조는 방형과 원형, 직선과 곡선, 평면과 구면이 조화를 이루며, 중앙에 자리한 백색 화강암으로 된 석가여래좌상의 본존불(높이 약 3.4m)은 석가모니가 모든 악마의 방해와 유혹을 물리친 승리의 순간을 나타낸 모습으로 동해를 굽어보고 있다. 석가여래좌상이 바라보는 시선은 문무왕 수중왕릉인 봉길리 앞 대왕암을 향한다.

 본존불 바로 뒤, 한가운데에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있다. 다른 조각상보다 입체감이 강조되어 있다. 10개의 조그만 방(감실) 속에 작은 조각상이 하나씩 안치되어 있는데, 어느 것 하나 걸작이 아닌 것이 없고 전체적인 조화를 통해 고도의 철학성과 과학적인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내부에서는 보존을 위해 유리벽을 통하여 관람하게 되어 있으며,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다.

 석굴암은 예로부터 석굴암 해돋이로 유명하다. 석굴암에서 바라보는 동해에 떠오른 해를 말한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 붉은 해가 떠오르면서 붉게 물든 하늘과 바다는 장관이다.

 60년대 이전에는 경주에 수학여행을 왔다 하면 으레 불국사 근처 숙소에 투숙하여 새벽에 일어나 불국사 동쪽으로 난 토함산 산길을 따라 올라가 석굴암 해돋이를 구경하는 것이 일과였다.

 

 

●동리·목월 문학관

경북 경주시 불국로 406-3 (진현동 550-1), 054-779-6090

 경주시 진현동에 있는 김동리, 박목월의 문학관은 경주 출신의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박목월을 기리기 위한 문학관이다. 경주 불국사 일주문 맞은 편에 있다. 경주시와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중심이 되어 2006년 3월 24일 개관하였다.

 13,847㎡ 부지 위에 건축 연면적 1,543㎡의 전통 골기와 2층 건물로 지어졌다. 한 개의 전시관 안에 왼쪽은 김동리문학관, 오른쪽은 박목월문학관으로 구성, 배치되어 있다. 1층에는 영상실, 창작 교실, 자료실이 있으며, 2층 전시실에는 유족으로부터 기증, 위탁받은 저서와 7천여 종의 장서, 육필원고를 포함하여 문학자료 1,500점, 생활 유품 250여 점, 애장품 3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동리전시장은 김동리 선생의 흉상과 연보를 전시한 이미지 홀, 선생의 생전 습작 노트 및 원고, 발간서적, 사진, 상패, 소장품 등의 유품이 전시된 생애와 문학 코너, 서재를 재현한 창작실과 생전 작품들을 미디어매체로 감상가능한 작품세계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로비를 지나 목월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입구엔 최근에 발견된 미발표 작품들이 적힌 노트들이 전시되어 있다. 내부에는 AI 풍의 그림들을 배경으로 시가 적혀있고 아래엔 작품에 대한 부연설명이 적혀있어 이해를 도왔다. 동리 전시관과 마찬가지로 이미지홀엔 선생의 흉상이 놓여있으며 그 외 연보, 시·이미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생애와 문학, 달과 나무에선 습작 노트 및 원고, 발간 서적, 사진, 편지, 소장품 등 총 970점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 문학관 개관 이후 매해 동리목월문학제가 열리고 있으며,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영지&영지석불좌상

경주시 외동읍 영지로 622-6

 경주 영지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절한 사랑이 깃든 곳이다. 백제의 이름난 석공 아사달이 석탑 제작을 위해 신라를 찾았다. 불국사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다보탑을 올렸고, 석가탑을 만드는 중이었다. 그의 부인 아사녀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남편이 오지 않자 서라벌로 왔다.

 그러나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남편을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섰다. 탑이 완성되면 그림자가 비칠 것이라고 못가에서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리는 아사녀는 일렁이는 물결에 남편의 환상을 보고 그리움에 사무쳐 못에 뛰어들었다.

 마침내 석가탑까지 완성한 아사달은 부인이 왔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고 못가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된 아사달은 넋 놓아 울다가 그는 근처의 큰 바위를 만지기 시작했고, 바위는 아사녀를 닮은 불상이 되어 갔다. 불상을 완성한 그는 사랑하는 부인의 뒤를 따랐다. 그 후로 못은 그림자 연못이라는 뜻의 ‘영지’라 부르게 되었고, 못 인근의 소나무 숲에 아사달이 아사녀를 위해 만들었다는 불상 ‘영지석불좌상’이 자리해 있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절한 사랑의 장소인 영지 둘레를 따라 거닐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영지둘레길과 500여m 떨어진 곳에 아사달이 아사녀를 그리며 만들었다는 영지석불좌상도 있으니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경주 원성왕릉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능리 산17

 신라 38대 국왕 원성왕릉은 798년경의 능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소나무가 울창한 넓은 능역 가운데에 둘레돌을 돌린 원형 토분으로, 둘레돌은 판석과 탱주로 짜여져 봉토 밑에 있고, 그 위에 갑석을 덮었다.

 탱주에는 각각 방향을 따라 12지신상이 양각되었고, 봉토 앞에는 옆면에 안상이 조각된 우수한 상석을 놓았다. 봉토 주위에 수십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아래에 동그란 구멍 2개를 뚫어 관석을 끼워 난간을 돌렸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고 둘레돌과 기둥 사이엔 판석을 깔았다.

 능비가 없어 누구의 능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유사에 “원성왕릉이 토함산 동곡사에 있는데, 동곡사는 당시의 숭복사로 최치원이 비문을 쓴 비석이 있다”는 기록과 지금의 괘릉 인근에 숭복사 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성왕의 능이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추억의 달동네

경북 경주시 보불로 216-8 (하동 181-1), 0507-1444-5014

 불국사와 멀지 않은 곳에 아버지, 어머니 대의 역사를 담은 근대사 박물관 추억의 달동네가 있다. 추억의 달동네에서는 1950년대부터 80년대의 생활상을 재현해놓은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추억의 달동네는 △저잣거리 △7080상가 △봉건사회관 △골동품전 △옛골목길 △학교길 △옛날생활모습재현 △민속관 △약전골목 △군막사 등으로 구성돼 약 6000여 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50년대부터 서민, 평민, 양반층 등 계층별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농업인, 이발소, 다방, 만화방, 비디오방, 학교 등 직업별로 당시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보건소, 약국, 파출소, 당구장, 레코드 점, DJ음악실은 마치 옛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기분이다.

 특히, 옛 모텔을 리모델링해 구성한 민속관과 영화관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골동품들이 가득하다. 지금은 쓰지 않는 낡은 라디오, 그것을 고치는 전파상, 골목 점방, 초등학교 아닌 국민학교 교실까지. 근래 반세기 우리네 생활상을 그대로 옮겨 두었다. 골목 주류문화를 꽃피웠던 1970년대 선술집은 정과 흥, 그리고 문학과 예술이 함께하는 선술집 문화를 엿볼 수 있고, 군 막사에는 군대의 희로애락 역시 고스란히 재현해뒀다.

 또 한편에는 관람 시간 동안 옛 영화를 반복해 상영해 중장년층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추억의 간식 달고나 체험, 추억의 교복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경주 풍력발전(바람의 언덕)

경북 경주시 양북면 불국로 1056-185, 054-777-6652

 토함산의 이웃 산인 조항산 정상부에 커다란 바람개비 여러 개가 돌아간다. 친환경 청정에너지 생산을 위해 한국동서발전과 동국S&C가 건설한 상업용 풍력발전단지로 총 7기의 풍력발전기가 가동 중이다. 1만여 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인 평균 4만mwh 정도의 전력을 연간 생산한다.

 산 능선을 따라 띄엄띄엄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바람의 언덕’으로 부르는 이 일대를 365일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풍력발전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자 ‘경풍루’ 전망대와 함께 바람길 산책로, 피크닉 테이블존 등이 갖추어져 있다. 경풍루에 올라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경치가 그저 그만이다.

 ‘바람의 언덕’이라는 별명에 맞게 시원한 바람이 쉼 없이 분다. 특히, 이곳은 일몰 노을이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졌다. 데크에 캠핑 의자를 놓거나 전망대, 바람길 산책로 등 곳곳에서 석양을 감상할 수 있고, 일몰 후 조금 더 기다려 별빛 쏟아지는 낭만적인 밤까지 즐기고 가는 이들도 많다.

 

 

◆경주 보문단지권 볼거리

 

경주 보문호, 보문관광단지 / 경주엑스포대공원 / 키덜트뮤지엄 / 경주세계동차박물관 / 신라밀레니엄파크 / 우양미술관 / 한국대중음악박물관 / 진평왕릉 / 솔거미술관

 

●경주 보문호, 보문관광단지

경북 경주시 보문로 424-33 (신평동), 054-745-7601

 보문호는 경주시가지에서 동쪽으로 약 10여㎞ 정도 떨어진 명활산 옛 성터 아래 만들어진 1,652,900m²(50만 평) 규모의 인공호수로 주위에는 국제적 규모의 호텔과 경주월드 등의 각종 위락시설과 공원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보문호수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단장되어 하이킹코스로 인기가 있다.

 보문관광단지는 전 지역이 온천지구 및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고 도로, 전기, 통신,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완비되어 국제적 수준의 종합관광 휴양단지로 자리를 잡았다. 단지에는 국제적 규모의 최고급 호텔, 가족 단위의 콘도미니엄, 미술관, 박물관, 엑스포 대공원, 산책로, 보문 물레방아 공원, 생활체육 공원, 수상시설, 워터파크 등 복합문화센터와 휴양시설이 들어서 있다.

 또한, 경주지역에는 특히 도시 전체가 벚꽃 천지인 것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 4월 개화기에는 발길 닿는 곳마다 온통 벚꽃 천지이지만 그중에서 특히 이곳 보문호 주위와 불국사공원 벚꽃이 한층 기염을 토한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꽃송이가 눈발처럼 날려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경주엑스포대공원

경북 경주시 경감로 614 (천군동 130), 054-748-3011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천년 고도 경주가 간직한 풍부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이질적인 문화들을 융화하여 인류문화를 새롭게 꽃피운다는 취지로 열리는 문화박람회이다.

 경주엑스포대공원은 1998년 세계 최초로 문화예술을 주제로 한 국제문화박람회로 출범하였다. 지난 2019년까지 10회의 글로벌 행사를 개최한 곳으로 그동안 한국인의 문화 자긍심을 높이고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 문화엑스포는 행사 때마다 주제를 정하여 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특색있는 행사로 펼쳐진다. 1998년의 '새천년의 미소'는 새 밀레니엄을 맞아 갈등의 천년을 마감하고 화합의 천년을 열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

 2001년에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이라는 문화테마공원을 조성하여 전시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2003년에는 '천마의 꿈'을 주제로 감동의 문화제전을, 2006년에는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06'이라는 이름으로 경상북도와 캄보디아 정부가 공동으로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유적지에서  엑스포를 개최하였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2~3년마다 개최된다.

 경주엑스포대공원에는 수많은 볼거리와 다채로운 행사, 편의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다. 현재는 다양한 전시·영상·공연·체험 문화콘텐츠를 바탕으로 연인, 친구, 온 가족이 함께 찾고 즐기는 경주의 명소이다. 소중한 날, 소중한 이들과 함께 경주엑스포대공원을 찾아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시간을 가져보자.

 

 

●키덜트뮤지엄

경북 경주시 보문로 132-16 (북군동 57-24), 054-744-7997

 경주 보문단지에 자리한 키덜트뮤지엄은 어린이 키드(Kid)와 어른 어덜트(Adult)의 합성어인 키덜트(Kidult) 즉, 아이들 같은 순수한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들은 물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경북 최대의 키덜트 뮤지엄으로 경주 보문 단지를 대표하는 전시공간이다.

 전시공간은 모두 2개 층 11개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1층 전시실로 들어서면 전구가 발명되기 전 사용했던 촛불 영사기들을 만날 수 있다. 필름을 거는 릴이 없는 것 빼곤 지금의 영사기와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몸통에 큼직하게 양초가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 둔 게 특이하다. 세계 최초의 영사기인 촛불 영사기이다.

 그 외에도 키달트뮤지엄에는 에디슨의 축음기, 60~80년대 라디오 등 근현대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전시품과 건담, 스타워즈, 태권V 등 어린 시적의 영화, 만화 캐릭터부터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마블 캐릭터까지 5만여 점의 다양한 전시품과 캐릭터 피규어들을 만나볼 수 있다.

 

 

●경주세계동차박물관

경북 경주시 보문로 132-22 (북군동 66), 0507-1441-8926

 경주 보문관광단지의 입구에 있는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은 2017년 3월 개관했다. 3층으로 된 박물관 1층에는 ‘자동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카를 벤츠가 1885년 개발한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개관 전 독일 다임러그룹에 특별 주문을 넣었다. 자동차가 본격 생산되기 시작한 1919년 이후 10년간 출시된 빈티지 자동차, 클래식카 등도 직접 볼 수 있어 과거로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2층 전시관의 명품 스포츠카 존은 자동차 마니아들이 꿈꾸는 슈퍼카들이 전시돼 있다. 영국 오토카 매거진이 ‘최고의 스포츠카’라고 극찬한 메르세데스벤츠의 540K(1936년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로 불렸던 부가티의 타입 57(1939년형), 트라이엄프의 전성기를 불러온 TR2(1949년형),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북 시찰을 할 때 사용했던 의전차 크라이슬러 뉴요커(1969년형) 등 역사 속 스포츠카의 명성을 직접 느낄 수 있다. 현대차의 포니, 대우차의 티코 등 한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응답하라 추억의 자동차’ 존도 볼 만하다.

 3층으로 올라가면 영화 속 장면들이 펼쳐진다. 영화 ‘007시리즈’ ‘백투더퓨처’에 등장하는 콘셉트카와 ‘델마와 루이스’에 나오는 포드 선더버드(1955년형) 등이 전시돼 있다. 1975년 개봉한 영화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특별 에디션으로 제작된 클래식 카는 당시로선 드물게 노란색으로 도색돼 ‘파격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레이싱을 체험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터도 있다. 레이싱 시뮬레이터 전문업체 알크래프트가 국내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WIS 2014’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알크래프트 HPRSS RS-1’에 탑승하면 20여 종의 레이싱게임을 즐길 수 있다. 실제 레이싱카에 사용되는 버킷 시트에 앉아서 핸들을 움직이는 방식이다. 진동을 통해 차량의 움직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정면, 왼쪽, 오른쪽 등 세 개의 모니터 화면을 통해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가족 단위로 찾는 관광객을 위해 키즈카페와 키즈존 등의 시설도 갖췄다. 박물관 3층의 ‘카페 오토’에서 보문호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커피 한 잔을 즐길 수도 있다.

 

 

●신라밀레니엄파크

경뷱 경주시 엑스포로 55-12 (신평동 719-70), 054-778-2000

 경주시 신평동 보문단지 내에 있는, '신라'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이다. 2007년 3월 문을 열었다. '신라'라는 주제로 꾸민 복합 체험형 역사 테마파크로서 크게 6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상·수상 무대를 갖춘 1,500석 규모의 주공연장과 8세기 4대 도시(콘스탄티노플·바그다드·장안·경주)의 상징물로 꾸민 공간, 장보고공연장·석빙고·비말지·족욕장 등이 있다. 그리고 신라 유물을 모티브로 꾸민 놀이 공간, 신라 건축물을 복원하여 조성한 신라마을, 화랑 무예 훈련을 재현하는 화랑공연장이 있다. 숙박 시설로 전통 양식의 호텔인 라궁(羅宮)이 있는데, '라궁'이라는 이름은 '신라의 궁궐'이라는 뜻이다.

 비슷비슷한 라이드 시설과 이벤트 공연을 즐기는 놀이공원식 테마파크에서 벗어나 신라라는 확실한 테마를 중심으로 운영 요원들이 신라 시대 의상을 입고 활동하고 최첨단 기술을 통한 초대형 야외공연, 대가들의 고증이 끝난 신라가옥 체험, 문예마을 체험 등을 통해 1200년 전 신라를 경험한다.

 

 

●우양미술관

경부 경주시 보문로 484-7 (신평동 370), 0507-1443-7075

 경주보문단지 힐튼경주 부지 내에 있는 우양미술관은 국내 최초 사립 현대미술관으로 정희자의 개인 소장품을 기반으로 1991년 5월 설립되었다. 설립 이후 미술관은 미국 유학 중 사망한 설립자의 장남 김선재를 기리는 의미에서 선재미술관으로 명명했다가 아트선재미술관으로 변경한 후 2013년 우양미술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800여 평 부지에 지상 1, 2층에 전시장과 지하 1층에 영상 · 음향 시스템 등 시청각 시설을 갖춘 150석 규모의 강당이 있고, 국내외 미술 전문 서적과 잡지가 비치된 도서실과 다양한 아트캐릭터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뮤지엄숍이 있다. 이외에도 야외조각공원, 기타 편의 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양미술관은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제시하는 국내외 주요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하며, 해외 작가(교류)전, 우양작가시리즈, 신소장품전 등 매년 두세 차례 다채로운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본관의 건너편에 자리한 제2 전시관은 1997년에 개관하였는데 대규모 국제전을 주로 유치해 오던 본관의 성격과는 차별화된 개념의 전시장이다.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이 전시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교육사업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지방 문화의 활성과 문화 저변 인구의 육성을 위해 설립된 아카데미는 미술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미술관 정기 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

경북 경주시 엑스포로 9 (신평동 220-6), 054-776-5502

 경북 경주시 엑스포로 9(신평동 220-6) 보문단지 내에 있는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은 기업가 유충희씨가 자비를 들여 설립한 박물관으로 2015년 4월 개관하였다. 국내 최초로 유성 음반부터 현재까지의 음반을 전시하고 있으며 국내 대중음악에 관한 전시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희귀 음향 시스템도 상설 전시되고 있다.

 1층은 음악감상실에서 전설의 스피커 미로포닉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2층 전시실은 한국대중음악 100년사관으로 1896년 대한민국의 최초 노래가 녹음된 에디슨 실린더 음반부터 2000년대 k-pop 음반까지 시대순으로 전시되어 있고 노래 듣기 체험을 할 수 있다.

 3층 전시실은 오디오 100년사관으로 1926년 제작된 인류 최초 스피커, 1936년 제작된 스피커의 전설이라고 하는 미국의 웨스턴 일렉트릭의 미로포닉,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연설할 때 사용하던 스피커 등 각종 희귀 스피커를 전시 및 청음할 수 있다.

 지하는 악기 체험관, 어린이 체험관, 동전노래방, 포토존으로 구성되어 있어 체험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음악을 통한 올바른 역사 이해, 추억 되살리기,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다.

 

 

●진평왕릉

경북 경주시 보문동 608, 054-779-6061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제26대 진평왕릉은 구황동 3층석탑의 동쪽, 넓은 평야 한가운데에 있다. 그 동쪽에 명활산, 남쪽에 보문사 터가 있으며, 서쪽에는 낭산이 솟아있다. 밑 둘레 약 10m, 높이 약 7m의 원형 토분으로 장식 없이 소박한 모습이다. 주위에는 몇 그루의 나무만 서 있을 뿐이다.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유홍준 교수는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왕릉으로서의 위용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담하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고분은 진평왕릉뿐이다.”라며 “꼭 보아야 할 경주의 보물 세 가지 중 하나”라고 평했다.

 다른 왕릉이 무인상, 문인상, 돌사자, 호석과 돌난간, 능을 감싸는 도래솔 등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다면, 진평왕릉은 대신 아담한 숲을 갖고 있다. 1969년 8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솔거미술관

경북 경주시 경감로 614 (천군동 130), 054-740-3990

 솔거미술관은 경주시에 위치한 공립미술관으로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지원하고 재단법인 문화엑스포가 관리하고 있다. 1979년 중앙일보사 주최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한국화가 박대성이 2008년에 작품을 기증하면서 건립이 추진되었으며 2012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원 내 아평지 인근에서 2015년 개관하였다.

 박물관 규모는 총 부지면적 14,880㎡에 이르며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미술관 건축물은 지상 2개 층, 지상 1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술관 전시실은 지상 1, 2층에 위치해 있다. 1층에는 박대성의 기증 작품을 전시하는 박대성전시관 제 1, 2, 3관, 2층에는 박대성전시관 4, 5관 및 기획전시실 2개 실이 운영되고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경상북도 지역 미술가 초청전시 및 협동전시 등이 개최된다.

 주요 소장품으로는 박대성의 〈을숙도〉(1994), 〈천년배산〉(1996), 〈상형문자시리즈〉(2005), 〈개골산〉(2006), 〈현송〉(2009) 등 회화 작품 및 서예 작품을 비롯하여 벼루, 묵, 안료 등 작업 도구 등이 주요 소장품으로 꼽힌다. 전시시설 외에 기념품 상점과 카페가 있다.

 

 

◆경주 동해안권 볼거리

골굴사, 마애여래좌상 / 기림사 / 감은사지 / 이견대 / 문무대왕릉 (대왕암) / 감포항, 송대말등대 /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홍보관 / 코라드청저누리공원(코라디움) / 경주 양남주상절리 / 물길사랑길&하서해안공원

 

●골굴사, 마애여래좌상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기림로 101-5, 골굴사 054-744-1689

 골굴사는 경주시의 함월산에 자리한 사찰로 선무도의 총본산으로 한국의 소림사라는 별명이 있다. 약 1,500여 년 전 인도에서 온 광유 선인 일행이 경주 함월산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하였는데, 골굴사는 광유스님 일행이 인도를 본떠 석굴사원 형태로 조성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사원이다.

 함월산 기림사 골짜기에 위치한 골굴암의 높은 암벽에 있는 자연굴을 이용하여 만든 12개의 석굴 중 가장 윗부분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조선 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골굴석굴’에는 목조전실이 묘사되었으나 지금은 바위에 흔적만 남아 있다.

 제작 시기는 9세기 중엽으로 당시 서라벌의 신라인들이 기림사 골짜기의 가장 높은 암벽에 올라가 불상을 새긴 것이다. 처음 만들 당시에는 몸 전체가 완전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현재는 암벽 석질의 차이 때문에 무릎 아랫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높이 4m, 폭 2.2m 정도의 마애불상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높이 솟아있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은 가늘어진 눈·작은 입·좁고 긴 코 등의 표현에서 이전보다 형식화가 진전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입체감이 두드러진 얼굴에 비해 평면적인 신체는 어깨가 거의 수평을 이루면서 넓게 표현되었는데, 목과 가슴 윗부분은 손상되었다.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겨드랑이 사이에는 팔과 몸의 굴곡을 표시한 V자형 무늬가 있다. 암벽에 그대로 새긴 광배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머리광배와 불상 둘레의 율동적인 불꽃무늬를 통해 흔적을 살필 수 있다. 867년에 조성된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와 유사한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골굴사는 불가의 전통 수행법인 선무도 수련원을 개설과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선무도와 사찰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1일 템플스테이, 함월산 트레킹과 명상을 하는 체험형 템플스테이, 장기 휴식형 템플스테이와 청소년 인성교육 프로그램인 선무도 청소년 화랑수련회를 진행하고 있어 외국인도 많이 참가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기여와 문화복지 차원에서 공연단(사천왕)을 창단해 골굴사 경내에서 상설공연을 하고 있다.

 

 

●기림사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437-17 (양북면), 종무소 054-744-2292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에 있는 신라 시대의 절로서 16동의 건물로 불국사 다음가는 규모다. 이 절은 신라 초기에 천축국의 사문 광유성인이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처음에는 임정사라 불리다가 원효가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개칭했는데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길이 없다.

 기림사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고색창연한 대적광전을 비롯, 수령 500년 이상 된 큰 보리수나무와 목탑 터가 있는 지역과 성보 박물관. 삼성각, 명부전, 관음전 등이 있는 지역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은 후 6차례나 다시 지어졌다는 대적광전은 배흘림 기둥의 다포식 단층맞배지붕의 건물로 단아하고 웅장하다.

 기림사는 또 다섯 가지 맛을 내는 물로 유명하다. 오종수라고 불리는데 차를 끓여 마시면 맛이 으뜸이라는 감로수와 그냥 마셔도 마음이 편안하다는 화정수, 기골이 장대해진다는 장군수, 눈이 맑아진다는 명안수,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오탁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제 시대 장군이 태어날까 두려워 물길을 막아버렸다는 장군수를 제외하곤 다른 네 곳은 지금도 각기 다른 물맛을 내며 물이 솟아나오고 있다.

 기림사로 가는 도중에 12개의 석굴로 이뤄진 골굴사가 있다. 원래는 기림사 산내 암자였으나 독립 사찰이 된 후 선무도의 본산이 돼 전국에 선무도를 보급하고 있다.

 

 

●감은사지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용당리 17, 054-772-3843

 감은사는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하고 난 후, 부처님의 힘으로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다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들인 신문왕이 그 뜻을 좇아 즉위한 지 2년 되던 해인 682년에 완성한 신라 시대의 사찰이었다.

 문무대왕은 죽기 전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바로 대왕암이며 부왕의 은혜에 감사하여 사찰을 완성하고 이름을 감은사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79년부터 2년에 걸쳐 전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얻어진 자료를 통해 창건 당시의 건물 기초대로 노출 정비한 것이며, 아울러 금당의 지하에는 바다용이 된 문무대왕의 휴식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을 마련한 특수 구조와 동쪽으로 통로를 만들었다고 하는 흔적도 밝혀 놓은 것이다.

 우뚝 솟은 두 삼층석탑은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한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으로서 수십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만들어 조립식으로 세운 것으로 전체 높이 13.4m에 이르는 신라 삼층석탑 중 최대의 것이다. 감은사의 동쪽에 약간 높은 언덕이 있다. 이곳은 대왕암을 정면으로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인데, 이곳에 이견대를 짓고 신문왕은 이곳에 수시로 와서 대왕암을 망배하였다고 한다.

 

 

●이견대(利見臺)

경북 경주시 감포읍 동해안로 1480-12, 관광안내소(경주역) 054-772-3843

 

 이견대는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감은사지 앞에 있는 신라 시대의 유적이다. 이견대란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千利見大人)’에서 나온 것이다. 신문왕이 감포 앞바다에 있는 부왕인 문무왕의 해중능묘(海中陵墓)를 망배하기 위해 지었다는 곳으로, 1970년 그 건물터를 발견하여 새로 누각을 짓고 이견대라는 현판을 걸었다. 1967년 8월 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견대는 화려한 능묘를 마다하고 동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곳이며 그의 아들 신문왕이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배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유서 깊은 곳이다.

 대왕암을 의미 있게 눈여겨볼 수 있는 곳이 한군데 더 있다. 동해구(東海口)라는 표지석 아래로 내려가면 우현 고유섭 선생의 반일 의지를 기리기 위해 1985년 제자들이 세운 기념비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가 보인다. 일본 강점기 명백한 침략을 내선합일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우격다짐에 쐐기를 박듯, 이미 통일신라 시대에 왜구의 침략을 경계한 문무왕의 호국 의지를 돌이켜 생각하며 고유섭이 지은 '대왕암'이라는 시와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기념비가 대왕암이 바라다보이는 자리에 나란히 세워져 있어 뜻이 더 깊다.

 

 

●문무대왕릉 (대왕암)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30-1, 054-779-8166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水中陵)으로 1967년 7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봉길리 앞바다에 육지로부터 200m쯤 떨어진 바위섬으로 이곳이 바로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제 30대 문무왕 (661-681)의 수중릉이다.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한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은 통일 후 불안정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다. 그리하여 지의법사에게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을 불식에 따라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 일대에 뿌리고 대석(大石)에 장례를 치렀다.

 둘레 200m의 바위섬에 동서와 남북으로 십자 모양의 물길을 깎은 다음, 가운데 작은 못처럼 파여서 항을 이루고 있으며, 이곳에 깊이 3.6m, 폭 2.85m, 두께 0.9m의 큰 돌을 물속 2m 깊이에 놓아 그 밑에 유골을 모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큰 돌을 대왕암이라 하며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왕암에서 멀지 않은 육지에 '낭산'이라고 하는 신성시되는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 '능지탑'이라고 불리는 탑이 있다. 연구 결과 문무왕의 시신은 이 능지탑에서 화장되어 대왕암 주변에 산골하고, 대왕암 주변 바위에서 절리된 큰 바위를 중앙의 빈 공터에 남북으로 안치시켜 장례를 지낸 형식적 절차를 가짐으로써 무덤(왕릉)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감포항, 송대말등대

경북 경주시 감포읍 척사길 18-94 (오류리 588-2), 054-744-3233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죽어서도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긴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관이 수려한 감포항이 있다. 감포항은 2025년 개항 100주년을 맞이하는 경주 최대의 항구이다. 항구 주변에는 항상 고깃배들이 드나들고, 활어 위판장에서는 매일 신선한 생선이 경매로 오간다.

 감포항 방파제가 있는 곳에 조성된 감포 해상공원의 경우 2018년 조성된 곳으로 해안데크, 바람개비 동산, 감포항 조형물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감포항 방파제에는 감은사지 3층 석탑을 음각화한 아름다운 송대말등대가 우뚝 솟아있다.

 육지 끝에서부터 암초들이 길게 뻗어 있어 작은 선박들의 사고가 빈번한 감포 앞바다의 해상 안전을 위해 처음에는 무인 등대로 건립되어 이후 유인등대로 승격되어 운영하였으나 현재는 그 기능을 다 하여 사용되지 않고 있다.

 대신 그 옆에 경주시 감포읍의 상징인 감은사지 석탑 모형을 본떠 새롭게 만든 5층 등대 건물을 지어 1, 2층은 빛 체험 전시관으로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3, 4, 5층은 기존 등대의 역할을 대신해 감포 앞바다를 비추고 있다. 전시관 1층에는 감포항과 송대말 등대의 역사에 대해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송대말이란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라는 뜻으로 수령 300년~400년 정도 된 아름드리 해송림이 등대 주변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으며 등대 앞에는 관람객을 위한 나무 데크길이 설치되어 있어 산책하며 주변 경관을 둘러보기 좋으며 무엇보다 문무대왕릉, 양남주상절리와 함께 경주 동해안의 일출 명소로 손꼽히는 장소이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홍보관 ‘에너지팜’

경북 경주시 양북면 불국로 1655, 054-704-8114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에서 운영하는 '체험형 에너지 홍보관'이다. 경주 동해안으로 가는 중, 문무대왕면 장항리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홍보관은 7가지의 전시 존이 구성되어 있다. 전기에너지의 원리, 원자력기술과 안전성, 신재생 에너지 등 다양한 에너지들의 작동 원리를 전시했다. 그리고 영상과 체험 콘텐츠로 소개한다. 자유관람객을 위해 홍보관 전시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그 밖에도 북카페, 도서관, 산책로, 옥외공원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휴식공간들이 있다.

 우리 삶 속에서 없으면 안 될 에너지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홍보관에 방문하여 여유 있게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코라드청정누리공원 (코라디움)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동해안로 1249, 054-778~7041~2

 코라드 청정누리공원은 방폐장과 방폐물 관리사업에 대해 올바른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홍보 전시실이 조성되어 있으며, 실내에서 쉴 수 있는 휴식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청정누리 공원을 품고 펼쳐진 동해바다와 문무대왕릉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자연과 과학이 어우러진 테마파크는 방문객의 휴식 및 소규모 이벤트를 위한 레저문화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주차장에는 친환경 태양광 시설을 설치해 조명으로 활용되며 학습과 공연 등 지역주민들을 위한 야외무대도 마련되었다. 또한, 코라드 청정누리공원에는 동해안을 관광하는 여행객과 전국의 문인들이 체험수기를 쓰기 위해 찾기도 한다.

 

 

●경주 양남주상절리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405-3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와 하서리에 걸쳐 해안에 형성된 주상절리는 2012년 9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의 해안을 따라 약 1.5km에 이르는 주상절리는 신생대 제3기 마이오세(약 2,600만~700만 년 전) 때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서의 화산활동으로 인하여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주상절리는 대부분 질서정연한 수직의 기둥 모양이지만 이곳의 주상절리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거나 수평 방향으로 발달해 있으며, 부채꼴(방사형)로 퍼져나간 것도 있다.이렇게 형태가 다양한 것은 마그마가 지표면 위로 분출하지 못하고 지각 얕은 곳으로 스며들어간 상태에서 냉각과정을 거쳤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횡단면의 지름은 20~100cm로 다양하며, 각각의 형태 또한 오각에서 팔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부 구역에는 과거 해수면의 변동을 이해할 수 있는 해안단구와 소규모의 해식대지도 있다.

 수평·수직·경사·방사 형태 등 모든 방향의 주상절리가 대규모로모여 있고, 흔히 볼 수 없는 부채꼴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또, 한반도 동남부 지역의 신생대 화산활동과 동해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

 

 

●물길사랑길&하서해안공원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 1516-4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 길이 끝나는 하서항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길이 있다. 하서항 방파제 끝에 사랑의 자물쇠 포토존이 있는데, 여기에서 착안하여 이름을 지은 ‘물빛사랑길’. 하서항에서 하서해안공원까지 이어지는 그리 길지 않은 해안 산책로이다. 해안가에 데크 산책로가 설치되어 있고, 연꽃 모양의 경관 교량인 물빛사랑교도 코스 중 만날 수 있다. 하서해안공원인근에는 바다전망이 좋아 예쁜 카페가 곳곳에 있으니 카페에서 여유를 부려 보는 것도 좋다.

 하서해안공원은 하서해수욕장과 접해 있다. 공원의 뒷편으로 소나무숲과 유료로 운영되는 솔밭 오토캠핑장이 있으며, 해수 온천을 즐기는 양남해수온천랜드24가 있다. 공원 내에는 6.25참전 유공자 명예 선장비와 인어조각상, 나무로 만들어진 솟대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인근에는 양남 주상절리, 읍천벽화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경주시내권 볼거리

대릉원 / 천마총 / 첨성대 / 경주 계림 /경주읍성 / 경주향교 / 석빙고 / 경주 월성 (반월성) / 국립경주박물관 / 성덕대왕신종 / 선덕여왕릉 / 동궁과 월지(안압지) / 월정교 / 분황사 / 황룡사지, 황룡사지역사문화관 / 교촌마을 / 황리단길

●대릉원

경북 경주시 계림로 9 (황남동), 054-750-8650

 경주 대릉원은 경주시 노동동과 황남동에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을 포함하고 있다. 노동동 고분군, 노서리 고분군, 황남동 고분군, 황오동 고분군, 인왕동 고분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동 고분군은 고신라 시대 무덤들로, 봉황대, 식리총, 금령총 등이 포함되어 있다. 봉황대는 밑 둘레 230m, 직경 82m, 높이 22m로 황남대총 다음으로 규모가 큰 무덤으로 덧널을 설치한 돌무지덧널무덤이다.

 노서리 고분군은 넓은 평지에 크고 작은 고분 14기가 있다. 노동리의 봉황대 고분과 더불어 규모가 있고, 쌍벽을 이루는 제130호 고분을 비롯하여 1921년에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 1926년에 일본 방문 길에 스웨덴의 황태자이며 고고학자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들러 발굴을 조사 참관한, 서봉총이 있다.

 황남동 고분군은 신라초기의 무덤들로 일부가 대릉원 구역 안에 있다. 원형으로 흙을 쌓아 올린 30기의 무덤이다. 큰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이고 주변에는 봉문이 없어진 작은 무덤이 있다. 대릉원 안에는 전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다.

 황오동 고분군은 크고 작은 신라 시대 무덤들이 밀집되어 있다. 오랜 세월 관리가 되지 않아 봉분이 많이 손상되었으나, 고분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10여 기에 이른다. 발굴된 무덤 구조로 미루어 볼 때, 주로 4~5세기경의 왕족 또는 귀족을 묻은 돌무지 덧널무덤으로 추정한다.

 인왕동 고분군은 경주 중심부 평야 지대에 남아 있는 고분군 가운데는 가장 동편에 있다. 일제 강점기 때 13기의 봉토분이 확인되었고, 새로 10기의 고분이 더 분포하고 있는 것이 조사되었다. 고분 중 일부를 발굴조사 했는데, 출토유물이나 유구의 크기 등으로 보아 신라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드라마 <20세기 소녀> <20세기 소녀>에서 보라가 수학여행 자유시간을 보낸 곳으로 고분들이 밀집된 공원이다. 약 20여 기의 큰 고분들이 마치 능선을 그리는 것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고분 사이에 목련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곳이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유일하게 내부를 공개하는 천마총도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천마총

경북 경주시 계림로 9 (황남동 262), 054-743-1925

 천마총은 경주 황남동 대릉원 안에 있는 신라 고분 중 하나로 신라 22대 지증왕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3년에 발굴된 제155호 고분인 천마총은 신라 특유의 적석목곽분이다. 높이 12.7m, 지름 50m의 능으로 봉토 내에는 냇가의 돌로 쌓은 적석층이 있고, 적석층 안에는 길이 6.5m, 너비 4.2m, 높이 2.1m의 나무로 된 방이 있어, 그 중앙에 목관을 놓고 시신을 안치했다.

 발굴 당시 천마총에서는 천마도장니(국보), 금관(국보), 금모(국보)를 비롯하여 장신구류 8,766점, 무기류 1,234점, 마구류 504점, 그릇류 226점, 기타 796점으로 모두 1만 1,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중 천마도는 우리나라 고분에서 처음 출토된 귀중한 그림으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것으로 회화 자료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고 신라의 유일한 미술품이라는 데 큰 의의를 가진다.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었기 때문에 이 고분에 천마총이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현재는 무덤 내부를 복원하여 공개하고 있다.

 

 

●첨성대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첨성대는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진 천문대로서 신라 왕궁 터인 반월성의 북서쪽 성곽에서 약 30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국보 제31호이고, 그 원형을 유지하는 것 가운데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다. 고분을 제외한 한반도 고대 건축물 중 유일하게 후대의 복원이나 재건 없이 창건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 9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 있다.

 꼭대기에는 정자석이 2단으로 짜여 있는데, 그 위에 관측기구를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혼천의와 같은 관측기구를 정상에 설치하고 춘분·추분·동지·하지 등의 24절기를 별을 통하여 측정하였고, 정자석을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키는 기준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매우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국보 제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수준을 볼 수 있는 문화재이다.

 

 

●경주 계림

경북 경주시 교동 1

 경주 반월성에서 첨성대로 내려가는 중간에 있는 숲으로 왕버들·느티나무·단풍나무 등의 고목이 울창하게 서 있는, 신라 건국 당시부터 있던 곳이다. 시림이라 부르다가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태어난 이후부터 ‘계림’이라 하였다. 숲 가운데로 시냇물이 흐르고 그 주위는 습지이다. 울창한 숲이지만 이곳의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아 옛 모습 그대로이다.

 『삼국유사』에는, 60년(탈해왕 4) 8월 4일 밤에 호공(瓠公)이 월성 서쪽 마을을 지나가는데 마을 옆의 시림이 온통 환한 광명으로 차 있어 가보니 자주빛 구름이 하늘에서 그 숲속으로 드리워져 있었고 그 구름 속으로는 황금으로 된 궤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그 나무에는 흰 닭 한 마리가 울고 있어 이 광경을 탈해왕에게 고하자 왕이 거동하여 궤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한 사내아이가 누워있다가 일어나, 아이를 ‘알지(閼智)’라 했다고 한다. ‘알지’란 순우리말로 ‘아기’를 뜻한다.

 탈해왕이 ‘알지’를 안고 궁으로 돌아와 태자로 삼았으나 알지는 왕위를 파사에게 양보했다. ‘알지’는 금궤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金)’으로 하였다. 그 후 ‘알지’의 6대손인 미추가 김씨로서는 최초로 신라 왕이 되었다. 계림의 김알지신화는 천손강림설화이자 난생설화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그후 시림은 신라의 신성림이었고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도 모두 위와 같은 내용의 기록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1803년(순조 3)에 세운 비가 서 있다.

 현재 계림에는 약 100여 주의 왕버들과 느티나무가 하늘을 가릴 듯하다. 대릉원-계림-반월성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옆에는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유적지의 운치를 더 깊게 해준다.

 

 

●경주읍성

경북 경주시 동부동

 경주읍성은 경주시 동부동 및 북부동에 있는 고려 때의 석축 읍성으로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축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동경통지』의 기록으로 보아 1012년(현종 3)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부터 경주는 지방행정체제를 갖추었으므로 읍성이 축조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경통지』에는 ‘고려 폐왕 우(禑) 무오(戊午)에 개축하였고, 높이는 12자 7치’라고 되어 있다.

 또,『동국여지승람』에는 ‘주위가 4,075자이고 높이는 12자인데, 성내에 우물이 80개소나 있다’고 되어 있고, 『동경잡기』에는 ‘징례문은 읍성의 남문인데, 임진왜란에 불탔으나 숭정(崇禎) 임신에 중수하고 동·서·북의 3문을 차례로 세웠다’고 되어 있다. 지금은 거의 헐리고 약 50m만 남아 있는데, 가로 40∼50cm, 세로 20∼30cm의 잘 다듬은 돌로 축성되어 있다.

 성문은 동쪽에 향일문, 서쪽에 망미문, 남쪽에 징례문, 북쪽에 공진문이 있었는데, 당시 징례문에는 봉덕사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달아놓고 매일 울렸다고 한다. 축성한 석재의 돌더미 속에서 귀중한 석물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절에 있던 석탑부재 등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주향교

경북 경주시 교촌안길 27-20 (교동 17-1), 054-775-3624

 경주향교는 경주교촌한옥마을과 경주최부자댁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가 교촌, 교리, 교동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 향교 때문이다. 이 자리는 천년의 배움터로, 신라 신문왕 2년(682) 처음 세워진 국학이 있던 곳이다.

 경주향교가 처음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성종 23년(1492)에 서울의 성균관을 본떠 고쳐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3년(1600)에 대성전과 전사청을, 선조 37년(1604)에 동무와 서무를 짓고 광해군 6년(1614)에 명륜당과 동재·서재를 재건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은 전형적인 전묘후학의 배치구조를 보이고 있다. 서원이 사립학교라면 향교는 공립학교에 해당하여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봄, 가을 전통적 유교제례의식인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또 경주향교에서는 국궁, 떡메치기, 다도 등의 전통문화체험과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명륜당에서 전통혼례를 무료로 체험하는 시연혼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교촌마을

경북 경주시 교촌길 39-2 (교동 59-3), 054-779-6834

 중요민속자료인 경주 최씨고택과 중요무형문화재인 경주 교동법주가 자리 잡고 있는 교촌마을은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학문에도 힘써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한 경주 최부자의 얼이 서린 곳이다.

 특히, 최부자 집에서 가훈처럼 내려온 원칙인 “벼슬은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곳에는 원효대사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은 신라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며, 부근에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서려 있는 계림과 내물왕릉, 경주향교, 김유신 장군이 살았던 재매정이 있다.

 

 

●석빙고

경북 경주시 인왕동 449-1, 054-779-8745

 경주 석빙고는 일종의 천연냉장고로 신라 지증왕 6년(505년)에 얼음을 저장했다는 기록에 의해 신라 때의 빙고로 알고 있었으나 현재의 석빙고는 조선 영조 14년(1738년) 부윤 조명겸이 목조의 빙고를 석조로 축조하였다가 4년 뒤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는 빙고 입구 이맛돌에 '숭정기원후재신유이기개축'이라고 새겨진 것을 보고 알 수 있다.

 이 빙고는 입구가 월성 안쪽으로 나 있으며, 계단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면 성의 경사를 따라 안이 깊어지며, 내부는 길이 12.27m, 폭 5.76m, 높이 5.21m 규모로 모두 가공된 석재로 되어 있고, 굴은 다섯 개의 아치형 기둥 사이에 장대석이 걸쳐 있다. 이 장대석을 친 위치 세 군데에 외부와 통하는 환기공이 뚫려 있다. 바닥 중앙에는 배수로가 있어 경사를 따라 성 밖으로 흘러나가게 되어있고, 외부는 장대석 위에 흙을 덮어 환기공만이 노출되어 있다.

 현재 영조 때 만든 석빙고가 여러 곳에 남아 있으나 그중에서도 경주 석빙고가 가장 완벽하다. 보물 제66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 월성 (반월성)

경주시 인왕동 387-1, 054-779-8743~8759

 경주 월성은 서기 101년 파사왕 22년에 신라의 왕성으로 축성되어 신라가 망하는 서기 935년까지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 하여 '신월성(新月城)' 또는 '월성'이라 불렸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시대부터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려 오늘에 이른다.

 월성의 성은 돌과 흙을 섞어 싼 토석 축성인데 길이가 1,841m이며, 성내 면적이 193,585㎡이다. 동에는 동궁인 임해전과 안압지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첨성대가 있으며 남에는 남천의 시내가 하나의 방위선 역할도 하게 되어 있다.

 기록에는 문으로 남문·귀정문·북문·인화문·현덕문·무평문·존례문과 임해문이 있었으며, 누각으로 월상루·망덕루·명학루·고루가, 전으로는 조원전·숭례전·평의전·남당·월정당·우사록관·좌사록관·영각성이 있었으며, 궁으로는 내성·영명궁·월지궁·영창궁·동궁·내황전 등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월성 지하에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부터 통일신라 시대의 토기, 기와, 건물 초석 등이 깔려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경북 경주 일정로 186 (인왕동 76), 054-740-7500

 국립경주박물관은 2만여 평의 대지에 고고관, 미술관, 안압지관의 세 개의 상설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야외전시관에도 빠뜨리지 말고 보아야 할 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고관에는 선사·원삼국실, 신라실Ⅰ·Ⅱ, 국은기념실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선사·원삼국실에는 경주와 경상북도 각 지방에서 수집한 선사시대부터 원삼국시대까지의 유물을 전시하였는데, 울진 후포리, 영천 어은동, 경주 조양동 및 경주 황성동 유물들은 매우 중요한 전시품이다.

 신라실Ⅰ·Ⅱ에는 금관총·천마총·서봉총·황남대총과 계림로 미추왕릉지구 등의 고분에서 출토된 화려한 금제품을 비롯하여 다양한 일괄 출토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고 신라 시대의 토기 중 토우(흙으로 만든 사람이나 동물의 상)·이형(異形)토기·상형 토기나 통일신라 시대의 골호(뼈 단지) 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물의 한 분야이기도 하다. 그리고 국은전시실에는 1986년 이양선이 수집하여 기증한 선사시대와 삼국시대의 유물 7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은 2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에는 융성했던 신라 불교의 미술을 전시한 불교미술실이 있다. 불교미술실에는 분황사·불국사·황룡사지·사천왕사지·남산 등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의 탁월한 불교 공예품들, 즉 사리구·불상·와전류·금석문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임신서기석, 문무왕릉비 등 신라 금석문 자료를 모아 놓은 금석문실과 황룡사 출토품으로 꾸민 황룡사실이 있다.

 안압지관에는 안압지에서 출토된 3만여 점의 유물 가운데 예술성이 뛰어난 명품 700여 점이 전시되어 통일신라 시대의 왕실과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옥외전시장에는 국립경주박물관의 상징적인 전시품인 성덕대왕신종(국보)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을 비롯한 경주지역 절터, 궁궐터 등에서 옮겨온 석조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성덕대왕신종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054-740-7500

 성덕대왕신종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종으로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 무게 18.9톤, 제작 때 쓰인 구리만 무려 12 만근이나 된다.

 이 종은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따 ‘에밀레종’ 또는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한다. '이 종 하나만으로 박물관을 세우고도 남는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종 몸체에는 상하에 넓은 띠를 둘러 그 안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종의 어깨 밑으로는 4곳에 연꽃 모양으로 돌출된 9개의 유두를 사각형의 유곽이 둘러싸고 있다.

 유곽 아래로 2쌍의 비천상이 있고, 그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연꽃 모양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몸체 2곳에는 종에 대한 내력이 새겨져 있다. 특히 종 입구 부분이 마름모의 모서리처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또한, 몸통에 남아 있는 1,000여 자의 명문은 문장뿐 아니라 새긴 수법도 뛰어나, 1천 3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상되지 않고 전해오고 있는 문화재로 앞으로도 잘 보존해야 할 것이다.

 

 

●선덕여왕릉

경북 경주시 보문동 산79-2, 054-772-3632

 신라 제27대 선덕여왕릉은 경주시 남동쪽에 있는 낭산(狼山)의 남쪽 사면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선덕여왕릉은 봉분의 크기가 직경 24m,높이 6m인 원형봉토분이다. 봉분의 하단에는 둘레돌(호석)을 돌렸는데, 크고 작은 자연할석을 일정한 높이로 2~3단 쌓고 사이사이에 둘레돌 높이의 큰 편평석을 끼워 놓아 버팀석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외 별다른 장식은 없다.

 능의 바로 앞에는 후대에 설치한 배례석과 향로석이 놓여져 있고, 그 우측에 표석(表石)이 있다. 그리고 능에서 아래로 좀 떨어진 곳에는 1949년에 이 능을 수축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신라선덕왕릉봉수기념비(新羅善德王陵奉修記念碑)’가 있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는 진평왕의 딸로 태어나 성골이라는 신라 왕족의식에 의해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 재위 16년간 분황사와 첨성대를 세웠고, 특히 신라 최대의 황룡사 9층목탑을 세워 신라 불교 건축의 금자탑을 이루기도 하였다.

 또한, 뒷날 태종 무열왕이 된 김춘추와 명장 김유신 같은 영웅호걸을 거느리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기초를 닦아 놓았다. 그러나 여성왕이라는 약점 때문에 왕권이 불안하여 재위 말년에 비담, 염종의 난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사망하였다.

 

 

●동궁과 월지 (안압지)

경북 경주시 원화로 102 (인왕동 506-1), 054-750-8655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푼 장소이다.

 신라가 멸망한 후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와 ‘기러기 안(雁)’과 ‘오리 압(鴨)’을 써서 예전엔 안압지로 불렀으나, 1980년대 이곳에서 월지-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고,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 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지는 내용으로 보아 이곳이 신라시대 때 ‘월지’라고 불린 장소로 확인되어 2011년에 경주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일제강점기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 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월지는 신라 원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사각형으로 조성된 월지는 서남쪽에는 직선으로 건물을 들이고, 동북쪽은 곡선으로 3개 섬과 무산12봉을 연상케 하는 언덕을 만들었다. 직선 공간에는 동궁의 화려함이, 곡선 공간에는 자연의 수려함이 돋보인다.

 동궁에는 임해전을 비롯해 총 27동의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으나 현재는 3채만 복원되었다.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서 볼 수 있다. 동궁과 월지는 첨성대와 함께 ‘한국관광공사 야간 관광 100선’에 오른 명소로, 어둠이 내린 뒤에 진가가 드러난다.

 여름철이라면 '동궁과 월지' 인근에 조성된 연꽃단지에 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연꽃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월정교

경북 경주시 인왕동 921-1

 월정교는 동궁 월지와 함께 야간명소로 이름난 곳이다. 월정교는 경주시 교동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에 지어졌던 교량으로 경주 월성과 남산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1984년과 1986년 두 번의 발굴조사를 통해 나무다리가 있었던 것을 확인하여 2018년에 복원하였다.

 월정교가 있는 남천 주변이 경주 춘양교지와 월정교지(사적 457호)다. 『삼국사기』에 “경덕왕 19년 궁의 남쪽 문천에 월정과 춘양이라는 두 다리를 놓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1986년 복원에 필요한 발굴조사 과정에 월정교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월정교의 세굴 방지목이 발견됐다.

 이를 토대로 다리 양쪽 교대와 날개벽, 4개 주형 교각이 있으니 길이가 60m 정도로 추정되며, 교각 사이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으로 보아 다리 위는 기와지붕을 인 누각이었을 것으로 알려졌다.

 고증을 거쳐 복원한 월정교는 고대 교량 건축 기술의 백미로, 길고 곧게 뻗은 회랑과 웅장한 2층 문루가 장관이다. 길이 66m의 교량이 양 끝의 문루 2개를 연결하는 형태의 월정교는 야간에 월정교 바깥쪽 수면에 비치는 모습이 일품이다.

 

 

●분황사

경북 경주시 분황로 94-11(구황동 312), 054-742-9922

 분황사는 황룡사지와 잇닿아 있으면서 국보 제30호로 지정돼 있는 모전석탑으로도 유명하다. 선덕여왕 3년(634)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고승 원효와 자장법사가 거쳐간 사찰로 명성이 높다.

 원효대사가 거주하면서 화엄경소를 쓴 곳이며, 원효의 아들인 설총은 원효대사가 돌아가신 후 아버님의 소상을 만들어 모셨고, 이 소상은 고려 후기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효가 이곳에서 해동종을 완성했다고 하여 해동종을 분황종이라고도 한다. 또한,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경덕왕 14년(755년)에 불상주조의 대가인 강고 내말이 만든 약사여래상이 있었다.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분황사 모전석탑과 화쟁국사비적, 삼룡변어정(8각 석정)이라는 우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분황사약사여래입상 등이 있으며 석등과 대석 같은 많은 초석들과 허물어진 탑의 부재였던 벽돌 모양의 돌들이 한 켠에 단정하게 쌓여 있다.

 

 

●황룡사지, 황룡사지역사문화관

경북 경주시 임해로 64-19 (구황동 786-1), 054-777-6862

 황룡사터는 경주시 구항동 분황사 앞뜰에 널리 펼쳐져 있다. 신라 최대의 절이자 호국의 대사찰로서 고신라 불교문화의 정수가 모두 모여 있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창건역사를 보면 신라 진흥왕 14년 (553년)에 월성 동쪽에 새로운 대궐을 짓다가 거기에서 황룡이 나타났다 하여 황룡사라고 하고 17년 만인 569년 완성했다. 이때 솔거가 이 절의 벽에 노송을 그렸다. 명실공히 신라 제일의 국찰이었다. 584년에는 금당을 지었다.

 선덕여왕이 이 탑을 세운 지 23년 만에 신라는 3국을 통일하였고, 후에 수많은 현철이 이 탑의 영험으로 삼국통일을 이룩했다고 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신라의 3보배라 하는 황룡사 장육존상, 황룡사 구층탑 및 진평왕 옥대 중 2개가 황룡사에 있었으며 신라 최대의 종이 황룡사에 있었는데 몽고의 침입으로 없어졌다. 황룡사에서는 자장, 원효 등 신라 최고의 고승들이 설법하고 진흥, 진평, 선덕, 헌강, 진성의 제왕이 친히 설법을 듣던 곳이다.

 1969년 7월 이곳 강당지를 발굴 조사하여 금당, 강당, 탑지의 초석을 발굴했고, 1976년부터 8년간의 발굴 작업에서 독특한 가람 배치인 일탑 삼금당식으로 밝혀졌으며,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기단을 비롯한 건물 하부구조는 확인되었으나 상부가구재가 정확히 고증되지 않아 전체적인 복원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기단부만 복원하였다. 발굴된 터에서 나타난 사찰의 면적은 8,800평에 달해 불국사의 8배나 된다. 현재 사적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황룡사지 바로 옆에, 황룡사지의 연구와 발굴조사 성과를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건립된 황룡사지역사문화관이 있다. 전시관 내부에는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의 과정을 담은 3D 영상 시청각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신라 역사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1층에는 황룡사 9층 목탑을 10분의 1 크기로 재현한 모형탑도 전시되어 있다. 모형탑 전시실 옆에는 황룡사지가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로비 카페가 있다.

 

 

●황리단길

경북 경주시 포석로 1080 (황남동 280)

 황리단길은 경주에서 가장 젊은 길로, 황남동과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합쳐진 단어로 ‘황남동의 경리단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내남사거리에서 시작해 황남초등학교 사거리까지의 도로를 기준으로 양쪽의 황남동, 사정동 일대의 지역을 일컫는다.

 황리단길은 1960~70년대의 낡은 건물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거리이다. 전통 한옥과 현대적인 카페, 상점이 어우러진 거리로,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핫플레이스이다. 이곳에서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분위기 좋은 카페, 아기자기한 소품, 기념품 가게, 개성 있는 식당들이 들어섰다.

 초기에는 도로변을 중심으로 상점들이 들어섰는데 황리단길 외연이 확장되면서 골목골목마다 개성 있는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특히, ‘황리단길 청년 감성 팝업스토어’는 경주의 청년작가들과 청년 사장들이 합심해 전통 다과와 지역 특산품, 기념품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십원빵, 달고나, 커피, 꽃차, 약과 등 전통 다과와 캐리커처, 복주머니 만들기, 경주 향수 만들기, 한지노트 만들기 등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선보여 방문객이 끊이질 않고 있다.

 경주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코스가 되었으며, 인근의 첨성대, 대릉원의 관광지를 함께 둘러볼 수 있어 경주의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경주 남산권 볼거리

경주 오릉 / 경주 나정 / 포석정지 / 경주 삼릉, 삼릉 숲 /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 경주 남산 / 남산 탐방(삼릉~용장사지) / 통일전 / 헌강왕릉&정강왕릉 / 서출지 / 보리사

 

●경주 오릉

경주시 금성로 38-9 (탑동), 매표소 054-772-6903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4기의 봉토 무덤과 1기의 원형 무덤으로 1969년 8월 사적으로 지정됐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왕비 알영부인,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왕비 1명의 무덤이라 나와 있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박혁거세 승하 후 7일 만에 몸이 다섯 개로 흩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 몸의 다섯 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 또는 사릉이라 했다고 한다.

 무덤의 겉모습은 경주 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 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원형 봉토 무덤이다.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며, 2호 무덤은 표주박형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다. 이러한 대형 원형 봉토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박혁거세 당시의 무덤 형식은 아니어서 의심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오릉 동편에는 시조왕의 위패를 모시는 숭덕전이 있으며, 그 뒤에는 탄생설화와 관련된 나정이 있어 박혁거세와 왕족의 능이라고 전해지는 설이 유력하다.

 

 

●경주 나정(蘿井)

경북 경주시 탑동 700-1, 054-779-6105

 오릉에서 동남쪽을 바라보면 소나무숲이 소복한 가운데 조그만 비각이 있고 그 옆에 있는 우물이 나정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 우물터에서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기원전 69년 어느 날, 고허촌장 소벌공이 우물가에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를 이상히 여겨 그 자리에 가 보았더니, 말은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 큰 알이 있었다.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13세 되던 해(기원전 57년)에 6부 촌장들이 그를 임금으로 뽑았으며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하였다.

 이곳에는 지금도 우물이 남아 있으며, 조선 순조 3년(1803)에 시조 왕의 내력을 기록한 유허비(높이 2.25m, 幅(폭) 45㎝ 두께 21㎝)가 지금도 남아 있다.

 

 

●포석정지

경북 경주시 배동 454-3, 054-745-8484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포석정은 왕이 술을 들면서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별궁의 하나였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조성 연대는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5) 때로 보고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규모는 폭이 약 35㎝, 깊이 평균 26㎝, 전체 길이가 약 22m이다. 포석정은 중국 고대 강가에서 초혼제를 지내고 악귀를 쫓는 행사의 하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에서 유래하였다. 353년 중국의 명필 왕희지가 쓴 「난정서문」에 보면,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따서 만든 것이다.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 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 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으나 오늘날 그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경주 포석정 뿐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경주 삼릉, 삼릉 숲

경북 경주시 배동 산73-1, 관광안내소 054-772-3843

 경주 남산의 서쪽에 동서로 세 왕릉이 나란히 있어 ‘삼릉’이라 불린다. 서쪽으로부터 각각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능으로 전하고 있다. 1971년 4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세 고분의 외형은 모두 원형 봉토분으로 통일신라 시대 왕릉의 규모와 비슷하나 아무런 장식이나 석조물이 없고, 현재 놓여 있는 3개의 상석도 모두 최근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신덕왕릉은 1935년과 1963년 두 차례에 걸친 도굴을 계기로 내부가 조사되었는데 내부구조는 통일신라 시대의 일반적인 굴식 돌방무덤으로서 평면은 사각형에 가깝고, 궁륭형 천장으로 되어 있는 널방은 자연괴석으로 축조되었다. 널방의 남벽 가운데는 널길이 달렸고 널방과 널길 사이는 판석(板石) 2매로 된 널문으로 막았다.

 이 고분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북벽과 동서 양벽의 일부에 연속해 마치 병풍을 돌려세운 것처럼 채색된 벽화가 있는 것이다. 12폭으로 된 채색면의 높이는 1.4m이며, 이를 다시 폭마다 상하로 양분해 모두 24면으로 구분하였다. 24면의 각 면에는 다른 문양이나 그림은 없이 주·황·백·군청·감청 등 5색으로 구별해 순서 없이 배색하였다.

 삼릉 숲은 삼릉 주변으로 아름드리 도래솔이 군무하듯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구불구불한 소나무들 사이로 내리는 햇빛은 가히 환상적이며 봄날 소나무 사이로 피는 진달래도 진풍경 중 하나이다. 숲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선각육존불 등 경주 남산의 문화유적도 함께 볼 수 있다. 탐방로는 편도 1.2km로 약 1시간이 소요된다.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경북 경주시 배동 산 65-1, 054-779-6105

 경주시 배동 선방사곡 입구에 있는 삼국시대의 석조삼존불입상은 1963년 1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조각 솜씨가 뛰어나며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고 있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경주 남산 기슭, 선방사 터 부근에 흩어져 누워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서 세운 것이다.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불상은 극락세계의 아미타여래로,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의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다문 입, 통통한 뺨은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을 나타내고 있다. 목이 표현되지 않은 원통형의 체구에 손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는데,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올리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나타난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보병을 잡고 있는데,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오른쪽 연꽃 위에 선 대세지보살상은 보살 역시 잔잔한 내면의 미소를 묘사하고 있는데, 무겁게 처리된 신체는 굵은 목걸이와 구슬장식으로 발목까지 치장하였다.

 이 삼존불은 웃음 짓는 표정과 뺨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는 작품인데,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보아 제작 시기는 삼국 말기인 7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경주 남산

경북 경주시 배동, 054-771-7142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경주는 우리 조상이 남긴 찬란한 민족문화의 발자취와 삼국통일의 웅장한 기상이 서려 있고 가는 곳마다 명승고적과 전설, 고유민속 등의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한국 관광의 대표적인 곳으로, 한마디로 도시 전체가 벽 없는 박물관이다.

 훌륭한 사적과 문화적, 역사적 유물이 놀라울 만큼 한 고장에 집중적으로 보존돼 있고 국보급 또는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고고품이 쏟아져 나왔으며, 또 찬란했던 불교 문화와 그 예술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경주시 남쪽에 솟은 남산에는 80여 구의 석불과 60여 기의 석탑, 100여 개소의 절터가 남아 있어 노천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이같은 남산을 신라인들은 ‘불국토’라 여겼으며, 남산 자체가 그대로 신라의 절이며 신앙인 셈이다.

 남산은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의 두 봉우리에서 뻗어내린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구성되어 있고, 남북 8km, 동서 4km로 타원형을 이룬다. 남산에 오르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할 정도로 명산이다.

 

 

►남산 탐방(삼릉~용장사지)

 

 남산 탐방은 크게 두 코스가 있다. 서남산의 삼릉에서 시작하여 용장사지를 내려오는 길과 동남산의 통일전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칠불암을 왕복하는 길이 있다. 하루 코스는 거의 서남산의 삼릉에서 용장사지로 내려오는 참배 코스를 택한다. 가장 많은 불상과 불탑을 참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석조여래좌상>

 삼릉에서 500여m쯤 가면 높이 1.6m, 무릎 너비 1.56m의 큰 석불좌상이 큰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이다. 머리 부분이 없고 무릎도 파괴돼 손 모양을 알 수 없다. 화려한 옷 주름과 매듭으로 보아 신라 문화가 가장 번성한 8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북쪽 산등성이를 쳐다보면, 삼릉계곡 마애관세음보살입상이 있다. 광배는 따로 없으나 뒤쪽 바위가 광배 역할을 해주고 있다.

 

 

<선각육존불>

 등산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바위에 선각된 불상으로 선각육존불(지방유형문화재)이 나온다. 바위 면에 철필로 그림을 그린 듯한 느낌이 든다. 동쪽 바위 면에는 석가모니 삼존불, 서쪽 바위 면에는 아미타 삼존불이 그려져 현생과 내생을 드러낸다.

 

 

<마애여래좌상>

 이 바위 위로 200m쯤 더 올라가면 거대한 절벽 바위가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도 선각된 불상인 마애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이다. 몸체는 선각했는데 반해 얼굴은 깎아 내 돋을새김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적이다. 여기서 약간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오면 좁은 등산로에 석조여래좌상(보물)이 눈에 띈다. 화려한 연화대좌 위에 앉은 이 좌상은 1960년대 파손돼 2009년 복원된 것이다.

 

 

<상선암 마애대좌불>

 계속 금오산 정상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거대한 바위에 양각된 높이 6m의 좌상이 나타난다.상선암 마애대좌불(지방유형문화재)로 남산에서는 두 번째로 큰 불상이며 통일신라 후기 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등산로를 타고 좀 더 올라가 상선암 마애대좌불을 내려다보면 마치 불상이 바위를 뚫고 나와 기도를 하는 중생들을 내려다보는 듯하다. 전망이 좋아 서라벌 벌판 전체가 보이는 금송정터와 그 옆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바위를 거쳐 금오산 정상(해발 468m)에 이른다.

 

 

<용장사지 삼층석탑>

  정상에서 잠시 쉰 뒤 하산하는 길에 거대한 석불을 안치했을 것으로 보이는 삼화령 대연화대를 거쳐 용장사지 삼층석탑(보물 186호)에 다다른다. 산 중턱에 우뚝 솟은 삼층석탑은 장관이다. 높이가 4.5m 정도 됨직하다. 하지만 해발 200여m에 있어 산 바위를 기단석으로 하고 있어 석탑의 총 높이는 200여m라고 달리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라는 것이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하산하는 길에 바위 벽면에 얇게 돋을새김한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석불상 앞에는 용장사지 삼륜대좌불(보물)이 있다. 삼륜의 대좌에 머리가 없는 좌불이 얹혀 있는 형상이다. 대좌의 높이는 3.15m, 불상의 높이는 1.41m로 총 높이는 4.56m에 달한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하산길 탑재와 석등대석 지점에서 산꼭대기를 올려다보면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까마득히 보인다. 탑 하층 기단석과 옥개석, 석등대석만 남아 있는 이곳은 밤에 산을 찾는 사람을 위한 일종의 등대였다. 석등 아래서 저 멀리 삼층석탑을 보며 기도를 했을 선인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외에도 남산에는 무수한 불상과 석탑들이 흩어져 있다. 이것들을 좀더 잘 살펴보기 위해서는 하루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1박 2일 일정으로 돌아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통일전

경북 경주시 칠불암길 6 (남산동 920-1), 054-774-8761

 통일전은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통일기원전각으로 신라 삼국통일의 정신과 화랑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이를 이어받아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 삼기 위하여 조성한 전당이다.

 경내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통일의 격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화가 긴 회랑을 따라 전시되고 있다. 이밖에도 넓은 경역 곳곳에 삼국통일기념비와 태종무열왕, 문무왕, 김유신 장군의 사적비 등이 세워져 있다.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는 장소여서 초·중등학생들의 통일이념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남산 칠불암과 전망대로 오르는 등산로도 설치되어 있다. 남산 답사 도중 잠시 호국영령을 참배하고 너른 잔디밭에서 잠시 쉬어가기도 좋다.

 특히, 통일전 동쪽으로 직선으로 자로 잰 듯 바르게 뻗어나간 도로 양옆으로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은행나무 길은 경주의 손꼽히는 가을 명소다. 가을이 되면 일제히 노랗게 단풍꽃을 피운 모습은 장관이다.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들고 있다.

 

 

●헌강왕릉&정강왕릉

경북 경주시 남산동 새남산길 62 (남산동 산 55)

 신라 49대 헌강왕(875∼886)의 능으로 1969년 8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보호구역이 69만 5000m²이고, 886년경에 조성되었다. 국가유산 지정명칭은 신라헌강왕릉으로, 남산 동남쪽 기슭의 정강왕릉(定康王陵)과 인접해 있다.

 봉분 높이 4m, 지름 15.8m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이며, 봉분 아래 장대석으로 4단의 석축을 축조하여, 위가 약간 좁아졌으나 거의 수직에 가까운 형식이다. 전면에 장대석으로 짠 상석이 있을 뿐 다른 표식의물이 없는 점은 동생 정강왕릉의 형식과 같다.

 내부구조는 연도가 석실의 동쪽 벽에 치우쳐 있으며, 석실의 크기는 남북 2.9m, 동서 2.7m이다. 벽면은 비교적 큰 깬돌을 이용하여 상부로 갈수록 안쪽으로 기울게 모서리를 죽이는 방식으로 쌓았다. 석실 입구에 돌문, 문지방, 폐쇄석, 묘도를 갖추고 있으며, 연도의 크기는 길이 142cm, 너비 128∼96cm이다.  석실 내에는 서벽에 접해서 2매의 판석으로 된 시상석이 있다.

 헌강왕은 경문왕의 태자로서 문치를 잘하였으며 이 시기에 처용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왕위에 있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정강왕능은 경주 남산의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끝 부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라 제50대 정강왕( 재위 886887, 김황)이 모셔진 곳이다. 봉분의 높이 4m, 지름 15m로 둥글게 흙을 쌓은 봉토분이다. 봉분 하단에는 둘레돌을 돌렸는데, 최하단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장방형 깬돌(割石)2단으로 쌓았다. 바로 앞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상석이 있고, 그 앞에 다듬은 장방형 화강석으로 축조한 석단이 있다.

 정강왕은 헌강왕의 아우로 8867월에 왕위에 올랐으나, 887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서출지

경주시 남산1길 17 (남산동 974-1), 054-779-8743

 경주 남산동 남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삼국시대 신라 때의 연못으로 사적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출지에는 사금갑 설화와 관련된 전승이 전해온다. 즉,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1 사금갑조에 실려 있는 글에는 신라 21대 소지왕(일명 비처왕)이 즉위 10년(488)에 못속에서 나온 노인의 편지 때문에 죽을 위기를 넘겼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 연못은 인위적으로 꾸며진 원지(苑池)가 아니라 마을 밖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못으로 보이며 곡지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사금갑의 전설이 생겨난 뒤 서출지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자연 그대로의 유수지이기는 하나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여 경주 부근에서는 보기 드문 경승지가 되고 있으며, 조선조로 접어들어서는 1664년(현종 5)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물 위로 누마루가 돌출한 팔작지붕의 건물을 지어 글을 읽는 한편 경관을 즐겼다고 한다.

 현재 이 건물은 폐가가 되기는 했으나 서출지의 서북쪽 구석진 물가에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연못의 경관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으며, 추녀에는 ‘이요당(二樂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을 감싸듯이 우거진 여러 그루의 팽나무 고목과 물가의 배롱나무는 이 못에 원지에 못지않는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보리사

경북 경주시 갯마을길 41-30 (배반동 산67), 054-748-0794

 보리사는 경주시 배반동 남산 미륵골에 있는 사찰로 886년(신라 헌강왕 12)에 창건했으며, 경주시 남산에 있는 여러 사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삼국사기』에 ‘헌강왕과 정강왕의 능이 보리사의 동남쪽에 위치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왕릉의 위치를 정하는 기준이 될 정도로 유서 깊은 사찰이었으나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것을 1911년 보경사 비구니 박덕념이 중창하고, 1932년 비구니 남법명이 중수하였다. 1977년에는 비구니 추묘운이 불사를 시작하여, 1980년 대웅전과 선원·요사채 등을 세우고 비구니 사찰로 만들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산신각·선원·종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보리사석불좌상과 마애불이 유명하다. 그 중 보리사석불좌상은 경주 남산에 있는 불상 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총 높이 4m, 불상 높이 2.35m, 광배2.7m로 앞에는 당초문과 보상문·화불 등의 무늬를 새겼고, 뒷면에는 약사불을 좌상으로 조각하였다. 보물 제136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절 남쪽 산허리로 난 오솔길을 따라 35m쯤 가면 바위에 새긴 마애석불이 있다. 1.5m의 좁은 감실 안에 90cm 크기로 새겨진 이 불상은 조각이 거칠고 아랫부분이 생략되어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신라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경주 서악 북부권 볼거리

양동마을 / 옥산서원 / 정혜사지 13층석탑 / 송화산 (옥녀봉) / 김유신 장군 묘 / 경주 무열왕릉, 태종무열왕릉비 / 황성공원 / 오봉산 / 건천편백나무 숲

 

●양동마을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93 (강동면)

 양동 민속마을은 조선 시대 전통문화와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 최대 규모의 마을로 전통마을이다.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에 의해 형성되었다. 국보, 보물, 민속자료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다.

 2010년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한국의 역사마을'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마을의 규모 및 보존상태, 문화재의 수와 전통성,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때 묻지 않은 향토성 등 볼거리가 많아 1993년 영국의 찰스 황태자도 이곳을 방문한 바 있다.

 양동마을의 자연환경을 살펴보면 마을의 뒷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내려 네 줄기로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골짜기와 능선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포함하여 500여 년의 전통의 향기를 품은 총 160여 호의 고가옥과 초가집들이 우거진 숲과 함께 펼쳐져 있다.

 또한, 옛 명문대가의 영광스러운 자취와 선조들의 삶이 배어있는 200년 이상 된 고가 54호가 보존되어 있어 조선 중기 이후의 다양하고 특색있는 우리나라 전통가옥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전에 마을의 배치와 답사 코스를 파악하고 문화재의 소재를 확인한 후 답사하는 것이 좋다. 단, 마을을 둘러볼 때는 집안에 살고 있는 분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옥산서원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 (옥산리 7), 054-762-6567

 옥산서원은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을 제향하고 후진을 교육하기 위해 1572년(선조 5)에 설립되었으며, 그 이듬해에 임금이 서원이름을 내렸다.

 영남학파의 선구가 되는 이언적을 모신 만큼 옥산서원은 조선 후기까지 영남 사림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훼철되지 않았다. 일제 말기에 화재로 옛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곧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서원은 전면에 강학처를 두고 후면에 사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 건축구조로 되어있는데, 중심축을 따라서 문루·강당·사당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모습을 보여 준다.

 서향의 정문인 역락문을 들어서면 무변루라는 누각이 나타나고, 이어서 계단을 오르면 마당이 펼쳐진다. 이는 누마루를 서원 건축에 도입한 최초의 사례이다. 정면에는 구인당이란 당호의 강당이 있고, 좌우에는 원생들의 기숙사격인 민구재, 암수재의 동·서재실이 있다. 강당을 옆으로 돌아서서 뒤로 가면 이언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체인묘라는 사당이 나타나는데, 사당의 주변에는 장판각·전사청·신도비 등이 있다.

 옥산서원은 현존하는 서원 문고 가운데 많은 책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보관된 책으로는 국보로 지정된 『삼국사기』가 대표적이며, 1513년에 간행되어 현재까지 발견된 활자본으로는 『정덕계유사마방목』 외에 『해동명적』, 『이언적수필고본일괄』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한호, 김정희 등 당대 명필들이 쓴 편액을 보관하고 있기도 하다. 2019년 ‘한국의 서원’ 9곳의 하나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옥산서원에서 북쪽으로 700m 떨어진 곳에 회재의 별장이자 서재였던 독락당(獨樂堂)이 있다.

 

 

●정혜사지 13층석탑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655, 054-779-6703

 경주 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 위에 1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인데, 통일신라 시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1층 탑 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 장식처럼 보인다. 큰 규모로 만들어진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사각형의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안에 다시 보조 기둥을 붙여 세워 문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문을 마련해 놓은 것은 열린 공간을 추구하고자 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조각이 아닌 별개의 다른 돌로 만들어 놓았고, 직선을 그리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의 받침돌인 노반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 즈음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13층이라는 보기 드문 층수에, 기단부 역시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층을 크게 부각시킨 후 2층부터 급격히 줄여나간 양식으로 인해 탑 전체에 안정감이 느껴진다

 

 

●송화산 (옥녀봉)

경북 경주시 충효동 1-3

 송화산 일대는 경주국립공원 ‘화랑지구’로, 김유신장군묘부터 숭무전, 화랑마을, 흥무공원 등 골짜기마다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송화산 등산은 흥무공원에서 출발하는 코스, 동국대학교 경주병원 근처에서 시작하는 코스, 여래사에서 시작하는 코스 등 여러 갈래의 등반로가 있는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코스는 흥무공원부터 시작해 옥녀봉(270.6m)를 찍고 김유신장군묘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공원에서 출발해 오솔길을 따라가며 송화산 쉼터를 지나 옥녀봉까지 오른다. 편도 2km 정도로 길지 않은 구간인 데다 옥녀봉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500m 구간을 제외하고는 평지 못잖은 수준으로 경사도 완만하다.

 산을 오르다 보면 봄꽃들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송화산 쉼터에서 옥녀봉 오르는 나무계단 전까지 산벚나무가 등산로를 장식한다. 4월 중순 이후에는 산철쭉도 등산길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하산하며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의 묘역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

 

 

●김유신 장군 묘

경북 경주시 충효2길 44-7 (충효동 산 7-10), 054-749-6713

 경주 고속버스터미널 옆 서천교를 넘어 오른쪽으로 김유신 장군 묘 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은 김유신 묘를 위해 특별히 낸 흥무로로, 봄이면 길가에 노란 개나리와 벚꽃이 만발하여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높다. 묘 자리는 송화산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전망이 좋은 울창한 소나무 숲속이며, 어느 왕릉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묘는 30m에 달하는 큰 원형분인데, 둘레에는 24장의 호석과 돌난간을 둘렀고 호석과 돌난간 사이의 바닥에는 돌을 깔았다. 호석은 12지 신상이 새겨져 있는데, 대개의 경우 능을 지키는 수호신으로는 갑옷을 입은 조각들이 새겨져 있으나, 이 묘의 12지 신상은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었다. 경주왕릉에는 몇 군데 지신상조각이 있으나 조각의 우수함이나 상의 거대함으로는 김유신 묘를 따를 수 없다.

 몸체는 정면을 보고 서 있으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주시하는 모습이 이색적이며 무장을 하지 않아 매우 온화해 보인다.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묘역에는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금산재의 비각이 있다.

 

 

●경주 무열왕릉, 태종무열왕릉비

경북 경주시 능남길 10-4 (서악동 842), 054-750-8500

 경주 무열왕릉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 (재위 654∼661, 김춘추)의 능이다. 경주 북서쪽에 있는 선도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있다. 김춘추는 신라 중대의 첫 진골 출신 왕으로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병합하고 통일 대업의 기반을 닦았으나 통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능의 외형은 원형봉토분으로 밑 둘레 114m, 밑지름 36.3m, 높이 8.7m로 비교적 큰 편이며 능 아래쪽은 자연석을 쌓고 드문드문 큰 돌로 받쳤으나 지금은 흙 속에 묻혀 있다. 능 앞에는혼유석이 있다.

 경내 비각에는 국보로 지정된 경주 태종무열왕릉비가 있다. 이 비석의 이수 전면 중앙부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 새겨져 있어, 이 무덤이 무열왕의 능임을 알게 되었다. 귀부의 네 모퉁이에는 초석이 남아 있어 당초에는 비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황성공원

경북 경주시 용담로 79-41 (황성동 산1-1), 054-779-8772

 경주시 황성동에 있는 황성공원은 신라 시대 화랑들의 훈련장이었다. 공원 안에는 경주실내체육관, 시립도서관, 공설운동장, 충혼탑, 박목월 시비, 국궁 궁도장 호림정 등이 있다. 호림정 뒤로 솟아 있는 동산 위에는 높이 16m의 김유신 장군 동상이 서 있다. 호림정 주위에는 수령 수백 년에 이르는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이팝나무·회나무·떡갈나무·살구나무·향나무·소나무·상수리나무가 우거져 있다.

 2년에 한 번씩 짝수 해의 10월 초순에 이곳에서 신라문화제가 열리며, 공설운동장에서는 매년동아마라톤대회가 열린다. 곳곳에 체력단련시설이 있고,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돌 수 있다.

 시립도서관은 1953년 7월 경주읍립도서관으로 개관하여 1976년 현재의 중앙분관을 새로 짓고 1989년 9월 공원 안에 본관을 개관하였다. 장서는 9만 5천 권에 이르며 이동도서관과 신라자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주변에 백률사·굴불사지·탈해왕릉·사면석불상·분황사 등의 관광지가 있다.

 

 

●오봉산

경북 경주시 서면 천촌리

 오봉산(688m)은 경주시 서면, 건천읍에 걸쳐져 있는 산이다. 여근곡으로 산을 타고 정상에 올라 부산성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천년고도 경주의 역사와 전설을 느낄 수 있으며 산세와 조망도 뛰어나다.

 등산은 건천읍 신평 2리를 기점으로 여근곡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로 들어가 유학사로 간다. 유학사 앞마당에서는 여근곡에서 솟아나는 샘물인 옥문지의 약수를 맛볼 수 있다. 마당을 건너 산속 오솔길에 들어서면 636년 선덕여왕이 매복한 백제군을 섬멸시켰다는 여근곡이 나온다.

 울퉁불퉁한 고갯길을 걸어 능선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바위전망대가 있다. 정면으로는 화랑을 느낄 수 있는 부산성의 넓은 평원이, 오른쪽으로는 정상이 보인다. 능선길을 오르다 오른쪽으로 오르막 샛길로 올라서면 정상이다.

 정상에는 1300여 년 전에 의상이 창건했다는 작은 사찰 주사암이 있다. 주사암에서 정상 바로 밑 주차장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부산성으로 가는 길이고, 숲속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임도에 내려서면 하산길이다.

 여기서 하산하면 종주에 3시간 30분 걸리고, 부산성을 거치면 6시간 걸린다. 부산성을 거치려면 돌담 성벽과 밭둑 사이를 지나 산길을 걸으면 부산성 정상에 닿고 여기서 숲을 지나 임도로 내려서 송선 2리로 하산한다.

 

 

●건천편백나무 숲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산166-1

 경주 건천으로 가면 피톤치드를 듬뿍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숲이 있다. 송선리 단석산 자락에 자리 잡은 건천편백나무숲이다. 수령 50년 가량의 편백나무 1만여 본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숲속의 보약’으로 불리는 곳이다.

 편백나무 숲은 면역력 증강과 혈액순환, 스트레스 예방, 아토피 억제, 집중력 향상 등 학습능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피톤치트’가 월등히 많다.

 편백나무 사이에 설치된, 데크로 이루어진 산책로는 500m가량이다. 곳곳에 정자도 마련되어 있어 잠시 머무르기에도 좋다. 주말에는 일반 관광객은 물론이고 피톤치드 산림욕을 즐기는 100~200여 명의 동호인들로 붐비고 있어 해당 읍사무소에서 2021년 주차장 신설 예산을 편성할 정도다.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