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 가볼 만한 곳 총 정리
대가야와 가야금의 찬란한 문화 유적
글·사진 남상학
대가야의 도읍지이자 가야금 문화를 꽃피운 고령은 선사시대 암각화가 뚜렷이 남아 있고 520년간 찬란했던 대가야국의 도읍지였다는 것만으로도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 700여 개가 넘는 무덤들로 가득한 지산동 고분군, 대가야박물관, 대가야왕릉전시관, 대가야역사테마파크를 둘러보고, 우륵기념탑과 우륵박물관으로 가서 가야금을 창제한 악성 우륵 선생의 찬란한 업적을 보노라면 저절로 가슴이 부듯해진다. 그리고 곳곳에 흩어진 선사시대의 암각화를 찾아가 보자.
고령 지산동 고분군 / 대가야박물관 / 대가야왕릉전시관 /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 우륵기념탑 / 우륵박물관 / 고령상무사기념관 / 대가야수목원 / 고령 장기리 암각화 / 고령고아동벽화고분 / 미숭산 / 미숭산자연휴양림 / 미숭산 / 반룡사 / 고령 안화리 암각화 / 만대산 / 고령 개실마을 / 개경포공원
●고령 지산동 고분군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산 23-1, 054-950-6323
대가야읍을 병풍처럼 감싸는 산 위에는 대가야 시대의 주산성이 있다. 그 산성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 위에 대가야가 성장하기 시작한 서기 400년경부터 멸망한 562년 사이에 만들어진 대가야 왕들의 무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주능선상에는 지름이 20m가 넘는 대형 고분이 있고, 중형고분은 고령 읍내 쪽으로, 산 아래로는 소형 고분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 남쪽의 제일 큰 무덤이 금림왕릉이라 전하고 있으며, 이외의 대형 고분들도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왕릉인 지산동44호와 45호 무덤을 비롯하여, 주변에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라고 생각되는 크고 작은 704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은 대가야의 독특한 토기와 철기, 말갖춤을 비롯하여 왕이 쓰던 금동관과 금귀걸이 등 화려한 장신구가 많이 출토된 대가야 최대의 고분군이다.
● 대가야유적지, 대가야박물관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460, 054-950-7103
고령 대가야유적지는 520년 동안(A.D.42-562) 번영하였던 대가야국의 도읍 고령에 있는 유적지들을 말한다. 최근 대가야 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문화답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의 문화와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 고대문화의 흔적을 살펴볼 만한 곳이다. 국내 답사가들 외에 일본인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 유적지에는 200여 기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지산동 고분군과 대가야 시대의 대표적인 산성인 주산성, 대가야 시대의 유일한 벽화인 고아동벽화고분, 대가야생활촌, 대가야를 테마별로 전시한 대가야테마관광지 등 다양한 가야 시대의 문화를 접할 수 있다.
►대가야박물관
고령군 대가야읍 대가야로 1203 (지산리 460), 054-950-7103
2005년 4월 문을 연 대가야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최대 규모의 대가야 시대 순장무덤인 지산리 44호 무덤을 복원 재현한 '대가야왕릉전시관', 대가야를 중심으로 고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전시한 '대가야역사관', 악성 우륵과 가야금을 체계적으로 재조명한 '우륵박물관'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가야박물관을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대가야의 우수한 문화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대가야사 전문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가야박물관은 1층 기획전시실, 도서열람실, 2층 상설전시실, 기념촬영시설, 야외전시장 (고상창고, 수혈주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설전시실은 대가야의 역사를 중심으로 고령 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구석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역사ㆍ문화에 대한 설명과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전시실의 내용은 대가야의 여명, 대가야의 성립, 대가야의 성장과 발전, 대가야이후의 고령의 테마로 관람할 수 있다. 유물로는 장기리 암각화 등 선사시대 유적ㆍ유물을 비롯하여 대가야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관금동관 등의 장신구와 토기ㆍ무기ㆍ마구 등 2,0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대가야의 여명, 대가야의 성립, 대가야의 성장과 발전, 대가야이후의 고령의 테마로 관람할 수 있다. 대가야는 하늘신 이비가와 가야산신 정견모주 사이에서 태어난 두 형제 가운데 형은 대가야 시조인 이진아시왕이 되고 동생은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되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연간 1, 2회 정도 특정 주제를 정하여 기획전을 개최한다.
그 외, 야외전시장에는 석탑, 석등, 불상 등 불교 관련 문화재와 장대석, 맷돌, 절구 등 여러 가지 석조문화재와 대가야 시대 주거를 재현한 움집과 다락창고, 철 생산을 보여주는 제철로 모형도 전시되어 있다.
●대가야왕릉전시관
고령군 대가야읍 대가야로 1203(지산리460번지)054-950-7103
대가야왕릉전시관은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 무덤인 지산동고분군 제44호분의 내부를 원래의 모습대로 재현한 것이다. 관람객들이 실물 크기로 만든 모형 44호분 속에 직접 들어가 무덤의 구조와 축조방식, 주인공과 순장자들의 매장모습, 껴묻거리의 종류와 성격 등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왕릉전시관은 일반인들도 보다 쉽고 생생하게 대가야인의 장례문화를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건립하였으며, 주변의 지산동 고분군과 함께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전시관이다.
발굴 당시의 돌방구조를 그대로 재현했다. 주인공이 묻힌 으뜸돌방과 그에 딸린 창고 성격의 껴묻거리용 딸린돌방 두 기를 중심으로 하여, 부챗살 모양으로 32기의 순장 돌덧널을 배치한 내부구조를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그리고 각 무덤 구덩이에는 발굴보고서를 토대로 하여 출토 유물과 남아 있는 인골 등을 복제하여 넣어 두었다.
왕릉전시관 옆에 있는 어린이체험학습관에서는 대가야이야기대가야캐릭터 만들기, 탁본 및 인쇄, 토기 기와자기 만져보기, 전통민속품 체험을 할 수 있다. 그 외 대가야 기마상과 함께 사진촬영 코너가 있다.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고령군 대가야읍 대가야로 1216(대가야읍 지산리 471-1), 054-950-7005
대가야의 도읍지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토기와 철기, 가야금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대가야의 역사를 테마로 조성된 관광지이다. 고대문화를 첨단시설로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4D영상관, 유물 및 신비한 나라 대가야 체험관, 대가야 탐방 숲길 등의 볼거리가 있다.
가야는 기원 전후부터 대가야가 신라에 흡수된 562년까지 존재했던 연맹체로서 우수한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대외 교류를 추진하였으며, 가야금과 같은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최근 가야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3국 시대'가 아닌 가야를 포함한 '4국 시대' 사관에 대한 연구조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고령군은 가야 문화권에 속해 있었으며, 더 나아가 대가야의 중심 도읍지로서 가야 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대가야의 도읍지로서 가야 문화의 중심 지주적 역할을 하였고, 나아가 가야문화제 행사교류 및 학술적, 사료적 가치 가야문화권의 재정비, 가야문화의 복원 및 전파를 하고자 대가야의 중심 도읍 고령군에 '대가야 역사 테마 관광지'를 설립하게 되었다.
●우륵기념탑
고령군 대가야읍 주산순환길 209-18 (연조리 15), 054-654-2201
고령군에 소재한 정정골은 우륵이 가야금을 울렸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곳이다. 우륵기념탑은 고령고등학교 뒤편 정정골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우륵은 우리나라 3대 악성 (우륵, 박연, 왕산악)의 한 사람으로 가야 말기 가실왕의 명을 받아 고령읍 쾌빈리 (정정골)에서 1년 12달을 본 따 12현금의 가야금을 창제하였다.
평생 185곡을 만든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한 곡도 없으며, 다만 대가야국 『정정골』에서 12곡을 작곡한 기록만 남아 있다.
고령군은 악성 우륵의 위업을 기리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등 군민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정정골이 한눈에 보이는 동산 위에 기념탑과 영정각을 건립하였다. 1977년에 건립한 우륵기념탑의 높이는 16m이다. 매년 가을 대가야 축제 때 우륵 선생의 위업을 기리는 추모 행사를 올리고 있다.
●우륵박물관
고령군 대가야읍 가야금길 98 (쾌빈리 162), 054-950-6789
우륵박물관은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에 있는 우륵과 가야금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다. 대지 면적 9,098㎡에 건축 면적은 965㎡의 2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박물관의 외관은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는 모습을 형상화하여 지어졌다
1층은 전시실·사무실·기계실·화장실로, 2층은 강당·악기고·화장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대시설로 가야금 공방, 옥외 화장실, 주차장 등을 갖추고 있다. 전시실은 ‘우륵을 찾아서’, ‘고대 가야금의 세계’, ‘가야의 혼을 지킨 우륵’, ‘한국의 전통 악기’, ‘가야금의 변천사’ 등 다섯 가지 주제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신라 시대의 토우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과 가야금 복제 유물도 볼 수 있다. 전통 악기는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등 모두 18점이 있다. 또한 가야금과 우륵의 생애를 밝혀주는 영상물 두 편이 있으며, 가야금과 양금을 연주해 볼 수 있는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다.
박물관 건물 밖의 단독건물로 지어진 우륵국악기연구원으로 불리는 가야금 공방과 가야금 줄 제작 체험장이 있으며, 5년간의 건조과정을 거쳐 가야금의 울림통으로 쓰이는 오동나무 건조장이 있다. 야외에는 가야금을 만들던 곳이라는 뜻의 금장지 비석과 우륵 시비가 있다.
●고령상무사기념관
고령군 대가야읍 벽화길 102,054-950-6762
18세기 후반 전국적 상업망이 형성되면서 보부상은 조선 시대의 또 다른 상인인 객주, 여각과 함께 향시에서 이뤄지는 상거래의 주역으로 발전했다. 고령상무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 고령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조선 보부상단을 일컬으며, 1899년 상무사가 설립, 1866년 (고종 3년, 병인) 일제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부상’ 또는 ‘보상’이라는 명칭 대신 ‘좌사’, ‘우사’라고 쓰게 된 것은 조선조 보부상단이 한때 부상단은 좌사, 보상단은 우사로 불려진 것에서 비롯되었다. 부상은 부피가 크고, 값이 싼 물품을 지게에 지고 다니며 생선, 소금, 목기, 토기, 무쇠, 미역, 무쇠 그릇, 담배, 누룩, 대나무 제품, 삿자리, 꿀 등을 팔았다.
한편, 보상은 부피가 작고 가벼우며 값진 배, 명주, 비단, 모시 제품, 면화, 금, 은, 구리, 담비, 수달피, 가죽 등을 팔아 이를 구분해 취급했다. 고령 좌사계는 1886년 상단으로 정비됐으며, 우사계는 이보다 30여 년 늦은 1899년 정부가 상무사를 설립하던 해에 결성되었다.
상무사기념관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적, 나팔, 물금장, 인장 등 부보상 유품 등 17점을 전시하고 있으며, 이는 당시의 사회 발달사 등의 연구에 중요한 민속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고령상무사는 오늘날에도 임원 구성은 물론 정기총회, 대제 등을 옛 방식대로 진행해 전통 상인단체 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가야수목원
고령군 대가야읍 성산로 46 일대, 054-950-6576
지난 세기 식민지 수탈과 전쟁으로 황폐하였던 산림을 푸른 숲으로 가꾼 산림녹화사업의 업적을 기념하고, 숲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과 환경의 중요성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배울 수 있는 수목원이다.
삼천리 금수강산 옛 모습 되찾고 푸른 산 맑은 물 다시 보고파온 정열을 불태웠던 경상북도 산림공무원 정무경, 최인화, 김흥갑이 1946년 11월 19일 작업 트럭을 타고 고령 덕곡지구 사방사업 현장 지도 출장 중 이곳 금산재에 이르러 차량 전복으로 애석하게 유명을 달리하였다.
이들의 나라 사랑하던 마음을 후세에 전하여 향토 발전과 조국 번영을 위한 정신적 지주로 삼고자 이곳 금산재에 산림녹화비를 세워 영령들의 참뜻을 기리며,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주요 시설로는 산림문화전시실(숲의 역할과 혜택, 산림자원의 조성과정, 낙동강 유역 산림의 녹화과정을 그래픽과 영상물로 전시연출), 수석전시실(전국의 수석인이 기증한 수석전시), 향기체험실 (나무,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원료를 이용한 향기 제품 제작 체험), 녹화기념숲(산림녹화에 심겨진 주요 조림 수종 식재), 등산로 (기념숲과 금산재를 연결하는 산림등산로) 등이 있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
고령군 대가야읍 아래알터길 15-5 (장기리 5283), 054-654-2201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높이 3m, 너비 5.5m의 직사각형 암벽에 새긴 그림으로 1971년 알 터(卵峴)에서 발견되었다. 1976년 8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신앙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표현한 그림으로, 주로 풍요로운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을 바위나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을 말한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동심원이 3개, 십자형이 1개, 가면 모습의 목책형 2∼3개가 대체로 좌·중·우의 3군으로 나누어 추상 양식으로 음각되어 있다. 이 중 목책형 방형 무늬는 가면 같기도 하나 목책에 둘러싸인 특별 성역을 표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으로 미루어 이곳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원시 신앙 유적지로 추정된다.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 면과 이어지는 언덕 위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채집되었다. 토기는 원형 덧띠토기 · 삼각형 덧띠토기 · 굽다리 토기 · 쇠뿔모양 손잡이 등으로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며, 연대는 대체로 서기 전 5∼4세기에서 서기전 1세기의 이른 시점에 해당한다.
●고령고아동벽화고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 산 13-1, 054-956-3334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동에 있는 가야시대 터널식 벽화고분으로 1968년 12월 1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남북길이 20m, 동서 길이 25m, 높이 3.1m이다. 1963년 당시 도굴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금동마안금구(金銅馬鞍金具)가 이 고분 출토라는 설도 있다.
널방 바닥 주위와 중앙에 남북으로 도랑을 파서 배수처리하였다. 널(棺) 2개를 놓은 널받침(棺臺)이 남북으로 나란히 있으며, 동쪽의 것은 작고 추가로 축조한 것으로 뒤에 죽은 부인의 것 같으며, 서쪽은 남자의 것으로 짐작된다. 묘실문은 남쪽에 있다. 원래 네면 모두 벽화가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천장에 그린 연꽃만 남았다.
천장 벽면에 회를 바르고, 그 위에 백색 ·적색 · 녹색 ·갈색 등으로 그린 연꽃은 팔판의 겹꽃이다. 꽃잎은 적색, 중심 꽃술은 녹색, 꽃술 주위는 백색, 꽃잎 내부는 갈색이다. 이 고분은 고구려 벽화고분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백제 벽화고분과도 통한다. 가야 시대 말기의 고분으로 가야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미숭산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 산45-17번지, 054-950-7407
미숭산(757m)은 대가야읍과 합천군 야로면의 경계 지점에 있는 고령군의 최고봉으로 옛날의 상원산이다. 이 산정의 꼭대기에는 4정 6반의 고위 평탄 면으로 되어 있으며, 주위는 험준한 급경사이고, 가장자리는 조선 초기부터 석성에 쌓여(둘레 397보) 있었으며, 샘, 못, 군창 등이 있었다.
고려말 정몽주의 문인인 안동 장군 이미숭(李美崇)이 이성계와 접전하다 순절한 산이다. 이미숭 장군이 이 산을 근거지 삼아 성을 쌓고 군사를 조련해 가며 이성계에 대항했고, 그 절개를 기려 산의 이름이 이렇게 바뀌게 되었다 한다.
미숭산은 고려말 이미숭 장군이 군사를 모아 성을 쌓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 대항하며 고려를 회복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한 곳으로 전해온다.
정상 주변은 미숭산성의 성문과 성터의 잔해가 있고 샘물이 성문터 옆에 있다. 이 미숭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조선조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한다.
정상에 밀면 흔들리는 까닥바위가 있다. 동남쪽 고령군 쌍림면 쪽에 고찰 반룡사가 있으며 산 남쪽 고원지대인 상대마을에 있는 수련원 뒤로 미숭산 정상까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미숭산 북쪽의 문수봉 일대는 고사리가 많다.
●미숭산자연휴양림
고령군 대가야읍 낫질로 672-99 (신리 산 45-17), 054-950-7407
고령군에 자리한 미숭산 자연휴양림은 국민들의 산림휴양에 대한 수요에 부응하기 해 2009년 산림청으로부터 자연휴양림으로 지정 고시 받아 2012년 9월에 준공하였다.
숲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생태숲과 자작나무 산책로, 등산로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방문객의 편의를 위한 숙박시설과 숲속 화장실, 소운동장, 편의 시설과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휴양림 입구 우측에 위치한 등산로는 길이 3㎞의 자작나무 숲길로 왕복 2시간 정도 소요된다.
특히, 미숭산 자연휴양림은 대가야의 고도(古都) 고령에 자리 잡고 있어서 휴양림 인근에 대가야 시대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관광지가 산재해 있어 그와 연계하여 둘러보기에 좋다.
●대가야고령생태숲
고령군 대가야읍 낫질로 672-99, 054-950-7403
대가야읍 신리 미숭산 일원 약 50ha의 넓은 산림에 미숭산과 미숭산 자연휴양림 주변 자생식물과 향토 수종을 식재·복원하여 자연환경훼손의 위협으로부터 산림생물자원을 보호하고 숲교육체험원, 소리향기원, 자생식물원, 숲테라피원 등 다양한 숲속의 주제를 체험·탐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가야 고령생태숲은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 미숭산 북동 측 일원으로 대부분 삼림지역이다. 산지 중부까지는 상수리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졸참나무 등이 혼생하고, 산지 능선 부왕 정상부를 따라 신갈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계곡을 따라 산지 상부까지 비목나무가 무성하다.
대가야 고령생태숲에서 확인된 관속식물은 총 76과 159속 186종으로 산지 중턱의 그늘진 곳에서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식물 2급이면서 산림청 지정 희귀 및 멸종 위기식물인 미색 바꽃(세뿔투구꽃)이 관찰되었다. 이외에도 3등급의 낭아초, 노각나무, 단풍나무(식재), 물박달나무 등 4종류와 Ⅰ등급의 대팻집나무, 물오리나무, 굴참나무, 거지덩굴, 홀아비꽃대 등 5종류로 확인되었다.
●반룡사
고령군 쌍림면 반룡사길 87 (용리 187), 054-954-1498
고령 반룡사는 802년(신라 애장왕 3) 창건되었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1159∼1210)이 중창하였고, 공민왕 때(1351∼1374) 혜근이 중건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원나라 세조가 이 절에 내린 방문이 실려 있어 주목된다. 이 방문에는 일본 정벌을 위해 경상도에 온 원의 군사들 중에서 절에 침범하거나 소란을 피우는 자는 처벌한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사명대사 유정이 중건하였다. 그 뒤 다시 불이 나서 법당과 요사가 모두 탔으며, 1764년(영조 40) 현감 윤심협이 대웅전과 요사·만세루 등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1930년 중수하고, 1998년 심검당을 세워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광전과 칠성각·요사채가 있다. 보광전 내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에 보살상을 협시불로 한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유물로는 반룡사다층석탑이 유명하다. 보통 석가여래사리탑으로 부르는 이 탑은 1979년 1월 2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2.4m로 3단의 기단 위에 1층 옥신을 올리고 그 위에 점판암으로 만든 옥개석을 여러 층 올렸다. 이런 탑의 유형을 수마노탑이라 하는데,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유행한 석탑 양식이다.
반룡사 동종은 1995년 1월 1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88호로 지정된 유물이다. 1753년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 50cm, 무게는 100근이다. 상부에 용뉴가 있고, 상대에는 범어가 6자 새겨져 있으며, 종신 중앙에 3줄의 띠가 둘러져 있다. 유곽과 당좌는 생략되어 18세기 중엽의 동종 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고령 안화리 암각화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 산 1
고령안화리암각화는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에 있는 바위 그림이다. 가로 115㎝, 세로 90㎝의 바위 면에 쪼기 수법으로 3개의 그림을 새겨 놓았다. 선사인들이 가로 115㎝, 세로 90㎝의 퇴적 변성암면에 쪼기 수법으로 새긴 3개의 바위그림이다. 1993년 11월 경상북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기본형은 위쪽에 U자형 반원을 새기고 좌우에 활모양의 선을 대칭으로 새겼으며, 오른쪽 그림에는 성혈(性穴)을 대칭으로 새겼다. 위쪽 절벽에도 같은 종류의 바위 그림이 두세 개 더 있다. 안화리 암각화는 고령 양전동 암각화 및 영일 칠포리 암각화와 수법이 유사한 점으로 보아 선사시대 이 지방의 해안인과 내륙인의 의식구조가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살던 선사인들이 신앙과 관련된 제의나 풍요다산을 기원하던 장소였기 때문에 그와 관계되는 내용을 암벽에 새긴 것으로 본다. 이 암각화는 선사인의 의식과 표현기법, 신앙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만대산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 054-950-7851
만대산은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와 경남 합천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만대산 북쪽 자락이자 만대산 등산로 입구에는 고령신씨 시조이자 신숙주의 선조인 신성용의 시조 비와 묘가 있다. 고령신씨가 이 산에 시조 묘를 쓰면서 만대(萬代)에 영화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만대산의 명칭이 유래되었다.
만대산(688.7m)은 비교적 높은 산지이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경상계 낙동통 낙동층이다. 이 지층은 경상계의 최하부 지층으로 주로 암회색의 이암·사암·셰일과 갈색의 역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대산 동쪽으로는 노태산(498m)과 시리봉[408m]이 있고, 이들 산지와 능선이 연결되어 있다. 만대산 북쪽으로는 녹대산(506m)과 연결되어 있다. 만대산의 북쪽 사면은 묘산천과 합류하는 작은 개천들의 발원지이다. 묘산천은 부례마을에서 가야천과 합류하여 안림천을 형성하 하천이다.
만대산은 주변의 산지들과 연계하여 등산로가 있고, 만대산에서 700m 정도 북서쪽에는 해발고도 530m 정도의 매화재가 있다. 이 매화재는 고령군 쌍림면과 합천군 합천읍 용계리를 이어주는 교통로 역할을 하였으나 현재는 등산로로만 이용되고 있다.
산주리 마을에서 564.3m 안부에 이르는 임도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산벚꽃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지만, 임도를 버리고 산 사면을 타고 오르는 길에는 철쭉이 아름답다. 만대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은 넓게 정비되고, 곳곳에 벤치도 눈에 뜨인다. 걷기에 편한 길이다. 만대산 7부 능선 철쭉 군락지는 4월 10~20일경 절정을 이룬다.
●고령 개실마을
고령군 쌍림면 개실1길 29 (합가리 243), 054-956-4022
개실마을은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만든 집성촌이다. 개실마을은 마을 입구에서부터 조선 시대 양반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고택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은 마을의 80% 가량이 전통 한옥을 유지하고 있어 자연경관과 기와선이 어울려 농촌의 정치가 물씬 풍기는 전통마을이다.
마을 내에는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종택(민속자료 62호), 도연재(문화재 자료 제111호) 등이 있으며, 인근 대가야박물관에 김종직 선생 기념실을 두고 있어 유형문화재 제209호인 점필재 문적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개경포공원
고령군 개진면 개경포로 681, 054-950-7006
개경포기념공원은 낙동강을 끼고 있는 고령군 개경포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기 위해 2001년 조성되었다. 공원에는 깔끔하게 손질된 넓은 잔디에 개경포의 유래를 적은 유래비와 표석, 팔각정·벤치 등의 휴식 공간, 음수대 등의 시설이 갖추고 있다.
개경포는 조선 시대까지 경상도 내륙지역의 곡식과 소금을 운송하던 커다란 포구였다. 즉, 경상도 삶을 이루던 곳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배를 타고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워 낙강칠현이라 불리던 송암 김면, 옥산 이기춘, 청휘당 이승 등이 뱃놀이를 즐기며 시를 읊은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으로 활약하던 송암 김면이 궁중보물을 탈취해 운반하던 왜적 1,600여 명을 수장시키고 보물을 되찾은 현장이기도 하다.
개포는 옛날 ‘개산포’라 불리웠다. 팔만대장경이 강화도로부터 운반될 때 서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온 배가 도착한 곳이 개산포였다. 영남 일대의 승려들이 이곳에 도착한 경판을 머리에 이고 열뫼재, 대가야읍, 낫질신동재를 거쳐 해인사까지 운반했다 하여, 이후 경전이 도착한 곳이라 하여 개경포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개포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예전의 역사를 의의를 되살리기 위하여 개경포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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