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가볼 만한 곳 총 정리
조문국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의성 나들이
글·사진 남상학
우리나라 최초의 사화산(死火山)인 의성의 금성산은 그 독특한 모습만큼 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간직한 산이다. 최치원문학관을 품고 있는 천년고찰 고운사는 가볍게 걷기 좋으며, 제오리에는 중생대 백악기 시대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색 코스로 좋다.
또, 의성은 조문국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조문국사적지, 천연기념물과 문화재가 즐비한 사촌마을, 산수유마을, 여름에도 얼음이 얼 만큼 찬 기운을 뿜어내는 빙계계곡 등 다양한 관광자원이 있다.
◆의성군 동부지역 볼거리
(의성향교, 고운사, 최치원문학관, 사촌마을, 사촌리 가로숲, 이계당, 금봉자연휴양림, 의성 산수유꽃피는 마을, 빙계계곡, 조문국사작지(조문국박물관, 의성 경덕왕릉),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 의성 탑리 오층석탑, 금성산, 의성 산운마을, 의성 산운생태공원)
●의성향교
의성읍 도동리, 054-832-1237
1982년 2월 24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지방 주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1394년(태조 3) 창건된 건물로, 1545년(인종 1) 중수하였다. 대성전과 명륜당은 1745년(영조 21)에 다시 중수하였고, 광풍루는 1762년(영조 38)과 1910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정문 겸 누대인 광풍루를 들어서면 정면에 명륜당이 있고, 그 사이로 동쪽에 동재(東齋)가 있다. 대성전이 명륜당 뒤쪽에 있지 않고, 앞쪽 왼편으로 산허리 쪽에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이익공 단층 맞배지붕이며, 동무·서무가 없이 한 동으로 건립되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초익공 단층 팔작지붕이고, 앞쪽의 동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이다.
광풍루는 이층에 계자난간을 두른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이익공 중층 맞배지붕이다. 대성전에는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 등 5성과 22현을 봉안하였으며, 매년 8월이면 이들을 모시는 제사를 지낸다.
●고운사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415 (구계리 116), 054-833-2324
68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써 임진왜란 때 승군의 기지로도 쓰였다. 일주문에 다다르기까지 조성된 소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솔향으로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고운사에서는 템플스테이가 가능한데, 선 체험은 물론 평소 접하기 힘든 사찰음식을 직접 만드는 특별한 체험도 가능하다.
이 사찰은 원래 고운사(高雲寺)였으나 신라 말 불교와 유교·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가운루,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최치원의 호인 ‘고운(孤雲)’을 빌려 고운사(孤雲寺)라 칭하게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 사상의 시조로 받드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약사전(보물 제246호)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28호)이 남아 있다.
고운사는 최치원의 유적을 토대로 최치원 관련 업적 및 자료를 전시하는 최치원문학관을 개관하였으며, 그의 생애와 사상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치원문학관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241 (구계리 180-1), 054-834-8200
최치원 문학관은 신라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다.최치원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전국을 유람할 때 이곳 고운사에 머물며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어 고운사 중창에 힘썼다. 의성군에서 선생의 발자취가 서린 고운사 권역에 문학관을 건립해 개관하였다.
전시관과 고운사 문화공원,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전시관에는 최치원 선생의 삶을 담은 영상물과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 관람뿐만 아니라 세미나실과 공연장이 있다.
등운산의 수려한 경치로 문학관 특유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며, 인근 고운사와 고운사까지 가는 천년 숲길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1년 비대면 안심 관광지 25선 중 한 곳이다.
●사촌마을
의성군 점곡면 만취당길 69 (사촌리 23)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 있는 사촌전통마을은 의성의 대표적인 유교문화유적지이다. 마을 뒤에는 문필봉, 동쪽으로는 좌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주변으로 대곡천이 흐른다. 서쪽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무성한 사촌리 가로 숲은 오늘날 천연기념물 제405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촌이라는 지명은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따 지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김사원(金士元)과 유성룡 등 40여 명의 과거 급제자와 뛰어난 학자를 배출하여 지난 600년 간 의성 북부지역의 대표적인 양반마을로 명성이 높았다.
마을의 오랜 역사와 달리 오늘날 남아 있는 고택은 100여 년 전에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활동으로 왜군이 마을을 불태웠고, 조선 말기 명성황후 살해 후 이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일본군이 마을의 상당 부분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30여 채의 전통 가옥이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1585년에 완공된 만취당(보물 제1825호)이 유명하다.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사원이 세운 것으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임진왜란 이전 건축물이다. ‘오랫동안 푸르다’,‘늙어서도 지조를 바꾸지 않는다’는 뜻으로 본채에서 조금 떨어져 지어진 사랑채 건물이다.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지는 현판이 남아 있고, 마당에는 만년송이라는 오래된 향나무가 있다. 그 밖에도 류성룡의 외조부인 김광수가 16세기 초 건립한 영귀정(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34호)이 있다.
탁 트인 현대식 한옥에서 한옥체험을 즐길 수 있으며, 마을의 유래와 특징, 유물 등을 전시한 사촌마을 자료관이 있어 마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인근에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화석 산지, 빙계계곡, 고운사, 의성 탑리 오층석탑과 함께 주요 관광지로 손꼽히고 있다.
►의성 사촌리 가로숲
의성 사촌마을에 있는 천연기념물 사촌리 가로숲은 안동 김씨 김자첨이 안동으로부터 이곳 사촌으로 이주한 후 마을 서쪽의 평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을 조성하며 생겼다. 이주 후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라는 풍수지리설과 샛바람을 막아 삶의 터전을 보호하려는 선현들의 혜안이 담겨있다.
서쪽에 있는 숲이라 하여 ‘서림’이라고도 부르며, 수종은 팽나무, 상수리나무 등 참나무류가 대부분이다. 마을을 조성할 때 심은 나무들로 수령이 600년에 이르고, 길이 1km에 폭 45m 정도의 숲길을 이룬다.
●이계당
의성군 점곡면 윤암2길 9-2 (윤암리 539)
이계당은 이계(伊溪) 남몽뢰(南夢賚)가 효종 2년1651에 세워서 학문을 닦던 서재이다. 불이 나서 모두 타버렸는데, 정조 9년 1785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계당은 비교적 작은 규모로 네 변의 길이가 비슷한 정사각형이다. 앞쪽 칸에는 마루가, 뒤쪽 칸에는 온돌방이 있다. 일반적으로 앞면을 홀수 칸으로 하여 건물의 가운데에 기둥이 오지 않도록 하는데, 이계당은 앞면 2칸, 옆면 2칸으로 그 구조가 독특하다. 마루 끝에는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난간이 있는 좁은 마루를 만들었으며, 난간 다리는 닭다리 모양의 계자각으로 장식하였다.
사람이 거주하는 집이면서 경치를 즐기는 정자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건물 안에 앉아 있으면 외부에서는 볼 수 없지만, 일어서면 담장 너머로 냇가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계당의 문틀은 아주 오래전에 썼던 맞춤 방식이어서 건립할 때의 건축 기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금봉자연휴양림
의성군 옥산면 금봉리 산 24-1, 054-833-0123
금봉자연휴양림은 옥산면 소재지에서 있는 자연 청정자연 휴식공간으로 의성군에서 2004년 조성하였다. 봄이면 사과꽃이 만개한 꽃길을 따라, 가을이면 형형색색으로 갈아입는 단풍길을 따라, 아늑한 휴식공간에서 심신을 추수린다. 때묻지 않은 자연과 상쾌한 바람이 싱그러움을 더하는 금봉자연휴양림, 가족과 함께 즐기고 싶은 곳이다.
휴양림 내에는 산림휴양관, 복합수련관, 숲속의 집, 통나무산막, 체험장, 캠프 화이어장, 샤워장, 취사장 등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이 가운데 복합수련관은 세미나실, 대회의실, 소규모 공연장 등을 갖추고 있어 단체 행사가 가능하다. 그리고 통나무산막은 참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등 다양한 식생의 나무들로 이루어진 곳으로 자연의 향취를 느끼며 쉴 수 있다.
이밖에 분수와 무지개 다리를 관망할 수 있는 팔각정과 휴양림을 감싸고 있는 6.4㎞의 등산로 2코스, 7.4㎞의 청석골 산책로 및 시화산길, 단거리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숲길 체험이 있다. 숲길체험지도사와 함께 치유의 숲길을 걸어볼 수 있는 체험으로 화살나무, 할미꽃, 물푸레나무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의성산수유꽃피는마을
의성군 사곡면 산수유2길 2 (화전리 1115), 054-834-3398
의성 읍내에서 15분 거리인 사곡면 화전리는 산의 골짜기를 중심으로 발달한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며 계곡 사이에서 발원한 많은 소하천과 저수지들이 있다. 산비탈과 논, 밭두렁에 산수유가 자생 또는 식재되어 있다. 조선 시대부터 자생한 200~300년생 산수유나무가 3만여 그루 이상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른 봄이면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며 가을이면 빨간 열매가 계곡과 논밭두렁 일대를 뒤덮는 장관을 이루는 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산수유 물결을 이루고 있지만,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둑 옆, 초록 마늘밭과 노란 산수유 꽃나무가 어우러지는 길은 힐링 의성을 잘 보여주는 최적의 산책로이다.
축제 기간에는 풍년 기원제, 군민 노래자랑, 산수유 꽃길 걷기 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산수유를 이용한 한약재와 산수유차 등의 생산과 판매로 농가 수입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빙계계곡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896-1, 054-830-6912(오토켐핑장)
의성에는 무더위를 한번에 날리는 최고의 피서지가 있다. 경북팔경 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빙계계곡이다. 1987년 9월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하며,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 하고, 동네를 빙계리라 부른다. 빙계계곡은 빙계 3리 서원마을(빙계셔원)에 위치하고 있다.
삼복 때 시원한 바람이 나오며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비의 계곡이다. 빙계 8경은 빙계계곡은 계곡 입구에서부터 용추, 물레방아, 바람구멍, 어진바위, 의각, 석탑, 얼음구멍, 부처막이다.
특히, 계곡 안쪽에 높이 8.15m의 오층석탑(보물 제 327호)이 있다. 화강석으로 조성된 고려 초의 석탑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건너편에 수십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아래 맑은 시냇물 가운데 우뚝 솟은 크고 작은 무수한 바위는 아름다운 장관을 보여준다.
계곡 가운데 돋보이는 높이 10m, 둘레가 20m 정도의 큰 바위에 새겨진 ‘빙계동(氷溪洞)’이란 글씨는 임진왜란 때 이곳에 들른 명장 이여송의 필적이란 얘기도 있다. 그 옆에 단 하나의 큰 바위 위에는 ‘경북 팔승지일’이라 새긴 아담한 돌비가 있다.
이러한 천혜의 자원을 활용하여 오토 캠핑장, 캐러반, 숲속 놀이터 등을 조성하여 연인과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조문국 사적지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054-830-6909
의성은 삼한 시대 초기 국가였던 조문국(召文國)의 설화와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의성은 지리적으로 경주에서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중요 교통로에 자리하고 있으며, 당시 신라는 이곳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하였다.
대동지지와 읍지는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금성면 일대’에 조문국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벌휴이사금이 조문국을 정벌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조문국은 삼한 시대의 부족국가였던 나라로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를 도읍지로 하여 존속하다가 185년(신라 벌휴왕 2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사실은 의성에서 현존하는 대규모의 고총에서도 확인된다. 1960년부터 시작된 발굴 조사 결과, 260여 기의 고분에서 금동관, 금동 관장식품, 금동제귀걸이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함께 철제 무기류, 마구류 등 다양한 관련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는 초기 국가 형성기의 대표적인 정치 집단이 이 땅에 존재했다는 증거였다.
고분군 중에 조문국 경덕왕릉이라고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경덕왕릉 앞에는 봉분 모양의 ‘고분 전시관’이 자리한다. 자연스러운 곡선의 봉분들 속에서 기하학적인 반구 모양의 전시관은 불시착한 행성 같다. 내부에는 2009년 발굴한 대리리 2호분의 내부 모습이 재현되어 있고, 유구와 출토 유물, 순장문화를 통해 당시의 매장 풍습을 엿볼 수 있다.
이에 고분군에서 멀지 않은 금성면 초전리, 옛 조문초등 자리에 2013년에 지은 박물관 전시실에는 그동안 전국에 흩어져 있던 조문국 관련 유물과 의성지역에서 출토되었던 유물들이 모아 조문국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있다.
조문국 사적지는 2020년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데다 매년 5월이면 고분군 내 위치한 작약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는 곳이기도 하다. 조문국 사적지 내 4,200㎡의 규모로 조성한 작약꽃단지는 야간경관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낮과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또, 가을에는 고분군 산책로를 따라 코스모스가 만개하기 시작해 가을의 분위기를 뽑낸다.
●조문국박물관
의성군 금성면 초전1길 83 (초전리 223-7), 054-830-6915
조문국박물관은 조문국 및 의성 지역의 역사와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조사, 수집, 전시, 보존하여 조문국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건립하였다.
의성 지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형상화한 의성 조문국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에 상설 전시장, 기획 전시실, 어린이 체험실, 야외 전시장 등으로 구성되었다. 1층의 어린이 체험실은 어린이들의 관심과 눈높이에 맞춰 유물 찾기 등 체험을 통해 살아있는 역사 교육을 할 수 있다.
2층의 상설 전시장에는 역사의 빛, 의성인의 유래, 환경 변화에 따른 의성인의 생활사, 조문국의 성립과 멸망, 의성 사람들의 찬란한 문화유산 등으로 꾸며졌으며, 3층의 기획 전시실은 특정 주제를 설정하여 진행되는 특별전 전시공간이다. 옥상은 전망대다. 금성산이 제 이름 그대로 철의 성벽처럼 솟아 있고 그 아래에 또렷이 펼쳐진 고분군이 한눈에 조망된다.야외 전시장에는 미로 정원, 도자기 정원, 고인돌 정원, 공룡 놀이터 등이 조성되어 있다.
매월 1회 조문국박물관 옆 농부달장을 개최하여 의성군민이 직접 재배한 농특산품 및 가공품, 수공예품 등을 판매하고 다채로운 체험이벤트를 벌인다.
●의성 경덕왕릉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053-602-5410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4㎞ 못 미쳐 금성면 대리리에 있는 고분군 중에 조문국 경덕왕릉이라고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경덕왕릉을 발견한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
하나는 지방 사람들에 의해 구전되어온 이야기다. 지금의 능지는 약 500년 전 오이밭이었다 한다. 어느 날 밭을 지키던 농부의 꿈에 금관을 쓴 백발의 노인이 나타난다. ‘나는 신라 시대 조문국의 경덕왕인데, 너의 원두막이 나의 능 위이니 속히 철거하라’고 명하고는 농부의 등에다 한 줄의 글을 남기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농부는 등의 글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 놀라 현령에게 고하고, 지방의 유지들과 의논하여 봉분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조선 숙종 시대 학자 미수 허목의 문집에 기록으로 전해진다. 한 농부가 오이밭을 갈다 커다란 구멍을 발견한다. 구멍으로 들어가자 금칠을 한 석실 한가운데에서 금관을 쓴 금소상(金塑像)을 보게 된다. 욕심이 난 농부가 금관을 벗기려 하자 손이 금관에 붙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의성 군수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나는 경덕왕이다. 이 무덤을 개수 봉안토록 하여라’라고 말했고, 이후 봉분을 쌓고 관리하였다는 이야기다.
영조 원년인 1725년에는 현령 이우신이 경덕왕릉을 증축하고 하마비 등을 세웠고, 그때부터 왕릉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의성 제오리의 공룡발자국 화석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111, 054-830-6356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에 있는 공룡발자국화석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 1500만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발자국 화석이다. 987년 관내 지방도로 확장공사 때 발견되어 1993년 6월 천연기념물 제373호로 지정되었다. 공룡은 중생대의 쥬라기 시대부터 백악기에 걸쳐 번성했던 길이 5∼25m의 거대한 파충류를 통틀어 말한다.
이 공룡발자국은 중생대 백악기 애프트절∼앨브절 사이의 약 1억150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경상계 하양층군 사곡층의 암회색과 암회색 셰일 경사면에 형성되어 있다.
약 255평의 면적 단일층리면에 나타난 발자국은 대·중·소형의 초식공룡과 육식공룡 등 4종류의 공룡 25필 분량인 316개가 확인되었고, 초식공룡으로는 발굽울트라룡·발톱고성룡·발목코끼리룡 등이며 한국큼룡으로 불리는 육식공룡발자국이 있다.
●의성 탑리 오층석탑
의성군 금성면 오층석탑길 5-3 (금성면 탑리리 1383-1)
의성 금성면 탑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 석탑으로 높이는 9.56m이고 기단 폭은 4.51m, 국보 제77호로 지정된 석탑이다. 부분적으로 전탑(塼塔) 수법을 모방하였고 한편으로는 목조건물 양식을 보인다.
화강석으로 낮은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부를 구성한 이 석탑은 특히, 제1층 탑신에 목조 건물의 수법을 따라 배흘림이 있는 네모기둥을 세우고, 남면에 감실을 두었으며, 기둥 위에는 주두의 형태를 본떠 조각하였다.
각층 옥개석은 전탑의 구조를 본떠서 아래 윗면을 모두 층급형으로 단을 지어 조성하였으며, 맨 윗부분에 장식되었던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다. 장중한 아름다움과 함께 전탑의 양식을 따르면서 일부 목조건물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탑은 경주 분황사 석탑에 다음 가는 오래된 석탑으로 한국 석탑양식의 발전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금성산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금성산은 금성면과 가음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531m이다. 가마와 비슷하다고 하여 가마산이라고도 부른다. 내륙 분지에 솟아 있는 조그마한 산으로, 의성군의 명산으로 꼽힌다. 사화산으로 한반도 최초의 화산이다. 백악기에 화산이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때문에 정상에 1,000여 평의 평지가 남아 있다.
마주 보고 있는 비봉산(672m)과 함께 절경을 이루고, 울창하게 우거진 숲은 소나무·갈참나무·신갈나무 등의 수목이 주를 이룬다. 화산 폭발의 흔적인 정상의 평지는 천하 제일의 명당자리로서 이곳에 조상묘를 쓰면 당대의 만석꾼이 되지만 주변 지역은 3년 동안 가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지금도 주민들이 남몰래 땅을 파헤친 흔적이 곳곳에 있다.
금성면이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의 도읍지였던 탓에 산속과 인근에는 석탑을 비롯한 귀중한 국가유산이 산재해 있다. 정상 북쪽에는 조문국 시절에 세운 것이라 추정되는 높이 4m, 넓이 2∼4m의 금성산성이 있는데, 조선 시대에 유정(惟政)이 왜군과 싸우던 곳이기도 하다. 산속에 흩어져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200여 기는 경상북도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등산로는 금성산 단독 코스와 비봉산과 연계하는 코스가 개설되어 있고, 산성을 따라가면서 흔들바위, 조문전망암, 아들딸바위, 동굴, 솟대바위 등의 경관이 마으을 사로잡는다. 산행 후에는 '옥색 빛깔의 신비한 온천수'로 이름난 빙계온천과 새로이 개발된 탑산약수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인근에는 조문국의 마지막 왕인 경덕왕의 사적지와 1935년에 세운 문익점 면작기념비가 남아 있고, 군립공원인 빙계계곡은 여름철 피서지로서 유명하다.
●의성 산운마을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길 40-9 (산운리 207), 054-830-6374
의성 산운마을은 4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영천 이 씨 집성촌으로 ‘대감 마을’로도 불린다. 조선 명종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 이광준이 이곳에 입향을 하면서 영천이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산운이란 이름은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름으로 마을 뒤편의 금성산 수정계곡 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산운(山雲)마을'이라고 했다 한다.
산운마을은 의성의 대표적 고택촌으로 일명 '대감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살던 반촌의 모습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10여 채의 전통고택이 남아 있는데, 특히 마을 곳곳에는 회화나무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회화나무는 집안에 급제자가 생기거나 벼슬을 하게 되면 집 주위에 심었다, 그만큼 이 산운마을에는 과거 급제자가 많았고 벼슬하는 양반들이 많이 살았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마을은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금성산을 뒤에, 비봉산을 옆에 두고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잡고 있다.
●의성 산운생태공원
의성 금성면 산운리 236, 054-832-6181
구 산운초등학교(폐교)를 활용하여 자라나는 세대의 자연학습 및 환경에 대한 가치관 형성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하였다. 이곳은 자연생태관찰과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산교육장으로 의성의 명산인 금성산과 신라 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수정사로 가는 길목에 있다.
보유 수종은 관목류 및 초화류 53종이며, 주요시설로는 생태관 1동, 연못 2개소, 분수, 목교, 관찰데크, 솟대, 쉼터, 산책로 등이 있다. 생태관 내부에는 홍보관(의성군 유래와 특산품, 관광코스 및 지역행사), 전시실Ⅰ(지진과 화산활동, 생명의 기원과 지구의 탄생), 전시실Ⅱ(인류의 진화과정, 동ㆍ식물의 분류별 종류), 전시실Ⅲ(공룡화석, 공룡의 연대기), 마을자료관(산운마을의 유레, 지방문화재) 등이 있다.
넓은 마당에는 50여 종에 이르는 나무와 풀·꽃들이 자라며, 연못·분수·나무다리·관찰데크·솟대·장승·쉼터·산책로 등을 조성하였다.
◆의성군 서부지역 볼거리
(만장사, 낙정나루터, 관수루, 생송리마애불, 비안향교, 대곡사, 왜가리생태관)
●만장사
의성군 비안면 모산길 109 (산제리 1429)
만장사는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화장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로 오묘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으로 이름난 기도도량이다. 본래 ‘화장사(華臧寺)’라고 불렸으나, 약 30년 전 승려 대관이 중창하면서 이름을 ‘만장사’로 바꾸었다.
만장사는 전면과 측면이 각각 3칸인 맞배지붕 양식의 대웅전이 전면에 있고, 오른쪽에 목조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양식의 극락전(원통전)이 있으며, 대웅전 오른쪽 뒤편에는 전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양식의 삼성각이 배치되어 있는데, 칠성을 중심으로 산신과 독성을 모시고 있다.
또 대웅전 왼쪽 앞으로 요사채인 석소당과 그 앞쪽으로 사무실과 요사채로 쓰고 있는 무심당이 배치되어 있으며, 대웅전 앞 석축 아래 마당에 통일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3층 석탑이 외로이 서 있는데, 기단부 등의 석탑 부재를 새로 보강해 넣은 상태이다.
유물로는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322호 만장사 석조 여래 좌상과 만장사 삼층 석탑이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1999년 대관이 만장사 부근의 산속에 묻혀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불상은 통일 신라 시대 불상으로 추정되는데, 후덕한 인상의 둥근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나타나 있고, 광배는 화려한 불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낙정나루터와 관수루
►낙정나루터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 1482
의성의 서쪽 끝 단밀면. 낙정마을은 너른 낙동강을 향해 곶처럼 자리한다. 1986년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이 강에는 나루가 있었다. 낙정 나루다. 80년대 중반까지 큰 거룻배는 넷 혹은 다섯의 장정이 묵직한 노를 저었고 버스와 마차, 경운기와 자전거 따위를 가득 싣고 강을 오갔다.
낙정마을은 1400년대 초 윤관(尹管)이란 사람이 개척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낙정마을은 그보다 더 오래전 ‘고려사’에 낙동역(洛東驛)으로 등장한다. 근 천년에 이르는 역마을인 것이다. 낙정은 원래 낙동강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낙동이라 했는데, 약 200년 전 마을에 좋은 우물이 생겨나면서 ‘낙정(洛井)’이 되었다.
조선 시대 영남 각 지역의 세곡과 사람은 모두 낙정마을을 거쳐 갔다. 배로 실어온 낙동강 하류의 물자는 여기서 수레로 옮겨져 문경새재를 넘었다. 마을에는 주막과 숙소가 가득했고, 강변에는 역마와 수레가 빼곡했다. 물길 가까이에는 소금창고도 있었다. 역에는 사람만큼 말도 많았는데, 그 규모는 마을에 남아있는 ‘말무덤’이라는 지명으로 짐작할 수 있다. 낙정나루는 1300리 낙동강 물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나루였다.
이제 나루는 다리의 건설로 옛 터만 남고 사라졌다. 나루를 밀어낸 다리가 낙단교다. 강변에 그 많던 주막과 밥집들은 몇 개의 여관과 식당으로 옛 풍정을 소슬히 일으킨다.
►관수루
의성군 단밀면 도안로 835 (낙정리 산 117-1)
낙단교 바로 옆에는 수십m 높이의 깎아지른 벼랑이 솟아올라 수백m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벼랑 위에 잘 생긴 누각 관수루가 낙동강의 유장한 흐름을 굽어보며 앉아 있다. 관수루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정취를 즐긴다’라는 뜻으로 낙동강변의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힌다. 정자에 오르면 낙동강은 물론 의성, 상주, 구미 세 고을의 주름진 산과 드넓은 들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관수루는 고려 중엽에 세워졌다 한다. 그때는 강의 서안, 즉 상주 쪽에 있었다. 조선 초 물난리가 나자 강의 동안인 의성 쪽에 이건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있었다. 그러다 고종 때인 1874년 홍수로 유실된 것을 1990년 지역민들이 힘을 모아 복원했다.
누각 안에는 이황, 주세붕, 김종직, 김일손 등 조선의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낙동강을 노래한 시 열 편이 걸려 있다. 점필재 김종직은 1476년 선산부사로 부임하면서 이곳에 올라 ‘낙동요(洛東謠)’라는 시를 남겼다.
●생송리마애불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
낙정리의 옛 나루터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200m쯤 오르면 생송리에 든다. 강변은 20m 높이의 절벽이다. 그 절벽에 기대어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다. 동북에서 서남 방향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옛 나루의 뱃길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다.
이 마애불이 발견된 것은 2010년 10월, 낙단보의 건설 현장이었고 절벽은 두꺼운 흙으로 덮여 있었다. 인부는 암반 조사를 위한 시험 천공 중 흙벽의 일부가 바위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흙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7m 정도를 파 내려가던 중 생송리 마애보살좌상은 그렇게 세상에 다시 나타났다.
가로 5.5m, 세로 3.5m 크기의 화강암 암벽에 높이 2.2m, 너비 1.5m 마애불은 이중선으로 꽃잎을 새긴 연화대좌에 앉아 있다. 등 뒤쪽에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이 얕게 새겨져 있다. 얼굴은 눈과 입이 선명하다. 가슴께로 들어 올린 오른손은 줄기가 제법 긴 연꽃 한 송이를 쥐고 있다. 배 아래로 편안히 내린 왼손은 선정인(禪定印)의 수인을 표하고 있다. 마애불은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다. 세 개의 산 모양이 새겨진 보관으로 흔치 않은 예라 한다.
생송리 마애보살좌상은 10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며 낙동강 나루터를 안전하게 건너기 위한 기원을 담아 지역의 장인이 새겼을 거라 여겨진다. 생송리 마애불은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32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안향교
의성군 안계면 교화길 65-14 (교촌리 285)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에 있는 비안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조선시대의 국립교육 기관이다. 창건 시기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대략 1398년(태조 7) 무렵으로 추정한다.
상량문의 기록에 의하면, 원래 비안읍에 있던 처음 건물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지금의 건물은 1608년(선조 41)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비안면여지승람』에는 1610년(광해군 2)에 복원되어 현동에서 안정리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광풍루, 정사청 등 9개 동과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향교는 비안면의 선비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나, 비안면의 위천이 자주 범람하여 선비들이 찾아갈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향교의 위치를 여러 번 이전한 기록이 있다.
●대곡사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길 80 (봉정리 894)
대곡사는 비봉산(579m) 동쪽 자락에 1368년(고려 공민왕 17) 지공·나옹 등이 창건한 절이다. 비봉산 일대에 본원을 비롯한 아홉 개의 암자를 지어 불교를 융성하게 하였으며, 또한 호국불교 정신으로 많은 불제자를 배출한 고려 시대의 대찰이다.
그런데 대곡사 탑밭에서 출토된 금동불상과 대곡사다층청석탑, 그리고 이규보의 ‘대곡사 탐방시구(探訪詩句)’ 등의 자료를 참고하여 사찰의 창건 시기를 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보는 견해도 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1605년(선조 38) 탄우가 중창하였으며, 1687년(숙종 13) 태전선사가 다시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명부전, 범종루, 산신각, 일주문, 요사채 등이 있다. 진입 축선을 향하여 범종각·다층청석탑·대웅전이 동일 선상으로 놓이고, 중정의 탑을 중심으로 상단에 대웅전을, 그 좌우에 명부전과 요사를 대칭으로 배치한 산지형 일탑식 가람이다.
2014년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웅전은 장대석을 두벌대로 쌓은 기단 위에 동향으로 앉았으며, 막돌 덤벙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전면은 창호로 개방하였는데, 어간은 4분합 굽널띠살문이고 좌우 협간은 3분합문이다. 단출하면서도 고아한 고려 시대의 석탑 양식을 엿볼 수 있는 대곡사 13층 석탑은 대곡사의 또 다른 볼거리이다.
대곡사에서 적조암을 거쳐 3km에 이르는 등산로가 조성되어 시간 반을 걸어 비봉산 정상에 오르면 100리나 되는 긴 계곡이 펼쳐져 있고 남으로는 저 멀리 안계평야가 북으로부터 흘러오는 낙동강을 마주하는 있는 지역은 산세가 특히 절묘하게 펼쳐져 있어 등산하기 좋다.
●왜가리생태관
의성군 신평면 왜가리길 1185 (중율리 150), 054-861-3450
경북 의성군 신평면 중율리는 우리나라 왜가리 최대 서식지로서 매년 2~8월까지 1천여 마리의 왜가리 때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왜가리 서식지로서 전국에서 몰려든 사진작가들의 탐조 촬영지로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는 명소로 떠올랐다.
왜가리는 우리나라에서는 왜가릿과의 가장 큰 새로 턱밑, 얼굴, 목은 거의 백색에 가깝다. 회색인 왜가리의 등에는 검은 줄 댕기 깃이 있다. 원래 여름새였으나 이제는 겨울을 나는 철새로 바뀌어 주변에서 많이 목격된다.
최근 자연생태관광과 체험에 관한 관심이 늘어남에 따라 민가와 떨어진 곳에 생태 체험이 가능한 관광지로 조성되었다. 2019년 개관한 왜가리생태관은 왜가리생태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기획공연을 제공하고 있다. 왜가리생태관 전시공간과 생태공원에서는 병아리 부화 체험, 왜가리 탐조 활동 등 각종 체험 행사가 이뤄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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