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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성주 가볼 만한 곳 총 정리,

by 혜강(惠江) 2025. 3. 12.

 

 

성주 가볼 만한 곳 총 정리

 

성주 가야산으로 떠나는 역사여행

 

글·사진 남상학

 

 

  성주의 가야산을 중심으로 낮은 산들이 분지를 이룬 이 고장은 조용하고 한가로운 마을이다. 이곳 역시 고령과 마찬가지로 가야의 문화가 성했던 곳으로 그들의 문화 고분이 많이 잠들어 있다.

  무엇보다 성산 이씨의 집성촌인 한개마을의 잘 보존된 한옥에 들면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잘 보존되어 있다. 마을을 잇는 옛 담장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전통문화를 체험하기 좋은 곳이다. 세종대왕자태실과 새롭게 조성된 성주역사테공원에도 들러 성주에 대해 알아보자.

 

 

◆성주 서부권 볼거리·즐길거리

 

성주 가야산국립공원 / 정견대 / 심원사 / 가야산야생화식물원 /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 회연서원 / 독용산성 / 포천계곡 / 만귀정 / 독용산성 자연휴양림 / 성주호둘레길

 

●성주 가야산국립공원(백운동 지구)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일원

 

  성주읍에서 27km 떨어진 곳에 있는 가야산은 예로부터 한국 8승지 중의 하나로 이름나 있으며, 1972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봉인 칠불봉은 해발 1,433m이다. 성주군, 합천군, 거창군의 경계에 위치하는데, 이곳 성주군 수륜면은 가야산의 산세가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곳이다.

  수륜면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가야산 순환도로를 따라가면 검붉은 기암절벽이 하늘을 찌르는 장쾌한 광경이 나타난다. 주봉 꼭대기에는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우비정(牛鼻井)이 있으며, 산허리에는 마애불입상(보물 222)이 있다. 남북으로 뻗은 능선과 남산 제일봉의 기암절벽이 또 다른 절경을 이룬다.

  그 밖에 해인사 서쪽 약 2km의 계곡에 있는 이름난 용문폭포 등 뛰어난 경치가 많다. 가야산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해인사와 그 입구를 이루는 홍류동계곡이다. 대장경판고(국보 52)가 있는 해인사는 홍류동계곡을 따라 4 km쯤 들어간 산기슭에 있는데, 그 구간에는 어귀의 무릉교를 비롯해서 농산정·제시석·분옥폭·제월담·회선암·낙화담·첩석대 등이 차례로 있다.

  그 밖에 계곡을 이루는 절벽 ·암석과 맑은 물 및 울창한 노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해인사 외에도 12 암자가 있으며, 일대에서는 잣·송이버섯·산나물 등이 많이 난다.

 

 

●정견대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건설안전과 054-930-6862

 

  정견대(正見臺)는 경남 합천군 가야면과 성주군 수륜면의 경계에 있는 정자로 도로변에서 바로 다가갈 수 있는 위치에 2007년 11월 조성되었다. 가야산 둘레길을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마주한다.

  정견대는 『동국여지승람』에 근원을 둔 성스러운 기품과 용모를 가진 가야산의 산신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가가 만나 이룬 가야의 건국 설화에서 유래한다. 하늘의 신과 쌍의 신이 만나 이룬 가야의 건국 설화와 같이 화합과 상생, 큰 고을 성주의 위용과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밝고 신령한 풍광과 운세를 가슴 가득 담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자를 조성하였다.

  특히 가야산 정상과 백운동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경관 명소'로 꼽힌다. 잠시 머무르며 휴식하는 그 자체가 힐링이 될 수 있다.

 

 

●심원사

성주군 수륜면 가야산식물원길 17-56 (백운리 1840-3), 054-931-6886

 

  심원사는 경북 가야산 동쪽 자락에 있는 사찰로 창건연대가 8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천년고찰이다. 도은 이숭인이 지은 시에서 심원사를 이미 고사(古寺)라 칭한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훨씬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던 사찰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정조 23년(1799)에 편찬된 범우고에는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미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난 2003년 다시 중창되었다.

  대웅전과 극락전, 목탑 형식의 아름다운 약사전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9세기 초에 조성된 심원사 삼층석탑과 아름다운 형식의 광배, 석조 유물 등 다수의 문화재가 있다. 탑의 양옆으로는 똑같은 형식으로 건축된 관음전, 문수전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심원사는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산사에서 수행자의 일상을 경험하는 전통문화체험인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프로그램은 타종 및 108배, 꿈등 만들기, 일출 명상, 만물상 트레킹, 염주 만들기, 향낭 만들기, 스님과의 대화가 있으며, 개인은 물론 가족 단위의 체험도 가능하다. 지친 일상의 휴식과 나를 되돌아보는 수행의 시간을 통한 재충전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가야산 야생화식물원

성주군 수륜면 가야산식물원길 49 (백운리 1282-16), 054-931-1264

 

  가야산 야생화식물원은 가야산의 550m 고도에 있다. 성주군에서 조성한 국내 유일의 군립 식물원이자 야생화 전문식물원으로서 가야산 국립공원 입구에 있다. 가야산 지역을 전국 제일의 자연 친화적 야생화의 메카로 조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상북도 성주 가야산의 주요 홍보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가야산 야생화식물원은 식물원과 도로변 식재지를 포함하여 전체 면적 5만㎡이며, 상설 전시실, 온실 전시장, 야외 전시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설 전시실은 지상 1층 지하 1층 828㎡의 면적에 가야산 식생도, 화석 이야기, 곤충 전시관, 드라이 플라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야산의 사계를 포함한 할미꽃의 전설을 방영하는 영상물을 상시 상영하고 있다.

  온실 전시장은 전시실과 연결되어 있으며, 면적 1,004.32㎡에 후박나무, 소귀나무, 참꽃나무 등 150종의 나무와 산호수 등 야생화 89종이 전시되어 있다.

  야외 전시원은 면적 8,052㎡에 야생화 학습관, 관목원, 국화원, 숙근초원, 가야산 자생 식물원 등 5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고, 자작나무, 노각나무 등 관목 487종과 은방울꽃을 비롯한 야생화 335종이 자생한다. 이외에도 만물상 암석원과 전망대, 야생화 학습관, 고산 암석원 등의 시설도 있으며, 도로변으로 자귀나무, 소나무, 섬초롱 등의 식물도 식재되어 있다. 주변으로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과 백운동 탐방 지원 센터가 있다.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성주군 수륜면 가야산식물원길 21 (백운리 산62-4), 054-930-8483

 

  2017년 개관한 가야산 역사신화테마관은 가야산 국립공원 내에 있으며, 지하 2층 지상 1층 건물로 되어 있다. 지하 1층에는 가야산 테마관, 매표소, 안내데스크, 체험실 등이 있고, 지하 2층에는 방재실, 전기실, 기계실 등이 있다. 지상 1층에는 가야 신화 테마관, 카페테리아, 수유실, 사무실이 있다.

  가야산 테마관은 가야산의 문화 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신화의 땅 가야산의 만남’, 해동명산 가야산의 전경’, 구전 설화 가야산의 전설’, 불교의 성지 가야산’, ‘유구한 역사 가야산 기록’ 등의 소주제들에 대한 영상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가야산 국립공원의 주요 식물 중 희귀종이나 멸종위기종인 뻐꾹나리, 개불알꽃[복주머니난], 백리향, 태백제비꽃 등도 만날 수 있다. 『해동지도』와 『동여비고』, 『여지도』 등 고지도에 나타난 가야산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지상 1층의 가야 신화 테마관에서는 가야산과 가야국의 역사와 신화를 체험할 수 있다. ‘신화가 깃든 가야산 정상’, ‘가야 산신 정견모주 신화’, ‘가야 건국 신화’, ‘가야산의 흔적 산신을 기리며’, ‘염원의 탑 소원을 남기다’ 등의 소주제들에 대한 관람과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가야 산신 정견모주의 아름다운 자태와 백성을 생각하는 정견모주의 고운 마음씨에 감동한 천신 이비가지도 만날 수 있다.

 

 

●회연서원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 (신정리 258), 054-932-3375

 

  회연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정구는 김굉필 · 정여창 · 이언적 · 이황 등과 함께 영남 5현 중의 한 사람이다.

  회연서원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회연초당에서 출발하였으며, 정구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이 서당 자리에 그를 주향으로 모시는 서원을 세우고 회연서원이라 하였다. 1690년(숙종16) 사액을 받았다.

  서원은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폐원되었으며, 근래에 훼철되지 않은 서당을 중심으로 동서재, 문루, 유물전시관을 건립하고 담장을 쌓는 등 복원, 정비하여 서원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갖추었다. 정구의 문집판인 『심경발휘(心經發揮)』가 보관되어 있으며, 1974년 12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독용산성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산 43, 054-933-0021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에 있는 산성으로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인 해발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축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500년 전 성산가야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한다. 임진왜란 때 발견되어 1675년(숙종 1) 경상도 순찰사 정중휘(鄭重徽)가 4개월에 걸쳐 개축하였다.

  해발고도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있으며, 면적 169,493㎡, 둘레 7.7㎞, 높이 2.5m,너비 1.5m이다. 물이 풍부하고 공간이 넓어 장기전에 대비할 수 있는 포곡식 산성으로, 현존하는 영남지방의 산성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동문지, 서문지, 남문지, 북문지, 동암문지, 서문암지, 남문암지, 수구문지, 동치성, 서치성, 객사지, 군기고지, 안국사지와 건립연대를 알 수 없는 비석 5기가 있다. 동서남북의 포루 7개, 아치형의 동문, 수구문, 남소문 등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 발굴된 군기고에서 쇠창·쇠도끼·삼지창·갑옷·말안장 등이 출토되었다.

 

 

●포천계곡

성주군 가천면 신계리, 화죽리, 054-930-8371~3

 

  성주군 가천면 화죽리에 있는 포천계곡은 가야산의 여러 계곡 중 대표적인 계곡으로 약 7km 이어지는 계곡은 물이 맑고, 풍부할 뿐만 아니라 웅장하고 힘찬 가야산 전경과 어우러져 옛 성주 선비들이 심신과 학문을 도야하는 장으로 삼았던 곳이다.

  계곡의 반석에 심청색 무늬가 있어 마치 베(布)를 널어놓은 것 같다 하여 포천계곡이라 부른다. 크고 작은 바위와 커다란 너럭바위가 널려 있으며, 곳곳에 소(沼)가 형성되어 있고 작은 폭포도 있다. 우거진 숲과 어울려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

  상류에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당대 최고의 선비였던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 선생이 만년을 보낸 만귀정이 있으며, 만귀정 옆 세찬 기운으로 떨어지는 만귀폭포는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포천계곡의 뛰어난 경치 9곳을 포천구곡이라 한다.

 

 

●만귀정

성주군 가천면 신계2길 38 (신계리 70)

 

  성주 만귀정은 성주군 가천면 신계2길 38[신계리 70번지에 있다. 만귀정은 응와 이원조가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만귀(晩歸)’는 진작에 뜻을 세워 놓고도 늦게 고향에 돌아왔다는 뜻이다. ‘만귀정’ 편액의 글씨는 석농 이종우가 썼다.

  만귀정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에 2칸 대청이 있고, 양측에 온돌방이 1칸씩 배치된 중당 협실형(中堂夾室形)이다. 현재 본채와 대문, 관리사와 부속 정자인 만산일폭루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은 평삼문이고 ‘만귀산방’ 편액이 걸려 있다. 관리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우진각이다. 만산일폭루는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팔각지붕이며, 성주 만귀정이 있는 언덕의 아래 폭포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성주 만귀정 입구에는 이진상이 세웠다는 철제 ‘고 판서 응와 이선생 흥학창선비’가 있다.

  이원조는 소년등과하여 제주 목사와 경주부윤,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지냈고, 관직에 있을 동안 국정의 쇄신책을 충간하고 스스로 청렴함을 지켰다. 한편 포천계곡 일대에 구곡을 설정하고 구곡시를 붙여 지었다. 만귀정은 포천구곡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경치가 뛰어난 곳에 지은 정자이다.

 

 

●독용산성 자연휴양림

성주군 금수면 사더래길 144 (봉두리 산110), 054-930-8401

 

  독용산성자연휴양림은 경상북도 기념물 독용산성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성주호 아라월드 사이에 있는 산림 휴양과 수상 레포츠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자연 휴양림으로 성주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금수면 봉두리 독용산의 146.7㏊ 일대에 조성된 휴양림은 주요 시설로 67㎡의 8인실 2동, 50㎡의 6인실 10동, 43㎡의 4인실 3동, 30㎡의 2인실 4동 등의 숙소와 30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세미나관 2동, 바비큐장 5동,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다. 부대시설로 수심 29㎝의 어린이용 물놀이장도 있다. 특히, 편백숲 산책로를 겸비해 도시 생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산림욕으로 달래며 즐길 수 있는 휴양숙박 시설이다.

  자연 휴양은 물론 수상 스포츠도 즐길 수 있어 성주 군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인기가 있다. 1일 300명 수용 및 120명 숙박이 가능하다.

 

 

●성주호둘레길

성주군 금수면 봉두리 일대

 

  성주호는 댐높이 60m, 제방길이 430m, 면적 3530㏊에 총 3800만 t의 물을 담수할 수 있는 대형 저수지이다. 성주호를 끼고 있는 약 7㎞의 도로는 자연과 인간, 자동차가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성주호 주변에는 수몰지역 내의 문화재를 옮겨놓은 영모재와 구강재가 있으며, 운봉 현황호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세운 ‘백운정’을 비롯해 가야산·독용산성 성주호 둘레길 등이 있다. 성주댐 둘레와 인근 독용산성을 잇는 성주호둘레길은 무려 총연장 26.2㎞에 이른다.

  성주호둘레길은 사시사철 언제 방문해도 힐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봄이면 성주호를 둘러싼 만개한 벚꽃길이 상춘객의 발길을 붙잡고, 여름엔 푸르른 녹음과 시원한 성주호 물결에 피서객들은 환호한다. 또 가을은 형형색색 단풍과 흩날리는 낙엽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선사하고, 겨울이면 눈 덮인 가야산의 숨가쁜 자태가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특히 성주군이 영남지역 대표 탐방로를 만들기 위한 ‘가야산 선비산수길 조성사업’ 일환으로 탄생한 23.9㎞의 트레킹 명소로 대구 구미 등에서도 자동차로 한 시간 내에 닿을 수 있어 각광 받고 있다.

  성주의 명소 무흘구곡과 성주호 둘레길, 드라이브코스는 하나의 길 안에 있다. 이곳의 여정은 영모재 근처에 있는 수상놀이시설 아라월드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아라월드 입구에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성주호 둘레길은 호반을 끼고 이어지는 숲길이지만 시작은 가천삼거리에서부터다.

 

 

◆성주 북부권 볼거리·즐길거리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 생명문화공원, 태실문화관 / 영취산 / 감응사 / 성주 한개마을 / 선석산 / 선석사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39-18(인촌리 산 8), 054-930-6091

 

  1438년(세종 20)에서 1442년(세종 24) 사이에 조성된 조선조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로서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1기를 합쳐 모두 19기로 조성되었다. 이 태실이 자리 잡은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 이장경(李長庚)의 묘가 있었던 곳이다.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묘를 이장하도록 하고 태를 안치하였다 한다. 2003년 3월 6일 사적 제444호로 지정되었다.

  앞줄은 11기, 후열은 8기로 되어있다. 태실 앞에는 각각 왕자의 태실비가 세워져 있는데, 대부분 세종 20년(1438)에서부터 세종 24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는 비석이 닳아 판독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으며, 판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은 평원대군, 영응대군, 의창군 등의 태실비이다.

  그러나 1977년 12월, 이곳을 보수, 정비하면서 금성대군, 화의군, 단종 등의 태실로 추정되는 자리에서 토기, 태호, 분청인화문 대접, 분청상감 연화문 뚜껑 1식과, 명기가 있는 지석 2점 등이 출토되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 경주박물관, 경북대학교 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한편 가까이엔 이곳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이었던 선석사가 있다.

 

 

●생명문화공원, 태실문화관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16-12 (인촌리 218-9), 054-933-6945

 

  생명문화공원은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의 성주 세종대왕 자 태실에 조성된 공원으로, 성주의 세종대왕 자 태실을 알리면서 동시에 생명 문화의 가치 계승에 기여하고 있는 공원이다.

  생명 문화 공원은 대지 면적 4만 1457㎡에 태실문화관, 생명 문화 광장, 선석사, 야외 화장실, 주차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 면적 273㎡의 태실 문화관에는 생명존중 정신이 깃들어 있는 태실의 고장 성주를 소개하고, 장태의 역사, 조선 왕실의 출산의례, 태실의 조성, 태실의 구조 등 태실과 관련된 내용을 전시하고 있다. 생명문화공원은 조선 시대 태조에서 순종에 이르는 27기의 조선 시대 왕들의 태실 미니어처가 설치되어 공원 산책을 즐기며 전국에 산재된 태실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2016년 준공 이후 생명문화공원은 국내의 유일한 태실 관련 전시관으로서 생명 존중의 문화와 왕실의 출산 의례 등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개관 시간은 화요일~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이며, 입장료는 무료다.

 

 

●성주 영취산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영취산(332m)은 성주군의 선남면 문방리와 월항면 대산리에 걸쳐 있다. 북쪽의 금오산에서 출발한 산줄기가 영암산, 선석산, 각산 등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머문 산이다. 산의 서쪽에서 남쪽으로 백천이 휘감아 흐르며, 동쪽에는 문화천이 흐른다.

  영취산의 명칭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신라 애장왕이 늘그막에 왕자를 낳았는데, 왕자가 눈병으로 고생하였다. 왕비가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하자 한 승려가 꿈에 나타나서 내일 독수리가 올 것이니, 그 독수리를 따라가서 약수를 찾아 눈을 씻으라고 하였다. 그대로 따라하니 왕자의 눈이 나았다. 애장왕은 이를 부처의 은덕으로 여겨 약수 앞에 사찰을 세우고 감응사라 하였고, 절이 있는 산을 신령스러운 독수리라는 뜻으로 '영취산(靈鷲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산의 서쪽 사면에는 802년(신라 애장왕 3)에 창건하였다는 감응사가 있으며, 남서쪽 기슭에는 성산이씨 동족마을인 한개마을(중요민속자료 제255호)이 있다.

  영취산 산행 경로는 한개마을로부터 시작된다. 한개마을을 두른 영취산은 마을 입구 여행자센터 앞 갈림길에서 출발한다. 마을에서 영취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세 길인데, 여덟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과거 길을 거쳐 왼쪽 능선으로 오르는 길과 마을을 통과해 감응사로 바로 오르는 산길을 ‘채움의 길’이라 하며, 관광안내소 앞을 지나가는 오른쪽 능선은 ‘비움의 길’이다

 

 

●감응사

성주군 월항면 대산1길 234 (대산리 산50-1), 054-932-9447

 

  성주군 월항면 영취산 있는 사찰로 802년(신라 애장왕3) 보조국사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애장왕이 늘그막에 왕자를 낳았는데, 왕자는 날 때부터 눈이 나빠 앞을 볼 수 없었다. 온갖 약을 다 써보았으나 소용이 없자 왕비는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도인이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아침 문 앞에 독수리가 나타날 것이다. 그 독수리를 따라가면 약수가 있는 곳에 이른다. 그 약수로 눈을 씻고 약수를 마시면 눈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음날 도인의 말대로 독수리를 따라가니 과연 약수가 있었고 약수로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였더니 눈병이 나았다.

  애장왕은 이를 부처의 은덕으로 여겨 약수 앞에 사찰을 세우고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한다. 절 앞에 있는 약수는 옥류정이라 하는데, 지금도 물맛이 차고 달아 많은 사람이 찾는다.

  체징이 창건하였을 당시에는 감은사 혹은 감응암이라 하였다. 창건 이후 수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쳤으나 임진왜란 이전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며, 1675년(숙종2)에 중창하였다. 1752년(영조 28) 이민수, 1780년(정조 4) 이규진, 1921년 이상진이 각각 중수하였다.

  이후 1970년대 들어 평타가 영선원을 세우고 대웅전을 중수하는 등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영선원·삼성각·봉래당 등이 있다.

 

 

●성주 한개마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8 (대산리 308-2), 054-933-4227

 

   성주 한개마을은 성산이씨가 대대로 살아온 전형적인 동성촌락이다.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대왕 시대에 구성된 마을로, 6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마을 앞으로 백천이 흐르는데 ‘큰 개울’ 또는 ‘큰 나루’가 있어 ‘한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은 크다는 뜻이며, ’개‘는 개울· 나루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조선지형도』에는 한개마을이 한자표기인 대포(大浦)로 쓰여 있다. 마을 북쪽으로는 영취산(331.7m)이 좌청룡 우백호로 뻗어 있고, 서남쪽으로 백천이 흐르고 있어 영남 제일의 길지를 이루고 있다.

  현재는 최초 마을을 개척한 이우(李友) 선생의 성산이씨 후손들이 모여사는 집성마을이다. 17세기부터 과거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고, 구한말 성리학자 이진상을 비롯, 응와 이원조 등 예로부터 이름난 선비를 많이 배출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이곳의 가옥은 대부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지어진 60여 채의 전통가옥들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으며, 그중 10곳은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풍수에 따라 마을이 구성되었으며, 상류층 주택과 서민층 주택의 배치와 평면에서 지역적인 특성이 나타나며, 각 집은 대지 특성에 맞추어 본채와 부속채가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다. 또한, 지붕, 대청, 안방, 부엌, 툇마루 등이 거의 원형으로 남아있다. 가재도구 및 유교적 생활공간 등 중요한 모습들이 많이 남아있어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다.

  한개마을에는 특이한 담장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담장은 경사지 지형에 따라 크게 외곽담과 내곽담으로 나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 마을 담장의 주류인 토석담은 전통 한옥들과 잘 어우러져 자연스런 마을의 동선을 유도하면서 아름다운 마을 속에 잘 동화되어 있다.

 

 

●선석산

성주군, 칠곡군 일대, 054-930-6532

 

   선석산은 바위가 없고, 등성이가 넓고 편평하여, 밭을 일구어도 될 정도로 흙산이다. 숲이 좋고 비탈이 가파르지 않아 산길이 산책길처럼 느껴진다. 전설에 의하면 근처 금오산에 큰 범이 있어 포수들이 잡으러 옵으로 범이 이산에서 하룻밤을 세우고 피난하였다 해서 서진산(棲鎭山)으로도 불려지고 있다. 선석산의 이름은 ‘선석사’에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애국 충절의 고장 성주의 월항면 인촌리에는 세종 20년(1438년)~24년(1442년) 사이에 만들어진 19기의 태실이 유존하고 있는 세종대왕 왕자 태실을 끼고 있는 선석산이 있다. 산세도 뛰어나지만, 조선왕조의 태실을 품고 있는 산이기에 그만큼 가치가 있는 산이다.

  등산 코스는 제1코스와 제2코스가 있다. 제1코스는 선석마을 → 임도 → 중암 → 능선길 → 선석산 → 들목재 → 삼거리 → 영암산 → 신거리고개를 거치는 코스로 4시간이 걸린다. 제2코스는 선석마을 → 임도 → 중암 → 능선길 → 선석산 → 중암 → 선석마을까지 3시간 걸린다.

 

 

●선석사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16-33 (인촌리 217), 054-933-9800

 

  성주 선석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서진산 또는 누진산)이라고도 불린다. 692년(효소왕 1)에 의상이 창건하였으며 그때 사찰의 이름은 신광사로 현재보다 서쪽에 있었다고 한다. 1361년(공민왕 10) 나옹 혜근이 절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우면서 ‘닦을선(禪)’, ‘돌석(石)’ 자를 넣어 절 이름을 선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는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머리 부분만 땅 위로 나와 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84년(숙종 10)에 은현·혜묵·나헌 등이 중창하였다. 1725년(영조 1)에 서쪽의 옛터로 옮겼다가 1804년(순조 4)에 서윤(瑞允)이 신도들의 도움을 얻어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경상북도 유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영산회상 괘불전 · 태장전 · 종각 · 명부전 · 칠성각 · 산신각 · 사천왕문 · 요사채가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 다포 양식으로 조선 후기 건축물의 양식을 보여준다.

  세종의 왕자 태실이 있는 태봉에서 약 200m 거리에 자리한 이 절은 왕자의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어 영조로부터 어필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이 어필을 보관했던 곳이 어필각이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영조 어필의 병풍은 정법료에 보관되어 있다.

  영산회상 괘불전은 보물로 지정된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을 모신 전각이다. 괘불탱은 1702년(숙종 28)에 제작된 것으로 왕과 왕비, 세자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18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괘불화로 그 가치가 크다.

 

 

◆성주 중부권 볼거리·즐길거리

 

성주 성산동 고분군, 고분군전시관 / 성주 경산라 성밖숲 / 성주역사테마공원 / 성주참외체험형테마공원 / 칠봉산 / 사도실마을 (청천서원, 경정각, 심산 김창숙 선생 생가, 청천서당) / 청담1942 / 봉산재·시비공원 / 성주참외하우스 들녘

 

●성주 성산동 고분군, 고분군전시관

성주군 성주읍 성산4길 37 (성산리 822), 054-930-8385(전시관)

 

  성주 성산동 고분군은 성주군 성주읍에 위치한 가야의 무덤이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성산동 고분군은 성주읍이 내려다보이는 성산 자락에서 산줄기를 따라 가야와 삼국 시대의 크고 작은 무덤들이 서로 형제처럼 줄지어 있는데, 대부분 원형으로 현재까지 129기가 확인되어 정비 및 복원을 하고 있다. 가벼운 산책으로 둘러보기 좋다.

  1호 무덤은 높이 3.6m, 지름 13.6m로 내부구조는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으로 보인다. 돌방(석실)에서는 은제관장식과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 각종 토기류가 발견되었다. 2호 무덤은 구덩식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으로 창·도끼·손칼을 비롯하여 많은 수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또한, 58호에서는 금제굵은고리귀고리(금제태환이식), 은제팔찌, 금동제말장식(행엽)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은 전형적인 신라제품으로 5∼6세기경 성산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유물들은 성산가야가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고, 당시 신라와 적대관계였던 인접한 대가야와는 문화적으로 교류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고분군전시관에는 6188㎡ 대지에 상설 전시실, 수장고, 어린이 체험실 등의 전시·교육 시설과 다목적 강당, 야외 전시장[유구 11기], 편의 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설 전시실에는 가암리 금동관을 비롯하여 성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4세기~6세기 무렵 유물인 토기류, 장신구류, 무기류 등 약 700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분군에 대한 역사적 전시와 함께 어린이 체험실이 있어 놀이와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

성주군 성주읍 성밖숲길 (경산리)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성주읍성 밖에 조성된 왕버들숲으로 1999년 4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성밖숲은 마을의 풍수지리와 역사, 문화, 신앙에 따라 전통적인 마을 비보림으로 향토성과 역사성을 가진 숲이다.

  구전에 의하면, 조선 중엽 서문 밖의 마을 어린이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자주 죽자, 그 이유가 마을 주변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 보고 있기 때문이라 하여 중간 지점에 숲을 조성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지관의 말에 따라 토성으로 축성된 성주읍성의 서문 밖 이천변에 밤나무 숲을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내고, 대신 왕버들나무를 조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밖숲은 거대한 왕버들로 이루어진 단순림으로 마을의 역사, 문화, 신앙 및 풍수지리에 따라 조성되어 마을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과 토착적인 정신문화의 생활터이다. 마을의 풍치와 보호를 위한 선조의 전통적 자연관을 보여주는 전통적 마을 비보림(裨補林)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도심 주변에 휴식, 체육, 행사장 등으로 이용하고 있다.

 

 

●성주역사테마공원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516, 054-930-6942

 

  성주역사테마공원은 성주의 옛 모습을 재현한 공원으로 성밖숲과 함께 군민들의 휴식처이다.조선 왕조실록을 보관한 조선 전기 4대 사고 중 하나인 성주사고와 조선 시대 전통연못인 쌍도정 그리고 조선 시대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읍성 북문과 성곽이 성주 역사테마공원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쌍도정

 

  쌍도정은 조선 시대 성주 관아의 객사인 백화헌에 부속된 연못에 있던 정자의 이름이다. 네모꼴의 연못 속에 석축으로 둘러싼 2개의 섬이 조성되어 있어 쌍도정이라 칭하였다. 우리나라 정원 연못 안의 섬이 2개인 경우는 매우 드문데, 아마도 음양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쌍도정의 원래 위치는 성주읍 경산리 관운사 앞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겸재 정선이 그린 쌍도정도를 바탕으로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현재 위치에 재현하였다.

 

 

 

비석원

 

  쌍도정을 지나 읍성 북문으로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보이는 산책길에 여러 기의 비석을 모은 비석군이 조성되어 있다. 주로 조선 시대 성주의 수령이나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지방관의 선정을 기려 세운 선정비가 주를 이루며, 모두 20기의 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성산기공비는 일반적인 선정비라기보다는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성주 목사 이보혁과 지역 인사를 기리는 공적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성주읍성 북문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산지등 여러 지리지에 그 존재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형태나 명칭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북문의 명칭은 성주를 상징하고, '인의예지신'에서 북을 가리키는 '()'를 인용하여 성지문이라 하고, 누각의 명칭은 주민의 화합을 뜻하는 민락루라 하였다.

  성문의 좌우로 성곽을 복원하였는데, 옹성은 없으나 치성을 두어 성문으로 침입하는 적을 경계토록 했던 모습을 나타냈다. 또한, 여장과 총안도 설치하여 옛 모습을 재현하였다.

 

 

성주사고

 

  성주에 사고가 설치된 것은 1439(세종21)의 일이다. 설치 당시 실록각은 성주목 관아에 인접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538(중종33) 116일 화재로 일시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다시 실록각을 건립하고 15404월에 재차 실록을 봉안하였다.

  성주역사테마공원에 재현된 성주사고는 전주 경기전에 복원된 전주사고와 조선 전기 사고에 대한 연구성과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재현된 성주사고 실록각 2층 내부에는 소규모 전시관이 있다.

 

 

관천대

 

  성주사고를 등지고 솟아나 있는 봉두산 정상에는 관천대가 재현되어 있다. 관천대는 조선 시대 천문관측 기구인 간의를 설치하였던 관측대를 말한다. 조성된 관천대는 서울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를 본보기로 하였고,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을 삼으니 농사는 의식의 근원이고 왕정의 급선무이다."라고 했던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혼을 담는 뜻에서 조성하였다고 한다.

 

 

●성주참외체험형테마공원

성주군 성주읍 참별로 2479 (옥성리 197)

 

  성주참외체험형테마공원은 성주 참외를 활용한 체험형 공원으로, 성주군의 참외를 주제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조성한 복합 문화 체험 공간이다. 단순 방문이 아닌 체류 및 체험 중심의 관광 인프라 확충을 위해 유아, 청소년, 도시민 등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농촌 테마파크를 주제로 하여 조성하였다.

  대지 면적 2만 6580㎡에 참외랑 아이랑, 성주 사람들 이야기관, 원예 힐링관, ICT참외 연구동, 미래 식물 육묘장, 참돌이 참순이 광장, 참외 어울림 마당 등 체험, 휴양, 교육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외랑 아이랑’에는 148㎡ 면적의 어린이 실내 놀이터가 조성되어 있고, 원예 힐링관에서는 각종 식물을 체험할 수 있다. ‘성주 사람들 이야기관’에서는 농경 문화와 귀농 귀촌에 대한 정보 센터를 통해 참외에 대한 정보와 귀촌에 대한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다. 야외에는 분수대와 함께 참외 모형의 놀이터가 조성되어 있다. 무료로 운영되며, 비정기적으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칠봉산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수륜면 송계리, 용암면 죽전리

 

  칠봉산(517m)은 경북 성주군 대가면과 수륜면, 용암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칠봉산은 봉우리가 7개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칠봉산은 주변의 염속봉산, 연봉산으로 이어지는 칠봉 지맥의 중심에 있는 지역 명산이다. 칠봉산은 칠봉 지맥의 중심에 있는 산으로, 동쪽으로 대황산, 대성산, 성암산으로 이어지는 산지 능선과 남쪽으로 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있다.

  대가천 등 여러 하천의 분수계 역할을 하며, 칠봉산 주변에는 작은 계곡과 골짜기가 다수 발달하여 송내지, 칠봉지, 배성지 등의 저수지가 있다. 칠봉산 주변의 자연 마을로는 북쪽으로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의 사도실 마을과 유천마을, 서쪽으로 수륜면 송계리의 산촌마을, 남쪽으로는 용암면 죽전리의 하목마을 등이 있다.

  칠봉산 자락 아래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는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 한강(寒岡) 정구(鄭逑),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의 생가가 있는 의성 김씨 집성촌인 사도실 마을과 청천서당 등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 사적 및 유적지 등이 많이 있다.

  또한, 칠봉산 둘레길과 함께 칠봉산~대황산~대성산~성암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및 자연 탐방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칠봉산 주변의 도로와 고개로는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서 수륜면 송계리로 연결되는 지방도 제913호선(동강한강로)과 호령고개, 용암면 죽전리로 이어지는 도로인 대송로와 하미기재, 서낭재 등이 있다.

 

 

●사도실마을 (청천서원/ 경정각/ 심산 김창숙 선생 생가/ 청천서당)

성주군 대가면 칠봉2리

 

 

  사도실마을은 600여 년을 이어온 의성 김씨 집성촌으로, 심산 김창숙 선생을 비롯해 조선 시대 대과 급제자가 5명이나 배출한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사천(沙川)과 마을을 감싸고 있는 칠봉산 월명봉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사월(沙月)’이라 부르다가 동강 김우옹 선생의 후손들이 도덕과 윤리를 사모한 선생의 뜻을 기려 ‘사도실(思道室)’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마을에 들어서면 태극기 그림 아래 ‘晴川書院’(청천서원)이라고 한자로 새겨놓은 거대한 입석이 눈에 띈다. 뒤편 언덕 위로 청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의 세심교를 지나 서른 개 남짓한 계단을 오르면 ‘올바름을 지킨다’는 의미의 수정문(守正門)에 다다른다. 문 앞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면 칠봉산 자락에 안긴 20여호 남짓한 조용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천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자로 정치적, 학문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김우옹 선생을 배향하기 위해 1729년(영조5)에 창건되었다. 고종때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2년에 지금의 자리에 복원됐다. 마을을 대표하는 인물인 동강 김우옹(1540~1603) 선생은 한강 정구(1543~1620) 선생과 함께 성주권의 양강(兩岡)으로 알려져 있다. 강당인 일중당에 걸려있는 청천서원 편액은 백범 김구 선생의 글씨다.

 

  수정문 옆에 자리한 경정각에는 김우옹 선생이 저술한 속자치통감강목을 판각한 속자치통감강목판목(경북 유형문화유산)이 보관되어 있다. 속자치통감강목은 1589년 기축옥사로 유배를 떠난 선생이 중국 송나라 태조 원년(960)에서 명나라 태조 원년(1368)까지 408년 간의 중국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책이다. 36권 20책의 분량을 673매의 배나무 목판에 새겨 보관중이다.

 

 

  청천서원에서 조금 걸어 내려가면 심산 김창숙 선생의 생가인 심산고택이 있다. 동강 선생의 13대손인 심산 김창숙(1879~1962) 선생은 일제강점기에는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하고 임시정부 부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치고, 광복 후에는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한편,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해 초대총장을 지내는 등 민족사학 육성에 힘을 쏟았다.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두 아들을 잃고 일본군의 고문에 다리가 마비된 채로 1942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생가는 선생의 며느리가 지켜오다 지금은 비어있다.

 

 

  심산고택에서 대각선으로 바라보이는 곳에 청천서당이 있다. 경북 유형문화유산인 청천서당은 청천서원이 훼철된 후 김우옹의 12대손이자 심산의 아버지인 김호림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서당으로 활용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심산 선생이 1910년 서당을 성명학교로 바꾸고 신학문을 가르치며 애국계몽활동을 펼쳤다. 지역의 유생들은 “심산때문에 유림이 망한다”며 신학문 교육에 반대를 했지만 선생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사도실마을은 해방 후 한때는 100가구가 넘을 정도로 번성했던 마을에는 현재 20여가구 30명 남짓한 주민만이 남아있다. 주민의 평균연령도 65세를 넘어서며 마을의 소멸을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 마을이 가진 유·무형의 자산을 널리 알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닿도록 하기 위해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한 끝에 청천서원에 한옥체험카페 ‘청담1942’를 열었다.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우려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무조건 문을 닫아걸고 보존하는 것보다는 많은 이들이 드나들고 이용해야 더 빛이 나고 오래간다는 것에 주민들의 뜻이 모아졌다.  심산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담은 심산문화테마파크가 사도실마을 건너편 칠봉산 기슭에 조성 중이다.

 

 

●청담1942

성주군 대가면 칠봉2길 36-16 (칠봉리 525), 0507-1439-1942

 

  ‘청담1942’는 청천서원에 문을 연 한옥체험카페다. ‘맑은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라는 ‘청담(淸談)’에 애국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심산 김창숙 선생이 마을로 돌아온 해인 ‘1942’라는 숫자를 더했다. 카페 이름에 마을에 대한 자긍심이 그대로 녹아있다. 분위기맛집, 뷰맛집, 사진맛집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카페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핫플을 찾는 젊은이와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다.

  주문하면 직접 다식을 만들어 찻상을 차려내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성격 급한 이들은 왜 빨리 안 나오냐고 답답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막상 찻상을 마주하면 ’기다릴 만하다‘며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카페에서 제공되는 꽃차는 가야산에서 나는 꽃, 열매, 뿌리 등을 직접 채취해서 가공해서 만든다. 가야산의 사계절을 차로 만날 수 있다. 마음이 불안할 때 ‘청천 살으리랏다 티’, 피로한 당신의 하루, 활기를 넣어주는 ‘청천 호랑이 기운 티’, 따끔따끔 기관지 말끔하게 ‘청천 화통티’ 등 이름도 재미있다.

  블렌딩티에 블랙푸드환을 포함한 6종의 다과가 포함된 한상차림은 제대로 대접받는 느낌이라 인기다. 명품 성주참외를 활용한 참외플라워티, 참외 크림티도 이색적이다. 2시간 동안 백차, 녹차, 보이차 등 6가지 차와 다식을 즐기며 다례를 배우는 청담티코스는 예약제로 운영된다.

 

 

●봉산재·시비공원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108

 

  봉산재는 성주이씨 문중 중시조의 재실이며, 조상들이 남긴 시를 새긴 시비공원이다. 2011년 성주이씨 대종회에서 조성한 봉산재·시비공원은 9천900㎡ 부지에 봉산재, 시비공원 외에 숭덕문, 상덕사, 경모문으로 이뤄져 있다.

  봉산재는 성주이씨 중시조 농서군공 이장경이 백년, 천년, 만년, 억년, 조년 등 5명의 아들을 모두 과거에 급제시켜 가문을 번창하게 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뜻을 모아 중건했다. 막내 아들인 조년은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다정가'의 지은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성주 이씨 대종회는 3은의 1인인 도은 이숭인,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였던 이여송, 조선 태종때 영의정을 지낸 이직 등 17인의 성주이씨 선조들의 시비를 한 자리에 건립하였다.

  이 중에는 이조년이 형 억년과 길 가다 두 금덩이를 주워 나눠 가진 뒤 '형님을 시기하는 마음이 생겨 한강을 건너다 물에 던졌다'는 '투금탄'(投金灘) 사연도 있고, 이조년 증손 이직의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라는 '오로시'(烏鷺詩)도 새겼는데, 모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성주참외하우스 들녘

 

  전형적인 농촌 지역인 성주군은 어딜 가나 비닐하우스가 자리하고 있다. 농번기 들녘마다 빼곡하게 채워진 비닐하우스는 내리쬐는 햇빛에 반사되며 마치 은빛 물결을 연상케 한다.

  '성주참외하우스 들녘'은 성주를 대표하는 농산물이자 주소득원인 참외를 재배하기 위하여 설치한 수많은 비닐하우스가 넓은 들판을 가득 메운 풍경으로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성주참외는 전국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경영비를 포함한 연간 수입 규모가 거의 6천억 원에 달할 정도로 지역경제의 근간을 이룬다.

  성주군은 급변하는 관광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코자 전 국민 대상의 제안공모를 거쳐 기존 성주 8경을 '성주10경'으로 확대하면서 '성주참외하우스 들녘'을 포함하여 지역관광 이미지 개선 및 브랜드 가치 실현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2019년 성주읍 대흥리에 참외를 주제로 다양한 체험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성주참외체험형테마공원이 개장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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