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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영주 가볼 만한 곳 총 정리, 우리나라 최초의 소수서원과 부석사를 찾아가다.

by 혜강(惠江) 2025. 2. 18.

 

영주 가볼 만한 곳 총 정리

 

우리나라 최초의 소수서원과 부석사를 찾아가다.

 

글·사진 남상학

 

 

  영주는 소백산맥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낙동강의 여러 지류가 시내를 흐르고 있어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자연 관광자원뿐만 아니라 귀중한 문화적 자원도 함께 갖추고 있는 소백산권의 산악관광지이다. 풍기에서 부석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과 경북의 고택을 한데 모아놓은 선비촌 무량수전 등 값진 문화유산과 함께 석양이 아름다운 천년고찰 부석사까지 만난다.

  그뿐이 아니다. 성혈사, 초암사, 비로사 등 사찰과 연화봉 아래엔 월인석보·훈민정음의 판목을 보관해 오던 희방사와 희방폭포가 있다. 그리고 도심의 영주동 한복판에 마치 거북모양을 한 나지막한 구성산이 있고, 산에는 옛날의 산성터가 있으며 구성공원이 조성되어 있다.이 모든 것을 만나러 가는 영주 여행은 풍기인삼, 순흥묵밥을 맛보는 것 만큼 즐겁다.

 

 

●소백산국립공원

경북 영주시 봉현면 소백로 1794 (오현리 144), 054-630-0700

 

  소백산국립공원은 경북 영주시와 봉화군 및 충북 단양군에 이르는 소백산 일대에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영주시의 북서쪽에 있는 소백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국망봉과 상월봉(1,396m), 형제봉(1,177m) 등이 있으며, 남서쪽으로 제1연화봉, 연화봉, 제2연화봉(1,357m)이 있다. 죽령(689m]) 경계로 남서쪽으로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병풍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또 제2연화봉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희방계곡과 제1연화봉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금선계곡, 비로봉의 남동쪽으로 흐르는 월전계곡과 석륜암계곡 등 많은 계곡이 흐르고 있다. 이 계곡들과 함께 희방폭포, 비로폭포, 석천폭포, 죽계구곡과 같은 경관도 수려하다. 소백산국립공원에는 역사가 깊은 사찰이 다수 분포하는데 부석사, 비로사, 초암사, 성혈사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부석사는 676년에 창건된 사찰로 중요 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소백산국립공원의 주요 시설로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 희방탐방지원센터, 소백산삼가야영장이 있다. 또 연화봉에는 소백산천체관측소, 제1연화봉에는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가 있다. 비로봉의 북쪽으로는 평균 수령 약 350년의 소백산 주목군락(천연기념물 제244호)이 펼쳐지며, 총 본수는 3,798본(천연기념물 지정 1,999본 포함)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주목 군락지이다. 이 외에도 희귀식물인 왜솜다리가 자생하고 있다.

  특히 연화봉 일대에서는 봄마다 철쭉이 만개하여 매년 영주소백산철쭉제를 개최하고 있다. 소백산국립공원의 탐방로는 초암사 코스, 삼가동 코스, 희방사 코스, 죽령 코스, 어의곡 코스, 천동계곡 코스, 도솔봉 코스로 총 7개의 코스가 있다.

 

 

●영주 부석사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북지리 148), 054-633-3464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중턱에 있는 절로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의상(625∼701)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였다. 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의 도리로 국론을 통일하여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하였으며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

  부석사라 이름하게 됨은 불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한데서 연유하였다 한다. 고려 시대에는 선달사 혹은 흥교사라 불렸다. 1916년 해체 보수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초기에 무량수전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7년 (1358) 적의 병화를 당하여 우왕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 3년 (1377) 조사당이 재건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18)·조사당(국보 19)·소조여래좌상(국보 45)·조사당 벽화(국보 46)·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 등의 국보와 3층석탑·석조여래좌상·당간지주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유산을 비롯하여 삼성각·취현암·범종루·안양문·응향각 등 많은 국가유산이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이 있다.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 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여래좌상은 국내에 전래하는 최고의 소상(塑像)이다. 무량수전 서쪽에 있는 우물은 의상대사의 호법룡(護法龍)이 살았다는 우물이라 전한다.

 

 

●영주 소수서원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내죽리 151-2), 054-639-5852

 

  영주시 순흥면에 위치한 서원으로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541년(중종 36) 풍기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이듬해 이곳 출신 유학자인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를 설립하였고, 1542년 유생 교육을 겸비한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1544년에는 안축과 안보를 추가 배향하였다.

  1546년(명종 1)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안현은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운영 방책을 보완하는데 주력하였으며,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은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조정에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과 국가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1550년 ‘소수서원’이라 사액되었고, 아울러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또한, 명종은 대제학 신광한에게 명하여 『사서오경』과 『성리대전』 등의 서적을 하사함으로써 소수서원은 공인된 교육기관으로서 이후 다른 서원들의 설립과 운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 뒤 1633년(인조 11) 주세붕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서원의 지나친 건립과 부패로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가 되었다.

  경내 건물로는 문성공묘·명륜당·일신재·직방재·영정각·전사청·지락재·학구재·서장각·경렴정과 탁연지·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1963년 지정) 등이 있다. 그 밖에 1963년 국보로 지정된 안향 초상, 1968년 보물로 지정된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 1981년 보물로 지정된 주세붕 초상이 소장되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서장각에는 141종 563책의 장서가 있다.

  서원의 배치는 강학의 중심인 명륜당이 동향, 배향의 중심 공간인 사당이 남향이며, 기타 전각들은 어떤 중심축을 설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배치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자리 잡고 있어 곧바로 명륜당의 남쪽 측면으로 출입할 수 있게 되어있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중앙의 대청과 온돌방 및 마루방으로 되어있고, 대청·온돌방·마루방 주위로 툇마루를 둘렀다.

  일신재와 직방재는 각각 동재와 서재로서 다른 서원에서는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서원에서는 하나의 연속된 채로 건립하여 편액을 달아 구분하고 있다. 이 동서 양재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 및 협실 앞의 툇마루로 되어 있다.

  문성공묘는 명륜당의 서북 측 따로 쌓은 담장 속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집으로 장대석의 낮은 기단 위에 원형의 주좌(柱座)가 있는 다듬은 초석이 있고, 그 위에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그 밖에 서고·전사청·고직사 등은 모두 사당 담 밖에 세워져 있다. 소수서원은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8곳의 서원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소수박물관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80 (청구리 346), 054-639-7964

 

  소수박물관은 유교를 중심으로 한 전통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영주 소수서원을 통해 조선 유학의 전통을 한눈에 체험할 수 있도록 설립된 유교전문박물관이다.

  2004년 9월 개관한 소수박물관은 부지면적 1만 4424㎡, 건물 3,196.71㎡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이다. 지하 1층에는 기계실·공조실·전기실, 1층에는 홀·전시실·휴게실·수장고, 2층에는 사무실·학예실·훈증실이 있다. 별관 기획전시실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이며, 지하 1층에는 기계실· 전기실, 1층에는 기획전시실, 2층에는 세미나실·수장고가 있다.이 밖에 목조건물로 흥경루가 있다.

  소수박물관의 제1전시실에는 영주 가흥리 암각화, 영주 순흥 벽화고분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제2전시실은 유교에 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제3전시실은 서원과 향교, 제4전시실은 소수서원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2020년 3월 현재, 고서 6,938점, 고문서 1만 4585점, 책판 961점, 서예품 121점, 현판 43점, 민속품 993점, 기타 228점 등 총 24,724점을 소장하고 있다. 소수박물관은 연중무휴로 운영하고 있다. 소수박물관은 유교 유물의 보존 전시 외에도, 지역 문화의 활성화와 생동감 있는 역사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2017년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에서 우수인증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선비촌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96 (청구리 357), 054-630-9712

 

  영주 선비촌은 순흥면 청구리, 소구서원에서 죽계천 건너에 있다. 조선 시대의 전통가옥을 복원하고 생활상을 재현하여, 유교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영주시가 건설한 테마파크이다. 2004년 9월 22일 문을 열었다.

  죽계천에 접한 논을 흙과 돌로 메워 마련한 1만7,459평(57,717㎡) 부지에 들어선 선비촌은 문화쇼핑영역, 전시숙박영역, 휴게영역, 교육영역, 편익시설 등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선비촌의 핵심을 이루는 12채의 고택은 영주시 관내 여러 마을에 흩어져 있던 기와집과 초가집의 본디 모습을 되살려 지었으며, 입신양명(立身揚名), 거무구안(居無求安),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 등의 선비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만죽재 고택, 해우당 고택, 김문기 가옥, 인동장씨 종택, 김세기 가옥, 두암 고택, 김상진 가옥 등 기와집 7채와 장휘덕가옥, 김뢰진 가옥, 김규진 가옥, 두암 고택 가람집, 이후남 가옥 등 초가집 5채는 가족 관광객들이 숙박할 수 있도록 개방된다.

  또 고택에 따라 윷놀이, 제기차기, 장작패기, 지게지기, 새끼꼬기 등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고택 12채 외에 정자, 물레방아, 강학당, 원두막, 대장간 등의 민속시설과 강학시설, 음식점, 주차장 등도 마련되었다.

 

 

●순흥향교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길 15-36 (청구리 437)

 

  순흥향교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미상이나, 고려 말기 혹은 조선 초기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처음에 순흥부 북쪽 금성에 창건되었다가 1718년(숙종 44) 동쪽 위 야동으로 이건하였고, 이후 1750년(영조 26) 남쪽 석교리로, 1770년(영조 46)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71년에 중수하고 1975년에 누각과 단청을 보수하였다.

  본래 순흥향교는 조선시대 순흥 지역 유생들이 머물며 학문을 닦고,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제향의 공간이었다. 후에는 향촌 자치 기구로 활용하기도 하였으나 16세기 이후 향교 운영상의 어려움과 사회, 경제적 변화 속에 교육 기능은 약화하고 제향의 기능만 남았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7칸의 대성전, 6칸의 명륜당, 각 5칸의 동무와 서무, 4칸의 동재 7칸의 문루, 삼문, 협문, 주사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과 10철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 6현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이 밖에도 조선 후기 향교 운영 과정에서 작성된 집사안, 면분류원임안, 교중잡록 등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교육시켰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다. 대신 봄 · 가을에 석전을 봉행(奉行)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 1인과 장의 수인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성혈사

경북 영주시 순흥면 죽계로 459-99 (덕현리 277), 054-633-2582

 

  성혈사는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277번지 소백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신라 때 의상이 창건하였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의상은 왕명으로 소백산 기슭에 초암사를 짓고 있었는데, 매일 지붕의 서까래가 없어졌다. 의아하게 여긴 의상이 찾아보니 서까래가 인근 숲속에 쌓여 있었다. 이에 주위의 풀을 뜯어 초막을 지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본래 초암사가 있었으며, 초암사에서 수도를 하던 의상이 이 절을 창건했다고도 한다. 절 이름은 근처의 바위굴에서 성승이 나왔다고 해서 붙여졌다. 바위굴은 절 아래 30m 지점에 있다. 1980년대 나한전을 보수할 때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1553년(조선 명종 8)에 세우고, 1634년(인조 12)에 중창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나한전·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보물 제832호로 지정된 성혈사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 건물로 배흘림기둥과 꽃 창호문이 매우 아름답다. 나한전에는 매우 우수한 기법으로 조각된 조선시대의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어 성혈사가 예로부터 나한 신앙 도량이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유물로는 대웅전 앞에 석조비로자나 불상이 전한다. 흰색으로 덧칠한 상태이며,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 양식을 지녀 절의 창건 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밖에 나한전 앞 좌우에 석등2기가 전한다.

 

 

●초암사

경북 영주시 순흥면 죽계로315번길 330 (배점리 525-3), 054-633-2322

 

  초암사는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고 나서 세운 사찰로 창건 당시에는 소백산에서 비로사 다음으로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초암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초암사는 의상이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화가 전한다. 하나는 676년(문무왕 16)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하기 위해 절터를 보러 다닐 때, 이곳에 임시로 초막을 지은 뒤 기거하는 장소로 삼았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의상이 지금의 부석사 터를 찾아서 불사를 시작했는데, 서까래가 없어져 도력(道力)으로 살펴보니 이곳에 떨어져 있음을 발견하였고, 이것을 부처의 뜻이라 생각한 의상이 여기에 초암(草庵)을 짓고 한동안 수행한 뒤 부석사를 건립했다는 설이다.

  조선 후기까지 건재하던 초암사가 언제 폐사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6.25전쟁 이후 몇 차례 중건되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초암사의 가람은 중심 불전인 대적광전을 비롯해 대웅전, 삼성각, 염불당, 안심당, 심검당, 범종각, 일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적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구조로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을 협시로 하는 삼존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석가여래와 관세음보살·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삼성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내부에는 칠성·독성·산신 탱화가 걸려 있다. 특히 삼성각 옆에는 돌로 만든 개[犬] 석상이 있는데, 개 석상을 세운 이후에는 도둑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삼성각, 요사, 범종각, 염불당, 심검당, 범종각, 일주문이 있다.

  초암사 내에 소장되어 있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는 초암사 삼층석탑, 초암사 동부도, 초암사 서부도가 있다.

 

 

●죽계계곡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소백산 아래에 있는 계곡으로 죽계는 고려 후기 명현이자 문장가인 근재(謹齋) 안축(安軸)[1282~1348]의 「죽계별곡(竹溪別曲)」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신재 주세붕과 퇴계 이황 등 조선 시대 수많은 선비가 유상하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죽계는 소백산 국망봉(1420.8m) 서쪽 아래 석륜골과 비로봉(1,439.5m) 동쪽 하가동에서 발원한다. 이후 북동쪽의 옥녀봉과 남서쪽의 원적봉(963m), 남쪽의 이자산(621m)이 만든 공간을 통과하여 순흥저수지로 유입된다. 기암괴석을 휘감아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치 수정 구슬을 흩어 놓은 듯 아홉 구비가 절경을 이루어 ‘죽계구곡’이라 한다.

  죽계구곡(竹溪九曲)은 그 설정에 있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소수서원에서 시작하여 상류의 초암사 중봉까지로 보는 견해와 소백산 아래 초암사 뒤에서 시작하여 시냇물을 따라 내려가 삼괴정까지로 보는 견해이다. 주세붕과 이황의 죽계구곡은 『순흥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각 곡의 이름은 주세붕과 이황이 소백산과 죽계계곡의 풍치에 심취하여 정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영조 때 순흥부사를 지낸 신필하의 죽계구곡은 『죽계지』와 『흥주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먼저 1곡을 백운동 취한대, 2곡을 금성반석, 3곡을 백자담, 4곡을 이화동, 5곡을 목욕담, 6곡을 청련동애, 7곡을 용추비폭, 8곡을 금당반석, 9곡을 중봉합류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구곡은 송나라의 주희(朱熹)가 명명한 「무이구곡」에서 연유하는데, 무이구곡은 동네 입구를 제1곡으로 시작하여 계곡 마지막을 제9곡이라 칭했다. 반면 신필하의 죽계구곡은 그와 반대로 동네 입구에서 제9곡이 시작된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죽계구곡은 현재 소백산자락길 (12자락 170㎞)의 제1자락길에 포함되어 있다. 이 코스는 선비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맑은 물과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죽계구곡은 2017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선정한 ‘국립공원 힐링로드 10선’에 선정되어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져 오고 있다.

 

 

●소백산여우생태관찰원

경북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2481번길 33 (태장리 174-1),  070-4270-6384

 

  소백산여우생태관찰원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토종여우의 복원을 위해 영주시가 부지를 제공하여 시설을 조성했으며,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이 운영하는 야생동물 복원시설로 2016년 개원하였다. 소백산여우생태관찰원은 다치거나 아픈 여우를 회복시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등 여우 복원을 통해 생태계 연결 고리를 튼튼하게 하고자 건립하였다.

  소백산여우생태관찰원은 대지면적 2,880㎡에 관리동(3층)과 홍보동(2층)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생태학습장은 4,610㎡ 규모이다. 소백산여우생태관찰원에서는 생태축 복원의 핵심사업으로서 소백산여우 복원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체험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전문해설사가 동행하여 생태학습장 탐방이 가능하다. 이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이며, 매우 월요일에 휴원한다.

  

 

●영주 순흥 벽화 고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547-16 (읍내리 산29-1), 054-639-6584

 

  영주 순흥 벽화 고분은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벽화무덤으로 1985년 11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평면 직사각형의 돌방무던(석실묘)이며, 크기는 동서 3.35m, 남북 2.14m이다. 1985년 7월 10일 대구대학교 이명식 교수가 발견하였다.

  무덤은 관을 운반하기 위한 널길과 관을 넣는 널방으로 이루어진 횡혈식 석실분이며, 내부구조는 연도가 마련된 석실분으로서 연도를 통해 들어가면 시신을 모신 현실이 있고, 이 현실의 동쪽으로 관을 올려놓았던 관대가 비교적 높게 마련되어 있으며, 아울러 규모가 작은 보조관대도 현실의 서북 모서리에 마련되어 있다.

  벽화는 천장을 제외한 내부의 모든 벽면과 관대의 측면까지 석회를 바른 네 벽에 채색화가 그려져 있다. 동쪽에는 새와 산이 그려져 있고 북쪽에는 산과 연꽃 그림, 서쪽에는 양손에 뱀을 휘어 감은 남성, 기와집, 버드나무 등이 있다. 남쪽에는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과 “기미중묘상인명□□(己未中墓像人名□□)”의 묵서명문이 있다. 묵서명문을 통해 추정한 고분의 축조 연대는 539년(법흥왕 26)이다. 유물은 도굴로 인해 인골과 약간의 토기편만 남아 있다.

  학계에서는 그 내용과 문화사적 성격으로 보아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벽화 중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풍기향교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금계로 104 (교촌리 147-1), 054-636-3115

 

  조선시대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본래는 금계동 임실마을 서편에 있었으나, 1541년(중종 36) 주세붕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문묘에 참배한 뒤 그 위치가 읍에서 너무 멀고 식수가 불편하다 하여 이듬해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1692년(숙종 18)에 군수 정증이 구지로 옮겼다가, 1735년(영조 11) 군수 임집이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1950년 6·25전쟁으로 양심루와 동재·서재가 소실되었다. 1971년에 헌관실을 보수하고 1977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으며, 1980년에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또, 1983년에 서무를 보수하고 1985년에 동무를 중수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 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음력 2월과 8월에 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대성전과 동무·서무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1호로 지정되었다.

 

 

●대한광복단기념공원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산법리 산85-13

 

  독립운동단체대한광복단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원으로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산법리에 있다. 1913년 12월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서 조직된 비밀결사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광복단(풍기광복단)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는 공원으로,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현충시설이다.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추모제전 공간으로 이용하기 위해 사단법인 대한광복단 기념사업회가 주축이 되어 1995년 조성하였다.

  부지면적은 5만 8,392㎡ 안에 대한광복단추모탑 · 대한광복단기념비 · 독립운동영주기적비 · 무공수훈자전공비 등 상징조형물 1기와 기념비 3기, 기념관(지하 1층·지상 3층)과 추모제단, 운동장, 화장실·주차장·휴게시설 등의 부대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의 기념관 부지면적은 5만 8392㎡이며 기념관에는 제1전시관부터 제5전시관까지 있다. 잔디광장, 팔각정 및 벤치 등 휴게 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관에서는 민족 독립운동과 의열 투쟁, 경술국치와 무단통치, 제2·3전시관에서는 대한광복단, 제4전시관에서는 영주시의 독립운동사 등을 전시하고 있다. 마지막 제5전시관에서는 선열과 함께하는 사진 체험을 할 수 있다. 대한광복단기념관 누리집에서는 VR사이버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무장항일 단체였던 대한광복단은 의병 출신 독립운동가들과 계몽운동가, 영남 지역의 유림 등 여러 계층이 참여하였던 비밀결사 조직으로 군자금 모금, 민족반역자 응징, 일제관헌 습격, 친일부호 총살 등의 항쟁을 벌였다.

 

 

●금선계곡, 금선정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134

 

  금선계곡은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2리 장선마을에 꼭꼭 숨어 있다. 장선마을은 그 옛날 생긴 모양이 긴 배 같다고 해서 '장선(長船)'이라 불렸지만, 이후 마을에 오랫동안 착한 사람이 많이 나서 번성하라는 뜻으로 '장선(長善)'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됐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냇물을 따라 계곡으로 들면 아름드리 송림에 둘러싸인 금선정이 거대한 바위 절벽을 깔고 앉아 있다.

  정자가 들어선 금선계곡은 1.5㎞에 걸쳐 골짜기를 가득 메운 기암괴석과 제멋대로 구부러진 200~300년생 노송이 빼곡하게 들어서 풍광이 빼어나다. 이 계곡은 조선 중기 문신 금계 황준량(1517~1563)이 생전에 즐겨 찾던 곳. 어릴 적부터 재주가 뛰어나 기동(奇童)으로 불렸던 그는 1537년 생원이 된 후 1540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던 인물이다. 이후 『중종실록』『인종실록』편찬에 참여했고 신녕현감, 단양군수, 성주목사로 재임하다 1563년 병을 얻어 사직하고 고향 풍기로 돌아오던 중 예천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계곡 바위절벽을 찾았던 금계는 "소백 운하는 어디가 제일인가. 금선대 풍월은 스스로 무엇과도 비할 길 없구나"라며 금선계곡과 금선대의 아름다운 풍광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고 한다. 정자를 이고 있는 바위절벽 '금선대(錦仙臺)' 역시 금계가 지어준 이름. 이후 1756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송징계가 바위벽에 '錦仙臺(금선대)'란 글자를 새겼고, 1781년 이한일 군수가 정자를 세우고 '금선정'이라 이름 붙였다. 1785년 이대영 군수는 '금선정' 현판을 당시 목사였던 조윤형의 글씨를 받아 새겨 걸었다. 금선계곡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금선정은 방형 정자로,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4칸통에 사방으로 벽체 없이 개방시킨 입면이고, 바닥은 우물마루를 설치하였다. 전면 전체와 양 측면 앞칸의 측면으로는 헌함을 설치했다. 구조는 자연석 초석 또는 기단 없이 기암절벽 위에 두리기둥을 바로 세우고 우물마루를 깔았다. 주상부는 굴도리 장혀수장집으로 꾸몄다. 이렇듯 금선정은 조선 시대 풍류를 즐기던 선비문화를 보여준다.

 

 

●비로사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로 661-20 (삼가리 390), 054-638-5033

 

  소백산 비로봉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비로사는 680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비로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석조비로자나불좌상·석조아미타여래좌상 2구, 석조당간지주, 진공대사보법탑비만 남고 모두 불타버렸다.

  1609년(광해군 1) 경희가 중건하였고 1684년(숙종 10) 월하가 법당과 산신각 등 40여 칸을 중창하였다. 여러 기록에 의해 개항기까지 사세가 계속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 1907년 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과 사지가 화재로 소실되었다.

  1992년에 현재 주지인 성공이 부임하면서 다시 불사가 재개되었고 이후 적광전, 나한전, 반야실, 망월당 등이 건립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비로사의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로 지정된 영주 비로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와 영주 비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비로사 아미타후불탱화,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 등이 있다.

 

 

●죽령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일대,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 054-638-6196

 

   소백산맥을 넘는 죽령은 문경새재와 추풍령 등과 함께 영남의 삼관문의 하나이고, 그중 으뜸으로 손꼽혀 왔다. 소백산 제 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록한 지점을 정상으로 해발 689m를 기록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한동안 고구려와 신라가 대치해 불꽃튀는 격전을 펼치기도 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때인 서기 470년경이며, 그 후 신라 진흥왕 12년(551년)에 신라에 복속되자, 영양왕 1년(590년) 고구려 명장 온달 장군이 왕께 자청하여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 등의 기록(삼국사기)과 함께, 소백산 북쪽 자락에 온달산성이 전해오고 있다.

  이후에도 영남 내륙의 여러 고을이 서울 왕래를 모두 이 길을 거쳐야 해, 나라의 관리들은 물론, 온갖 물산이 보부상들의 등에 업혀 이 고갯길을 넘나들었다. 그래서 고갯길 양쪽의 단양과 청풍, 영주와 풍기 등지에는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객점, 마방들이 들어섰고, 이들 장터는 늘 성시를 이루곤 했다는 것이다.

  줄잡아 2천여 년 유구한 세월에 걸쳐 영남 내륙을 잇는 동맥의 역할을 해온 이 길이 2001년 터널이 뚫리면서 이제 다시 호젓한 옛 모습을 되찾은 것 같다. 더욱이 그동안 숲 덩굴에 묻혀있던 그 옛날 오솔길을 영주시에서 옛 자취를 되살려 보존하자는 뜻에서 1999년 5월 이 길(2.5km)을 다시 뚫어 안내판과 함께 단장을 마쳤다.

  이제 죽령은 새 터널까지 열려, 시대를 달리하는 3가지의 길 모습들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역사의 뒤안길을 장식하게 됐다. 이 같은 내력을 되새기며 넘는 맑고 한적한 죽령고개는 두고두고 멋진 고갯길 드라이브코스로 남아 있다.

 

 

●희방사, 희방계곡

경북 영주시 풍기읍 죽령로1720번길 278 (수철리 산1-1), 054-638-2400

 

  희방역에서 동북쪽으로 4km 정도 되는 소백산 기슭 해발 850m에 있으며,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두운대사가 세웠다. 1850년(철종 1) 화재로 소실되어 강월(江月)이 중창하였으나 6·25 때 4동 20여 칸의 당우와 사찰에 보관되어오던 『월인석보』 권1과 권2의 판본도 함께 소실되었다. 그러나 주존불만은 무사하여 두운이 기거하던 천연동굴 속에 봉안하였다가 1953년에 주지 안대근이 중건한 뒤 대웅전에 봉안하였다.

  현 희방사는 대웅보전과 지장전을 비롯하여 삼성각·종각·일주문 및 3채의 요사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보전은 희방사의 중심 불전으로 석가모니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삼성각은 칠성·독성·산신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종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인 사모지붕 구조이다. ‘해동화엄종찰(海東華嚴宗刹)’이라고 쓴 현판을 단 일주문 및 요사 등이 자연 지형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국가유산으로는 1986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종과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높이 1.5m와 1.3m의 부도 2기가 있다. 동종은 1742년(영조 18)에 제작되었는데, 특히 은은한 종소리가 유명하다. 6.25 전쟁 당시 소실됐던 『훈민정음』 해례본 목판 목간본이 60년 만에 다시 희방사로 돌아왔다. 『훈민정음』 해례본 목판은 2018년에 경상북도, 안동시 유교문화보존회가 복각하여, 원 소장처였던 희방사에 기증했다. 현재 종무소에서 보관하고 있다.

  절 입구는 자연림이 우거져 햇빛을 가리며, 희방사 옆의 희방계곡은 깊은 골에서 느낄 수 있는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여름에는 시원한 피서지로 인기 있고, 가을이면 단풍과 어우러져 더욱 운치 있는 풍광을 만날 수 있다. 계곡 주변에는 푸른 숲이 우거져 있어 삼림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며, 계곡의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맑고 거센 물줄기가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희방폭포를 만날 수 있다. 희방폭포는 높이 28m로 내륙지방 최고의 폭포이다.

 

 

●영주 인삼박물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죽령로 1378 (창락리 452), 054-639-7686

 

  경북 영주 풍기는 우리나라에서 인삼재배를 처음으로 시작한 곳으로, 풍기인삼은 소백산록의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에서 생산되어 다른 지역 인삼보다 내용조직이 충실하고, 인삼향이 강하며 유효사포닌 함량이 매우 높다. 영주시는 풍기인삼의 우수성과 역사를 알리고자 2013년에 인삼박물관을 개관했다. 인삼박물관은 쉽고 재미있는 문화공간으로 전시 외에도 체험과 교육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인삼박물관은 연면적 2,829.97㎡ 규모의 지상 2층 건물이다. 1층에는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실, 2층에는 상설전시장, 웰빙체험관, 뮤지엄샵이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풍기인삼의 전파, 한국 인삼의 시작 풍기, 죽령옛길, 인삼의 생태와 풍기의 자연환경, 풍기인삼사, 풍기 사람들의 삶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 밖에 체험공간인 인삼나라를 비롯하여 세미나실, 영상실 등이 있다.

  인삼박물관을 쉽고 재미있는 문화공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곳곳에 체험공간을 마련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년 여름이면 초등학생 대상의 어린이 문화교실을 운영하고, 관내 초등학생들의 단체 체험, 성인 대상의 인삼 대학을 운영하여 올바른 인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박물관 입구에 있는 소백산 인삼시장과 희방사역, 희방폭포 등이 있다.

 

 

●소백산풍기온천(리조트)

경북 영주시 풍기읍 죽령로 1400, 054-604-1700

 

  풍기읍 시가지로부터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소백산 풍기온천은 지하 800m 심층에서 분출하는 100% 천연원수로 불소가 함유된 알칼리성 온천으로서 전국에서 으뜸가는 유황온천이다. 주위에는 소백산 국립공원이 있어 등산을 곁들일 수 있으며 부석사, 소수서원, 선비촌 등은 유ㆍ불교 문화의 근본을 말해주고 있다.

  소백산 풍기온천의 물은 유황, 불소, 중탄산 등의 우리 몸에 좋은 물질이 온천수에 용해되어 있어 만성관절염, 신경통, 금속중독, 동맥경화증, 당뇨병, 만성 기관지염,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구성공원(가학루, 반구정)

경상북도 영주시 중앙로63번길 41-32 (영주동 439-2)

 

  구성공원은 영주시민의 여가생활 여건을 개선하고 휴양 장소를 제공하기 위하여 조성되었다. 철탄산에서 공원 쪽을 바라보면 마치 거북이 한 마리가 철탄산 쪽으로 기어오르고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구성’이라 부른다. 공원의 북쪽에 있는 불바위가 거북이의 머리이고, 가학루가 있는 곳이 등, 가학루에서 불바위로 이어지는 능선이 목이다. 반구정과 동구대가 각각 거북이의 다리 모양으로 보인다.

  구성공원은 조선시대 구성산성지에 조성된 공원이다. 조선을 건립한 태조 이성계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축조하였는데, 영주시 일대는 현재 구성공원이 있는 구릉을 중심으로 흙과 돌을 쌓아 만든 구성산성지가 남아 있다. 구성산성은 둘레 41.26㎞, 높이 289.89m가 되도록 돌로 쌓았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안에 우물과 군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구성공원의 정상에는 가학루가 있고, 동쪽으로 동구대, 가학루 아래에 서구대와 구학정이 있으며, 구성산 서쪽에 영훈정이 있다. 가학루는 조선 시대 영천군의 동헌 바깥문으로, 원래는 영주초등학교 강당 자리에 있었다. 또 반구정은 고려를 회복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안동시 예안면 기사리에 있던 것을 옮겨 세웠다. 정상의 가학루에 오르면 영주시가지는 물론, 멀리 소백산(1,440m) 연봉을 비롯하여 학가산(882m)·문수산 등이 시원스레 보인다.

  구성공원에는 산책로와 운동기구 등의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영주시민들의 위락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또 2016년 기준 현재 구성공원 일원에는 도시재생선도사업의 하나로 ‘할매묵공장’, ‘할배목공소’ 사업이 진행되었다.

 

 

●국립산림치유원

경북 영주시 봉현면 테라피로 209 (두산리 1330), 054-639-3400

 

  국립산림치유원은 백두대간의 풍부한 산림자원을 이용하여 산림의 치유 효과를 통한 국민 건강 증진, 산림치유 체험·연구·교육 기능을 통합한 산림치유 산업화 기반 마련, 백두대간 지역의 균형 발전 모델 제시를 위해 2007년 12월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채택되어 2015년 11월 준공하였다.

  국립산림치유원은 영주시 및 예천군 일대 28,890,000㎡ 부지에 준공되었으며 중심시설지구는 1,520,000㎡이다. 국립산림치유원은 영주시 권역의 주치골 지구와 예천군 권역의 문필봉 지구로 구분된다. 주치골 지구에는 주치마을, 산약초원, 소통방, 건강증진센터, 수련센터, 수치유센터, 건강증진지원센터, 시설관리센터, 명상센터, 판매시설, 마실치유숲길, 금빛치유숲길이 있다.

  문필봉 지구에는 안내센터, 작업치유정원, 산림치유문화센터, 맨발치유정원, 향기치유정원, 산약초치유정원, 문필마을, 문드래미길, 문화탐방치유숲길, 마루금치유숲길, 별바라기치유숲길, 등산치유숲길이 있다.

  국립산림치유원의 산림치유 프로그램은 단기 프로그램과 장기 프로그램으로 구분된다. 단기 산림치유 프로그램은 ‘숲, 테라피’,‘DIY,테라피’,‘수(水), 테라피’,‘휴(休), 테라피’,‘힐링숲’,‘다스림 치유캠프’, ‘숲속힐링 캠프’로 구성되어 있다.

  장기 산림치유 프로그램은 ‘산림 운동’, 신체 균형 운동’, 마음 균형’, 건강 회복’, 숲속 힐링 스테이’, 숲속 힐링 캠프’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산림치유원의 숙박 시설은 개인 또는 가족 단위의 체류자를 위한 영주 주치마을이 있으며, 장기간 체류를 위한 정주형 숙박 시설인 문필마을, 수련센터가 있다.

 

 

●수도리전통마을(무섬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문화예술과(문화재) 054-639-6584

 

  문수면 수도리는 아름다운 자연과 옛 고가가 그대로 보존된 전통마을이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원래 이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동쪽 일부를 제외한 3면을 휘돌아 흐르고, 내 안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모래톱 위에 마을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은백색 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맞은편에는 소나무, 사철나무 등이 숲을 이룬 나지막한 산들이 강을 감싸 안고 이어진다. 또, 강 위로는 견실한 다리가 놓여져 마을과 마을을 잇고 있다.

  이곳에 사람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으로 여겨진다. 반남박씨(潘南朴氏) 입향조(入鄕祖)인 박수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뒤,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김씨(宣城金氏) 대(臺)가 영조 때 다시 무섬에 들어왔다. 이 무렵부터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함께 세거(世居)해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모두 48가구(2004)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가옥 가운데 38동이 전통가옥이고, 16동은 100년이 넘은 조선 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그야말로 마을 전체가 고택과 정자로 이루어져 있고, 안동 하회마을과 지형적으로도 비슷해 천혜의 자연조건을 자랑한다. 하회마을과 달리 일반에 그리 알려지지 않아 옛 선비고을의 맛을 흠씬 맛볼 수 있는 것도 무섬마을만이 가진 특징이다. 이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과 정겨운 자연 속에 고풍스러운 옛집이 즐비한 수도리는 고향을 찾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오기에 좋은 곳이다.

  김규진가옥, 김위진가옥, 해우당고택, 만죽재고택 등 9점이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와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2013년 8월 23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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