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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봉화 가볼 만한 곳 총 정리, 때 묻지 않은 청정 자연을 찾아가다.

by 혜강(惠江) 2025. 2. 21.

 

봉화 가볼 만한 곳 총 정리

 

때 묻지 않은 청정 자연을 찾아가다.

 

글·사진 남상학

 

 

 

  봉화군을 대표하는 청량산. 청량산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절벽이 아름다운 산으로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렸던 산이다. 특히, 청량산에는 퇴계 이황이 성리학을 집대성한 청량정사와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리보전 등 의미 있는 역사적 유물을 접할 수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 90m에 이르는 하늘다리가 압권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닭실마을은 깨끗한 물과 산세, 그리고 넓은 바위까지 삼박자를 갖추고 있어 가족 피서지로 최적! 분천역 산타마을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있는 겨울이 절정이다.

 

 

●청량산도립공원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로 255 (관창리 1725-2), 054-672-4994

 

  청량산은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9km, 안동시에서 동북쪽으로 24Km 떨어져 있다. 청량산(870m)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을까 두려운 듯 다소곳이 숨어있다. 청량산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린 한국의 대표적인 명산이며, 산이 높지는 않지만 크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1982년 8월 21일에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청량산은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험준한 지세를 이루고 있으며, 산의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휘감아 돌아나간다.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선학봉·축융봉·경일봉·금탑봉·자란봉·자소봉·연적봉·연화봉·탁필봉·향로봉 등의 12개의 고봉이 치솟아 절경을 이룬다. 이 가운데 금탑봉 오른쪽의 절벽인 어풍대(御風臺)는 최고의 경승으로 꼽힌다.

  청량산은 이러한 지형적 요건으로 인해 일찍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발전하였다. 축융봉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솟은 봉우리와 밀성대의 9∼10부 능선에는 자연적 여건을 잘 살려 청량산 내 계곡과 산성마을을 감싸는 포곡식 형태의 청량산성(공민왕 산성)이 축조되었다. 고려 공민왕이 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왔을 때 개축되었다가 1595년(선조 28)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지시로 다시 보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부터 보수공사를 시작하여 옛 모습에 거의 가깝게 복원되었다.

  또, 청량산은 신라 때의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았다는 김생굴을 포함하여 금강굴·원효굴·의상굴·방야굴·방장굴·고운굴·감생굴 등 8개 굴이 있으며,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암자, 관창폭포 등 수많은 관광자원을 갖고 있다.

  청량산도립공원 표석 뒤로 퇴계의 '청량산가'시비가 있으며, 청량산 산행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청량산은 퇴계뿐만 아니라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의 명사가 찾아와 수도했던 산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전설처럼 전해온다.

  2008년 5월에 준공된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의 선학봉(826m)과 자란봉(806m)을 연결하는 산악형 현수교량(길이 90m)이다. 이렇듯 청량산은 문화유산과 더불어 많은 탐방객들이 찾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였다.

  산행은 청량산 휴게소 아래 입석에서 시작한다.노송이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 오산당과 내청량사를 거쳐 주봉우리인 장인봉 정상에 오르면 낙동강과 청량산 줄기를 내려다볼 수 있다. 하산은 보살봉과 김생굴 · 외청량사를 지나 다시 입석으로 내려오는 길이 잘 알려진 코스이다. 이밖에 광석나루에서 시작해 내청량사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외청량사를 지나 이름실로 내려오는 코스와 남면리에서 시작해 외청량사와 김생굴·경일봉을 지나 정상에 오른 뒤 내청량사·오산당을 지나 광석나루터로 내려오는 코스가 있다.

 

 

●청량사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길 199-152 (북곡리 247), 054-672-1446

 

  청량산 도립공원 내에 자리한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로 법당은 지방유형문화재 47호인 청량사 유리보전이 보존되어 있다. 청량사는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히는데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고, 연꽃의 수술자리라고 한다.

  과거에는 청량산에 연대사를 비롯한 20여 개의 암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으며, 청량사 유리보전과 응진전이 남아있다. 산의 남쪽 연화봉 기슭에는 내청량사가 있으며, 그 동남쪽에 자리한 금탑봉의 남쪽 기슭에는 응진전(외청량사)이 있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로 663년에 세워진 것으로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다른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사찰처럼 높은 절벽 중간에 지어져 있고, 어풍대의 절벽길을 돌아가는 경로는 아슬아슬함을 더해준다.

  뒤로는 거대한 금탑봉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아래로는 아득한 낭떠러지이다. 바위가 마치 9층으로 이뤄진 금탑 모양을 하고 있고, 층마다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 듯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을이면 절벽 아래로 붉게 타는 단풍이 장관이다.입석에서 등산로를 따라 30분 정도 오르면 만난다. 현재 두 절은 비록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지만 상호 연관적인 관계에 있다.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남아있다. 조선 후기의 불전 건물인 청량사 ‘유리보전’과 ‘지불’이다. 공민왕이 친필로 쓴 현판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며, 지불은 종이로 만든 부처이나 지금은 금칠을 했다.

  청량사 바로 뒤에는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이 있다. 원래 이름은 탁필봉이지만 주세붕 선생이 지형을 보고 봉우리 이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청량산박물관

경북 봉화군 명호면 광석길 39 (관창리 1726-6), 054-672-6193

 

  봉화군 명호면에 위치한 군립 박물관으로 2004년 6월 개관하였다. 대지면적 3,720㎡, 건축연면적 1,608㎡ 규모로 홍보실, 전시실, 전망대를 갖추고 있다. 2008년과 2013년 농경문화전시관과 인물역사관이 각각 완공되어 봉화의 농업사와 인물사에 대한 전시를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홍보실은 봉화군의 서원, 향교, 정자, 사찰 등 문화유적과 주요 관광지를 전시하는 LED패널과 봉화의 역사 생활 민속을 소개하는 사진 패널을 통해 봉화의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전시실이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르는 봉화 출신 인물과 관련된 소장 고문헌자료 및 봉화의 누정 현판 등의 유물도 관람할 수 있다.

  전시실은 청량산의 자연, 청량산의 역사와 문화, 영상실 3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청량산에서 서식하는 각종 동·식물, 곤충의 표본, 민물고기를 비롯하여 청량산의 선사시대 문화, 불교·유교문화, 전설 등을 소개하는 불교 유물, 고문헌 등을 디오라마와 함께 전시한다. 동굴 내부 형태로 연출된 영상실에서는 청량산의 문화유적과 자연환경을 조망하는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주요 소장품으로는 금동좌불상, 향합, 바라 등 불교 유물, 상평통보, 광서통보, 일본 엽전, 중국 동전 등 동아시아의 화폐, 조선 시대 간찰 및 호적지, 조선 시대 백과사전인 『육해진장(陸海珍藏)』, 조선 시대 한글 고전소설인 『셜열왕비충효록(혹은 의열비충효록)』, 조선 시대 학자 권구가 청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든 동아시아 역사 연표인 『중국고금역대연혁지도』 등이 알려져 있다.

 

 

●사미정계곡, 사미정

경북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 054-672-4402

 

  사미정 계곡은 우리나라에서 몇 군데 남지 않은 청정 지역 가운데 하나인 경북 북부 중에서도 최고 오지인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에 위치하고 있다. 낙동강 발원지인 태백산과 국립공원 소백산 사이 y자형 계곡으로, 맑고 시원한 물줄기와 함께 울창한 송림, 기암괴석으로 여름철 피서지로는 최고를 자랑한다.

  계곡 입구에는 조선 영조 때 우부승지를 지낸 조덕린(趙德隣, 1658∼1737)이 산수 좋은 명승경관지를 찾아 건립한 정자가 있는데, 이 정자를 후손들이 정미년 정미월 정미일 정미시에 중수하였다 하여 ‘사미정(四未亭)’이라 부른다. 사미정 계곡이라는 이름은 그때부터 비롯되었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경사진 대지에 건축한 사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출한 형식의 정자이다. 2정자의 현판 ‘사미정(四未亭)’과 내현판인 ‘마암(磨巖’의 글씨는 정조 때의 명재상인 채제공의 친필로 전해진다. 2013년 4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덕린은 본관은 한양, 자는 택인(宅仁), 호는 옥천(玉川)이다. 1677년 사마시, 1691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었다. 그후 교리 · 사간을 역임하고, 1728년 동부승지에 올랐다. 당쟁의 와중에 휘말려 여러 번 유배당하였으나, 높은 도학과 절의로 명망이 높았다.

 

 

●봉화정자문화생활관

경북 봉화군 봉성면 부랭이길 88 (외삼리 14-10), 054-679-6967

 

  화군은 전국에서 제일 많은 103개의 누각과 정자를 보유하고 있다. 봉화의 정자문화를 관광인프라로 구축하기 위해 2012년부터 봉성면 외삼리 일원 237816㎡ 부지에 누정휴(休) 문화누리 조성사업을 추진해 왔다.

  봉화정자문화생활관의 핵심 시설인 누정전시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로, 봉화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단아한 멋을 지닌 봉화의 누정 모습을 보여주는 주제 영상실, 전시실 3개소, 중정(건물 속 정원) 3개소, 세미나실, 회의실, 옥상정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전시실은 누정을 이해할 수 있는 누정세계 전시실, 영상 속에서 선비의 풍류정신을 느껴보는 음풍농월 전시실, 봉화의 빼어난 산수를 체험해보는 봉화유람 전시실, 3가지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야외정원에는 서울 창덕궁 부용정을 비롯해 광풍각, 한벽루, 세연정, 거연정 명승이나 보물로 지정된 정자 5개 동을 재현했고, 문화체험장으로 도깨비정원과 전통놀이마당을 조성했으며, 음악, 노래 등 다양한 문화공연을 할 수 있는 야외공연장으로 누정마당이 마련돼 있다.

  숙박시설인 솔향촌은 80명이 숙박할 수 있는 11실의 객실이 마련돼 있으며, 전시문화, 체험교육, 힐링의 공간으로서 세대를 아우르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시설단지에는 소나무, 산수유, 산벚나무, 이팝나무, 실편백, 메카세콰이어 등을 심어 멋진 경관을 조성했으며, 산철쭉, 연산홍, 금낭화, 개나리, 야생화 등을 식재해 계절마다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봉화목재문화체험관

경북 봉화군 봉성면 구절로 151 (창평리 363 외), 054-674-3363

 

  봉화목재문화체험관은 목재 및 목제품에 대한 종합적인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국산 목재의 우수성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목재를 활용하여 생활공예품, 놀이기구, 학습기구 등 다양한 목제품을 직접 만지고, 느끼고,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의 장이 마련되어 있다.

  주요 시설로는 목재체험관 외에 자생식물단지, 산림욕장, 목재놀이터, 잔디광장, 창평산림욕장, 전망대 등으로 이루어졌다.

 

 

►창평 산림욕장

 

  산책로를 따라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스트레스와 긴장이 풀리고 혈압이 안정되며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진다. 금강소나무 피톤치드는 항균작용이 뛰어나 인체에 면역력을 향상시키고,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준다.

  산책로 주변에는 비비추와 매발톱꽃 등 꽃들이 반기고 운동 시설과 삼림욕장, 안내표지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산림욕장 정상에는 2층 전망대가 있어 봉화의 진산인 문수산과 백두대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자생식물단지

 

  관람객 편의를 위하여 탐방로와 휴게시설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백두산식물원과 철쭉동산, 잔디광장, 야외놀이시설 등이 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 친환경적으로 조성된 탐방로를 따라 우리에게 친숙한 구절초, 할미꽃, 패랭이꽃, 범부채, 쑥부쟁이 등이 심겨 있다. 또한, 지면식물, 약용식물, 덩굴식물 등 다양한 식물들을 계절별로 관찰할 수 있어 자연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문수산자연휴양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시거리길 378 (우곡리 산 48-1), 054-674-3700

 

  백두대간 문수지맥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문수산자연휴양림은 수려한 자연경관에 둘러싸여 자연 속에서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가족단위 여행객들에게 최고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6인부터 8인 이용 기능한 산림휴양관과 독채 총 16동이 있으며 12면의 캠핑용 테크와 바베큐장과 물놀이장, 취사장, 음수대 등의 편의시설이 있다. 단, 매점 시설이 없어 개인용 세면도구, 그릴을 제외한 바비큐 용품 등 준비해야 한다.

  캠핑장에는 데크로 이루어진 일반 캠핑 사이트 12면이 마련되어 있다. 우거진 수목 사이에 사이트가 위치해 한여름에도 자연 그늘이 만들어진다. 자연휴양림이기 때문에 화로 사용 등 야영장 내에서 불을 피우는 것은 금지다. , 캠핑장 앞에 바비큐장이 있어 불편하지 않다.

  예약 신청은 매주 화요일 전체 휴양림 객실, 야영장 모두 오전 9시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하며 1인당 시설물(객실+야영장) 1개씩만 예약 가능하다. 휴양림 주변에는 전국 최고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다덕약수관광지 등이 있어 관광과 휴양과 연계할 수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경북 봉화군 춘양면 춘양로 1501(서벽리 485), 054-679-1000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 위치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보전 가치가 높은 식물자원과 전시원, 백두대간의 상징 동물인 백두산호랑이, 세계 최초의 야생 식물종자 영구 저장시설인 시드볼트와 국내 유일 냉실인 '알파인하우스'도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이다.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1,400km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자생식물 33%가 서식하고 있는 중요 생태축이다. 그중 특산식물 27%, 희귀 식물 17%가 있으며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증진시켜 대자연과 인간의 풍요로운 상생을 이끌고자 한다. 이 외에도 산림생물자원 및 봉화군 향토생물자원의 산업화 연구를 통한 지역경제 개발 등에 기여하고 있다.

 

 

●봉화만산고택

봉화군 춘양면 서동길 21-19 (의양리 288), 054-672-3206

 

  만산고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만산(晩山) 강용(姜鎔)이 1878년에 건립한 가옥이다. 이 가옥은 경북 북부 지역 사대부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ㅁ’자 형 평면으로, 전면에 사랑이, 그 뒤에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가 자리하고 있으며, 좌우 익랑은 고방과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의 전면에는 晩山(만산)이라 쓴 대원군의 친필편액이 걸려 있다.

  서실은 정면 2칸, 측면 1칸, 우진각 지붕의 건물로 모두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망와에 “광서 6년, 경진 4월”이라는 명문이 있어 1881년에 건축한 것을 알 수 있다.

  별채 칠류헌(七柳軒)은 영친왕을 비롯한 조선 말기의 여러 문인들과 학문을 교류하던 장소로 전면에 퇴를 둔 정면 4칸, 측면 2칸 건물이다. 건물의 기능에 걸맞게 온돌방과 마루방 사이에 분합들문을 설치하여 공간을 확장할 수 있게 하였다.

  강용의 아호인 '만산(晩山)'을 판각한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써서 하사한 것이며, 서실 처마 밑에 있는 '한묵청연(翰墨淸緣)' 편액은 영친왕이 8세 때 쓴 글이어서 왕실과의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봉화만산고택은 민속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인정되어 2013년 12월 12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봉화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원촌길 8-14

 

  춘양중 상업고등학교 운동장 동남쪽에 있는 석탑은 동탑과 서탑의 쌍탑 형인데 이곳이 신라고찰이였던 람화사의 옛터로 알려져 있다.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6km 지점에 춘양면 석현리의 현 각화사를 창건하면서 람화사를 폐하였다고 한다.

  동서의 3층 석탑은 같은 규모의 소형탑으로 양식과 수법이 동일하여 신라식 일반형 석탑으로서 상하 2중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형성하였는데 각부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 9세기의 건립으로 추정된다.

 

 

●다덕약수관광지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진의실길 6, 054-679-6114

 

  다덕약수탕은 봉화의 청정 탄산 약수 중의 하나이다. 옛날 스무나무 아래 약수가 있어 이를 마시고 많은 사람이 덕을 보았다 하여 다덕(多德)약수라 불리는 이곳은, 탄산과 철분 등이 함유되어 있어 톡 쏘는 맛이 있다.

  예로부터 피부병과 위장병에 많은 사람들이 효험을 보았다 하고, 지금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울진·태백 방향의 국도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지나는 길에 들러보아도 좋다.

  약수탕 주변 음식점은 2001년 봉화지정 토속음식단지로 약수로 고아 만든 약수닭백숙, 오리한방백숙을 비롯한 봉화산송이돌솥밥, 봉화한약우구이 등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봉화 농특산물 직판장이 있다. 약수탕은 봉화군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경상북도보건환경연구원의 정기적인 수질검사를 진행한다.

  갖은 약재를 넣어 탄산약수로 끓이는 닭백숙은 푸른 빛을 띄는데 색도 맛도 특별하다. 여느 곳의 닭백숙보다 그 맛이 쫄깃하고 곁들여지는 무공해 산채들로도 더욱 푸짐하다. 봉화군은 다덕약수탕을 중심으로 다덕약수탕토속음식단지, 캠핑장을 마련하고 다덕약수광광단지로 개발했다.

 

 

●천주교우곡성지

경북 봉화군 봉성면 시거리길 397 (우곡리 151-2), 054-673-4152

 

  한국에 천주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칠극(七極)’에 의한 천주교 수계생활을 28년간 행했던 한국 최초의 수덕자(修德者) 농은 홍유한(洪儒漢, 1725~1785)의 묘가 있는 곳이다. 칠극은 스페인 출신 예수회 회원 판토하(Didace de Pantoja, 1571~1618) 신부가 쓴 교리서로, 일곱 가지 죄의 뿌리인 칠죄종을 이겨내고, 하나님 나라로 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책이다.

  조선 정조 때의 인물 홍유한은 16세부터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1681~1763)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1750년경부터 이익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천주실의>, <칠극> 등을 공부하다가 1757년 경 한양의 살림을 정리하고 충청도 예산으로 내려가 18년간, 1775년 현 영주시 단산면 구구리 지역으로 옮겨 다시 10년간 혼자서 천주교 수계생활을 철저히 하였다. 그는 세례를 받진 못했지만 선종할 때까지 칠극을 기준 삼아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힘썼다고 한다.

  당시에는 기도책도 없고 축일표(祝日表)도 없었으나 7일마다 축일(주일)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 경건하게 축일을 지켰고, 금육일을 알지 못했으므로 언제나 좋은 음식을 먹지 않았다 한다. 홍유한의 후손 중에는 7명의 순교자가 있다.

  1993년 10월 홍유한의 묘가 발견되었고, 1994년 3월 성지개발을 위해 안동교구 봉화성당에 성지개발위원회가 발족되었으며, 1995년 묘 주변 임야를 매입한 후 묘지와 주변을 정비하여 성지로 조성하였다. 1998년 사제관과 피정의 집, 2000년 수련원이 건립되었으며 동상과 야외제대, 십자가의 길 14처 등이 조성되어 있다.

 

 

●닭실마을과 청암정

 

►닭실마을

경북 봉화군 봉화읍 충재길 42 (유곡리 963), 054-674-0963

 

  닭실마을로 널리 알려진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는 안동권씨들이 모여 사는 봉화의 대표적인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 안동권씨들이 모여 살게 된 것은 충재 권벌(權橃, 1478~1548) 이후라고 전한다. 권벌이 중종 14년 (1519) 기묘사화 때 파직을 당하여 물러나와 1521년부터 파평윤씨(坡平尹氏)의 터전이었던 이곳 내성 유곡에 입향하였다. 닭실마을이란 동네 이름은 이 마을의 지형에서 비롯된 것으로, 황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는 소위 금계포란(金鷄抱卵)의 형세로 이루어진 데서 온 것이다.

  닭실마을의 공간적 특성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옛길을 통해 마을로 들어가 보는 것이 좋다. 마을 진입로 옛길은 산사를 찾아가는 길처럼 개울과 산을 건너가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내성천 계곡은 오랜 시간 물에 깎여 다양한 모양으로 형태를 갖춘 바위들과 맑은 계곡물 주변에 빽빽하게 들어찬 춘양목이라는 붉은 껍질의 소나무가 이루어내는 장관도 감상할 수 있다.

  먼저 충재 권벌의 종택은 뒷산의 오른쪽 줄기인 마을의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데, 백설령의 암탉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 전면에 논이 있고 논길을 따라 좌우 세 칸의 문간채를 거느린 솟을대문이 서 있다. 이 가옥을 지은 권벌 선생은 선비로서의 강직함과 격조를 간직했던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평소 『근사록』을 애독하였다고 하며, 을사사화 때는 홀로 문정왕후에게 나아가 당시의 삼대신(三大臣)인 윤임, 유간, 유인숙을 구하는 논지를 주장하다가 그 일로 평안도 삭주로 유배되어 별세하였다 한다.

 

 

►청암정

경북 봉화군 봉화읍 충재길 44 (유곡리 931)

 

  닭실마을에는 권벌과 관련된 청암정(靑巖亭) 등의 유적이 여럿 남아있다. 권벌은 1526년(중종 21) 이곳에 청암정을 지었다. 집 옆 넓은 터에 못을 파고, 못 가운데 넓은 바위 위에 정자를 지어, 다리로 물을 건너 드나들게 되어 있다.

  춘양목으로 지은 청암정의 평면은 T자형으로, 동쪽에 정면 2칸, 측면 2칸의 대청을 두고 서쪽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마루방과 이의 앞뒤로 1칸이 채 못 되는 누마루를 두었다. 이 정자의 구조는 기단을 쌓지 않고, 암반 위에 직접 장주형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다.

  정자 안에는 ‘靑巖亭(청암정)’이라는 현판과 ‘靑巖水石(청암수석)’이라 새긴 허목(許穆)이 쓴 넉자의 편액이 걸려 있다. 권충재 유적에서는 이 청암정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남서쪽 1㎞쯤 되는 냇가에는 수명루(水明樓)가 유적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정자 아래는 충재 선생이 도학연구에 몰두했던 곳으로 공부하던 별채가 있다. 충재 권벌은 실제 이 청암정에서 공부를 했으며 그 후손들은 서당으로 활용했다.

 

 

►석천정사

 

  계곡 왼편 산기슭 바위에는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의 ‘청하동천(靑霞洞天)’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조금 더 오르면 석천정사(石泉精舍)가 나타난다. 기암괴석과 금강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풍경이 병풍에서 튀어나온 듯 느껴진다. 석천정사로 가기 위해서는 계곡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석천정사는 춘양목으로 지은 건물로 석천계곡의 길고 널찍한 바위에 석축을 쌓아 터를 마련해 놓은 것을 권벌이 유배지에서 명을 다하자 그의 아들 청암 권동보가 1565년 정사를 건립하여 개인의 휴양과 수학 공간으로 이용했다.

 

 

●충재박물관

경북 봉화군 봉화읍 충재길 60 (유곡리 934), 054-674-0963

 

  충재 종가에 대대로 전해져 온 유물은 2007년에 개관한 충재박물관에 보물 482점을 포함해 5000여 점이 소장돼 있다. 교서, 유지, 시권, 분재기 등 한 집안의 고문서 다수가 보물로 지정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이를 통해 가문의 역사와 더불어 조선 시대 생활상을 살펴볼 수가 있다.

  특히 조선 시대 사관이 작성한 사초(史草)를 실록이 완성된 후 물에 씻는 세초하는 모습을 담은 ‘연산군일기 세초지도(洗草之圖)’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충재박물관을 들어서면 충재 권벌 선생의 연혁이 들어온다. 연혁을 보면, 충재는 조선 중기 중종, 인종, 명종 때의 문신으로 자는 중허이고, 호는 충재·훤정이며, 시호는 문정이다. 1506년(중종1) 진사에 합격하고, 이듬해 증광 문과에 급제한 뒤, 예문관 검역 · 홍문관 수찬.부교리.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513년 사헌부 지평으로 재임할 때, 당시 신윤무. 박영문의 역모를 알고도 즉시 고변하지 않은 정막개의 당상관 품계를 삭탈하도록 청하여 직신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이조 정랑. 호조 정랑. 영천 군수. 장령. 승정원 동부승지. 좌승지. 도승지. 예문관직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두 번의 사화를 거치면서도 특정세력에 얽매이거나 이익을 위해 의를 버리지 않았으며, 올바른 시각으로 정국을 바로 잡고자 했다.

  유물 중에는 복숭아 모양의 은 술잔, 문서나 그림 등에 사용할 목적으로 새긴 각종 도장인 전각(조선시대) 들도 전시되어 있다. 수진근사록은 보물로 고려 때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보물 인 홍패는 중종 2년(1507) 과거의 최종합격자에게 내어주던 증서라고 한다.

 

 

●봉화 계서당 종택

경북 봉화군 물야면 계서당길 24, 054-679-6333

 

  계서당은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 있는 고택이다. 봉화읍에서 부석사로 가는 915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물야면 소재지에서 서쪽 방향으로 ‘전백당(傳白堂)’이라는 편액과 함께 걸려 있다. 이 가옥은 최근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도령과 관련하여 이목이 집중되는 가옥이다.

  봉화계서당종택은 춘향전 이몽룡의 실제인물로 알려진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의 아버지인 성안의가 남원부사로 있을 때, 성이성은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서 공부했고 이후 과거에 급제한 뒤 암행어사로 네 번이나 출두, 암행어사의 표본이 됐다고 한다.

  봉화 계서당 종택은 성이성 선생이 1610년 건립하여 문중 자제들의 훈학과 후학 배양에 힘쓴 곳으로, 가평리 계서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이성은 창녕 사람으로 남원 부사를 지낸 부용당 성안의 아들로, 1627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진주부사 등 6개 고을의 수령을 지내고 4번이나 어사로 등용된 인물로 근검과 청빈으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이다.

  가평리 계서당은 정면 7칸, 측면 6칸의 입구 자(口) 형으로 되어있다. 팔작지붕의 사랑채와 중간 문으로 이어져 있다. 사랑채의 오른쪽 뒤편으로 방형의 토석 담장을 두른 사당이 위치하고 있다. 안채의 경우는 다른 고택에 비해 규방을 많이 둔 점이 특징적이다. 전체적으로는 경북 북부 지방 [口] 자 형 주택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주택 발달사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오전약수관광지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약수탕길 18-24 (오전리 99-5), 054-672-1900

 

  봉화에서 주실령을 찾아가는 북쪽 지방도로 옆의 계곡 사이로 여러 곳의 약수터를 아우르고 있는 오전약수는 찾아오는 사람들과 식당으로 번잡한 곳이다. 오전약수는 조선 성종 때 발견, 조선 약수 대회에서 최고의 약수로 선정되기도 했고,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봉은 오전약수를 가리켜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라는 칭송을 받았다.

  오전약수는 혀끝을 톡 쏘는 청량감과 함께 위장병과 피부병에 큰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며 전국 최고의 약수로 인정받아왔다. 상·중·하탕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곳은 약수로 끊여내는 백숙요리로 유명하다.

  또한, 이 일대는 봉화 보부상의 활동 거점으로 알려져 과거 수많은 관광객이 즐겨 찼던 지역의 대표 관광지였는데, 최근 지금까지 개별 관광지의 기능을 하던 오전약수관광지와 물야저수지를 하나로 엮어 새로운 형태의 관광자원으로 만들었다.

  오전약수관광지 내에 보부상을 테마로 한 보부상 조형물, 오두막, 장승, 솟대 설치 등 보부상 정원(마을쉼터)이 조성되었고, 정원 주변 수목 식재 및 달· 토끼 조형물 등 경관조명 설치로 다양한 콘텐츠를 확충하였으며, 양 관광지를 잇는 약 1km의 데크형 산책로와 물야저수지 친환경 V로드(수변 산책로) 조성하여 관광객들의 오감을 더욱 만족시키고 있다. 또, 물야저수지에 약 2~3km의 벚꽃길을 조성하였다.

 

 

●문수산, 축서사

경북 봉화군 물야면 월계길 739 (개단리 1), 054-672-7579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춘양면 서벽리, 봉성면 우곡리에 걸쳐 있는 문수산(1,206m)은 봉화의 진산이다. 신라 시대에 강원도 수다사에서 도를 닦던 자장율사가 태백산을 찾아 헤매던 ‘문수보살’이 이 산에 화현했다 하여 문수산이라 했다고 전한다.

  또 문수산이 독수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생김새라 하여, 불법에서 ‘날카로운 지혜’는 독수리의 부리와 같다는 이치에서 대승보살 중에 지혜가 날카롭고 뛰어난 문수보살의 이름을 따 문수산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산중에는 673년(신라 문무왕 13년) 의상이 창건한 축서사가 현존하며, 중대사, 서벽사, 공벽암 등 많은 절터가 있다.

  문수산 축서사는 673년(신라 문무왕 13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봉화군청에서 물야쪽으로 6km쯤 달린 후 개단4리에서 우회전해 7~8km가량 가면 닿는다. 6. 25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리고 지금은 대웅전과 요사채만이 남아있다.

  대웅전에는 보물인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 광배가 있다. 불상은 9세기 경에 만들어진 비로자나불이고, 불상 위의 광배는 조선 시대 만들어진 것이다. 나무에 불꽃무늬와 꽃무늬를 화려하게 조각했는데 불상보다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광배 한가운데 즉, 불상 바로 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일체 만물의 근본, 본질을 의미하는 옴(om)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웅전 앞에 무너질 듯 서 있는 석등(경상북도문화유산자료)도 눈에 들어온다. 삼층석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했다는 석탑조성명기가 있는 매우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기단부 하대, 3층 옥신과 개석, 상륜부가 일실된 상태이다.

 

 

●지림사,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지림사

경북 봉화군 물야면 문수로 449-66 (북지리 657-3), 054-673-6735

 

  지림사는 국보 제201호로 지정된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유서 깊은 절로 유명하다. 옛날, 수도하는 승려가 500명이 넘을 만큼 대사찰이었다고 전해지는 지림사는 축서사 창건 설화에도 등장한다. 신라 문무왕 13년(673) 의상대사가 지림사에서 산 쪽을 바라보다 멀리 상서로운 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 그 빛이 나오는 곳에 지금의 축서사를 지었다고 한다.

  조선 정조(18세기) 때 저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지림사는 문수산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후기까지 사찰이 존속하며 불법의 전통을 이어오다가, ‘화재로 불타 없어져서’ 혹은 ‘축서사 때문에 사세가 기울어서’ 등의 이유로 폐사되었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그후 1949년경 권보훈이라는 승려가 현재 위치에 조그마한 법당을 세우고 수월암이라고 이름지었다. 그 후 국보로 지정된 마애여래좌상을 보호 관리하며 지림사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경북 봉화군 물야면 문수로 449-66 (북지리 657-2), 054-679-6114

 

  국보 제201호인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자연 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긴 것이다.

  넓고 큼직한 얼굴은 양감이 풍부하며 전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양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직한 주름을 이루면서 양팔을 거쳐 길게 늘어져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다. 손 모양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고 왼손은 무릎에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불상의 장중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불상 뒤편의 광배(光背)는 머리 광배와 몸 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 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불상 뒤편의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불상을 만든 시기는 얼굴이나 신체에 표현된 부드러운 모습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과 함께 이 시기 영주·봉화 일대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 불교조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청옥산, 현불사

 

  청옥산(1,277m)은 태백산 망경대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있다. 태백산을 중심으로 일대에 1,000m가 넘는 산이 9개나 될 정도로 산세가 험한 오지에 자리 잡고 있다. 백두대간 갓대배기봉에서 동남으로 갈래친 능선 위에 있고, 소천면 늦재에서 능선을 따라 망경대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일대 1억 53만㎡가 청옥산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산기슭 중턱에는 유정이 수도했다는 홍제사가 있고, 산 옆으로 흐르는 고선계곡은 길이 100리에 이르는 깊은 원시림 계곡을 이룬다.

  태백산 문수봉과 청옥산 사이에서 시작되어 조록바위봉까지 이르는 12㎞의 백천계곡은 낙동강의 상류이며 세계 최남단의 열목어(천연기념물 74) 서식지로 유명하다. 백천계곡 일대가 천연기념물인 열목어 서식지로 지정되어 있고, 일대는 천연기념물 및 천연림 보호지역이므로 출입을 제한한다.

  계곡 내에 현불사가 있다. 5만 영령 위로탑이 세워져 있는 현불사와 오전약수터, 우곡약수터, 불영사 등의 관광지가 있다.

 

 

●청옥산자연휴양림

경북 봉화군 석포면 청옥로 1552-163 (대현리 산13-64), 054-672-1051

 

  태백산맥 줄기의 해발 1276m의 청옥산 800m 지점에 있는 휴양림으로 수령 100년 이상의 울창한 잣나무와 소나무, 낙엽송이 빽빽이 들어선 숲이다. 산책로를 지나면 출렁다리가 나오며 다리를 건너면 원시림을 연상시키는 삼림욕에 적합한 숲이 나온다. 봄철 계곡 주변에 피는 야생화와 함박나무, 산목련이 장관이다. 한국의 휴양림 중 가장 넓다.

  휴양림에는 산림문화휴양관, 어린이물놀이장, 숲속의 집, 숲속수련장, 물놀이장, 어린이놀이터, 체력단련장, 산막, 운동장, 캠프파이어장, 야외강의장, 양어장 등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자생식물관찰원에는 한국 고유의 자생식물 70여 종이 있다.

  캠핑장은 캠핑장계의 호텔 5성급이라 불릴 정도로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오토캠핑장 4개소(96면), 야영장 1개소(24면), 노지야영장(6면)을 보유하고 있다.

 

 

●홍제사와 도솔암

경북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1번지

 

  홍제사는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인적 없는 적적함 속에 자리 잡은 오지마을 비룡산(1,129m) 아래에 있다. 홍제사까지는 약 3km, 황평천을 따라 가다보면 황평분교 자리에 조성된 ‘솔향 가득 서울캠핑장’을 지나면 곧 나타난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제 26대 진평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제30대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설이 있다.

  일주문도 없고 천왕문도 없다, 석탑도 석등도, 천년고찰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작은 법당에 요사체, 그리고 해우소가 전부다. 그러나 이곳은 사명대사가 중창불사를 했으며,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에게 선조가 ‘홍제존자’라는 시호를 내렸고 홍제라는 사찰 이름은 호에서 따온 것이다.

  만공스님과 성철스님도 홍제사의 암자 도솔암에서 수도했다. 조계종 종정에 올랐던 성철, 서암, 법전스님과 다른 분들도 대종사의 지위에 오른 선승이 되었으니 홍제사와 도솔암은 큰스님들을 배출한 조용한 수행처다. 허전하고 쓸쓸하게 다가오는 움막 같은 도솔암. 세월의 무게만큼 낡은 채로 깊은 역사를 담고 있다. 현재 건물은 1966년 3월 새로 지은 것이다.

  봉화읍에서 36번국도를 따라 울진 방향으로 가다 노루재 터널을 지나 37번국도 태백 방향으로 향했다. 홍제사 방향이다. 홍제사가 있는 비룡산에서 내려오는 황평천은 어느 때라도 자연이 주는 편안함에 마음이 상쾌해지는 길이다.

 

 

승부역, 승부역 가는 길

경북 봉화군 석포면 승부길 1162-5 (승부리 산105-1)

 

  승부역은 영동선에 속하며, 영주 기점 69.2㎞ 지점에 있다. 1956년 영암선 개통에 따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여, 1957년 역사를 신축, 준공하였으나, 1997년 3월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그 후 1999년 승부역은 환상선 눈꽃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로는 접근할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어 2004년 12월 보통역으로 재승격하였다. 현재는 석포면 방면으로 도로가 나 있고, 면사무소를 오가는 마을버스가 운행중이다. 역종은 보통역이며, 승강장 구조는 1면 3선이다. 코레일(Korail) 경북본부 소속이다.

  승부역 가는 길. 경북 봉화에 가면 석포역에서 승부역까지 철길 옆에 사람이 다니는 길이 나 있는데, 이 길의 이름이 ‘승부역 가는 길’이다. 승부역은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태백시가 경계를 이루는 내륙 깊숙한 지역,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에워싸인 가파른 골짜기 안에 꼭꼭 숨어 있어 오지여행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예전엔 주변 산세가 하도 험해 자동차로는 갈 수가 없고 기차로만 갈 수 있었다. 지금은 자동차로 갈 수 있다.

  석포역에서 승부역까지 12㎞ 길은 자갈길에서 최근에 아스팔트로 포장됐다. 행정구역상 승부역 가는 길의 시작점인 석포역과 끝나는 곳에 있는 승부역은 경북 봉화군에 있지만, 석포역과 승부역 주변 마을의 생활권은 강원도 태백시다.

  산타 상징물과 흔들 그네 등 소박하지만 정감이 넘치도록 꾸며 놓았다. 사람이 많이 찾다 보니 승부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간이매점도 생겼다. 석포역에서 석포제련소-굴현교-결둔마을-서낭골-마무이-구두들-본마을-승부교-승부역으로 이어지는, 문명의 손길이 가득하지만 색다른 걷기를 경험할 수 길이다.

 

 

분천역 산타마을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2리 967

 

  분천역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 있는, 영동선 기차역으로, 현동역과 양원역 사이에 있다. 1956년 1월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무궁화호가 운행되며 여객, 화물, 승차권발매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고즈넉한 산골 마을의 분천역은 겨울이 오면 덮인 빨간 지붕과 크리스마스 조형물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의 산타마을로 변신한다. 산타클로스의 고향, 핀란드 로바니에미 마을을 본떠 만들어낸다. 트리 모형의 산타 전망대 등 새로운 볼거리와 어린이 놀이터, 미니 기차 등 다양한 체험시설도 운영한다.

  매년 성탄절을 앞두고 개장하는 봉화분천 산타마을은 2024년에는 산타클로스의 본고장 핀란드에서 공인 산타가 초청됐고, 다양한 체험시설이 더해져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초청한 공인 산타는 성탄절까지 머물면서 어린이들을 맞이한다. 10년 전 간이역인 봉화 분천역 일대에 조성된 산타 마을은 어느덧 해마다 10만 명이 찾는 경북의 겨울 관광지가 됐다.

  폐교를 활용한 숙박 시설과 산책 코스 정비를 통해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 특별한 산타와의 추억을 담아갈 수 있는 한겨울 분천 산타마을은 2월 중순까지 운영한다. 강릉에서 분천으로 가는 '동해산타열차'는 일반실 1·4호차, 카페실 2호차, 가족실 3호차로 이어진다. 특히 3호차 가족실엔 산타 벤치 포토존과 가족석, 커플석, 패밀리룸이 마련돼 있다. 약 2시간 50분 소요된다.

 

 

●봉화 금강소나무림

경북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산 26, 054-683-4455

 

  남부지방산림청은 인위적인 벌채와 환경적인 여건 변화로 쇠퇴되어가고 있는 금강소나무숲을 조선 후기의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하여 울진 소광리, 영양 본신리, 봉화 고선·대현리 등 3개소에 에코투어가 이끄는 금강소나무 생태경영림을 조성하였다.

  100년 후 현재 숲을 대체할 금강소나무 후계림 606와 먹이사슬 복원을 위한 자연 생태계식물지 3.5를 조성하고 향토 어종인 피라미, 누치, 버들치 등 3만여 마리를 방사하여 계곡을 생명이 숨 쉬는 공간으로 복원하여 국민들에게 자연생태계를 체험하게 하고자 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즐길 수 있도록 생태탐방로를 1시간, 2시간, 4시간 코스 별로 만들어 금강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시고 새, 노루, 계곡물의 물고기가 노는 모습, 그리고 야생화 군락지과 함께 어우러지는 생태적인 생육 공간을 숲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탐방할 수 있다. 숲나들e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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