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가볼 만한 곳 총 정리
사명대사의 자취를 만나보고 영남 알프스에 올라보자
글·사진 남상학
밀양은 역사가 깊은 도시인 만큼 국가유산도 많다. 대표적인 국가유산으로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 명명한 절인 표충사, 사명대사가 태어난 생가가 남아 있는 생가지와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표충비, 외세를 막기 위해 축조한 밀양읍성, 추원재, 우리나라 최고의 누각 중 하나인 영남루 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천황산 재약산은 영남의 알프스로 불릴 정도로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지대다. 특히 재약산의 사자평은 가을이면 화려한 억새의 군무를 만나는 곳으로 최고의 가을 산행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호박소와 얼음골의 계곡을 둘러보고 얼음골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천황산과 재약산의 산세를 편하게 느껴볼 수 있다.
●해천상상루, 밀양 여행의 시작
밀양시 노상하1길 7 (내이동 731), 055-802-8700
밀양시 내이동에 있는 해천상상루는 원도심의 시민과 여행객을 위한 밀양여행문화센터로서 밀양의 관광 플랫폼 기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해천상상루는 시민과 관광객에게 여행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조선 시대 3대 명루인 영남루와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해천상상루 1층은 55인치 12대의 스크린으로 꾸민, 국내 최대 크기의 아카이브월에서 주요 관광지, 지역문화축제, 체험거리 등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여행자라운지는 일종의 힐링공간으로 무료 와이파이 기능을 갖춘 카페형 휴식공간이다. 간단한 음료와 함께 밀양을 담은 서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2층은 미디어전시체험으로 밀양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실감콘텐츠 ‘4차원 공룡세계 탈출대작전’은 시청각적 요소와 인터랙티브 체험을 통해 아이들의 호기심과 참여도를 끌어올렸다.
●영남루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4), 055-359-5590
보물 제147호로 지정된 영남루는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누각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익공식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조선 시대 밀양도호부의 객사 부속건물이다. 처음 지어진 것은 고려 시대로, 그 뒤 여러 차례의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였다.
원래 그 자리에는 신라 시대에 세워진 영남사라는 절이 있고 절의 종각으로 금벽루라는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고려 시대에 절은 없어지고 누각만 남아 있었던 것을 1365년(공민왕 14) 누각을 새로 짓고 절의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460년(세조 6)에 중수하면서 규모를 크게 넓혔으며, 선조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37년(인조 15) 다시 지었고, 마지막으로 1844년(헌종 10) 불에 탔던 것을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넓은 강을 옆에 낀 절벽 위에 남향으로 앉아있어서 풍치가 있다.
전체적으로 부재도 크고 기둥 간격도 넓으며 중층으로 되어 우리나라 건축 중에서는 크고 우람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더구나 건물 서편에 작은 부속 건물이 딸려 있고 지붕이 여러 단으로 낮아지면서 연결되어 외관이 독특하다.
부속 건물로 능파각, 침류각, 사주문, 일주문, 천진궁이 있으며, 영남루 누각에는 역사의 흐름을 조명해 볼 수 있는 당대 명필가들의 작품들이 편액으로 즐비하게 남아 있고, 뜰에 깔린 석화 또한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게 한다.
●천진궁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4), 055-359-5590
밀양시 내일동 영남루 경내에 있는 조선 시대의 건축물로서 1974년 12월 경상남도 유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식 단층팔작지붕 목조와가집이다. 영남루의 부속 건물로서 효종 3년(1652)에 창건되었으며 ‘공진관(栱桭館)’이라 부르기도 한다.
천진궁에는 단군 이후부터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락, 고려, 조선 등 8개 왕조의 위패를 모셨다. 중앙 맨 윗자리에는 단군의 영정과 위패가 있고 동쪽 벽에는 부여·고구려·가야·고려의 시조 위패가, 서쪽 벽에는 신라·백제·발해·조선의 시조 위패가 있다. 단군의 서거일인 음력 3월 15일에 어천대제, 단군의 건국일인 음력 10월 3일에 개천대제를 매년 행하고 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군들의 감옥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이곳에서 죽어간, 또는 힘없는 나라를 생각하며 통탄의 눈물을 흘렸을 이들의 넋이 오래 남을 꽃으로 산화됐는지 영남루 주변으로 비 온 후에 그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석화(石花)가 산발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아랑각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40), 055-359-5590
아랑각은 조선 시대 사당으로, 밀양 남천강 옆의 영남루 바로 아래 대나무숲 속에 있다. 이 비각은 죽음으로써 처녀의 정절을 지킨 아랑을 기리는 것인데, 조선 명종 때 세워진 것이라 한다.
아랑은 조선 명종 때 밀양부사의 딸 윤동옥을 가리키며, 재기 있고 자색이 뛰어난 규수로 전해진다. 18세 때 유모의 꾐에 빠져 영남루로 달구경을 갔다가 통인 주기에게 정조를 강요당하자 죽음으로 정절을 지켰다.
이후 밀양 사람들은 아랑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정절을 기리기 위해 영남루 아래 아랑의 시신이 묻혔던 곳에 열녀사라는 사당을 지었다. 매년 음력 4월 16일이면 소복한 처녀들이 제관이 되어 제등을 밝히고 그의 정숙한 넋을 기리는 아랑제가 열리고 있다.
사당은 맞배지붕의 3칸 건물이며, 삼문으로 이루어진 정문은 ‘정순문’이라 편액하였다. 사당 안에는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가 그린 아랑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박시춘 옛집
밀양시 영남루1길 16-5 (내일동 318-2)
박시춘 옛집은 영남루 후문 바로 옆에 있다. 대중음악 작곡가 박시춘(朴是春, 1913~1996)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이곳은 선생이 유년 시절을 보낸 옛집으로 7세부터 11세까지 살았다. 입구에는 ‘애수의 소야곡’ 악보를 새긴 돌탑과 박시춘 선생의 흉상이 세워져 있고, 돌탑에서는 끊임없이 선생이 만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진흙과 볏짚 등으로 지어진 초가집엔 방 하나와 부뚜막이 있을 뿐이지만, 과거 이러한 형태의 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남아 있는 여행객들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박시춘은 본명이 박순동(朴順東)이며, 1913년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권번(券番)을 운영하던 부친의 영향으로 가무를 보고 들으며 부유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부친이 죽고, 가세가 기울자 유년 시절부터 유랑극단을 따라다니며 여러 악기를 연주하다가 ‘몬테카를로의 갓난이’, ‘어둠에 피는 꽃’으로 작곡가로 데뷔하였다. 1935년에는 ‘희망의 노래’에 이어 ‘항구의 선술집’, ‘물방아 사랑’을 발표하며 작곡가로 이름을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작곡가 박시춘 선생은 신라의 달밤, 애수의 소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럭키서울 등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가요들을 작곡하며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는 물론, 해방 후에도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전쟁 때에는 ‘전선야곡’, ‘굳세어라 금순아’ 등 3천여 곡의 애창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밀양읍성
밀양시 영남루1길 16-5 (밀양시 내일동 318-2)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석축읍성으로 1479년(성종 10)에 축조되었다.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전해오는 대부분의 읍성이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경에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대대적으로 건립된 것과 비교하면 밀양읍성의 축조시기는 이들보다 100년 이상 앞선다.
우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방정책이 시행된 시기는 조선 세종 때로 알려져 있다. 이때 전국 성곽 일제조사와 함께 방어력을 강화하게 된다. 기존 토성이나 석축산성은 수축작업이 이뤄지고, 동시에 옹성, 치성, 해자 등 방어시설도 더해진다. 밀양읍성도 이처럼 대대적인 보강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헐리어 옛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둘레가 1,425m, 높이 2.8m, 성내 우물이 넷, 못이 하나 있다고 한다. 1902년 경부선철도부설공사 때 4대문과 성벽의 석재가 모두 헐리어 철도부설공사에 이용되었으며, 아동산과 아북산을 잇는 산등성이에 퇴뫼성이 남게 되었다. 다행히 옛 지도를 보면 아동산과 아북산을 잇고 남천강과 해천에 그 흔적이 엿보이고, 산 능선을 따라 드문드문 남은 성 돌로 성벽의 위치도 드러났다. 밀양읍성은 이처럼 흔적이 미미해졌지만, 영남루가 옛 영광을 간직하고 있다.
밀양읍성은 최근 복원사업이 한창이다. 그중 2019년 복원한 동문은 새로운 볼거리가 됐다. 하부 성문과 상부 문루 정면 3칸, 측면 1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전통양식이다. 또 망루 무봉대(舞鳳臺)도 측면 2칸, 정면 3칸 목조 팔작지붕으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서남쪽 성벽 354m도 다시 쌓았다. 밀양관아도 제 모습을 되찾았다. 읍성 서쪽에는 방어용 인공 하천 해천이 흐른다. 하수도로 전락해 있던 해천도 시민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산뜻하게 제 모습을 되찾았다.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밀양시 내일동
밀양시 내일동 해천 일대에 조성된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는 밀양 해천 지역에서 태어난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2015년 조성되었다.
밀양시 해천 지역은 일제강점기에 전국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곳이다. 이에 밀양시는 2012년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해천 생태 하천 복원 사업’을 전개하였고, 당시 해천을 주변으로 항일운동테마거리를 조성하였다.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는 밀양 시내를 가로지르는 해천 600m를 따라 들어선 주택과 상가 벽면과 거리에는 해천이 배출한 독립운동가의 벽화와 태극기 변천사, 영화 「암살」 장면, 중국 산시성에 있는 당집 누각 벽면에 쓴 항일 선전 구호, 의열대장 김원봉과 부인 박차정의 모습과 각종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한편,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주변에는 약산김원봉, 백민황상규의 호를 딴 ‘약산로’,‘백민로’가 있으며, 밀양해천 생태 하천, 의열기념관, 석정 윤세주 어록비 등을 볼 수 있다.
●달빛 쌈지공원
밀양시 내일중앙1길 21-29 (내일동 431-128), 055-359-5646
달빛쌈지공원은 ‘밀양 관아 주변 공공 디자인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문화 및 휴게 공간이며, 밀양시의 대표적인 도심 관광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폐쇄되고 낡은 수도 공급 시설인 배수지의 지하 저수조를 문화 및 휴게공간으로 새롭게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문화 및 휴게공간으로 변신한 달빛쌈지공원은 전망대와 스카이웨이, 탐방 테크, 체육시설, 벽화와 스탠드 등을 조성해 다양한 볼거리와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달빛쌈지공원 입구 오른쪽에 체육시설이 있으며, 길을 따라 이동하면 스탠드, 탐방 데크, 전망대가 있다. 주 출입구는 턱이 없어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무장애 공간이며, 목줄 착용 시 애완동물 동반도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내일5통의 비탈진 사면 정상에 있어 밀양 시내와 밀양강 전망이 좋으며, 특히 야경과 일몰이 아름다워, 전국에서 손꼽히는 일몰 명소로 소개되고 있다. 야외공원이라 탁 트여있고, 24시간 언제든지 이용 가능하며, 주차장 역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인근에 백중놀이 전수관, 영남로, 밀양 금시당 백곡재 등 문화 유적지가 있어 밀양시의 대표적인 도심 관광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밀양시립박물관
밀양시 밀양대공원로 100 (교동 485-4), 055-359-5589
밀양시립박물관은 낙동강 유역의 문화를 집대성하여 효율적으로 보존·전시하고, 향토 사료의 수집과 조사, 연구, 정리 등을 통하여 역사와 문화예술에 대한 향수를 증대하고 사회교육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대지면적 2만 5231㎡, 전체면적 5289㎡, 박물관 면적 4725㎡이며,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물관은 역사·민속·유학·서화 등의 상설전시실과 중생대·신생대의 화석전시관, 독립운동기념관, 기획전시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외에 문화상품점과 카페, 휴게실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소장품으로는 김홍도의 ‘선유도’ 조정규의 ‘군어도(群魚圖)’, 사명대사 친필인 ‘용담취규정 잡영(龍潭翠叫亭雜詠)’, 밀양십이경도(병풍) 등의 서화 자료와 순청자명문매호 등의 도자기와 토기류, 소눌선생문집책판외 50종 등의 문집 책판류, 민속 및 생활유물 등 낙동강 유역과 밀양에서 출토된 고고 유물이 주류를 이루며, 금속제품·옥석 제품·토기·도자기·골각패·목죽초칠·서화탁본·문집 책판·화석 등을 합하여 총 8,5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밀양시립박물관에는 낙동강 문화 유물 외에 화석전시관, 밀양 독립운동기념관이 조성되어 있어 또 다른 재미와 볼거리를 선사한다. 화석전시관은 고생대 중생대 등 전 세계에 분포된 주요 화석(공룡, 어류 등) 244점이 전시되어 있다. 또, 밀양 독립운동기념관은 독립의열단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과 석정 윤세주 열사 등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을 조명해 볼 수 있다. 1919년 3월13일부터 일어난 밀양지역의 주요 만세운동과 파리장서운동, 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사건 등은 물론 밀양의 근현대사를 조명해 볼 수 있다.
●금시당 벽곡재
밀양시 활성로 24-183 (활성동 581), 055-359-5788
경상남도 밀양시 활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사인 금시당은 조선 명종 때 부승지를 지낸 이광진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은거하여 덕성을 함양하던 별업(別業)이다. 1566년(명종 21)에 ‘백곡정사’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다. 밀양강이 굽이치는 언덕 위에 지어진 금시당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5대손 백곡 이지운이 1744년(영조 20)에 복원한 것이며, 11세손 이용구가 종중의 논의를 얻어 1867년에 증축하였다. 금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크기에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시(今是)’는 ‘지금이 옳다’라는 뜻으로 중국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 (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틀렸음을 깨달았다)’에서 따온 것이다. 이렇듯 유구한 역사까지 두루 갖춘 금시당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정원은 조용하고 절제된 운치와 여백의 미가 느껴지며, 정원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460여 년 된 은행나무는 말문을 막히게 할 정도로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이광진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여름이면 무성한 푸른 잎을,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잎을 자랑한다. 금시당은 1996년 3월 11일 백곡재와 함께 밀양 금시당 백곡재라는 명칭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밀양 백곡재는 금시당을 재건한 이지운을 추모하기 위하여 1860년(철종 11)에 세운 건물로 금시당 동쪽 축대 위에 있다. 금시당은 용두산이 주위를 에워싸고 살탄이 감돌아 시원하고 명랑한 풍경을 자아낸다. 봄에는 시(詩), 여름에는 예(禮)를 공부하는 것을 규범으로 하여 학업을 익히는 강학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밀양 금시당 백곡재는 건축 규모나 양식이 금시당과 일치하지만, 온돌방과 마루의 위치가 반대로 되어 있다. 밀양 금시당 백곡재는 정당(正堂)인 금시당을 중심으로 백곡재, 문서방, 고자사, 대문 등이 배치되어 있다.
●호박소계곡(시례 호박소), 얼음골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로 334-1, 산림녹지과 055-359-5361
밀양 시내에서 약 32km 떨어진 산내면 남명리 시례마을에 재약산(천황산)에서 뻗어 내린 얼음골이 있으며, 여기서 3km쯤에 가지산의 한 물줄기인 호박소 계곡이 나타난다. 수십만 년 동안 계곡물에 씻긴 백옥 같은 화강석 위로 하얀 포말을 이루며 쏟아지는 계곡물과 주변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한국의 명수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호박소계곡(밀양 8경 중의 하나)은 기우제를 지내던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호박소는 10여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로 인해 움푹 패인 못인데 방앗간에서 쓰이는 절구의 일종인 호박처럼 생겼다고 해 ‘호박소’라 불린다 하였다. 둘레는 30m 정도 되며 시례호박소, 구연폭포, 또는 백련폭포라고도 불린다. 또한, 호박소는 오랜 가뭄이 계속될 때 기우제를 지내는 기우소였다고 한다.
옛날, 이 지방 사람들이 물의 깊이를 알아보기 위해 돌을 매단 명주실 한 타래를 다 풀어보았지만, 끝이 닿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깊다고 한다. 하얀 바위 바닥으로 이루어진 이 폭포골은 그야말로 무공해, 무오염 지대로 주위에 백련사, 형제소, 오천평 반석 등이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얼음골
알음골은 호박소 인근에 있다. 재약산(천황산) 북쪽 중턱의 높이 600~750m쯤 되는 곳의 골짜기 9천여 평을 얼음골이라고 한다.
더위가 시작되는 3월 중순부터 바위틈에 냉기가 뿜어져 나와 얼음이 얼기 시작하며, 삼복더위 때도 얼음이 얼었다가 처서가 지나야 녹는 곳이며, 반대로 겨울철에는 계곡물이 얼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공기가 나오는 신비로운 곳으로 천연기념물 224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그 밖에 가마볼협곡, 오천평 반석 등 아름다운 계곡이 있으며, 특산물로는 밀양 얼음골 사과가 유명하다.
●얼음골축음기소리박물관
밀양시 산내면 산내로 926-1, 055-354-8878
얼음골축음기소리박물관은 주변에 영남의 알프스라 불릴만큼 산세가 아름답고 맑은 계곡과 명품 얼음골 사과의 주산지이며 밀양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밀양 얼음골 입구 대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2016년 4월 개관한 얼음골축음기소리박물관은 부지 면적 971㎡, 건축 연면적 470㎡의 지상 2층 규모의 건물이다. 1층에는 초기 축음기, 트랜지스터 탁상용 라디오, 소형 녹음기 및 소형 라디오를 전시하고 있는 1전시실, 휴대용 전축, 가구형 축음기, 초기 레코드,SP음반, 전화기를 전시하고 있는 기획전시실, 수장고, 사무실, 휴게실이 있다.
2층은 초기 라디오, 가구형 라디오, 진공관 라디오, 진공관 축음기가 전시된 2전시실, 텔레비전, 라디오, 전축이 전시된 3전시실, 녹음기, 전축, 카세트 라디오가 전시된 4전시실, 교육실로 구성되어 있다.
얼음골축음기소리박물관은 초기 소리 과학 유물인 태엽식 축음기, 진공관 전축, 진공관 라디오, 초기 전화기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옛 기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토요문화학교 등의 문화 예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LP판도 다수 전시하고 있어 흘러간 옛 가요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야외전시실에서는 옛날 장난감, 문구류, 비디오 등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되어 있다.
●밀양한천박물관
밀양시 산내면 봉의로 58-31 (봉의리 1722)
밀양시 산내면 봉의리 밀양 한천테마파크 내에 있는 한천 관련 사립박물관으로 밀양의 특산물인 한천의 역사와 변천 과정 등 한천에 대한 모든 정보를 대중에게 알리고 생산 도구 및 영상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한천은 우뭇가사리 따위를 끓여서 식혀 만든 반투명하고 말랑말랑한 물질이다. 바다에서 나온 우뭇가사리를 삶아 우무를 채로 썰어 말리면 수분이 빠지면서 한천이 된다. 산내면은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한천 생산의 적지이다. 밀양은 1913년부터 시작한 한천 산업의 발상지이다.
밀양 한천은 밀양시 산내면에 5만 평 크기의 생산공장 및 건조정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300t의 한천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밀양 한천은 국내 자연 한천 생산량의 90% 이상을 생산하고 있으며 겨울철 드넓은 밭에 새하얀 한천을 말리는 모습은 오직 밀양 한천에서만 보실 수 있는 광경이다.
한천박물관에서는 한천 이야기, 한천 산업의 역사, 한천 제조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한천 생산에 필요한 천칭, 각한천 포장기, 건조 틀, 건조대 등 한천 제조 도구를 전시하고 관련 영상물도 제공한다. 테마파크 내 한천 체험관에서 한천을 활용한 젤리 만들기, 양갱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백운산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 산 1-1
백운산(白雲山)은 밀양시의 동북쪽 경계를 이루는 운문산, 가지산 산지의 남쪽에 있다. 해발 고도는 885m이다. 백운산이라는 이름은 산 전체가 한 조각 구름처럼 보이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밀양 백운산(891m)은 화려한 산세에 비해 생각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주변에 영남알프스라는 1000m급 이상의 산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운산은 바위와 육산의 조화를 이뤄 여타 산을 압도할 만큼 화려한 풍치를 자랑한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돼 있고, 크랙과 슬랩이 주류를 이룬다. 난간처럼 돌출된 바위틈에는 조형성 있는 소나무 수백 그루가 자란다.
7부능선 화강암 큰 슬랩은 이 산 최고의 경관으로 꼽는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와 등산객의 감탄사를 자아낸다. 고개를 돌려 케이블카가 있는 쪽에 펼쳐지는 풍치도 이 산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최근에 발견된 것 중 재미있는 것 하나, 천왕산줄기∼얼음골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에서 북쪽을 내려다보면 백운산이 백호랑이처럼 보인다고 한다. 무성한 숲 사이로 힐끗힐끗 보이는 거대한 화강암은 백호랑이 형상, 그 사이 띠를 이루고 자라는 소나무 군락은 호랑이 줄무늬를 연상케 한다.
이 산이 소재하고 있는 산내면은 예부터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 불렀다. 타원으로 위치한 1000m급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호리병처럼 생겼다는 뜻이다. 삼락의 가경으로도 불렀는데 깨끗한 청류와 땅 암반이 좋다는 뜻이다.
들머리는 시례 호박소 주차장이다. 옛 24번 국도를 따라 얼음골 케이블카 하부 승강장 앞을 지나 오르면 백연사 입구 호박소 주차장에 닿는다.
●영남알프스 얼음골케이블카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로 241, 055-359-3000
사자평에 오르는 길은 영남알프스 얼음골케이블카 설치로 용이해졌다. 케이블카를 개통하기 전에는 사자평에 오르려면 표충사에서 시작하여 2시간가량 힘든 코스를 올라야 했지만, 얼음골 케이블카를 타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단번에 재약산의 거대한 능선 위에 올라설 수 있도록 해준다. 운행시간 오전 8시 30분~오후 5시까지. 능선의 상부 승강장에서 사자평까지는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
●재약산 사자평(재약산)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산림녹지과 055-359-5357
영남알프스는 밀양, 청도, 울산에 모여 있는 해발 1000m 이상인 재약산, 신불산, 취서산 등 7개 산군이 유럽 알프스의 풍광과 버금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남 알프스의 한 봉우리인 재약산(1189m)은 산세가 수려하여 삼남금강이라 불린다. 산세는 부드러운 편이나 정상 일대에는 거대한 암벽을 갖추고 있다. 능선은 드넓은 억새평원으로서 사자평 고원지대라고 부르는데, 일대는 해발고도가 800m에 달해 목장으로 개발되어 있다.
표충사 북동쪽에 솟아오른 재약산을 중심으로 필봉, 사자봉, 수미봉, 천황봉, 관음봉 등의 연봉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고, 상부의 8부 능선 부근인 해발 700~800m 사이에는 '사자평' 이라 불리는 고원지대가 있다.
광활한 분지를 이루는 이 사자평에는 억새밭이 펼쳐져 가을철이면 일대 장관이다. 재약산 수미봉에서 사자봉 일대 능선을 따라 100만 평의 초지 위에 펼쳐진 사자평고원은 우리나라 최대의 억새군락지로 꼽힌다.
●표충사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구천리 23), 055-352-1150
표충사는 밀양읍에서 동쪽으로 28km 떨어진 재약산 기슭에 자리 잡은 사찰이며, 사명대사의 호국성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표충사는 654년에 원효대사가 나라의 번영과 삼국통일을 기원하고자 명산을 찾아다니던 중, 천황산 산정에 올라 남쪽계곡 대나무 숲에서 오색구름이 일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터를 잡아 절을 세우고 사찰의 이름을 ‘죽림사’라고 했다.
829년(신라 흥덕왕 4) 인도의 고승 황면선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 이곳에 머물 때 당시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악성 피부병에 걸려 전국에서 명산과 명의를 찾던 중 이곳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 이에 흥덕왕이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크게 부흥시켰으며, 왕자가 마셨던 약수를 영험한 우물 약수라는 뜻의 ‘영정약수’라 했고, 이때부터 절 이름을 ‘재약산 영정사’라 고쳐 부르고 크게 부흥시켰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사찰이 불에 타 소실된 것을 1600년에 혜징화상이 중건했다. 1679년에 실화로 화재가 발생하여 다시 소실되자 1680년에 대규모로 가람을 중건했다.
1839년(헌종 5)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국난 극복에 앞장선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를 모신 표충사당(지금의 대법사 자리인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영축산 백하암에 있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절의 이름을 ‘표충사’로 개명했다. 표충사는 1983년 사명대사 호국 성지로 성역화되었다.
표충사의 건물 배치는 대광전과 표충서원을 중심으로 두 개의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대광전은 불교, 표충서원은 유교 영역이다. 유교 공간이 불교 사찰 경내에 공존하는 특이한 가람 구조이다. 즉 불상을 봉안한 절(寺) 안에 유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당(祠)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의아하게 생각되지만, 표충사가 임진왜란 당시 호국 승병장으로 국난을 극복해 낸 사명대사의 우국충정이 서린 유서 깊은 절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이유는 쉽게 이해된다.
사명대사 진영이 봉안된 표충사당과 유물관에는 그가 걸쳤던 금란가사·장삼(중요민속자료 제29호)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16세기 말-17세기 초 법복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가사 장삼은 대사의 체취가 풍겨날 것 같이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경내에는 삼층석탑, 석등 등 많은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고, 대광전과 마주하고 있는 우화루에서 바라보는 계곡 또한 수려하기 그지없다.
●만어사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로 776 (용전리 4), 055-356-2010
만어사는 46년(수로왕 5)에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전설 속의 사찰이다. 『삼국유사』 「탑상(塔像)」 편의 ‘어산불영(魚山佛影)’ 조에는 만어사의 창건과 관련된 기록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지금의 양산지역 옥지라는 연못에 독룡 한 마리와 다섯 나찰이 서로 사귀면서, 농민들이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치는 등 온갖 행패를 일삼았다. 이에 수로왕이 주술로 그들을 제거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여 이들로부터 오계(五戒)를 받게 하였다. 이때 동해의 수많은 고기와 용들이 불법의 감화를 받아 이 산중으로 모여들어 돌이 되었는데, 이들 돌에서는 신비로운 경쇠소리를 났다.
수로왕은 이를 기리기 위해 절을 창건하였는데, 불법의 감화를 받아 돌이 된 고기떼의 의미를 살려 이름을 ‘만어사’라 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만어사에는 대웅전 · 미륵전 · 삼성각 · 요사채 · 객사가 있으며, 보물 제466호로 지정된 3층석탑이 있다.
미륵전 밑에는 고기들이 변하여 돌이 되었다는 만어석(돌더미)이 첩첩이 깔려 있는데, 두드릴 때마다 맑은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 경상남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수산제 역사공원
밀양시 하남읍 양동리 671
밀양 수산제는 전북 김제 벽골제, 충북 제천 의림지와 함께 삼한 시대 3대 수리시설 중 하나였다. 기록에 따르면 수산제의 둘레는 20리이며, 못 가운데에 죽도가 있었고 세모마름과 마름, 연과 귀리가 멀리까지 가득했다고 한다. 조선 전기의 문신 권람은 '수산제에는 연꽃이 피어나고 물고기와 자라가 떠서 헤엄치고, 죽도에는 대나무가 무성하다'고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수산제는 황무지가 되었다. 밀주지(密州誌)에 의하면 갈대와 연꽃만 만발했다고 한다. 다만 황토로 된 제방이 일제강점기 전까지 수산리에서 양동리에 걸쳐 약 1㎞ 정도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하남제방이 축조되고 새로운 수리시설이 생겨나면서 수산제는 논이 되거나 파괴되거나 묻히고, 교과서에만 나오던 이름이 되었다.
그후 수산제는 1986년에 수문을 비롯한 여러 흔적이 발견됐고, 복원 추진을 논의했으나 오랫동안 중단돼 왔다. 그러나 2017년부터 밀양시가 본격적으로 정비복원사업을 시작해 마침내 2019년 ‘수산제 역사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민들과 관광객들의 힐링공간이자 탐방 공간으로 탄생했다.
3만 3290㎡ 규모의 수산제역사공원은 초화류, 나무수국, 갈대 등 다양한 식물을 심어 자연친화적인 힐링정원으로 꾸며졌다. 연못과 수문 공간을 감싸며 이야기 정원, 소풍마당, 버들쉼터, 경작 체험원, 유실수원, 내고향 정원, 죽림원, 숲속 놀이터 등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정원 곳곳에 옛 시골의 정취를 풍기는 정자, 물레방아와 각종 조형물을 설치하고, 수산제역사공원 홍보관도 마련했다.
수산제 역사공원 홍보관은 밀양과 수산제의 역사 이야기를 시작으로 수산제 수문 가상 체험관을 거쳐 밀양 농업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경험할 수 있다. 키오스크를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VR을 통해 오감만족 농경문화 체험을 할 수 있어서 아이들의 자연탐구교실로도 손색이 없다.
●미리벌민속박물관
밀양시 초동면 초동중앙로 439 (범평리 406), 055-391-2882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에 있는 민속박물관이다. 조선시대 선조들이 사용했던 손때 묻은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여 1998년에 개관하였다.
폐교 후 자칫 흉물로 변하기 쉬운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전시된 민속품이 7백여 점, 고문서나 그림 등이 1천4백여 점 등 총 2,400여 점의 유물이 있다.
총 5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며, 안방 유물, 사랑방 유물, 소품, 서지 유물 등 종류별로 전시하고 있다. 옛날에 쓰이던 밥상, 물건을 넣어두던 반닫이, 평상, 가마 안에 두던 요강, 목침, 떡쌀 등 옛날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던 손때 묻은 물건들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
●사명대사 생가지
밀양시 무안면 사명대사생가로 642 (고라리 399), 055-359-5583
사명대사(유정)가 1544년(중종 30)에 진사 임수성(林守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3세 때 가출하여 직지사 신묵에게 가서 승려가 될 때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현재 사당인 숙청사와 사명대사가 태어나서 자란 곳인 육영당, 사명대사가 거처하던 사랑채인 사명당 등이 남아있다. 1992년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사명대사는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많은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또한, 사명당이 이따금 고향으로 돌아올 때 쉬었다는 바위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 그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고, 그의 생을 음미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을 뒷산 서쪽 기슭에 사명대사의 조모와 부모의 묘소가 있다.
사명대사는 중종 39년(1544년)에 13세 때 명종 11년(1556년) 유촌 황여헌 선생에게 글을 배우다 "세속 학문은 천하고 비루하여 시끄러운 세상 인연에 얽매여 있으니 어찌 번뇌 없는 학문을 배우는 것과 같을 것인가?" 하고 그해 가을 황악산 직지사로 가서 신묵화상에게 머리를 깎고 선문에 들어가게 되었다.
금강산에 들어가 수도하던 중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승병을 모아 의병장으로서 활약하였다. 1593년 명나라 구원군이 주축이 되었던 평양성 탈환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선조는 그의 공을 크게 인정하여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내렸으며, 일본과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그 뒤, 병을 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광해군 2년(1610) 설법을 마치고 세상을 떴다. 저서로 『사명당대사집』 7권과 『분충서난록』 1권 등이 있다.
●표충비
밀양시 무안면 동부동안길 4 (무안리 1194-1), 055-359-5639
표충비는 밀양시 무안면 표충사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 사명대사 유정 관련 충절비이다. 표충사에서 동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에 있다. 현종(顯宗)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서산대사·사명대사·영규대사의 충령을 표창하는 뜻으로 그 진영을 봉안하고 ‘표충사’로 사액하였으며, 1738년(영조 14)에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남붕조사가 이를 중수하면서 표충비를 세웠으며, 지금은 단층 팔작지붕의 보호각 내에 서 있다.
비의 재질은 대리석이고, 규모는 전체 높이 4m, 탑신 높이 270㎝, 비 폭 96㎝, 두께 54.5㎝이다. 비 전면에는 송운대사비명으로 시작하는 사명대사의 행장이, 후면에는 서산청허당휴정대사비명으로 시작되는 서산대사의 행장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좌측면에는 밀양영취산표충사사적비가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영중추부사를 지낸 이선현이 지었고, 홍문관부제학 김진상이 썼으며, 판중추부사 유탁기가 두전(頭篆)을 썼다.
비문 전면의 내용은 사명대사의 출가 행적과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선조로부터 8도 도총섭으로 임명된 내용, 카토 키요마사와의 담판 내용, 갑진년에 선조의 명을 받들어 국서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서 포로 3,000명을 데리고 온 사실 등으로 되어 있다.
사명대사의 우국충정이 지금까지도 이 비에 남아 있어 국가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밀양 추원재
밀양시 부북면 추원재길 58 (제대리 701)
밀양 추원재는 조선 시대의 유학자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 부자의 집터로 1986년 8월 6일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성리학 전수의 시조인 강호(江湖) 김숙자(1389~1456)가 1389년 처음 거처를 정하였고, 성리학의 거두인 그의 아들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이 태어나 자라고 죽은 집터이다.
1810년(순조10) 사림들과 후손들이 합의하여 여러 차례의 전란과 세월의 변천으로 황폐해진 건물을 개조·중건하여 그 이름을 ‘추원재’라 하고, 당호를 ‘전심당(傳心堂)’이라 하였다. ‘전심(傳心)’이란 조선 시대 성리학의 전수자라는 뜻으로 김종직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동방의 성리학이 정몽주 · 길재 · 김숙자에게 전해졌으며, 김숙자는 아들 김종직에게, 김종직은 김굉필과 정일두에게 전수한 데서 나온 말이다.
밀양 추원재는 김종직의 도학적 위상에 비하여 건물 규모나 부속 건물의 공간 배치가 협소하지만,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재실 내벽에는 양산군수 김유헌(金裕憲)의 「추원재 상량문」, 후손 김계선(金繼善)의 「전심당 창건기」, 밀양군수 이구섭(李球燮)의 「추원재 중수기」가 걸려 있다.
재실 앞에는 점필재 연보비와 흉상이 있으며,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마을 초입에는 1635년에 세운 ‘문충공점필재김선생신도비’가 있다. 밀양 추원재를 통해 선산김씨의 경상남도 밀양 정착과 조선 전기 밀양 향촌 사회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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