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가볼 만한 곳 총정리
강진만에 안긴 역사와 문학의 향기
글·사진 남상학
강진은 역사와 문학의 향기가 짙은 곳이다. 월출산 아래 무위사로부터 백련사, 다산초당, 김영랑생가, 전라병영성과 하멜기념관, 고려청자박물관, 마량항의 만호성까지 소중한 역사와 문학의 향가 드리워 있다. 이 모두를 둘러보는 강진 여행은 두고두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다산 인문학 여행
백련사
강진군 백련사길 145 (도암면 만덕리 246), 061-432-0837
강진 백련사는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에 있는 절이다. 사찰의 창건은 통일신라 시대 말기인 839년(문성왕1)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하였다. 사찰의 이름은 산 이름을 따라 만덕사라고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려 시대 원묘국사 요세(了世) 스님에 의해 사찰의 교세가 확장되었지만, 조선 시대에 들어 억불정책으로 백련사는 퇴보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약탈을 목적으로 자주 출몰하는 왜구들에 의해 점점 폐사될 지경으로 내몰렸다. 고, 사찰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게 되었다.
이후 1170년경 주지 원묘(圓妙)에 의해 중수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중수는 조선 세종 때인 1426년 주지 행호(行乎) 스님이 2차 중수를 하면서 백련사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1430년부터 대대적인 불사작업이 시작되었고, 효령대군의 도움이 컷다. 효령대군은 왕위를 동생(세종)에게 양보하고 전국을 유람하면서 강진 땅 백련사에 들어 8년 동안 기거하였다. 효종 때 3차 중수를 하면서 탑과 사적비를 세웠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건물로, 각 추녀마다 4개의 활주(活柱)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으며, 전면 2개의 주두(柱頭)에는 용두로 장식되어 있는데, 단청이 잘 되어 있는 다포집 건물이다. 내부에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이 삼존불은 중앙 본존불이 석가여래이기 때문에 당연히 좌우의 불상은 보살상이 배치되어야 하는데도 여래상을 안치한 점이 특이하다.
이 밖에 시왕전·나한전·만경루·칠성각 등의 건물이 있다. 절 앞에는 비자나무와 후박나무, 그리고 푸조나무와 함께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등이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다산초당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 68-35 (도암면)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 선생이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다. 다산(茶山)이라는 호는 강진 귤동 뒷산 이름으로 이 기슭에 머물면서 자신의 호로 써 왔다.
다산은 1801년 강진에 유배되어 18년여 동안 적거 생활하는 동안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면서 조선 시대 성리학의 관념론적인 학풍을 실용적인 과학사상으로 이끌고자 하는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다산은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 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 대부분을 이곳에서 완성했다.
다산초당은 노후로 붕괴된 것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1957년 복원하고, 그 후 다산 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이 유숙했던 서암을 복원하였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의 취취가 남아 있는 ‘다산 4경’이 있다.
다산이 병풍바위에 「丁石」이라는 글자를 새긴 정석바위, 수맥을 찾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흑산도로 귀양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며 고향이 그리울 때 심회를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그것이다.
다산은 1818년 57세에 강진에서의 유배가 풀려 고향 마재로 돌아갔다. 그 후 1836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다산의 독백서를 보면 고향에 가서도 다산에서의 추억을 잊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다산기념관
강진군 도암면 다산로 766-20 (도암면 만덕리 415), 061-430-3915
다산기념관은 다산초당 남쪽 800m 지점에 있다. 다산기념관은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18년 유배지 강진에 남겨진 흔적을 기념하고, 다산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하였다.
기념관에는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의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디지털 자료와 다산 선생 관련 진품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영정, 다산 연보, 가계도, 학통, 다산의 일생, 다산의 업적과 유물 등이 패널과 조형물로 입체감 있게 전시하고 있어 다산 선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사의재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27 (동성리 495-1), 061-433-3223
강진 사의재(四宜齋)는 강진읍 동성리에 있는 다산 정약용이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보수 유학파 대신들로부터 탄핵을 받고 강진으로 유배 갔을 때 최초로 머물렀던 주막집이다. 다산은 강진 고을에 들면서 지금의 이곳 사의재에 4년 동안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죄인이 강진으로 내려왔다고 하여서 주막 손님들과 백성들이 기피하였으나 유일하게 그의 사정을 알게 된 주막 노파가 호의를 베풀어주며 4년 동안 이곳에서 머물도록 주선해주었고 다산은 이곳에서 학문을 수양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지내왔다. 그리고 보은산방으로 떠나게 되면서 호의를 베풀어 준 주막 노파에게 감사의 뜻으로 주막을 사의재라는 이름으로 지어주었다.
사의재는 네 가지를 마땅히 뜻을 이뤄야 한다는 것으로 용모, 말씨, 성품, 행동을 가리킨다. 2007년 강진군에서 다산 실학 성지 조성에 따라 현재의 강진읍 동성리 일대에 복원하였으며 강진군 문화해설사가 주막을 운영하면서 해설사로 역할을 맡고 있다.
주막으로 들어서면 다산에게 먹을 것과 쉴 곳을 내주었다는 주막집 모녀의 동상이 반긴다. 이곳 주막은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로 불린다. 다산이 즐겨 먹었다는 강진의 정서가 듬뿍 담긴 구수한 다산정식과 동그랗게 부쳐낸 바지락 전을 맛볼 수 있다.
주작산자연휴양림
강진군 주작산길 262
주작산은 해남군과 강진군 신전면, 도암면에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해발 475m의 낮은 산이지만 날카롭고 웅장한 암봉과 말 잔등처럼 매끈한 초원 능선이 어우러져 있는 산이다. 산세가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듯하다 하여 주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등산로와 다도해의 일출이 유명하다. 강진 신전면 쪽에 주작산자연휴양림이 있다.
2007년 개장한 자연휴양림은 169ha의 광활하고 울창한 숲속에 4인 기준의 통나무집 구조로 이루어진 숲속의 집 17동, 휴양관 1동, 청자동 11동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대시설로는 야영데크장, 세미나실, 놀이터, 야영장, 등산로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주작산 진달래 군락지, 산수유 숲 등이 있어 강진 대표 휴양명소가 되고 있다.
영랑 시문학 여행
영랑생가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남성리 211-1), 061-430-3377
영랑생가에서 먼저 그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새긴 시비가 맞는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중요민속자료 제252호로 지정된 영랑생가는 현재 본채와 사랑채, 그리고 문간채 등 3동만 남아 있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사한 후 몇 차례 전매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해 오고 있다.
안채는 일부 변형되었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하였고, 문간채는 철거되었던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하였다. 생가에는 그의 시비(詩碑),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영랑의 시어(詩語)가 되는 모란이 많이 심겨 있다.
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 1월 16일 이곳에서 김종호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하였으며,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 활동시에는 주로 이 아호를 사용했다.
서울의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동경 청산학원에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박용철 등과 교류하면서 최초로 『시문학』 동인지를 만들면서부터 작품을 발표하였다.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0여 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 편이 광복 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영랑은 일제 치하에서 설움 받은 내용을 시로 표현하고 자신의 젊은 정열과 민족의 기상을 은연중에 문학을 통해서 불살랐던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거성이었다. 이 가옥은 건축적 의미를 지녔다기보다는 영랑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시문학파기념관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4 (남성리 222-2), 061-430-3372
영랑생가 앞에 있는 시문학파 전문 공립 박물관이다. 1930년 창간된 『시문학』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주도했던 시문학파 시인들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20세기 시문학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자 ‘시문학지’ 창간일에 맞춰 2012년 3월 5일 개관했다.
건축 총면적 634㎡, 부지면적 1,486㎡의 규모에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꾸며져 있다. 상설전시실에서 시문학파의 탄생 배경과 의의 및 시 세계, 1910~1950년대 현대 시사, 시문학파에 대한 1930년대 신문 보도 및 학계의 평가, 시문학파 전후의 시인들, 『시문학』, 시문학파 시인들의 사진, 저서, 육필, 원고지, 훈장, 일기장, 유족들의 회고 영상, 1920~30년대 시집과 문예지 창간호, 1940~50년대 시문학파 동인 작품이 수록된 국어 교과서 등을 차례로 만나볼 수 있다.
관람객들을 위한 휴게 공간이자 작은 기획전이 열리는 북 카페가 있으며, 세미나실, 20세기 시문학도서관이 있다.
세계모란공원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4 (남성리 산1-39), 061-430-3567
세계모란공원은 영랑의 대표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소재가 된 모란을 테마로 하여 꾸민 공원이다. 영랑생가 뒤편으로 이어져 영랑의 문학적 감성과 보은산 도시공원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생태문학공원이다. 영랑생가와 100m 거리도 안 된다.
시설로는 사계절 모란을 감상할 수 있는 유리 온실과 세계 각국의 다양한 모란의 자태를 느낄 수 있는 8개국 50종류의 세계 모란원, 서정시인 김윤식 선생의 영랑 추모원, 약수터의 물을 이용한 생태연못, 휴식과 공원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등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2,000여 개의 야간 경관 조명을 설치하여 대나무 숲을 그윽하게 밝히는 자연스러운 빛과 공원 내의 모란 폭포 및 다양한 조형물을 아름다운 조명 빛으로 꾸며, 낮과는 또 다른 밤의 매력을 연출하고 있다.
월출산 주변 풍경 여행
월출산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1229-1 (월출산 경포대탐방지원센터)
전라남도 영암군과 강진군 경계에 있는 산.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해발 810.7m로 높지는 않지만, 산체가 매우 크고 수려하다. 1973년 3월 남서쪽으로 3.5km떨어진 도갑산(道岬山:376m)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가, 1988년 6월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동쪽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는 강진만을 가로막고 있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다. 도갑사·무위사 등의 사찰과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44) 등을 비롯해, 뾰족한 암봉과 골짜기를 따라 폭포와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곳곳에 얽힌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북쪽의 용추폭포, 동쪽의 구절폭포, 남쪽의 금릉경포대) 등이 절경을 이룬다. 천황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 길이 51m, 너비 0.6m의 구름다리를 놓았는데, 절벽 높이가 무려 120m나 된다.
무위사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성전면 월하리 1175-3O), 061-432-4974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월출산 동남쪽에 있는 절로 신라 617년(진평왕 39)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강진 차밭을 가로질러 찾아가는 무위사는 일주문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절의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일주문을 지나 돌길을 밟으며 천천히 걸어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절의 본전인 극락보전에 이른다.
극락보전은 아미타부처를 모신 법당으로 주심포 구조의 건물로 맞배지붕이 단아하게 올려져 있다. 건물을 수리할 때 발견된 명문에 따르면 세종 때 만들어졌다고 하니 조선 초에 세워진 목조 건물이다. 최근까지 경내에 있던 목조건물은 극락전(국보 제13호)·명부전과 요사채뿐이었으나 1974년에 벽화보존각·해탈문·분향각·천불전·미륵전 등을 새로 지었다.
이밖에 경내에는 946년에 세워진 선각대사편광탑비(보물 제507호)와 삼층석탑, 종형의 옥신을 가진 사리탑, 석탑형식을 한 부도가 있고 미륵전 안에 고려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입상이 있다. 그리고 극락전 안에 있는 목조아미타삼존불상 및 29점의 불화는 조선 초기 작품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현재 삼존불상과 후불벽화만 남기고 모두 벽화보존각에 보존되어 있다.
강진 백운동 원림(정원)
강진군 월하안운길 100-63 (성전면 월하리 546), 061-430-3342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정원으로, 호남의 3대 정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도선 전기까지 백운암이라는 사찰의 터였으나, 조선 중기 처사였던 이담로(李聃老)가 은거를 위해 이곳을 별서 정원으로 조성하였다.
백운동 원림은 산수가 수려한 경승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계곡에서 인위적으로 물을 끌어들여 유상곡수(流觴曲水)를 만드는 등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는 정원이다. 정자각과 연못, 꽃밭 등으로 꾸며진 정원 공간과 안채, 사랑채 등의 건물이 있는 거처공간, 사당이 있는 사당 공간으로 구분이 되며, 정원 공간에서는 이곳을 방문한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다.
많은 선비들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강진 백운동 원림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많은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다산 정약용은 유배 중이던 1812년 (순조12)에 이곳을 다녀간 뒤, 그의 제자 초의 의순(意恂)에게 이곳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고, 백운동의 12가지 풍경을 시로 지어 『백운첩(白雲帖)』이라는 문집을 남겼다.
이렇듯 백운동 원림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 자체로 심미적 가치를 지니며, 조선 후기 다양한 문학 작품과 그림 등의 배경이 되는 등 인문학적인 가치도 크다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이유로 2019년 3월 11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강진 백운동전시관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산261-17
백운동전시관은 월출산 아래 풍경이 좋기로 이름난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는 지하식 구조로 설치돼 명승인 백운동 원림과 어우러진 양식으로 건축됐다. 백운동원림은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세연장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건축사와 조경사적 가치가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시관이 들어선 곳은 원주이씨 문중이 대를 이어 살고 있는 터전으로, 전시관은 건축면적 920㎡에 지상 1층, 지하 2층 규모이며, 상설전시실, 티 가든, 뮤지엄 숍, 체험 학습실, 수장고 등 국립박물관 못지않은 규모와 시설을 자랑한다. 전시관 지상 1층은 티 가든을 중심으로 체험 학습실, 뮤지엄 숍으로 구성돼 있으며 경관이 가장 좋은 장소이다. 상부를 포함한 주변이 대부분 유리로 돼 있어서 월출산과 백운동원림의 자연경관을 느낄 수 있으며, 상쾌한 개방감이 장점이다.
지하 1층 전시실은 현대 작가의 설치 미술품과 함께 보물급 유산인 동강공 이의경 초상화 진본과 함께 이의경이 사도세자에게 하사받은 시가 전시돼 있다.
상설전시실로 들어서면 백운동원림 홍보 영상 '백운동 시간의 길을 걷다' 코너로 회의실과 영상실을 겸해서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다. 백운동 건물을 모티브로 한 디오라마와 유유자적하는 처사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어 관람객들에게 현장감 있는 전시 환경을 제공한다.
이외에 다산 정약용과 깊은 우애를 알 수 있는 유물을 포함해 100여 점의 원주이씨 소장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백운동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인 '디지털 강진의 빛'은 환상적인 빛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영상으로 압도적인 몰입감과 영상미로 관람객들을 사로잡는다.
강진다원 (강진월출산다원)
강진군 성전면 백운로 93-25 (월남리 733), 061-432-5500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월출산은 예로부터 산 주변의 여러 사찰을 중심으로 차나무가 재배 되었던 곳이다. 따라서 일찍이 녹차를 애호하는 문인 선비들의 전통사상이 면면이 이어졌고, 특히 강진 해남지역의 녹차 사랑은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의 영향으로 그 뿌리가 더욱 굳건했다.
강진 월출산 아래의 볼모 야산도 1981년 5월에 개간되기 시작하여 약 10만여 평의 다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좋은 차는 명산에서 생산된다는 말이 있듯이. 이곳은 해방 직전까지 국내 최초의 녹차 제품인 백운옥판차(白雲玉板茶)라는 전차(錢茶)를 생산하던 차산지이기도 하였다. 일찍이 정약용이 월출산에서 나는 차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좋은 차라고 할 만큼 이곳은 차 재배지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월출산은 적당한 습도와 주·야간 온도차가 크고 안개가 많아 차의 떫은 맛이 적고 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이곳 다원은 이른 봄부터 어린싹을 채엽하기 시작하여 1년에 3~4회 채엽을 한다. 넓은 차밭과 서리방지용 팬이 설치되어 있어서 이국적인 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강진월출산다원 (성전면 월남리 733) 외에 설록강진다원(성전면 월남리 1209-1), 월향다원 (성전면 월하리 산 38) 등이 있다.
조선병영 역사여행
강진 전라병영성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75 (성동리 137), 061-430-3312
조선조 600년 간 호남과 제주도 53주 6진을 통할한 육군의 총 지휘부로 1417년(태종 17) 본래 광산현에 설치되어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이설한 성이다. 이 지역은 고려 시대에 도강(도강) 현의 행정 중심지가 있던 곳으로, 조선 시대 태종 17년(1417)에 병마절도사 영을 둔 곳이다.
초대 병사인 마천목 장군이 꿈속에 계시를 받아 눈(雪)의 자국을 따라 축조하였다 하여 설성이라고도 하는데, 평지에 축조된 성으로 『대동지지』나 『색지』 등에 따르면, 둘레 2,820척, 높이 18척, 옹성 12개소, 연못 5개소, 우물 9개소, 포루 2개소였고 성문 4개소, 연회장, 객사 등 15동의 부속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1599년(선조 32) 일시 장흥으로 이설되었다가 1604년 다시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제주도에 표착했던 네델란드인 하멜이 이곳으로 압송되어 8년여 동안을 억류생활 했던 곳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병영성이 함락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듬해인 1895년(고종 32) 갑오경장 때 폐영되었다.
전라병영성지는 당초 1992년 3월 9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다가 1997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당시의 성곽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어 그 역사적 중요성과 의의를 한 차원 높이기 위해 성곽 등을 복원하였으며, 관련 유적으로 하멜체류지, 한골목, 병영홍교, 비자나무, 은행나무 등이 있다.
하멜기념관과 은행나무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80 (성동리 109), 061-430-3318
강진 하멜촌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하멜기념관이 2022년 11월 개관했다. 1653년 하멜이 탑승한 상선 스페르웨르 호가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중 폭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하였다가 서울로 압송되었는데 서울에서 효종을 알현하였다가 일본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였지만 거절되고, 1656년부터 1663까지 약 7년간 이곳 병영면 전라병영성에 머물게 되었다. 하멜은 이후 『하멜표류기』를 저술함으로써 조선에서의 생활을 최초로 서양에 알리기도 했다.
강진군은 2007년 12월에 하멜 일행의 조선 표류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고, 나아가 한국, 네덜란드 간의 문화적 교류 증대를 위하여 하멜기념관을 개관하였다. 총면적 2,025㎡의 기념관은 전라병영성, 하멜, 병영문화 3가지 테마로 구성되었다.
전라병영성 출토 유물 전시를 시작으로 17~18세기 네덜란드에서 사용된 생활용품,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린 하멜표류기 사본, 자매도시인 네덜란드 호르큼시에서 기증한 전통의상 3벌 등을 선보이고 있다. 4D상영관, 전라병영성 게임 등 체험 콘텐츠도 마련되어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체험 시설 중 공성전 게임은 병영성을 공격하는 왜군을 2인이 협동으로 막아내는 것으로 병영성의 본래 기능인 왜군에 대항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보여주는 콘텐츠로 관심을 끌고 있다. 4D 영상관에서는 하멜이 직접 배를 타고 풍랑을 만나는 장면을 실감 나는 4D 영상으로 제작돼 마치 직접 배 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용객의 인기를 끈다.
하멜기념관 부근에 수령 800년쯤으로 추정하는 성동리 은행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동성마을 중앙에 우뚝 솟아 마을의 상징목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 30m, 나무 둘레 6.75m이고 수형이 곧고 아름답다. 하멜의 표류기에도 은행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 15일 자정에 은행나무에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병영성 홍교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323-3, 061-430-5583
병영은 조선 태종 17년(1417)에 남해 지역의 외침을 방어하기 위하여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되어 500여 년간 호남을 지켜온 군사 요충지였으며 홍교는 병영의 관문이었다.
이 홍교는 일명 배진강 다리라고도 하는데, 장방형 화강석재 74개를 26열로 정교하게 무지개처럼 쌓고 잡석을 채워 보강한 다음 점토로 다리 위를 다졌다. 홍예의 상단 중앙에 돌출시킨 용두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풍운조화를 일으키려는 듯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그 모습은 매우 해학적이며 그 의장 또한 만인월교의 외경 신앙을 함축성 있게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축조연대는 숙종 무인(1698년)에 가선동추 경술(1739년)에 숭록대부가 된 류한계의 금의환향을 기념하여 양한조가 감독, 준공하였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18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건축의 수작이다.
강진 한골목 옛 담장
강진군 병영면 지로리
강진군 병영면 지로리에 있는 담장으로 2006년 6월 19일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담장은 하멜 일행이 1656년부터 7년간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전해져온 방식으로, 특히 이 지역에서 ‘하멜식 담쌓기’라 부르는 방식으로 축조해 만들어진 것이다. 빗살무늬 모양이특징이다.
담의 중간 위쪽으로 납작한 돌을 15도 정도 각도로 나란하게 쌓고, 그 위층에는 다시 반대 방향으로 15도 각도로 엇갈려 쌓은 방식으로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돌과 흙을 번갈아 쌓은 토석담과 돌담이 약 1만m나 된다.
하부에는 비교적 큰 화강석을 놓고, 중간부터는 어른 주먹만 한 크기 정도의 돌을 쌓아 올렸으며 담 위에는 기와로 지붕처리를 하였다. 담장 높이는 2m 정도로 높은 편인데 이는 병영마을이라는 특성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담장 역할을 하는 부속채도 담장과 같은 높이와 방식으로 축조하여 서로 조화를 이룬다.
남미륵사
강진군 군동면 풍동1길 24-13 (풍동리 580), 061-433-6460
강진군 군동면 풍동길 화방산에 있는 사찰로 동양 최대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로 온 누리에 평화가 가득한 사찰이다. 세계 불교 미륵 대종 총본산인 남미륵사는 1980년에 법흥 스님이 창건하였다. 이후 법흥 스님이 40여 년 동안 불사를 중창하고 꽃과 나무로 사찰 안팎을 가꾸어 현재의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경관을 갖게 되었다.
현재 동양 최대 규모의 아미타불 불상이 있으며 일주문에서부터 경내에 이르는 길에는 500나한상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이 길에 피는 서부해당화는 200만 그루나 된다. 군락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우리나라 바닷가에서 피는 붉은 해당화와는 달리 옅은 분홍색을 띤 꽃잎이 바람을 타고 빗방울처럼 흩날린다. 여기에 천만 그루의 철쭉이 빨간 얼굴을 내밀면 매력이 배가 된다.
이 밖에도 대웅전, 사왕전, 33관음전, 만불전, 천불전, 팔각 13층 석탑 등 아름다운 불사는 풍동 마을 경관과 잘 어우러져 국내외에서 불자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고려청자 예술여행
강진 고려청자박물관
강진군 대구면 청자촌길 33 (사당리 127), 061-430-3755
강진군 대구면과 칠량면 일대에는 고려 초기부터 후기까지 고려청자를 만들었던 가마가 있었고, 우리나라 청자의 발생과 발전, 쇠퇴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청자요지는 총 188개나 되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청자요지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이러한 중요성과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1963년 국가사적 제68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곳 고려청자박물관은 강진 청자 요지와 고려청자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ㆍ계승하기 위해 1997년 개관되어 다양한 전시ㆍ교육 프로그램으로 고려청자 연구의 메카 역할을 하고 있다. 박물관은 지상 1층과 2층의 전시공간에는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시청각실, 도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장 유물은 청자 파편을 포함하여 3만여 점에 이르며 이 중 475점을 전시하고 있다. 청자와 가마터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실 이외에 고려청자를 재현, 판매하는 작업장과 판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청자를 직접 빚어보고, 조각해보는 등 10여 종의 청자빚기 체험장과 함께 소속 도예가 선생님들이 직접 작업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상형실·조각실·성형실을 개방하고 있다.
한국민화뮤지엄
강진군 대구면 청자촌길 61-5 (사당리 72-1), 061-433-9770
한국민화뮤지엄은 국내 최초의 민화 전문 박물관인 영월 조선민화박물관의 자매관으로 2015년 5월에 강진군 대구면에 건립되었다. 전통 민화의 계승 발전을 위해 체계적인 연구와 수집은 물론 전시와교육, 전문 서적의 출판, 맞춤형 체험학습, 포럼, 공모전 등을 추진하고 있다.
건축 총면적은 1,859㎡의 규모에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특별전시실이 있다. 소장하고 있는 4,500여 점의 민화 유물 중 250점을 상시 순환 전시하고 있으며 관람객은 언제나 전문 해설가의 재미있는 민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매년 개최되는 공모전 수상작과 현대 민화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하여 민화의 시대적 흐름을 한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민화체험 및 재미있는 4D영상 체험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성인 전용 춘화전시실이 2층에 마련되어 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휴일인 경우 개관), 구정 및 추석에는 휴관한다.
물줄기를 따라가며 강진 즐기기
마량항으로 이어지는 23번 국도 드라이브
탐진강 물줄기가 바다로 들어서면 차진 갯벌이 가득한 강진만이 펼쳐진다. 풍요로운 강진만을 따라가는 23번 국도는 한국의 나폴리를 꿈꾸는 아름다운 항구, 마량항으로 이어져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강진 읍내에서 강진만의 바다를 만나려면 옹기로 유명한 칠량면을 지나야 한다. 23번 국도는 매지리공원을 지나 한 굽이 크게 올라서는데, 이때부터 강진만의 차진 갯벌과 바다가 여과 없이 펼쳐진다. 고갯마루 우측에 있는 작은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강진만의 풍경은 더없이 고즈넉하다. 특히 해질무렵이면 갯벌이 황금빛으로 물들면서 장관을 연출한다.
정자를 지나면 강진만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가우도가 금세 눈에 들어온다. 가우도 지나면 강진만의 풍요로운 갯벌을 체험할 수 있는 하저, 백사, 서중 어촌체험마을이 차례로 이어진다. 물때가 맞으면 조개잡이 체험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가우도에서 하저마을을 지나면 고바우 상록공원으로 불리는 전망 좋은 곳이 나온다. 이곳에 서면 강진만과 건너편 도암면, 신전면 일대가 바라다 보인다. 고바우 상록공원을 지나면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갯벌을 따라 한적하게 걷기 좋다. 미산마을을 지나 백사마을까지 4km 정도 이어진다.
마량항 입구에는 조선 태종 때 마도진이 설치됐던 곳으로 만호성이라 불리는 성터가 마량항 뒷산인 북산 자락을 따라 이어져 있다. 만호성은 종사품 수군만호가 배치돼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1499년(연산군 5년)에 축조된 석성으로 성벽의 길이는 총 730m 정도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길이 220m, 높이 2.3m에서 4.7m 가량으로, 이를 보존하고자 전라남도에서는 지난 1999년 12월, 강진 마도진 만호성지를 도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만호성 건너편으로 후박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상록수림이 우거져 천연기념물 제172호로 지정된 까막섬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갖춰져 있다. 강진군 끝자락에 있는 마량항은 관광미항으로서 여행객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갖춘 곳이다.
강진만생태공원
강진군 신전면 벌정리, 061-430-3114
강진만에는 강진군의 내륙 깊숙이 들어간 탐진강을 비롯하여 장계천·강진천·도암천 등 여러 하천들이 흘러든다. 이로 인하여 주위의 해역보다 염도가 낮아 영양염도가 2.4도, 평균 수온이 17.8℃로서 해조류 및 어패류의 서식에 적합하다.
강진만은 1978년 청정수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이곳에 조성된 강진만생태공원은 대합, 꼬막, 굴, 갯장어, 새우, 낙지,숭 어, 농어 등의 산지이다. 또한, 20여만 평의 갈대 군락지에는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 등 약 1,131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등 남해안의 최대 생태의 보고이다. 습지 위에 설치된 나무데크를 걸으며 이를 관찰할 수 있어 꼭 방문해야 하는 곳이다.
가우도
강진군 도암면 월곶로 473, 061-430-3114
강진군 도암면 망호(望湖)에 속한 강진만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이다. 가우도는 강진읍 보은산이 소의 머리에 해당되고, 섬의 생김새가 소(牛)의 멍에에 해당된다 하여 ‘가우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가우도는 사방으로 강진만과 무인도를 조망할 수 있으며, 해안 경관이 매우 우수하고 섬 내부에는 후박나무, 편백나무 군락지 및 곰솔 등 천혜의 관광 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출렁다리가 가우도 양쪽으로 연결되어 걸어서 섬에 들어갈 수 있다.
섬에 도착하면 산과 바다를 감상하여 걸을 수 있는 2.5km의 생태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또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 복합낚시공원, 섬 정상에 있는 청자타워(높이 25m)에서 출발하여 해상을 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친환경 레저시설인 집트렉, 바다를 가르는 제트보트 등 다양한 레저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 강진 여행의 필수 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마량항
강진군 마량면 미항로 150 (마량리 983-39)
마량항은 탐라로 가는 해상 교통의 관문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칠량면 등 강진만 일대에서 만든 고려청자를 개성까지 실어나르던 500km 뱃길의 시작점이었고, 조선 시대에는 제주에서 실려 온 제주마들이 육지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이었다.
탐라에서 뱃길을 따라 실려 온 말들이 뭍에 처음 내려서 먹이를 먹었던 곳이라 하여 마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마량에 내린 말들은 일정 기간 동안 육지 적응 훈련을 받고 한양으로 옮겨졌다. 마량항 인근에는 말들이 쉬어 가던 쉼터가 있는 신마마을이 자리했다.
마량항은 2006년 전국 최초로 관광미항으로 거듭났다. 마량항은 3곳의 방파제와 수협위판장, 수산물판매센터 등 다양한 즐길거리와 함께 활력 넘치는 항구의 풍경이 펼쳐진다. 또 도로를 따라 20여 곳의 횟집이 성업 중이어서 사시사철 신선한 활어를 맛보기에 제격이다.
마량항 오른쪽 중방파제는 소나무동산을 시작으로 시가 있는 광장, 꼬막이 있는 광장, 푸른 용 열주 등 다양한 테마 공간을 비롯해 파도벤치와 물고기벤치 등 휴식 공간, 까막섬 등이 바라다 보이는 조망시설을 갖추고 있다. 320m에 이르는 방파제 끝에는 하얀 등대가 서 있다. 가운데에 있는 하방파제 끝자락에 지름 36m의 원형 잔교를 설치해 무대를 만들었다. 고금대교가 바라다 보이는 동방파제에서는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서 낚시와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마량항 입구 까막섬은 물고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어부림의 역할을 하고, 고금도가 마량항으로 밀려드는 파도를 막는 천혜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마량항은 늘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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