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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돈덕전, 대한제국의 연회장·영빈관으로 이용된 건물

by 혜강(惠江) 2024. 9. 30.

 

돈덕전

 

대한제국의 연회장·영빈관으로 이용된 건물

 

글·사진 남상학

 

 

 

  돈덕전은 덕수궁 석조전 뒤편에 있는 서양식 2층 건물이다. 처음에 이곳은 경운궁(덕수궁의 옛 이름) 영역이 아니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대한제국 정부의 총세무사였던 영국인 존 맥리비 브라운(J. M. Brown)이 관장하던 해관의 한옥 청사가 있었다. 그러다 1901년 (광무5년) 경에 경운궁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궁내 주요부 영역과는 떨어져 있었다.

  당시 고종은 1902년(광무6) 10월에 있을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식의 연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기존의 해관 건물을 철거한 뒤 새로운 양관 공사를 시작했다. 근대화를 주도해 큰 성과를 거둔 고종은 이 예식을 통해 근대국가 대한제국의 위용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각국의 외교관들을 초청해 대규모 행사를 계획했다. 바로 그 행사의 연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돈덕전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공사가 늦어지고 당시 전국에 전염병 창궐, 러일 관계 악화 등의 국내외 사정으로 기념식이 연기되다가 결국 취소되면서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식의 연회장으로는 사용되지 못하였고 그 이듬해인 1903년(광무 7년)에야 비로소 완공되었다.

  돈덕전의 건물 명칭인 ‘돈덕(惇德)’은 오경(五經) 중 하나인 《서경(書經)》의 글귀 '惇德允元(돈덕윤원, 덕이 있는 이를 도탑게 하고, 어진 이를 믿는다)’에서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덕이 있는 자’는 교류하며 신뢰를 쌓아가야 할 여러 국가를 가리킨다.

  현판의 글씨는 당나라의 서예가 구양순(歐陽詢, 557~641)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쓴 것으로, 현판의 원본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전시 중이다.

 

 

  그 후 돈덕전은 고종이 외국 공사를 만나는 연회장으로 사용되거나 외국의 귀빈들이 묵는 영빈관 등으로 활용되었다. 대표적으로 1905년 (광무 9년) 방한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와 일본 황족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 등이 여기서 머물렀다.

  또, 1906년(광무 10년)에는 황태자 이척(순종)과 황태자비 윤씨(순정효황후)의 가례 때 연회장으로 사용했다. 또, 대한제국의 2대 황제 순종은 1907년 7월 돈덕전에서 즉위식을 했다. 1907년 11월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후에는 고종이 외부인을 만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한 후로는 덕수궁과 함께 방치되었다가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던 것을 2015년부터 돈덕전 복원·정비사업이 시작되어 2023년 5월 덕수궁 돈덕전 복원이 완료되어 2023년 9월 정식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100여 년 만에 다시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복원된 돈덕전을 살펴보면, 돈덕전 외관은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로 쌓아 만든 2층 건물이다. 고딕 건축 양식과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절충하여 디자인하였다. 벽돌 쌓기 양식은 중명전, 구성헌과 동일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남은 중명전과 달리 붉은 벽돌은 창문 사이의 벽에만 쌓고, 주로 회색 벽돌의 비율이 높았다.

 

 

  내부공간은 대한제국의 외교 장소라는 역사적 의미를 살려 대한제국 외교사 중심 전시와 기록보관, 도서 열람, 국내외 문화교류와 예술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1층은 당시 대한제국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상설전시실과 국제행사가 가능한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었다. 2층에는 대한제국을 비롯한 한국 근대외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실과 회의장·공연장 전용이 가능한 대한제국 외교사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아카이브 자료실로 구성됐다.

 

◎이용안내

이용문의 : 02-771-9951 / 이용시간 : 09:00~17:30 (입장마감 17:00), 쉬는 날 : 매주 월요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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