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추암 촛대바위
파도와 바람이 빚은 바닷가 바위 숲과 해안 절벽
글·사진 남상학
여행 3일차, 쏠비치삼척에서 단잠을 깼다. 커튼을 여니, 구름 속에서 붉은 해가 솟고 있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동해에서 솟는 해는 유난히 감상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어제 초곡 촛대바위를 보았으니, 오늘은 동해의 추암(湫岩)을 찾아갈 예정이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형상의 바위 그 모양이 촛대와 같아 촛대바위라 불리는 이곳, 해안의 바위 사이에서 뾰족하게 솟은 촛대바위는 촛대라는 비유가 꼭 들어맞는다.
촛대바위로 오래전부터 알려진 이곳의 촛대바위는 여러 촛대바위 중에서 원조격이다. 지질학에서 시스택(sea stack)이라 일컫는 지형이다. 파도의 침식이 만든 예술품인 셈이다.
▲추암 앞바다로 솟는해
추암의 명물, 촛대바위
동해 추암은 고생대 캄브리아기의 석회암이 오랜 세월을 거쳐 해안침식 작용을 받아 형성된 암봉과 석주 등이 병렬되거나 중첩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자연이 수만, 수억 년에 걸쳐 남긴 흔적은 경이 그 자체다. 사람 손길이 닿은 예술과 전혀 다른 감동이다.
해돋이 명소를 꼽는다면 단연 동해 추암해변이 1순위다. 이곳의 일출 장면과 추암 촛대바위, 기암 석림(石林)은 가히 장관이다. 동해의 망망대해에서 솟아오른 해의 움직임에 따라 어둠 속의 촛대바위, 가늠쇠 바위, 형제 바위의 실루엣은 이곳이 가장 빼어난 경관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지상파 방송의 애국가 첫 소절의 단골 배경 장면으로 나온 이후로 ‘애국가 바위’라고도 불린다.
능파대(凌波臺)는 추암해변 촛대바위 일대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조선 시대 도체찰사로 있던 한명회가 이곳을 방문한 뒤 이곳의 자연경관에 감탄하여 붙인 이름이다. ‘미인의 아름다운 걸음걸이’에 비유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촛대바위 주변에서 추암 출렁다리가 있는 곳까지 바위 하나하나가 대자연이 디딘 아름다운 걸음걸이다. 현재 촛대바위 위 언덕에 정자에 능파대라는 이름을 새겼다. 이곳에 서면 주변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다.
이를 증명하듯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1439~1504)은 <능파대>라는 시(詩)에서 “조선의 아름다운 경치는 세상에서 으뜸이며, 이 능파대는 또한 관동에서 으뜸이다.(神區勝境雄八垓 此臺亦是關東魁)”(허백당집 11권 수록)라 하여 능파대의 아름다움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또한, 조선 중기 풍속화가 김홍도는 1788년 정조의 명을 받아 관동의 아름다운 풍경을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 60폭으로 남겼는데 그 중 능파대가 현존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명승이다. 야산 자락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 장소가 되었던 허름한 민박집도 한적한 운치가 있다
해안을 가득 메운 기암괴석
촛대바위 전망대에서 촛대바위를 보고 해암정 쪽으로 걸음을 옮겨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능파대에 어울리는 기암괴석 무리가 보인다. 파도와 바람이 석회암을 깎아 생긴 지형으로, 라피에(lapies) 혹은 카렌(karren)이라 불린다. 물론 그보다 ‘한국의 스린(石林)’이란 표현이 실감 난다. 스린은 중국 쿤밍(昆明)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해안과 어우러진 석회암 무리가 촛대바위 못지않은 절경이다.
해암정
기암괴석 무리의 내륙 쪽에 북평 해암정 (강원유형문화재 63호)이 있다. 동해안의 기암(奇岩)이 솟아 절경을 이루고 있는 추암(湫岩) 앞에 세워진 정자다.
이 건물은 삼척 심씨의 시조 심동로(沈東老)가 고려 말기에 지었다는 건물이다. 고려 시대에 집현전 제학을 지낸 심동로가 1361년(공민왕 10)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세웠으나 소실되고, 1530년(중종 25)에 심언광(沈彦光)이 중건하였다. 그 뒤 1794년(정조 18)에 중수하였다.
동로(東老)는 ‘노인이 동쪽으로 돌아가다’라는 뜻으로, 공민왕이 그와 이별하기 아쉬워서 내린 이름이다. 바다를 벗 삼고 후학을 양성하며 세월을 보낸 옛 학자의 기품이 서려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현종 때 송시열(宋時烈)이 덕원(德原)으로 유배되어 가는 도중 이곳에 들러 '草合雲深逕轉斜 (초합운심경전사 : 풀은 구름과 어우르고 좁은 길은 비스듬히 돌아든다)'라는 글을 남겼다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 10개의 둥근 기둥으로 이루어졌다. 창문으로 바라보이는 바다의 모습은 여전히 장관이다.
추암 출렁다리
해암정을 지나 촛대바위 반대편 언덕으로 오르자 추암 출렁다리가 나온다. 2019년 6월, 바다 위에 놓은 길이 72m 다리다. 추암출렁다리는 바다 위를 건너는 아찔함보다 그곳에서 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조금 전에 본 능파대와 추암해변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 이사부사자공원까지 품어 동해와 삼척의 경계를 실감한다.
추암 조각공원
그뿐만이 아니다. 추암 출렁다리를 건너면 산책로를 따라 추암조각공원으로 이어진다. 대부분 출렁다리에서 돌아서기 때문에 공원은 한적하다.
추암해변 일원 조각공원은 조각작품에 빛이 접목된 환상적인 예술공간을 구현하여 마치 미디어 전시관에 온 것 같은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최옥영 작가의 ‘희망’, 정대현 작가의 ‘The Sailer’, 하영생 작가의 ‘풍요로운 탄생’ 등 조각품 약 30점이 나온다. 생각보다 넓고 편안한 공원이다.
▲추암 조각공원의 조각작품들
조각공원을 둘러보고 나서 해수욕장을 걸어본다. 철 지난 추암해변은 인적이라곤 찾을 길 없고, 파도가 모래톱을 핥고 있을 뿐 한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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