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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망양정(望洋亭), 일찍이 시인 묵객들이 앞다투어 노래한 그곳

by 혜강(惠江) 2023. 12. 12.

 

울진 망양정(望洋亭)

 

일찍이 시인 묵객들이 앞다투어 노래한 그곳

 

글·사진 남상학

 

 

  망양정은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61-1번지 언덕 위에 있다. 동쪽으로는 망양정 해수욕장 푸른 바다가 가없이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왕피천이 흐르는 절경지다. 망양해수욕장이 근처에 있다.

  망양정은 이름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기 딱 좋은 자리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구조의 망양정에 오르면, 동해의 망망대해와 하늘이 막힘없이 열린다,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際)다.

 

 

이전(移轉)을 거듭한 망양정

 

  망양정은 본래 고려 시대에 기성면 망양리 해변언덕에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허물어졌다. 그 뒤 조선 시대인 1471년(성종 2) 평해 군수 채신보(蔡申保)가 현종산 남쪽 기슭으로 이전, 수축하였다. 옛 지도를 보면, 옛 망양정이 있던 현종산(懸鍾山) 남쪽은 평해군이었다.

  1517년(중종 12) 비·바람으로 정자가 파손되어 다음 해 안렴사 윤희인이 평해군수 김세우와 함께 중수하였으며, 1590년(선조 23) 평해군수 고경조(高敬祖)가 다시 중수하였으나, 그 후 세월이 오래되어 다시 허물어졌다.

  1860년(철종 11)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망양정이 오랫동안 무너진 것을 한탄하여 군승(郡承) 임학영(林鶴英)과 함께 지금 망양정이 있는 근남면 산포리 둔산(屯山)으로 옮겨 세웠다. 전에 있던 자리에서 북쪽으로 옮겨진 것이다. 1888년(고종 25) 울진 현령을 지낸 류태형의 「선사록(仙槎錄)」에 의하면, 망양정이 둔산으로 옮겨진 이유는 “후세 사람들의 안목이 고루하여 읍치(邑治) 조금 멀다는 이유로 강과 바다 사이로 옮겨 지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중건, 보수하였으나 방치되어 허물어졌고, 일제강점기와 광복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58년 중건하였으나 다시 퇴락하여 2005년 기존 정자를 완전 해체하고 새로 건립하였다.

  정자 앞 잔디밭에는 옛 주춧돌 하나를 전시해 놓고 있다. 1860년 이전 망양정 주춧돌이라고 한다.

 

1860년 이전 망양정 주춧돌

 

예술의 소재가 되었던 망양정

 

  정자 위로 오르면 망양정을 노래한 문인들의 시문(詩文)이 편액되어 있다. 정자에는 송강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의 한 대목 외에도 망양정을 노래한 여러 문인의 시문(詩文)이 편액되어 있다. 숙종, 정조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매월당 김시습, 원재 정추(圓齋 鄭樞),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등의 시와 나재 채수((懶齋 蔡壽)의 기(記)도 걸려 있다.

  정자 위에서는 동해안의 망망대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정철의 <관동별곡>이다.

  “하늘 끝을 끝내 보지 못해 망양정에 오른 말이,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 가득 노한 고래 누가 놀래기에, 불거니 뿜거니 어지러이 구는지고. 온 산을 깎아내어 천지 사방에 내리는 듯, 오월 장천에 백설은 무슨 일인고.” - 정철 <관동별곡> 중의 ‘망양정’ 대목

  정철이 망양정에 올라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키는 장면을 노래한 대목이다발아래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멋지다. 고래는 볼 수 없지만, 망양정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그 옛날과 다르지 않다. 일찍이 조선 선조 때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망양정을 동해의 명승지로 언급하였다.

 

 

  1689년 숙종은 이곳을 친히 돌아보고, “뭇 봉우리 거듭거듭 서리서리 열리니 성낸 파도, 거친 물결 하늘에 불어온다. 이 바다 변해서 술이 된다면 어찌 단지 삼백 잔만 기울이겠는가” 라는 글을 남겼다. 얼마나 호방한 글인가? 숙종은 관동팔경 중에서도 망양정의 경치가 최고라 하여 ‘관동제일루’라는 현판까지 하사했다.

 

 

  제22대 임금 정조도 시를 읊어 그 경치를 찬양하였다. “태초의 기운 아득히 바다에 풀어지니 / 뉘라서 이곳에 망양정을 알 수 있으리 / 흡사 문선왕 공자의 집을 훑어보듯 / 종묘며 담장 하나하나 훑어본다”

 

 

그리고, 매월당 김시습도 이곳에 와서 시를 지었다. 제목 <등망양정간월>(망양정에 올라 달을 보다.)라는 시에서 그는 “십리 평평한 모래에서 넓은 바다를 바라보니 / 바다와 하늘 아득한데 달빛 푸르네 / 봉래산 정히 인간 세상과 격하였으니 / 사람은 물 위에 뜬 마름 한 잎에 사는 게지”라고. 매월당 김시습의 시를 단산 김재일이 썼다. 조선 초기의 학자 서거정은 ‘평해팔영’의 하나로 망양정을 꼽았다.

 

 

  조선 전기 문인 채수(蔡壽)는 <망양정기(望洋亭記)>(원재집(圓齋集)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정자는 여덟 개의 기둥이 둘러 있는데 기와는 옛것을 이용하고, 재목도 새것을 쓰지 않았다. 웅장하고 화려하지는 않으나, 경물은 기이하여 이루 말할 수 없다. (중략) 바람 자고 물결 고요하며 구름 걷고 비 갤 때에, 눈 들어 한 번 바라보면 동도 동이 아니요, 남도 남이 아니니 신기루(蜃氣樓)는 숨었다 나타났다 하고, 섬들은 출몰한다. 가다가 큰 물결이 거세게 부딪치고, 고래가 물을 내뿜으면 은은하고도 시끄러운 소리에 하늘이 부딪치고 땅이 터지는 것 같으며, 흰 수레가 바람 속을 달리고 은산(銀山)이 언덕에 부서지는 것 같다. 가까이 가서 보면 고운 모래가 희게 펼쳐지고 해당화는 더욱 붉다. 고기들은 떼 지어 물결 사이에서 놀고 향백(香柏)은 돌 틈에서 덩굴 뻗는다. 옷깃을 헤치고 한 번 오르면 유유히 드넓은 기운과 짝하여 놀아도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고, 크게 조물주와 함께 해도 다한 곳을 모르겠다. 그런 연후에 이 정자가 기이함을 비로소 알고, 하늘과 땅이 크고 또 넓은 줄을 안다.”

 

 

  조선의 내로라하는 화가들도 앞다투어 그림을 그렸다. 진경산수화의 세계를 열었던 겸재 정선도 망양정을 찾아 그림을 그렸다. ‘관동명승첩’ 중 ‘망양정도’다. 그림 속 망양정은 수직의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넘실대는 파도는 절벽 위에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정자를 집어삼킬 듯이 고압적이다. 정자 뒤 언덕에는 짙푸른 소나무가 병풍처럼 서 있다.

  단원 김홍도도 망양정을 찾아 그림을 그렸다. 김홍도의 그림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파도는 섬세하고 섬처럼 떠있는 산봉우리에 망양정이 서 있다. 안정감이 있고 평화로운 풍경이어서 두 그림은 대조적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이들이 소재로 삼았던 망양정은 현재의 망양정이 아니고, 평해군수 채신보가 1471년 현종산 남쪽 기슭에 옮긴 그 정자였다. 숙종이 내린 ‘관동제일루’ 현판도 정철의 관동팔경도 김시습의 시도 지금의 망양정 풍경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의 망양정에서 정철과 겸재를 떠올리며 옛 선비들의 정취를 느끼기는 난감하고 민망한 일이기는 하나 어찌하겠는가?  이런 연유에서인지 울진군은 2005년 기존 정자를 완전 해체하고 새로 건립하면서 유허비를 이전 설치했다.

 

관동팔경 소개 돌비

 

  지금도 정자는 무성한 송림에 둘러싸여 있으며, 진입로에는 <관동팔경>을 소개하는 돌비를 설치했다. 정철은 그의 작품에서 울진의 망양정과 더불어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청간정과 삼일포,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평해의 월송정을 관동팔경으로 노래했다.

  망양정에서 해맞이공원으로 이어지는 대숲 산책로에는 작품으로 설치한 풍경(風磬)이 파도 소리처럼 청아하다. 이 길을 걸어가노라면, 바다를 바라보는 멋과는 다른, 심오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관동팔경을 소개하는 돌비

 

망양정~해맞이공원 사이의 대숲 산책로

 

망양정 해맞이공원

 

  망양정 해맞이공원의 중앙부에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넓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으며, 해맞이 행사의 타종식을 위한 울진 대종과 종각이 세워져 있다. 망양정은 본래 해맞이 장소로 유명했던 곳으로 공터 앞쪽으로 소망나무 전망탑이 세워져 있다.

  인근에 망양해수욕장이 있다. 밀려드는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다른 한편으로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가느다랗게 이어진 모래사장이 양쪽으로 몸집을 키워 드넓은 백사장을 이뤘다. 왕피천이다. 모래톱으로 갈라진 강과 바다가 시린 쪽빛이다. 바다와는 대조적으로 잔잔한 왕피천에서는 물새가 한가롭게 쉬고 있다.

 

 

▲해맞이공원 광장에는 울진 대종과 종각, 그리고 소망나무 전망탑이 세워져 있다.

 

▲해맞이공원에서 바라본 바다와 왕피천 

 

  ►주차장 :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661-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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