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성경 : 신약 (40)
바울의 체포와 변론, 그리고 판결, 로마 이송 후 바울의 순교
- 로마 이송 중, 바울의 제4차 전도여행 -
3차 선교여행을 마친 바울은 비록 자신에게 심각한 위험이 닥칠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체포되다 (행 21:1~36)
바울은 두로에 도착하여 7일간 머물면서 선행을 베풀었고, 가는 길에 자신이 설립한 교회들을 방문하여 작별 인사를 하였다. 가이사랴에서는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빌립의 집에 유숙하며 복음을 전했고, 아가보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될 것임을 알려주어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가지 말 것을 눈물로 권유하였으나, 그는 성령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제자 몇 사람과 구브로 섬 출신 나손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예수님의 형제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首長)인 야고보를 방문하여, 야고보와 교회 장로들에게 선교 보고를 하였다. 이후 바울은 이방 사람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 성전을 더럽혔다고 선동하는 유대인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 바울의 변론과 판결 (행 21:15-26)
체포되어 가던 바울은 천부장에게 변론을 요청하여 간증을 통하여 자기 행동의 정당성과 선교의 당위성을 주장했으며, 나아가 자신의 회심 사건을 예로 들어 유대인들 모두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변론은 유대인들을 더욱 자극하였고, 그로 인해 바울에 대해 더욱 살의(殺意)를 품게 했다.
바울은 자신을 심문하려는 백부장에게 자신은 로마의 시민임을 주장했다. 당시 로마 시민권자는 정당한 재판권이 보장되었고, 무참한 형별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었다. 바울은 유대의 최고 의결기관이자 기독교 박해의 주범인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부활 교리를 내세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분열을 유도하여 그를 살해하려는 폭도들의 음모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음모는 계속 이어졌고, 가이사랴에서 그는 로마 총독들에게 불려갔고, 총독은 그에게 예루살렘 법정에 서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조치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었으나 바울에게는 죽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바울은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로마시민권을 사용하여 황제에게 직접 탄원했다. 이것은 죄수의 몸으로서 로마로 가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로마에 복음을 전하려는 그의 소망을 이룬 것이었다.
그때, 유대 종교문제에 정통한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의 총독 부임을 축하하려고 방문하였다. 총독이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의 상소에 관련하여 도움을 청하자 바울의 말을 직접 듣기 위해 일종의 공개 청문회가 개최되었다. 바울은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그리고 다수의 유력 인사들이 앞에서 정중하게 변론을 시작했다. 바울은 이 청문회를 자신을 변호하기보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는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이미 모세 이전부터 약속되었고, 성취되기 시작한 언약의 복음이므로 유대인의 전통과 절대 배치되지 않음을 확실하게 증거하였다.
바울의 별론을 들은 베스도 총독은 큰 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다. 너의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였다. 바울은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하나이다." 라고 응수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변론을 들은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설득력과 용기, 위엄에 압도되어 “이 사람은 사형을 당하거나 갇힐 만한 일을 한 것이 없소”라며 무죄를 인정했다. 그렇지만, 바울은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하였기에 로마로 이송되었다.
●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다 : 바울의 제4차 전도여행 (행 27-28)
바울과 몇몇 죄수들을 태운 배는 로마로 갔다. 그는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선교사로서 로마행 뱃길에 오른 것이었다.
바울 일행은 가이사랴를 출발하여 몇 군데를 거쳐 크레타 섬의 미항에 이르렀다. 거기서 또 로마로 향하는 배를 타야했다. 바울은 호송하는 백부장에게 시기적으로 항해하기가 위태로움을 알렸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바울의 호의적 충고를 무시한 채 항해를 계속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유라굴로라는 폭풍이 몰아쳤다. 배는 폭풍에 휘말려서 떠밀려가기 시작했고, 폭풍이 더 거세어지자 배에 실은 짐과 배의 장비는 바다에 던져졌고, 배에 탄 모든 사람의 생명이 위협에 빠졌다.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났고, 바울은 몰타섬에서 석 달을 머물면서 독사의 독을 이겨내는 기적을 보여주었고, 그 섬의 추장 아버지의 열병과 이질을 치료해 줌으로써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했다.
바울은 몰타에서 겨울을 나고, 드디어 로마에 도착하여, 그리스도인들의 환대를 받았으며, 그동안의 사역 경과와 이방인 선교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복음의 씨앗을 제국의 심장부에 뿌려놓았다. 비록 자유로운 몸으로 자발적으로 행한 전도여행은 아니었으나, 하나님은 이 기회를 이용하셔서 바울로 하여금 복음을 심는 기회로 삼으셨다. 그래서 이 여행을 를 바울의 제4차 전도여행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법정에 서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비교적 편안한 가택연금 생활을 하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아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알려진 바로는, 이때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등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후 바울은 AD. 63년 석방되어 <디모데전서>, <디도서>, <히브리서>를 썼고, AD. 66년 재투옥되어 <디모데후서>를 썼으며, 그 이듬해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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