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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의 위선 비판

by 혜강(惠江) 2023. 3. 3.

 

스토리 성경 : 신약 (17)

 

 

바리새인들의 위선 비판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의 논쟁은 예수님의 사역 시작부터 일어났다. 모세와 선지자의 전통을 그대로 수용하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었으나, 정통파 바리새인은 율법주의의 형식적인 조문에 얽매어 율법의 정신을 놓쳤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 준수와 정결법에 관련된 것을 놓고 바리새인들과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셨다.

  바리새인이 예수의 제자들이 금식(禁食)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시비를 걸었다. 바리새파인들이 예수님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다그쳤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이 자기들 곁에 두고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고 하셨다.

  바리새인들과 요한의 제자들은 회개와 속죄를 수행하기 위하여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였다(눅 18:12). 그러나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계신 중에는 제자들은 잔치의 주인공인 신랑과 같이 있으므로 속죄일에 행하던 금식 자체는 불필요하였다.

  그 외에도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을 두고도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했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따먹었다고 시비를 걸었다. 그때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준수는 율법 조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정신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그들을 깨우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外飾)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그들이 율법 정신에서 크게 벗어나 외식적이고 형식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율법학자들과 바라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실행하고 지키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데 손가락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행실은 모두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것이다.”(마 23:1-5)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선생이라고 불리고, 아버지라고 불리고, 지도자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바리새인을 위선자, 눈먼 인도자라고 지칭하면서 그들에게 직접 심히 질책하셨다.

  “너희에게 화가 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根菜, 뿌리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해야 하지만, 이것들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를 걸러 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채우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새인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그걸로 깨끗이 될 것이다.너희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가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처럼 너희도 겉으로는 깨끗하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다.” (마 23:23-28)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경고를 계속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통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선지자와 지혜자를 박해한 것을 질책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율법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너희는 그 가운데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십자가에 못박고, 더러는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 저 동네로 뒤쫓으며 박해할 것이다.”

  예수님은 의로운 이들을 죽인 피 값이 이들 유대인에게 돌아갈 것을 예언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예언은 로마 장군 디도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으로 현실화 되었고, 그 후 역사적 과정에서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들 박해로 일어났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시 나치 정권에 의한 6백만 유대인 학살 사건으로 성취되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부활 문제를 가지고도 바리새인들과 갈등을 빚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의 부활 신앙에 근거하여 종말에 일어날 두 가지 부활에 관하여 설교하셨다. 예수님은 부활이 단지 잠든 자가 부활하는 것을 넘어서서, 심판과 영생이 내세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에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 죽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는 사람은 살 것이다.”(요 5:24-25)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나사렛 예수의 복음을 듣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며, 영생과 심판은 내세에서 이루어지기 전에 벌써 지금 하나님 아들의 복음 선포의 시각에 이루어진다고 역설하셨다. 즉, 예수님은 종말론적 심판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 정죄는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8-19)

  이것은 부활을 아주 먼 내세의 사건으로 믿는 바리새인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바리새인들로서는 도저히 용남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단순히 종교적 목적을 구현하려는 융통성 없는 집단인 바리새인들은 율법 학자, 사두개파 등 당대 지도자 계급이 서로 연대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하였으며(막 12:13, 18, 28), 이를 위해 헤롯 왕가를 지원하는 헤롯 당원들과 내통하기도 하였다(막 3:6, 12:13). 이후로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갈등은 최악의 단계로 진행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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