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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가르치신 예수님

by 혜강(惠江) 2023. 3. 2.

 

스토리 성경 : 신약 (12)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가르치신 예수님

 

 

 

  예수님은 3년의 사역 기간에 제자들로부터, 가르침을 갈망하는 이들로부터, 그리고 그의 잘못을 찾아내려는 무리로부터 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으셨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친근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대답하셨다.

 

안식일의 주인 예수 (마 12:1-8, 막 2:23-28, 눅 6:1-5)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었다. 이때 어떤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며,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은 행위를 비난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반문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었던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외식적인 규례, 문자화된 율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살아 있는 복음의 역동성을 일깨우신 것이었다.

 

청결 문제 (마 15:1-20, 막 7:1-23)

 

  한번은 예수께서 게네사렛에서 엄격한 유대인들로부터 왜 그의 제자들은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으셨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청결에 관련된 종교의식을 범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예수님은 관습을 빌미로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는 이들을 꾸짖으며,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으나,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 즉, 악한 생각, 말, 행동 등이 더 해롭다고 가르치셨다.

 

하늘에서 가장 큰 자 (마 18:1-5, 막 9:33-37, 눅 9:46~48)

 

  하루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그들 앞에 한 어린아이를 세우고 말했다. “너희가 이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지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할 것이다.

  또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아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온유와 겸손의 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이혼 (마 19:1-12, 막 10:1-12)

 

  어느 날 한 떼의 바리새파 무리가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혼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다. 모세의 율법에 이혼을 허용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의중을 알고 싶었다.

  이에 예수님은 단호하게 대답하셨다. 모세의 율법에 이혼을 허용한 것은 인간이 완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인간이 나누지 못한다. 누구라도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는 것은 간음(奸淫)하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 때로부터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원리(하나님의 뜻)이다.

 

● 영생 (마 19:16-30, 막 10:17-31, 눅 18:18-30)

 

  한 번은 부자 청년 하나가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물었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이미 그렇게 하였습니다.”라고 하는 그에게 예수님은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다. 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말씀을 덧붙이셨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 이 말씀을 듣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러나 나를 좇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 풍부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 용서 (마 18:21-35)

 

  또, 제자인 베드로가 어느 날 예수님께 물었다. “저를 적대시하며 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족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일곱 번까지가 아니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종의 빚을 탕감해 준 한 왕의 이야기를 하셨다. 빚을 탕감받은 그 종은 그보다 훨씬 적은 빚을 진 동료에게 즉시 빚을 내놓으라고 독촉하였다.

  왕은 용서할 줄 모르는 무자비한 종을 벌하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질문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기초로 하여, 알아듣기 쉽게, 때로는 준엄한 태도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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