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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2대 왕 다윗

by 혜강(惠江) 2023. 2. 23.

 

스토리 성경 (22)

 

이스라엘 2대 왕 다윗

 

 

 

‘사랑받은 자’란 뜻의 다윗 (David, 재위 BC 1010-970)은 유다 지파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의 증손이며,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였다. 그에게는 7명의 형과 2명의 자매가 있었다. 소년 시절에는 아버지의 목장에서 양을 쳤으나, 힘이 장사였고 전사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다윗은 예언자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 중에서 왕을 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찾아가 그를 알아보고 사울 왕의 후계자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다윗은 비파에 능하여 사울이 악령에 시달릴 때, 비파를 연주하여 사울을 괴롭히던 악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윗은 사울의 부하가 되었다.

사울의 부하가 된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물맷돌로 거인 골리앗을 죽임으로 백성의 존경과 신망이 두터워졌고, 사울 왕의 시기를 받고 점점 살해 위협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다윗이 사울의 딸 미갈과 결혼하자 사울은 다윗을 더욱 미워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우정이 돈독했던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결혼한 사울의 딸 미갈의 도움으로 왕궁을 탈출하여 정처 없는 도피 생활을 했다. 그는 도피 생활 중 두 번에 걸쳐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라 하여 살려주었고, 그 후에 더는 도피할 수 없게 되자 적대국인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하였으나,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함으로써 도피 생활을 마치고 헤브론으로 돌아왔다.

다윗은 남쪽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지지로 사울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러나 북쪽 10지파를 중심으로 왕으로 추대받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 또 다른 사울의 후계자를 물리치고 나서야, 비로소 다윗은 왕으로 선택된 지 약 20년 만에 정식으로 이스라엘 왕에 즉위하였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당시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있던 여부스족을 축출하고, 시온산성을 탈취하여 그곳을 다윗성으로 명명하고, 예루살렘 천도를 단행하여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다.

이어 다윗은 왕궁을 건축하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정치적 안정 기반을 공고히 하였고, 다시 종교적 안정을 위해 예루살렘을 신앙의 중심지로 삼고, 또 북쪽 지파들의 충성을 굳건히 하기 위하여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언약궤를 가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왔다.

이어 다윗은 선지자 나단으로부터 언약궤를 놓아둘 성전 건축과 다윗 왕국의 미래에 대한 언약적 묵시를 받았다. 다윗은 예루살렘 성전을 극히 화려하게 건축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였으나 그것은 후계자의 몫이라고 선지자 나단을 통해 말씀하셨다.

다윗은 오랜 전쟁을 통해 주변 민족들을 굴복시켰고, 왕국의 경계를 이집트에서 유프라테스까지 확장하여 정치가로서, 행정가로서, 군사 지도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고, 음악가로도 재능을 인정받았다. 또한, 시인으로서도 뛰어났기 때문에 후대에 많은 시편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깊은 신앙심에도 불구하고 유부녀인 밧세바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전장(戰場)의 최전방으로 내보내서 전사하도록 함으로써 수치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다윗은 밧세바와 결혼한 일로 나단 선지자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고, 그들의 첫아들은 죽고 말았다. 이들의 둘째 아들이 솔로몬이다.

다윗은 여러 차례 결혼하여 많은 아들을 두었다. 그 아들 중 다윗의 직계 후계자이던 암논이 이복형제인 압살롬에게 살해당했다. 그 이유는 암논이 압살롬의 여동생을 겁탈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압살롬은 은둔하다가 다윗왕의 은혜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지만, 그러한 은혜에도 불구하고 반란을 일으켜 다윗은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에서 도망치게 되었다.

하지만 압살롬은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곧 이어진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군대 장관 모합은 다윗의 명령을 무시한 채 압살롬을 죽였다. 이런 와중에서도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다윗을 도운 장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의 등불’로 받들어짐으로써 다윗 왕국은 더욱 왕성해져 갔다. 그날에 다윗은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했다.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분, 나의 하나님은 나의 반석,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 나의 피난처, 나의 구원자입십니다. 주께서는 언제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구해 주십니다. 나의 찬양 받으실 주님, 내가 주께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원수들에게서 건져 주셨습니다.” -‘다윗의 승전가’ 중 일부(삼하 22:44~47)

 

그때 사탄이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했다. 지금까지 모든 승리는 이스라엘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했기 때문인데, 다윗왕은 한순간 교만에 빠져 충성된 장군 요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힘을 의지하게 되었다. 이 일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아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칠만 명이나 되었다. 결국, 다윗은 타작마당에서 단을 쌓고 진심으로 자신의 교만을 회개함으로써 40년간 통치 말기에 왕국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다윗의 나이가 많아 몸이 쇠약하게 되자, 살아남은 아들 중 장자였던 아도니아가 요압과 모의하여 왕위 계승을 도모했다. 그러나 밧세바는 솔로몬에게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고 약속했던 사실을 다윗에게 상기시켰고, 또 나단과 여러 유력한 신하들의 지원을 받아, 공식적으로 솔로몬을 왕으로 선포하도록 다윗을 설득했다.

이에 솔로몬이 다윗에 이어 왕위에 올랐고,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려온 다윗 왕조는 BC. 970년에 막을 내렸다. 그의 나이 71세였다. 다윗은 시인으로서도 명성을 떨쳐 구약성서 시편의 상당 부분은 다윗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 삼상 16-31장, 삼하 1~22장, 왕상 1~2장, 대상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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