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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초대 왕이 된 사울

by 혜강(惠江) 2023. 2. 23.

 

 스토리 성경 (21)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된 사울

- 통일왕국 시대가 시작되다.

 

 

 

사사 시대 말기 이스라엘 민족이 독립을 위하여 왕을 필요로 할 때,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베냐민 지파의 기스 아들인 사울 (Saul, 재위 BC 1040-1010)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아,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BC. 1040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즉위했다.

즉위 후에 사울은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수한 철제무기와 전차를 갖추고 끊임없이 중부 고원지대로 위협해 왔다. 사울의 통치는 사울 이전의 사사들과 마찬가지로 군사적 방어에 치중했다. 사울은 전열을 갖춰 암몬 족속, 모압 족속, 아말렉족속들을 쳐부숨으로써(삼상 11~14장) 왕권을 확립하고 군대 조직을 완비하여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때 다윗은 사울울 도와 블레셋 장수인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죽임으로써 큰 명성을 얻었다. 다윗은 군대 장관이 되어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다윗이 블레셋을 진멸하고 돌아왔을 때, 성읍에서는 소구와 괭과리를 들고 나와 춤추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서울 왕 일행을  환영하였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

이 말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울의 질투는 정신적인 질병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외적과의 싸움에서 늘 이기고 돌아오는 다윗을 좋아하였다. 이 무렵 다윗은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사울의 딸 미갈과 결혼도 했다.

하지만,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다급한 나머지 자신이 친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제사장의 직분을 침범하는 불경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삼상 13:1-14). 그런가 하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좋은 것들을 전리품으로 취하였다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다(삼상 15:26).

그후, 사울은 모호하고 올바르지 않은 종교적 태도로 인하여 사무엘로부터 절대적으로 필요한 종교적 협력을 받지 못했고,  사무엘과의 불화는 사울의 권력이 붕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데다 다윗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자 이를 질투한 사울은 자신의 딸 미갈과 아들 요나단의 마음을 다윗으로부터 돌려놓으려 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울은 조급한 마음으로 자신을 위해 외적과 싸웠고 악령에 시달릴 때 악기를 연주하여 자신의 분노를 달래주고 위로해 준 다윗을 비밀리에 제거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이 무렵, 사무엘이 죽어 영적 지도력까지 공백 상태에 이르렀고, 다윗은 아무 이유 없이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의 광적(狂的)인 공격을 피해 사울이 손을 뻗칠 수 없는 블레셋으로 도피했다.

정신질환까지 앓게 된 사울은 놉 지역의 제사장 85명을 학살하기에 이르렀고, 블레셋이 이스라엘 심장부를 새로이 공격해 들어와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사울은 이스르엘 계곡으로 쇄도해 들어오는 적을 격퇴하기 위해 길보아 산 위로 군대를 집결시켰다.

그러나 사울은 그의 아들 요나단과 함께 출정한 길보아 전투에서 최후 일전을 벌이다 중상을 입자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의 시신은 블레셋 군사들에 의해 목이 잘린 채 벧산 성벽에 걸렸으나 길르앗 야베스 용사들이 시체를 거두어 화장하고 유골은 야베스에 있는 에셀 나무 아래 장사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박한 상황에서 새로운 왕을 기다리게 되었고, 가장 적합한 인물이 바로 다윗이었다. 이로써 BC 1010년, 재위 30년의 사울 왕의 시대는 끝나고 왕위는 다윗에게 넘어갔다.

 

(주) 사무엘상 11장~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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