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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황사평 성지, '신축교안(辛丑敎案)'으로 희생된 순교자들의 안식처

by 혜강(惠江) 2022. 11. 26.

 

제주 천주교 황사평 성지

 

신축교안(辛丑敎案)으로 희생된 순교자들의 안식처

 

 

글·사진 남상학

 

 

 

▲황사평 성지 묘역

 

  제주도 안의 천주교 성지로는 황사평 성지, 새미 은총의 동산, 대정 성지(정난주 마리아 묘), 용수성지(성 김대간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과 기념관), 김기량 순교현양비, 관덕정 순교터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천주교 황사평 성지는 제주시 화북이동 5662-1(제주시 기와5길 117-22)에 있는 신축교안으로 희생된 순교자들의 안식처로, 천주교 제주 본당의 라크루(Lac routs, 具瑪瑟, 1871~1929, 마르첼리노) 신부가 홍종우(洪鍾宇) 제주 목사로부터 약 18,000평에 달하는 황사평(黃沙坪)을 양도받아 천주교 신자의 매장지로 조성되었다.

 

 

황사평 성지 입구의 안내 표지판

황사평 성지 묘역

 

  황사평 성지가 조성된 원인과 과정을 보면, 1901년 5월 발생한 신축민란(辛丑民亂)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민란은 광무(光武) 4년( 1900년) 한성에서 제주로 파견된 봉세관(捧稅官) 강봉헌의 과도한 조세 수탈(稅弊)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아울러 당시 프랑스에서 온 신부 마르셀 라 참여자(한국명 구마슬)를 비롯한 선교사들의 치외법권적인 특수권력과 이에 편승한 천주교도들의 토속신앙에 대한 무시 등 횡포를 또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다.

 

 

황사평 성지 묘역

 

  이에 분개한 제주도민들은 1901년(신축년) 대정현(모슬포)에서 이재수를 주축으로 민회(民會)가 열리면서 민중봉기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700여 명의 신자와 양민들이 관덕정에서 피살되었는데 이를 '신축교안'으로 부른다.

  일반적으로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이재수의 난'이라고 불리지만 가톨릭에서는 '신축교안'으로 부르고, 진보 성향의 역사학자 등은 '신축 제주항쟁'이라 부른다.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렸다. 이 사건은 조정의 진위대(鎭衛隊)가 민란을 진압하고 주동자를 압송해 감으로써 그 후 사건은 종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천주교도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이에 희생된 천주교 신자들의 수는 약 300~350명이 희생되었는데, 교회 측이 희생된 천주교 신자들의 시신을 묻을 땅을 정부 측에 요청하였다.

  이에 제주 본당의 라크루(Lac routs, 具瑪瑟, 1871~1929, 마르첼리노) 신부가 홍종우(洪鍾宇) 제주 목사로부터 약 18,000평에 달하는 황사평(黃沙坪)을 천주교인 매장 조계지로 양도받아 1904년 희생자들의 유해를 황사평에 안장하였다.

  황사평(黃沙坪)을 양도받을 때는 당시 희생된 천주교 신자의 시신만 매장하도록 했으나, 이후 1977년 9월 이래 황사평에서 매년 순교자 현양 대회가 개최되어 신자들의 순교 신심을 고취하게 되었고, 1980년대 초반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제주교구 기념사업의 목적으로 황사평 묘역 성역화가 추진되었다.

  이에 무명 순교자들의 묘역이 정비되고, 일반 신자들의 묘지분양 신청도 받게 되면서 1987년부터 본격적인 묘역 공원화 사업이 진행되었고, 1993년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다시 황사평 묘역을 성역화함으로써 토마스와 라크루 신부의 복사 신재순(申才淳, 아우구스티노)의 묘를 순교자 묘역으로 이장하였다.

 

 

황사평 성지 표지석과 묘역 조성 과정을 설명한 글

 

  이어 초창기 제주지목구장(濟州知牧區長)으로 활동한 헨리(Henry, 玄海, 1909~1976, 하롤드) 대주교를 비롯한 성 골롬반회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선교사, 1866년 경남 통영에서 순교한 김기량(金耆良, 펠릭스 베드로, 1816~1867), 저명한 성서학자 임승필 신부 등의 묘소도 이곳에 구역을 정해 안장됨으로써 성지로서의 면모가 한층 정비되었다.

 

 

김기량 순교자의 묘와 순교비

 

  2003년 11월 7일,제주교구는 1901년 ‘제주항쟁기념사업회’와 함께 화해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곧 교회는 과거 전통사회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선교 활동을 펼쳤던 점을 인정하였다.

  한편, 제주도 민중들도 봉기 과정에서 무고한 천주교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과거에 대한 일방적인 시각을 버리고 화해와 화합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화해의 탑

 

  현재 황사평 성지에는 소성당과 봉안당,  새 번역 ‘성경’의 탄생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임승필(요셉) 신부 등 성직자들의 묘와 제주의 첫 순교자 김기량(필릭스 베드로) 순교비, 제주에서 사목했던 외국인 선교사 공덕비, 예수 성심상, 십자가의 길 등이 있어 성지의 거룩함을 한층 더하고 있다.

 

 

성직자묘와 공덕비 기념비들

 

황사평 성지 안내소

 

소성당의 내외부 모습

 

황사평 성지 관리사무소

 

봉안당

 

예수의 죽음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그리고 이곳으로부터 시작되는 제주교구 순례길은 제주에 유배된 정난주 마리아가 도착한 화북포구, 4.3으로 사라진 곤을동 마을과 희생자들이 버려진 별도천, 천주교인들이 희생된 관덕정을 거쳐 제주지역 최초의 본당인 중앙 주교좌성당에서 (총 12.6km) 끝난다.

 

 

천주교 제주교구 순례길 시자을 알리는 표지석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십자가의 신비를 드러내시는 하느님 아버지! /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 주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 주시고 교회가 성장하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 자애로우신 주님! / 자랑스러운 믿음의 선조들에게 시복 시성의 영예를 허락하여 주소서. / 그리하여 저희가 그들과 한목소리로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하게 하소서. / 또한 저희가 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본받아 악의 유혹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굳건히 지키며 / 복음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도록 성령의 은총으로 도와주소서. /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시복시성 기도문

 

 

  묘역에 새긴  '시복시성 기도문'을 묵상하며 돌아선다. 순교자의 묘역은 언제나 방문해도 성스럽고 분위기 엄숙하다. 묘역을 둘러보며 한평생 신앙을 지키며 살아간 분들의 영혼 앞에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성지 내에 핀 흰 동백과 붉은열매, 순교자들의 순교 열정을 기리듯 순교자 묘역을 장식하고  있다. 

 

 

  황사평 성지는 이제 제주교구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신심(殉敎信心) 함양의 교육 장소 겸 제주도 내 순교자 현양의 거점이 되었다.

 

 

 

 

◎상세정보

 

주소 : 제주시 기와5길 117-22 (화북이동 5662-1)

전화 : 064-721-0146, 주차 가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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