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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및 교회, 학교/- 성지순례(국내)

갑곶순교성지, 천주교 순교현장에 우뚝서 그날을 증언하다.

by 혜강(惠江) 2022. 9. 17.

 

갑곶순교성지

 

천주교 순교현장에 우뚝서 그날을 증언하다.

 

 

글·사진 남상학

 

 

 

 

 

  강화도는 역사가 시작된 섬이다. 단군왕검이 마니산 참성단에서 하늘 제사를 지낸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숱한 역사가 펼쳐졌다. 또 외국의 문화가 바닷길을 통해 육지로 들고 나던 관문이기도 했다.

 

  강화도는 수도 방어의 요충지로서 고려 시대부터 외세와 자주 충돌한 역사의 현장이다. 염하의 활약은 조선 말기에 빛을 발한다. 이곳에서 통상개방을 요구하는 서구 열강에 맞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더구나 천주교도들에게 강화도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신앙을 증거하기 위한 선배 신앙인들의 피어린 자취가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증에서 갑곶성지는 천주교 전파 초기 수많은 천주교도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이슬처럼 사라진 순교의 현장이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오늘은 그 현장에 우뚝 선 갑곶순교성지를 찾아 나섰다.

 

  갑곶순교성지는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왼쪽 동산 위에 조성되어 찾아가기 어렵지 않다. 이곳은 한강으로 오르는 길목으로 바로 아래 갑곶돈대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밑으로 염하(강화해협)가 유유히 흐른다.

 

 

 

 

 

 

천주교회에 대한 박해 시작

 

 

  강화도 역시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성지와 사적지가 많다. 강화도는 한국 천주교의 초기부터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1795년 조선 최초 선교사로 입국한 주문모 신부가 철종의 조모 송 씨(은언군의 처)와 며느리 신 씨에게 세례를 준 것이 조정에 알려져 왕족이었던 이들은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순교하였다. 이로 인해 강화도에 귀향에 살던 철종의 조부인 은언군도 처형되었다.

 

  이 외에도 초기교회의 지도자이던 이승훈(李承薰)·정약종(丁若鍾)·최창현(崔昌顯)·강완숙(姜完淑)·최필공(崔必恭)·홍교만(洪敎萬)·김건순(金健淳)·홍낙민(洪樂敏) 등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斬首)되었다.

 

  또한, 내포교회의 사도로 불리던 이존창(李存昌)은 공주에서, 전주교회의 지도적 교인이던 유항검(柳恒儉)·관검(觀儉) 형제는 전주에서 순교하였다. 이것이 천주교에 대한 제1차 박해다.

 

 

 

 

 

선교사들의 입국 통로, 갑곶 해안

 

 

  신유박해 이후에도 조선의 천주교도들은 혹독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지하에서 신앙과 전도 생활을 이어 갔다. 1839년에는 세도 가문끼리 정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사학 척결을 명분으로 천주교도에 대한 일대 탄압을 벌인 것이다. 이것이 제2차 천주교 박해인 기해박해(己亥迫害)다.

 

  이때 천주교도를 대량 체포했으며, 서양 선교사 3명마저 처형했다. 기해박해는 기간은 신유박해보다 짧았으나 그 범위는 전국적이었으며 탄압의 강도도 훨씬 강해, 10개월 동안 119명의 천주교도가 목숨을 잃었다. 특히 경기, 서울 일대에서는 많은 순교자를 낳았다.

 

  기해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가 유입될 때 육로통행이 어렵게 되자 1945년 5월 1일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고 주교의 명으로 선교사를 비밀리 입국시키는 해로를 개척하기 위해 서울 마포를 떠나 강화 앞바다까지 오게 된다.

 

  그 이후로도 1856년 베르뇌 장 주교와 쁘띠니꼴라 신부, 쁘르띠에 신부, 1857년 페롱 권 신부 등이 비밀리에 입국한 요로가 되었다.

 

 

 

 

 

 

순교자의 피로 얼룩진 갑곶 해안

 

 

  강화도 갑곶 해안은 선교사들이 비밀리에 입국한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으로 고종 때(1866) 프랑스는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갑곶돈대로 상륙했다. 이로 인해 강화 지방에서는 혹독한 박해가 시작되었고, 갑곶 성지가 보이는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가 순교했다. 이것이 병인양요(丙寅洋擾)였다.

 

  이와 관련하여 1868년 프랑스 선교사를 입국시키는데 협력한 최인서(崔仁瑞, 요한), 장치선(張致善, 성 장주기 조카)과 박 서방(朴順集 베드로의 형), 조 서방(趙參奉의 부친) 등이 강화도 병영지 진무영(鎭武營)으로 호송되어 순교하였다. 이 외에도 강화도에서 수많은 신자가 순교하였다. 진무영은 해상 경비의 임무를 맡았던 군영이며, 동시에 신자들의 피로 물든 처형지였다.

 

  또, 1866년에는 대동강에서 통상을 요구하던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불에 타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미국은 1871년 강화도를 공격하였다. 이를 신미양요(辛未洋擾)라고 한다. 이때 갑곶나루 터는 당시 많은 신자의 목을 베어 말뚝에 달아매는 처형장에 되었으며, 미국 함대에 왕래한 박상손(朴常孫),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등이 갑곶 진두에서 순교하였다.

 

 

 

 

 

갑곶순교성지 조성

 

 

  천주교 인천교구는 갑곶 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노력 끝에 지금의 갑곶 순교성지를 찾아지금의 갑곶성지를 조성하였다.

 

  이후 2001년 9월 1일 순교자들의 행적 증언자이며 인천교구 역사의 산증인인 박순집 베드로 유해를 성지 내에 안장하고, 2004년 1월 26일 초대신부로 조명연 신부가 부임하여 2004년 2월 10일 갑곶 순교성지 첫 미사를 드림으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성지 입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성모상이다. 그다음 기념성당과 지하 성당, 작은 도서관, 영성센터를 둘러보고 쉼터를 지나 계단을 오른다.

 

 

 

 

박순집 (베드로)의 묘소 

 

 

  계단 위 성지 동산에는 신미양요 때 순교한 최순복, 박상손, 우윤집 세 명을 기리는 순교자 삼위 비석, 십자고상이 있다.  특히 동산의 십자고상 아래에는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어 안장하고 기록한 박순집(베드로, 1830~1911)의 묘소가 있다.

 

  신앙의 증거자인 그는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새남터와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수많은 순교자의 유해를 목숨을 걸고 찾아 안장하면서 그들의 행적을 증언하였다.

 

  또한, 그는 1890년 인천 제물포로 이주해 전교 활동에 힘쓰며 인천교구의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많은 순교자의 행적 증언자이며 인천교구 역사의 증인인 박순집 유해를 성지 동산에 2001년 이장하였다.

 

 

 

 

 

십자가의 길

 

 

   묘소 아래로 내려오면 십자가의 길이 펼쳐진다. 십자가의 길 시작 지점에는 두 줄기로 갈라져 자란 ‘세쌍둥이 은행나무’가 있다.

 

  ‘이곳에 서 있는 세 그루 은행나무는 서로 다른 뿌리에서 나왔음에도, 마치 쌍둥이처럼 두 줄기로 갈라져 닮아 있습니다. 마치 그리스도와 함께 계신 세 분의 순교자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십자가의 길을 기도하려는 분께 십자가를 나 혼자 지고 간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하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안내문에서 말하는 세 분의 순교자란 지금의 갑곶순교성지에서 순교한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을 가리킨다.

 

  은행나무 뒤 십자가의 길 입구에는 크기와 무게가 다른 여러 개의 나무 십자가들이 놓여 있다. 무게와 크기가 다른 다양한 십자가 중에서 자신에게 알맞은 것을 골라 짊어지고 12처를 걸으며 예수님의 수난을 더 깊이 체험하기 위한 것이다.

 

  갑곶성지 십자가의 길은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길을 조성해 마치 숲길을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길을 걸으며 예수님의 수난 여정을 따라가며 묵상해 본다.  인간구원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 희생의 정신에 발길을 잠시 멈추고 “나를 따르려거든 내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 앞에 고개를 차마 들 수가 없다. 

 

 

 

 

 

  십자가의 길이 끝난 지점에는 마치 순례자들을 환영하듯이 양팔을 활짝 벌린 예수상이 맞아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명예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 11, 28~30)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성경 말씀 앞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잠시 걷는 길이지만 ‘십자가의 길’ 끝에서 큰 위안을 받게 된다.

 

 

 

 

 

  이 외에도 강화도 성지로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 진무영(鎭武營) 순교성지, 관청리 형방이 있다.

 

 

◎상세정보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35(갑곶리)

►전화 : 032-933-1525

►교통 (대중교통)

ㆍ서울에서 3000번(직행) : 신촌→강화 현대아파트 (도보 15~20분)

ㆍ서울에서 88번 : 영등포 → 강화 청소년수련관 (도보 5~10분)

ㆍ일산에서 96번 : 호수공원 → 강화 청소년수련관 (도보 5~10분)

ㆍ인천에서 70번 : 인천시외버스터미널 → 강화 청소년수련관 (도보 5~10분)

ㆍ부평에서 90번 : 부평시장) → 강화 청소년수련관 (도보 5~10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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