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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공평도시유적전시관, 한양의 행정 최고의 번화가 유적 전시

by 혜강(惠江) 2022. 10. 7.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조선 시대 한양의 행정 최고의 번화가 유적 전시

 

 

글·사진 남상학

 

 

 

 

 

  서울의 중심지인 종로구 종각역 근처(공평동)에 가면 센트로폴리스 지하 1층에 옛 골목길과 집터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인'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다. 서울 중심부의 수많은 고층 건물들 사이에 자리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그 존재만으로도 누구에게나 궁금증을 자아낸다.

 

 

 

  2015년 공평1·2·4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4개의 시대별 문화층에서 108동의 건물지, 500여 년 전 조선 시대 골목길 등의 유구와 1,000여 점의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러자, 공평동 유적은 한양 도성 내 전모를 간직한 조선 시대 생활 유적으로서 '조선의 폼페이'라 불리며 유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불거졌다.

 

  결국, 서울시는 대도시 도심 유적으로서는 최초로 공평동 유적을 전면 보존하고자 도심 정비사업에서 발굴되는 매장 문화재를 최대한 ‘원 위치 전면 보존’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공평동 룰’을 만들어 이를 적용, 2018년 9월 12일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개관하였다.

 

 

 

 

  공평동 유적은 한양의 행정구역 중 최고의 번화가이자 시전의 중심지인 '견평방(坊)'에 속한다. 견평방에는 왕실 가족의 사가인 궁가와 의금부, 전의감 등 관청도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옛 견평방 공평동 유적은 다양한 시설과 계층이 혼재하였던 곳으로서 매우 보존가치가 높은 곳이다.

 

 

 

  공평 도시유적전시관에 들어서면 아주 독특한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땅속에 있던 유구들이 바닥 유리 갑판 안에 자리 잡은 모습을 보면 발굴조사 현장에 와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주요 골자는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총 108개 동 건물지와 중로, 골목길 등의 유구와 1,000여 점이 넘는 생활유물이 확인하고, 그중 유구의 상태가 가장 온전히 남아있는 16~17세기 Ⅳ문화층 유구를 전시관 내부로 이전하여 복원한 것이다.

 

  이중 ‘전동 큰 집’, ‘골목길 ㅁ자 집’, ‘이문안길 작은 집’의 3개 건물지가 핵심 콘텐츠로 각 건물지별로 1/10 축소 모형, 가상현실인 VR체험, 출토된 유구 위에 1:1 복원 모형 등 다양한 전시기법을 통해 16~17세기 한양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동 큰집(Ⅳ-1.2.3.4)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전동 큰집(Ⅳ-1.2.3.4)’의 터를 보게 된다. 전통 큰집은 공평동 유적에서 발굴된 가장 큰 규모의 건물지로 중인 이상의 가옥 또는 관청의 부속 시설물로 추정하고 있다. 안마당을 둘러싼 기단석과 적심석들, 그리고 긴 초석들이 발굴되어 4개의 종이 하나의 집을 이루고 있다.

 

 

 

 

골목길 ㅁ자 집(Ⅳ-16)

 

  큰길에서 갈라진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골목길 ㅁ자 집(Ⅳ-16)’도 볼 수 있다. 골목길 ㅁ자 집은 오늘날 우정국로에 해당하는 큰 길에서 갈라진 골목길 안쪽에 자라하고 있다. 초석, 기단석, 고맥이석, 마당 박석, 배수로 등이 상당히 잘 남아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이문안길 작은 집(Ⅳ-31)

 

  골목 가장 안쪽에 자리한 '이문안길 작은 집'(Ⅳ-31)은 온돌과 마루, 아궁이 등의 주택 바닥형식이 모두 발굴되어 조선 전기 한옥의 발달 과정을 잘 보여준다. 6칸의 작은 집이지만 마룻널의 크기 초석과 큰길에 마주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기와집이었던 것으로 추청하고 있다.

 

 

 

 

전통 골목길

 

  공평동 유적의 중앙부에서 폭 폭 210~305㎝ 내외의 골목길 3곳이 보존되어 있다. 전통 골목에 난 길이라 하여 ‘전통 골목길’로 불린다. 전통 골목길 세 곳은 모든 시대의 발굴 층 위에서 동일한 위치에 같은 폭으로 발굴되었다.

 

 

 

 

발굴 유물

 

 

▲사진 : 위로부터 출토된 유물인 진단구, 명문자기, 도기, 제기 , 생활용품

 

 

 

기획연구실

 

탑골공원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

 

  서울 종로하면 떠오르는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휴식 공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1919년 3월 1일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 봉화의 불이 붙여진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으로 조선 시대 원각사 터에 세운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1897년 대한제국 고종 때 서구식 공원으로 탑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 일대가 탑골 또는 탑동, 파고다 공원으로 불리다가 1992년 이곳의 옛 지명을 따라 ‘탑골공원'으로 2011년 7월 28일 ‘서울 탑골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22년 여름밤의 탑골공원>

 

  어린이 운동가 소파 방정환方定煥(1899~1931)은 여름밤의 탑골공원을 산책하면서 보았던 공원의 모습과 정취를 『개벽』 26호에 글을 남겼다. 개벽은 3·1운동 이후 천도교 지원으로 발행한 민족주의 성향의 종합잡지이다. 방정환은 '잔물'이라는 필명으로 경성에 있는 여러 공원을 둘러본 소감을 실었는데, 탑골공원 방문 기사가 첫 번째로 실려 있다.

 

  당시 탑골공원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비록 일제의 감시와 방치 속에서도 여전히 경성사람들에게는 만남과 사색의 장이었다. 영상 속에서 탑골공원을 걸으며 그 시절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공평 도시유적전시관 곳곳에는 미니게임을 할 수 있는 모니터와 석축 쌓기, 기와 올리기 등을 체험하는 공간이 있어 어린이도 지루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를 좋아하거나 건축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한 번쯤 방문하여 당시 공평동의 생활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보는 것도 흘미로울 것이다.

 

 

<인포메이션 존> 

 

 

 

 

<체험존>

 

 

 

◎상세정보

 

►주소 :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26 지하1층 (공평동 5-1)

►전화 : 02-724-0135

►관람 : 09:00~18:00

►휴무 : 1월 1일, 매주 월요일(공휴일 제외)

►요금 : 없음

►주차요금 : 최초 20분 무료 / 15분마다 2,000원 / 1일 주차 평일 30,000원, 주말·공휴일 10,000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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