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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인천. 경기

남양주 봉선사, 세조 추모와 능침 보호 위해 중창된 사찰

by 혜강(惠江) 2022. 9. 16.

 

남양주 봉선사(奉先寺)

 

세조 추모와 능침 보호 위해 중창된 사찰

 

 

글·사진 남상학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사적 제197호)을 둘러보고 가까이에 있는 봉선사라는 절을 찾았다. 봉선사는 광릉 매표소에서 광릉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전나무 숲길 따라 남동쪽으로 1.5km쯤 내려가서 오른쪽 길로 300m가량 들어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입구의 동네는 여러 식당이 들어서 있는 진접읍 부평리 마을이다. ‘능안마을 음식문화테마거리’라는 아치가 걸려 있을 만큼 다양한 식당과 카페들이 보인다. 얼큰한 매운탕에서 달달한 마카롱까지 다양하고 특색있는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봉선사,국립수목원,광릉을 방문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마을 왼쪽 길로 들어서면 한글로 ‘운악산 봉선사’라고 쓴 일주문이 나타난다. 일주문 앞에는 ‘봉선사·부평리 3·1운동 만세시위지’라는 현판이 서 있다.

 

  현판의 내용을 읽어보니 이곳 봉선사와 인근 진접 부평리는 3.1운동 만세시위로 역사에 기록된 곳이다. 당시 봉선사 승려들이 독립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선언문을 제작해 부평리 광릉천에서 독립시위를 했다.

 

 

 

 

  일주문을 통해 사찰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으로 제법 드넓은 연못이 펼쳐진다. 이곳은 해마다 7월이면 연꽃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9월이라 연꽃은 볼 수 없으나 아직 푸른 연잎들이 연못을 가득 채웠고 연못 사이사이 길가에는 불상과 석등이 있고, 위쪽 분수가 솟는 연못가에는 축제 때 설치한 ‘행복바라미, 소원성취 바람개비’가 윙윙 돌고 있다.

 

 

 

 

  연꽃밭 언덕 위에는 새로 조성된 듯 산뜻하게 보이는 미륵불이 연꽃밭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다. 알고 보니 2022년 7월 4일 점안 법회를 거쳐 공개된 미륵전이다. 야외법당인 미륵전은 높이 5m, 무게 18t에 달하는 미륵불이 중앙을 차지했다.

 

  40여 년간 돌부처 조성에 매진한 조각가 오채현이 3년간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이다. 오채현 작가는 망치와 정 이외의 어떤 기계 작업을 하지 않고 작품을 다듬어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미륵전에서 우측으로 여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사찰의 중심인 큰법당(대웅전)을 보기 위해 올라가니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맞이한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 500년이 된 것으로 봉선사의 보호수 역할을 하듯 서 있다.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절을 중창할 때 심었다고 한다.

 

  우거진 잎을 뽐내며 두 갈래로 갈라진 모습이 양팔을 활짝 벌린 모양이다. 임진왜란과 6·25의 전란을 거치면서도 아무 탈 없이 우람하게 서 있는 모습이 위엄을 느끼게 한다.

 

 

 

  숲속에 아늑하게 둘러싸인 봉선사의 역사는 고려 시대부터 시작된다. 고려 4대 광종 20년(969년)에 법인 국사 탄문(坦文)이 창건하여 ‘운악사(雲岳寺)’라고 하였다.

 

  그 후 예종 원년(1469년)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 씨가 선왕인 세조의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의 규모로 중창한 뒤 ‘봉선사(奉先寺)’라고 이름을 바꿨다. 이후 세조의 추복을 위해 왕실 발원으로 만들어져 나라를 대표하는 국찰의 기능과 역할을 해왔다. 이때 예종은 친필 현판을 하사하였다.

 

  이런 이유로 조선 초기 대표적인 사찰이 되었고, 1550년(명종 5)에는 교종의 으뜸 사찰로 지정되어 사세가 번창하여 전국의 승려와 신도에 대한 교학 진흥의 중추적 기관이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1637년에 복구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또다시 전소되어 1970년 다시 복원하였다.

 

  느티나무 아래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이 하마비는 세조가 죽은 이후 예종 원년(1469)에 세워졌고, 세조의 위패가 모셔진 어실각으로 갈 때는 누구든지 내려서 걸어야 했다. 신분이나 노소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존경을 표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찰 중앙에 자리 잡은 건물로 올라서니 ‘큰법당’이라는 한글 편액이 눈길을 끈다. 여느 사찰들이 ‘大雄殿’(대웅전)이라는 현판을 사용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가 하면, 법당 기둥의 주련도 한글이다. ‘부처님공덕다말못하고’ ‘허공을재고바람얽어도’ ‘큰바다물을모두마시고’ ‘온누리티끌세어서알고’ 등 한글로 쓴 문구들이어서 무척 새롭다.

 

  당시 법당을 세운 운허(耘虛, 1892~1980) 스님은 1970년 큰법당을 세우면서 서예가 운봉 금인석(琴仁錫, 1921~1992) 교수에게 한글 편액과 한글 주련을 부탁하여 단 것이다.

 

  그는 춘원 이광수 팔촌동생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역경 사업에 헌신해 왔다. 속명이 이학수(李學洙)였던 그는 춘원 이광수(李光洙, 1892~1950)와 같은 마을에서 자라 함께 공부했으며, 불교 대중화에 앞장선 인물로 개화기 민족문화 창달에 큰 관심이 있었다.

 

 

 

  이 큰법당은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겉에서 보면 목조건축물처럼 보이나 실상은 철근 콘크리트로 정교하게 만든 건물로서 근대건축 재료와 구조로 60~70년대 기술을 대표하는 사례로 근대건축사적, 불교사적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봉선사에는 큰법당 외에도 삼성각·개건당·방적당·운하당·범종각·청풍루·요사채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보물 제397호로 지정된 남양주 봉선사 동종을 비롯하여 1903년에 그린 칠성탱화, 사찰 입구의 보운당부도(報雲堂浮屠) 등이 있다.

 

 

 

  그중에서 범종각의 대종인 범종은 보물 397호로 지정되었다. 예종 원년(1469)에 주조된 것으로 총 높이 229.4m, 밑지름 156.0cm의 청동 범종이다.

 

  세조대왕의 치적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 위해 정희왕후의 발원으로 제작된 것인데 조선 초기 금속 공예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사찰 경내를 둘러보고 큰길로 내려오면서 길가 왼쪽(입구에서는 오른쪽)으로 비석 여러 개가 있어 다가가 보니 처음 것은 ‘춘원이 광수 선생기념비’다.

 

  춘원은 일제 강점기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하기 전 남양주 사능 부근 작은 집에서 살면서 한해 겨울을 봉선사에서 은거한 일이 있었다. 그때 춘원은 친척 동생인 운허와 교류한 인연으로 ‘춘원 이광수 기념비’가 절 입구에 세워진 것이다.

 

  그밖에도 봉선사에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태허(운암 김성숙) 스님이 봉선사에 머문 적이 있다.

 

  또, 조선 현종 대 ‘간폐석교소(諫廢釋敎疏)’라는 상소문을 올려 배불 정책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철폐 위기에 처한 봉은사와 봉선사 등을 지켜낸 백곡 처능 대선사의 부도탑과 비가 있다.

 

 

 

  봉선사 탐방은 광릉과 광릉 숲으로 유명한 국립수목원을 아울러 둘러보면 하루 나들이하기에 좋다.

 

 

 

 

◎상세정보

 

 

 

주소 :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2(진접읍 부평리 255)

►전화 : 031-527-1951

교통 : 버스이용 시

*잠실새내역 4번 출구 직행 7007번 승차 - 신광마을 입구 진접센트레빌시티 하차 - 일반버스 21번 승차 - 봉선사입구 하차

*잠실새내역 4번 출구 직행 2000번 승차 - 경복대학 하차 - 일반버스 21번 승차 - 봉선사입구 하차

 

►맛집

큰대문집 (삼계탕, 영양돌솥밥) : 진접읍 부평리 258-49, 031-527-7235

원주장손칼국수 (칼국수, 들깨 수제비) : 진접읍 부평리 258-21, 031-527-0311

사랑방 (버섯불고기, 갈치조림) : 진접읍 부평리 258-22, 031-527-7241

수목원 산채비빔밥 (산채비빔밥) : 진접읍 부평리 258-15, 031-527-7872

청계식당 (비빔밥, 청국장) : 진접읍 부평리 258-20, 031-511-6156

손만두고향집 (털랭이매운탕) : 진접읍 부평리 258-6, 031-527-766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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