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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회인원, 비운의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영친왕 이은)와 황세손(이구)

by 혜강(惠江) 2022. 9. 6.

 

영원과 회인원

 

비운의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영친왕 이은)와 황세손(이구)

 

글·사진 남상학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의 권역에는 영원(英園)과 회인원(懷仁園)이 있다. 유능을 둘러보고 우측으로 난 문을 통과하여 홍유릉 둘레길을 따라 한참 오르면 영원과 회인원이다.

  홍유릉을 끼고 오르는 둘레길은 호젓하다. 오른쪽으로는 들판이고, 길가 오른쪽에 문인석 하나가 서 있다. 왜 이곳에 세워놓았는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곳이 능역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표식임은 분명하다.

  이 두 원은 부자지간의 묘이다. 영원(英園)은 의민황태자(영친왕 이은)와 의민 황태자비(영친 왕비, 이방자)의 원(무덤)이며, 회인원은 그 아들 황세손 이구(李玖)의 무덤이다.

  왕의 아들은 대군(大君) 또는 군(君)의 호칭이 주어지는데 황제의 아들은 왕의 호칭이 주어진다. 의민황태자는 대한제국 시절 황태자로 책봉되었으므로 원(園)으로 조성하였다.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陵), 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의 사친(私親) 무덤은 원(園), 그 외 왕족들의 무덤은 묘(墓)라고 하는 규례를 따른 것이다.

 

 

영원(英園)

의민황태자(영친왕 이은)와 의민 황태자비(영친 왕비, 이방자)의 원

 

 

  영원(英園)은 의민황태자(영친왕 이은)와 의민 황태자비(영친 왕비, 이방자)의 원(무덤)이다. 의민황태자(영친왕 이은, 1897~1970)는 고종황제(1852~1919)와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의 아들로 덕수궁 숙옹재에서 태어났다. 이은은 고종의 일곱 번째 아들로 순종의 이복동생이자 덕혜옹주의 이복오빠이다.

 

 

  이름은 은(垠). 1900년 영친왕으로, 1907년에는 아들이 없었던 순종이 황제에 즉위한 1907년에 열 살의 나이에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4개월 후인 그해 12월, 이토 히로부미가 신학문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그의 일본 유학을 강행한다. 사실상 일본의 볼모였다.

  이은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대한제국 황제가 이왕으로 격하되면서 이왕세자로 격하됐다. 1920년에는 일본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이방자)와 정략 결혼한 후, 두 아들(이진, 이구)을 낳았으나 첫아들 이진은 잠시 귀국한 사이에 1년이 채 안 되어 1922년 덕수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은은 일본 황실로부터 귀족 대우를 받으며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제1항공군사령관(육군 중장) 지위에까지 올랐고 물질적으로 일본 황족보다도 풍족한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1926년 순종황제가 승하하자 명목상 이왕(李王)이 되었으며, 일본의 육군사관학교 교수부장, 육군 중장으로 근무하였다.

  1945년 일본 패망 직후, 신헌법 시행으로 이왕 내외는 왕족에서 평민으로 전락하였고, 해방된 조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정치적 영향력을 우려해 이 씨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국적 또한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인정하지 않아 무국적자로 지냈다. 환국이 어려워지고 생활고가 심해지면서 1961년 여름부터는 뇌혈전증과 뇌연화증 등 병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국, 그는 광복 18년 뒤인 1963년이 돼서야 1963년에 이르러 대한민국 국적을 얻어 고국을 떠난 지 56년 만에 환국하게 되었지만, 그는 뇌출혈 상태로 병상에 누운 채 귀국해 구급차를 타고 곧바로 성모병원에 입원한다.

  이후 7년간 실어증과 뇌출혈로 투병하다 병세가 악화되어 1970년 5월 1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는 황태자의 예후로 시호를 의민(懿愍), 원호를 영원(英園)으로 하고, 고종황제의 홍릉 동쪽에 원을 마련하였다. 3년 후 종묘 영녕전 16실에 신주가 모셔졌다.

  의민 황태자비(영친 왕비 이방자, 1901~1989)는 1963년 남편인 영친왕 이은과 함께 대한민국 국적을 얻어 귀국한 후 사회봉사 사업에 힘써 신체장애인 재활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사회복지법인 명휘원을 설립하였다.

  열악했던 장애인의 복지와 자립을 위한 삶을 살다가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89세로 세상을 떠나 영원에 합장되었다. 저서로는 『지나온 세월』, 『세월이여 왕조여』 등이 있다.  영원은 조선 왕조 형식으로 조성되었지만, 수라간과 수목방은 없다. 봉분은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 설치되어 있다.

 

 

회인원(懷仁園)

대한제국의 마지막 회은황세손 이구(李玖)의 원

 

  영원(英園) 바로 옆에 회인원(懷仁園)이 있다. 회인원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회은황세손 이구(李玖)의 원이다. 이구(1931~2005) 황세손은 의민황태자(영친왕 이은)와 의민황태자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 후 국내 귀국이 무산되어 일본에 체류하다가 1953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 입학하여 건축학을 전공하였다,  1963년 귀국 후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며 서울대와 연세대 등에 출강하였고,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명예총재를 지내기도 하였다. 2005년 7월 16일 일본에서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창덕궁 낙선재로 운구해 안치하였다가 국장을 지내고, 문화재청과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주최로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권역 내 영원 옆에 예장하고 회인원이라 하였다.  장마로 훼손된 것인지, 봉분의 잔디를 재단장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봉분의 일부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상세정보

►주소 :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

►전화 : 031-591-7043

►대중교통 : 경춘선 금곡역에서 하차 (도보 15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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