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청와대 둘러보기, 녹지원 등 정원의 조경이 일품

by 혜강(惠江) 2022. 8. 28.

 

청와대 둘러보기

 

녹지원 등 정원의 조경이 일품

 

 

글·사진 남상학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 대한민국 최고 권부의 상징이었던 그곳,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2022년 5월 10일, 개방되어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1948년 이후 74년간만의 일이다. 4개월이 가까워지는 날 동료 네 사람과 둘러봤다.

 

  청와대 개방은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진정한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신념으로 구중궁궐 같았던 청와대는 국민에게 물려주고 대통령은 국민과 가까이 가겠다는 취지로 대통령 집무실은 용산의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였다. 수직적 리더십에서 수평적 리더십으로 바뀌길 바라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그동안 정권이 바뀌거나 대통령의 신변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일곤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충남 공주시 근처로 행정 수도를 옮기려 했었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그런 시도를 했다가 좌절되고 행정 중심 복합 도시 세종시가 탄생했다.

 

  청와대 자리는 본래 경복궁 후원이었다. 따라서 경복궁 복원 공사는 청와대가 이전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후원이 회복된다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장소의 회복은 정신의 회복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본 청와대

 

  청와대 자리는 고려 시대 이궁(離宮)이 있던 자리였다. 고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도읍이었던 개경(지금의 북한 개성)과 함께 서경(평양), 동경(경주)의 세 곳을 삼경으로 두었는데 숙종 때 동경 대신 이곳에 이궁을 설치하고 남경으로 삼았다. 남경이란 ‘남쪽의 서울’ 이란 뜻이 담겨 있다.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 터였다. 조선의 첫 임금인 태조 이성계는 경복궁을 짓고, 1426년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후원을 조성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경복궁과 후원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고종 2년인 1865년 흥선대원군의 노력으로 다시 지어졌다.   이 당시, 후세까지도 이름을 남기게 된 경무대도 함께 지어졌다. 경무대는 창덕궁 후원의 춘당대 뒤를 이어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장’으로서의 기능을 이어갔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청와대 자리는 1929년 조선총독부 통치 2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조선 박람회가 경복궁과 옛 후원 자리에서 열리면서 이곳의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되었고, 한동안 공원으로 남아있다가 이 자리에 조선 총독의 관사를 지었다. 이후 조선 총독의 관사 일대를 경무대라고 불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이승만 대통령 내외는 이화장에서 일제 총독 관저였던 경무대로 거처를 옮겼다. 경무대는 제4대 윤보선 전 대통령 시절부터 ‘청와대’라는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푸른 기와의 청와대로 불리고 있다. 그 뒤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거쳐 갔다.

 

 

 

 

청와대 관람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를 둘러보기 위해 입장 예약 시간인 오전 10시 30분에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오늘따라 올해 들어 하늘이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이다.

 

청와대에 입장하면서 바라본 청와대의 첫인상은 본관의 푸른색 청기와 집이 북악산(北岳山)의 배경과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다.

 

청와대는 중심에 자리한 본관을 비롯하여 좌우에 영빈관, 춘추관(春秋館), 녹지원(綠地園), 상춘재, 관저가 있고, 서쪽의 무궁화동산, 칠궁(七宮)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목할 것은 한국 전통양식으로 지어져 아름다우면서도 독특하다는 것이다.

 

관람순서는 정문으로 입장하여 영빈관, 본관, 관저를 둘러보고, 관저 뒤쪽에 자리 잡은 오운정, 이남불을 찾아본 뒤, 침류각, 상춘재, 녹지원을 보고 입장했던 정문으로 다시 돌아 나왔다. 그리고 칠궁을 관람한 뒤 무궁화동산에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였다.

 

►관람순서 : 정문 – 영빈관 – 대통령 집무실 (본관) – 대통령 관저 – 오운정 – 미남불 – 상춘재 - 녹지원 – 정문 – 칠궁 –무궁화동산

 

 

 

1. 영빈관

 

  효자동에서 연무관, 사랑채 맞은편 문으로 입장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이 영빈관이다. 영빈관은 말 그대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돌기둥이 떠받든 영빈관 웅장함에 입이 떡 벌어진다. 1978년에 준공된 영빈관은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어 웅장하다. 특히 전면에 있는 4개의 돌기둥은 둘레가 3m로서 2층까지 뻗어 있는 높이가 13m에 이른다.

 

  외국의 대통령이나 수상이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를 알리는 민속공연과 만찬 등이 베풀어지는 공식 행사장으로 이용되거나,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 및 연회를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다.

 

  내부는 무궁화·월계수·태극무늬가 형상화되어 있다. 2층에도 1층과 똑같은 홀이 있는데 1층은 접견장으로, 2층은 만찬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2. 본관 (대통령 집무실)

 

  영빈관에서 나와 청와대 본관으로 올라간다. 청와대 본관은 조선총독부 관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1991년에 지어졌다.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 정남향에 자리 잡았다. 대통령의 집무와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된 중심 건물이다.

 

전통 목조 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우리나라 건축양식 중 가장 격조가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八作)지붕을 올리고 15만여 개의 청기와를 얹었다. 청와대의 이름은 여기서 비롯됐다.

 

내부 구조는 현대적인 감각과 시설을 갖췄다. 1층에서는 간담회나 오찬·만찬이 열리던 인왕실, 대규모 인원의 임명장을 수여하는 장소 등으로 쓰이던 충무실, 영부인이 외빈 접견과 집무실로 사용하던 무궁화실을 둘러볼 수 있다. 국무회의가 진행되던 세종실은 미공개 지역이다. 2층에서는 대통령 집무실과 외빈 접견실 등이 관람객을 반긴다.

 

그리고 건물 앞의 대정원, 소정원 등 넓은 잔디마당도 감탄을 금치 못하는 곳이다. 국빈 환영 행사와 육·해·공군 의장대, 전통복식을 입은 전통의장대의 사열 등이 행해지는 곳이다.

 

▲이상 대통령 접견실과 집무실 ▼이하 영부인 지무실과 접견실

 

 

3. 수궁터

 

  본관을 나와 소정원을 지나 관저로 향하는 길. 대정원이 넓은 잔디밭이었다면 소정원부터는 아늑한 숲이다. 정원 사이로 난 숲길이 아기자기하다. 숲의 나무들도 꽤 울창해 햇빛이 파고들 틈이 없을 만큼 그윽한 그늘을 만든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수궁(守宮) 터에 다다른다. 이 길가에 ‘천하제일복지’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경무대(구 본관터)라는 표지판도 서 있다.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병사들이 머물던 곳이라 하여 ‘수궁터’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여기에 조선총독부가 전각을 허물고 총독 관사를 지었다. 광복 이후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다가 지금의 청와대 본관을 지으면서 총독 관사는 철거했다. 현재는 총독 관사 현관 지붕 위에 장식으로 있던 절병통만 옛 자리에 놓아 과거를 기억하도록 했다. 이 숲에 박근혜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의 기념식수도 자리를 잡았다.

 

 

 

4. 대통령 관저

 

  관저는 수궁 터에서 약간의 오르막을 걸어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 관저는 대통령과 그 가족의 거주공간이다.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공간과 사적인 업무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건립됐다.

 

  대문은 전통 한옥의 분위기에 맞는 삼문으로 만들어졌다. 전통적인 목조 구조로서 궁궐 건축양식인 팔작(八作)지붕의 겹처마에 한식 청기와를 얹은 ㄱ자형 지붕 형태를 띠고 있다. 생활공간인 본채와 접견 행사 공간인 별채가 ‘ㄱ’자 형태로 자리 잡고, 그 앞으로 마당이 있다.

 

  마당 한쪽에는 ‘청와대에서 편안한 곳’이라는 뜻을 품은 사랑채 ‘청안당’이 있다. 관저는 현재 실외 관람만 가능하다. 다만 창문을 개방해 둔 덕에 안쪽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말도 많던 영부인 드레스룸 (유리창 너머로 찍은 것)

 

5. 오운정(五雲亭)

 

  관저 뒤로 이어진 숲길로 난 데크를 통해 언덕으로 올라가면 청와대 내의 역사문화유산인 오운정과 미남불을 볼 수 있다.

 

  오운정은 조선 시대에 지은 정자이다. 경복궁 후원에 있던 오운각의 이름을 딴 것으로 ”오색구름이 드리운 풍경이 마치 신선이 노는 것과 같다. “라는 의미를 지녔다.

 

  오운정은 고종 2년(1865) 경복궁 중건 당시에 함께 건립된 것인데, 1869년에 고종이 조대비(趙大妃)를 모시고 오운각에 올라 “녹음 울창한 속에 여기저기 맑은 물소리, 수레를 모시고 오운각으로 나와 높은 복(福)을 기원합니다”라고 그 느낌을 시로 적었다고 할 만큼 운치가 있다.

 

  현판의 오운정 한자 초서(草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북궐(北闕) 배치도에서 확인된 경복궁 후원의 정자로서 역사적·학술적 보존가치가 있어 1997년 12월 31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되었다.

 

 

 

6. 미남불

 

  오운정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9세기 통일신라 때 조성된 석불좌상인 불상이 나온다. 이 불상의 별명이 '미남불'이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양식이 유사하면서 당당한 풍채를 띤 모습으로 통일신라 불상 조각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보물 제197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원래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의 사찰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때문에 경주 시민단체들이 불상 경주 반환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이들은 새 정부 출범과 청와대 개방을 계기로 반환 운동을 재개했다.

 

 

 

7. 침류각

 

  1900년대 초의 전통가옥이다. 청와대 경내에 있는 누각 건물로서 경복궁의 부속 건물로 추정된다. 원래 지금의 관저 자리에 있었지만, 1989년 관저를 신축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이동됐다.

 

  3층으로 돌을 쌓아 세벌대 기단을 만들고 사각 주춧돌을 놓았으며 사각기둥을 올렸다. 왼쪽에는 2칸의 대청마루 오른쪽에는 3칸 규모의 방을 두었으며, 방 앞면에는 누마루가 튀어나와 있다.

 

 

 

8. 상춘재(常春齋)

 

  청와대의 정원인 녹지원 뒤에 있는 전통 한옥으로 멋스럽다.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국 귀빈들에게 우리나라 가옥 양식을 소개하거나 의전 행사, 비공식회의 장소 등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상춘재의 뜻은 '봄이 늘 계속되는 집'이다. 청와대 경내에 건립된 최초의 전통 한옥인데 200년이 넘은 춘양목(春陽木)을 활용했다고 한다. 내부는 대청마루로 된 거실과 온돌방 2개가 있다.

 

 

 

9. 녹지원

 

  녹지원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녹지공간이다. 잔다가 곱게 깔리고 그 가운데 엄청나게 큰 반송을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진다.

 

  넓은 공간으로 구성돼 국내외 귀빈 및 외교사절단을 위한 야외행사는 물론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장. KBS 열린 음악회 등 대통령과 국민이 만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 신무문 밖 후원으로 문·무의 과거를 보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120여 종의 나무가 있으며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 수가 곳곳에 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녹지원에는 한국산 반송(盤松)이 있는데 그 수령이 150년을 넘었다. 높이는 16m이다.

 

 

 

10. 춘추관

 

   녹지원 아래쪽으로는 현재 사무실로 사용되는 여민관이 보인다. 문재인 전 대통령 때만 해도 이곳은 비서실·안보실 공간으로 활용됐다. 헬기장을 끼고 내려오면 사실상 마지막 장소인 춘추관에 도착한다.

 

  춘추관은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리게 맞배지붕에 토기와를 올려 전통적인 우아한 멋이 깃들여져 있다. 대통령의 기자 회견 장소와 출입 기자들의 기사송고실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춘추관은 고려, 조선 시대 역사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있다. 자유 언론의 정신을 잘 상징하는 이곳이 과연 정권 차원을 넘어서서 정론을 펼치는 장이었는지 반성해 본다.

 

 

 

11. 칠궁

 

  칠궁은 조선 시대 때 왕을 낳은 후궁들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청와대 서남쪽에 있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 자리에 모았다.

 

  이곳에는 육상궁(毓祥宮·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과 저경궁(儲慶宮·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 대빈궁(大嬪宮·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 연호궁(延祜宮·영조의 후궁 정빈 이 씨), 선희궁(宣禧宮·영조의 후궁 영빈 이 씨), 경우궁(景祐宮·정조의 후궁 수빈 박 씨), 덕안궁(德安宮·고종의 후궁 엄 씨) 등 7개의 사당이 있어 칠궁이라 한다.

 

  1968년 이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으나 2001년 11월부터 다시 일반에게 공개됐다. 관람객 방문이 가능해진 이후 기존의 청와대 관람과 연계해 칠궁 관람이 이뤄졌다. 화요일은 휴무.

 

 

 

12. 무궁화동산

 

  칠궁을 둘러보고 나오면 무궁화동산이다. 무궁화동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궁정동 안가가 있던 곳이다. 병자호란 때 청에 굴복하기를 거부한 김상헌 집터 옆이기도 하다.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안가를 헐어 내고 시민 휴식공원으로 만들었다.   맞은편에는 분수대, 봉황상이 있어 관광객들의 기념촬영 장소로 애용된다. 무궁화가 피는 7-10월까지가 특히 아름답다.

 

 

 

  74년 역사를 지나 새로운 출발점에 선 청와대. 이제는 국민과 더욱 가깝게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됐다. 앞으로 청와대가 어떤 역할로 국민의 삶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 갈지 궁금하다.

 

  흔히 북악산으로 불리는 청와대 뒷산의 원래 이름은 백악산이다. 일제는 '백악'을 '북악'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역사, 문화적 함의가 빠지고 방위 개념만 남은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백악산에는 걷기 좋은 탐방로가 만들어져 있다.

 

  청와대와 백악산 개방 후 청와대 관람객이 줄을 잇고, 백악산 등산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용트림하는 역사와 함께 숨 쉬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를 살아가는 시민의 약동이 느껴지는 광경이다.

 

 

 

 

◎ 상세정보

 

 

►관람시간 : 09시~18시 (매주 화요일 미개방)

►관람방법 : 사전 관람 예약 (사이트 : 청와대, 국민 품으로 www.opencheongwadae.kr/)

►현장신청 : 만 65세 이상 어르신, 장애인, 국가보훈대상자, 외국인을 대상으로 2회(09시~, 13시30분~) 각 500명씩 현장발급 가능 / 장소 : 정문 종합안내소

►입장장소 : 정문, 영빈문, 춘추문 등 총 3곳 중 자유롭게 선택 가능

►출입방법 : 신분증을 지참한 채 예약 바코드를 스캔 후 출입.

 

 

 

►주변맛집

 

* 서촌방면

토속촌삼계탕 (삼계탕) : 종로구 자하문로5길 5구(체부동 85-1), 02-737-7444

서촌소국밥 (소머리국밥) : 종로구 필운대로6길 17-1 (통인동 27-2), 070-8885-7677

대하식당 (삼겹살) : 종로구 자하문로7길 27 (체부동 17), 02-734-9503

잘빠진메밀 (메밀국수) : 종로구 자하문로11길 4 (통인동 120, 070-4142-1214

백가네순대국 (순대정식) : 종로구 자하문로 35-4 (통인동 147-2), 02-730-5851

* 삼청동 방면

삼청동수제비 (수제비, 파전) :삼청동 102-2, 02-735-2965

소선재 (한정식) : 종로구 삼청동 113-3, 02-730-7002

북촌집 (삼계탕, 추어탕, 팥콩국수) : 종로구 팔판동 11, 02-738-8889

봉탁항아리바비큐불쭈꾸미 (바비큐, 쭈꾸미) : 삼청동 61-4, 010-5202-2002

호마네꽁띠 (양식) : 삼청동 62-6, 02-722-1633

 

 

<우리들의 기념사진첩>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