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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황희선생유적지와 반구정

by 혜강(惠江) 2022. 7. 30.

 

파주 황희선생유적지와 반구정

 

 

글·사진 남상학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자연을 잘 간직하고 있는 파주는 조선 시대 명정승 황희와 율곡 이이의 숨결이 남아있는 곳이다. 특히 반구정은 정승 황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보낸 곳이다. 이곳에는 황희 정승 유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에 있는 황희 선생 유적지는 1983년 9월 19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2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이곳에 있는 반구정(伴鷗亭)은 고려말에서 세종조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임금을 보필하고 89세로 장수하였던 청백리 황희(黃喜, 1363∼1452) 선생이 말년에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갈매기를 벗 삼아 지낸 정자이다.

 

 

 

  반구정은 황희가 죽은 후 전국의 선비들이 유적지로 보호하여 오다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다. 그 뒤 후손들이 부분적으로 복구해 오다가 1967년 크게 고쳐 지었다.

 

  매표소를 거쳐 경내로 들어서면 우측에 방촌기념관이 있다. ‘방촌(厖村)’은 황희 선생의 호(號)이다. 이곳 방촌 기념관은 황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성역화하면서 그의 호를 붙여 2000년 6월 준공한 건물이다.

 

 

 

  건물은 최신 현대식이지만 전시관의 모습은 청백리의 기념관다운 꾸밈새였다. 극히 간소하고 아담한 모습으로 안내서가 그대로 바로 전시내용이다. 먼저 전시내용을 통해 황희 정승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황희는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재상이다. 현명함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세종대왕의 가장 신임받는 재상으로서 세종대왕 치세 기간 중 역대 영의정 중 최장수로 18년간 영의정으로 재임하였다.

 

 

 

  고려 말기 과거에 급제했으나 고려 멸망 후 은거하였다가 이성계의 부름으로 관직에 올라 성균관 학관으로 출사하여 1422년(세종 4) 과전과 고신을 환급받고, 의정부 좌참찬을 거쳐 다시 예조판서에 올랐다. 1423년 강원도 지방에 흉년이 들자 관찰사로 파견되어 선정을 폈다.

 

  1427년 좌의정이 되었으나, 1430년 태석균의 치죄에 관여하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물러나 파주 반구정에 은거했다. 1431년 복직되어 1449년 관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18년 동안 영의정으로 국정을 이끌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했으며, 사리에 밝고 정사에 능해 역대 왕들의 신임을 받았지만 때로는 소신을 굽히지 않아 왕과 다른 대신들의 미움을 사서 좌천과 파직을 거듭했다. 현실적으로 불합리하거나 중복, 빠진 부분이 있던 <경제육전>을 온전한 법률집으로 만드는 등 법전의 정비에 힘썼다.

 

  건국 초기의 어지러운 정세를 틈타 북쪽의 여진족과 남쪽의 왜구가 자주 침범하자 이에 대한 방비책 마련에도 힘을 쏟고 세종의 한글 창제를 뒷받침하는 등 관료 생활 중 많은 치적과 일화를 남겼다.

 

 

  1452년(문종 2) 세종 묘에 배향되었고, 1455년(세조 1) 순충보조공신 남원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상주 옥동서원과 장수 창계서원에 제향 되었고, 파주의 반구정에 영정이 봉안되었다. 저서로 〈방촌집〉이 있다. 시호는 익성이다. 황희 선생의 묘는 반구정에서 문산 쪽으로 가다가 탄현면 금승리 산 능선에 있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돌담을 두른 경내의 초입은 솟을삼문이 서 있다. 청정문이다. 여기서부터 본뜰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영당이다. 화강석재의 장대석을 2단으로 짠 기단 위에 선 영당의 처마 밑에는 선생의 호를 딴 ‘厖村先生影堂(방촌 선생 영당)’이라는 행서로 쓴 현판이 걸려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된 영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후손들이 그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그리고 영당의 왼편에는 황희의 15대 외손인 맹현(孟鉉)의 신위를 모신 월헌사(月軒祠) 부조묘가 있으며, 제사를 지내는 경모재가 구역 내에 있다. 오른편에는 이곳을 방문하던 빈객을 영접하여 침식을 제공하던 재직사가 있다.

 

 

  경내에는 임진강을 바라보며 황희 정승 동상도 세워져 있다. 동상 좌대에는 황희 선생이 1423년(세종 5) 감사 재직 시에 남긴 ‘관풍루(觀風樓)’ 유묵이 음각되어 있다. 그는 시문에도 능했다.

 

    軒高能却暑(헌고능각서)

    簽豁易爲風(첨활이위풍)

    老樹陰垂地(노수음수지)

    遙岑翠掃空(요잠취소공)

 

    집이 높으니 능히 더위를 물리치고

    처마가 넓으니 바람이 통하기 쉽네

    큰 나무는 땅에 그늘을 만들고

    먼 산봉우리는 푸르게 하늘을 쓸어가는 것 같네.

 

 

 

 
  건너편 언덕에는 황희가 벼슬을 떠나 여생을 보내던 반구정이란 정자가 있다. 임진강 하류 절경지에 세운 정자로 낙하진과 가깝게 있어 원래는 ‘낙하정’이라 불렀으나 갈매기가 유난히 많다는 이유로 ‘반구정(伴鷗亭)’이라 개명했다. 바로 위쪽에 앙지대(仰止臺)가 있다.

 

  반구정은 원래 지금의 반구정 위에 있는 또 하나의 정자 ‘앙지대’ 자리에 위치에 있었다. 1915년 반구정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며 원래 있던 자리에 황희 선생을 기리는 뜻으로 또 하나의 육각정을 짓고 ‘시경의 호인 황희 선생’이라는 의미의 ‘앙지대’라 명명했다.

 

  앙지대 상량문에 “오직 선(善)을 보배로 여기고 다른 마음이 없는 한 신하가 있어 온 백성이 우뚝하게 솟은 산처럼 모두 쳐다본다. 아름답구나 이 앙지대라는 이름은 시경의 호인(好仁)이라는 뜻을 취했다.”라고 적고 있다.

 

 

 

  정장에 오르면 바로 밑에 임진강 물줄기가 유유히 흐른다. 그 사이로 강변을 따라 철조망이 길게 처져 있다. 분단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는 철조망이 반구정 언덕과 임진강을 가로막아 분단의 슬픔을 느끼게 한다. 그 너머에는 장단면 거곡리 들판이 푸르다.

 

  허목(許穆)의 반구정기(伴鷗亭記)에 의하면 "조수 때마다 백구가 강 위로 몰려들어 모래사장 벌판에 가득하다."라고 하였다는데 갈매기는 오늘 보이지 않고 외로움만 내려앉았다.

 

 

 

  반구정 주변에는 아주 특별한 음식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바로 반구정 장어마을이다. 이 마을은 황희 정승의 집 문지기가 처음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하니, 이 엄청난 역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 장어는 깨끗한 임진강 유역에서 자라 힘이 좋고 싱싱하여 식감을 중요시하는 미식가들에게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상세정보

 

 

 

►주소 : 파주시 문산읍 반구정로85번길 3 (문산읍 사목리 산 122)

►전화 : 031-954-2170

►관람 : 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휴일 : 매주 월요일

►요금 : 대인 1,000원 (단체 800원) / 소인 500원 (단체 400원), 만 65세 이상 무료,

►맛집

   반구정 나루터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208-3, 031-952-3472)

   반구정송가네장어농원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196-1. 031-954-9299)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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