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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리 전투, 한국전쟁에서 역전의 발판이 된 빛나는 전투

by 혜강(惠江) 2022. 8. 5.

 

지평리 전투 

 

한국전쟁에서 역전의 발판이 된 빛나는 전투

 

글·사진 남상학

 

 

 

 

  경기도 양평군 지평은 일제 암흑기 뢧불처럼 타올랐던 지평 의병과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의 대규모 공격에 맞선 유엔군의 지평리 전투로 유명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외에도 지평에는 미리내 수련원을 비롯하여 대평저수지·월산저수지·수곡저수지 등의 관광명소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조선 시대의 교육기관 지평향교가 있다. 그런가 하면, 지평은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오래된 지평막걸리(1925년) 생산지로 유명하다.

 

  양평군 동남부에 있는 지평면은 중앙선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달린다. 중앙선 열차를 타고 양평, 용문을 지나면 닿는다. 나는 오늘 의병 활동과 지평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자랑스러운 현장을 탐방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지평에는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국민의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건립한 ‘지평 의병·지평리 전투기념관’이 있다. 8시 55분 왕십리역에서 경의중앙선 전철을 탔다. 1시간 33분 지나 지평역에 도착했다.

 

 

 

◆지평리 프랑스 전적지

 

  지평역에 내리면 지평역 주차장 바로 옆에 ‘지평리 프랑스군 전적지’가 있다. 이곳은 1.4 후퇴 직후인 1951년 2월 중순, 프랑스군 대대가 사방을 포위한 10배 규모의 중국군 5만 대군을 맞아 미군과 함께 육박전까지 벌이며 싸우던 곳이다.

 

  기념비에는 “자유를 위하여”라는 내용의 글이 불어, 한국, 영어 3개국 언어로 쓰여 있고, 그 옆의 또 하나의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역시 3개국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 지평리 전투에서 UN 프랑스군으로 참가한 그대들이 보여준 나폴레옹의 후예다운 용맹성과 숭고한 희생은 대한민국 국토수호의 초석이 되었으며, 그대들의 고귀한 영혼은 아직도 이곳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기념 비문을 읽고 나니 가슴이 멍해 온다. 2007년 국가보훈처와 한국전참전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제작하여 세운 것이다.

 

 

 

지평 의병·지평리 전투기념관 앞의 전차

 

  지평리 프랑스군 전적지에서 나와 큰길을 건너 직진하여 지평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저 멀리 ‘지평 의병·지평리 전투기념관’의 모습이 보인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라 오전의 햇볕이 무척 강했으나, 무성하게 자라는 초록색 벼들이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루어 싱그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평역에서 ‘지평 의병·지평리 전투기념관’까지는 걸어서 15분 남짓이면 닿는다.

 

  ‘지평 의병·지평리 전투기념관’ 앞뜰에는 탱크 한 대가 전시되어 있다. 설명을 보니, ‘한국 최초 조립 전차 M48A3K’였다. 이 전차는 미국제 M48AI 전차의 엔진을 가솔린에서 디젤로 교체한 모델이다. 1977년부터 1981년 사이에 개량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총 381대의 전차가 보병사단 예하 전차대대에 배치되었다. 이 전차는 국산 K계열 전차 개발의 밑걸음이 되었다.

 

 

 

◆지평 의병·지평리 전투기념관에서 본 지평리 전투

 

  기념관은 2016년 2월 16일 개관했다. 이날은 지평리 전투가 승리로 끝난 날이어서 이를 기념하여 개관을 2월 16일에 맞추췄다고 한다. 기념관은 연면적 540.96㎡의 지상 2층 건물이다. 1층에는 최초의 의병과 지평리 전투의 생생한 소개와 진행 과정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2층에는 3D 영상관, 지평리 전투체험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념관 건물 앞면에는 지평 의병 정신과 지평리 전투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글과 지평 의병과 지평리 전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기념관 앞에는 ‘사진으로 보는 지평리 전투 현장’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내부로 들어서면, 제1 전시공간 <희망의 횃불, 지평 의병>에서 지평 의병에 관한 내용을 전시하고 있지만 지평 의병에 관해서는 달리 별도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재2 전시공간인 <역전의 발판, 지평리 전투>라는 코너를 중심으로 지평리 전투에 대해서 알아본다.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3일부터 2월 16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 일대에서 원형 방어진지를 구축한 미국 제2보병사단 제23연대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가 중국군 3개 사단 규모의 집중공격을 막아내고 미국 제1기병사단 제5 기병연대 3대대를 주축으로 편성된 크롬베즈 특별 임무부대에 의해 구출된 방어전투였다.

 

  중국군이 참전한 이후 유엔군이 중국군과 싸워 얻은 최초의 전술적, 작전적 승리였으며, 지평리 전투 이후 유엔군은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과감한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그 상세한 전말을 따라가 본다.

 

1.  6·25전쟁의 타임라인

 

  한국전쟁은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38선을 넘는 도발로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곧바로 국제전으로 비화하여 3년 1개월 동안 진행되었다. 그 결과 남·북한 모두뿐 아니라 참전 유엔군과 중국군도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 여기는 6.25 전쟁 발발에서 휴전협정까지의 과정을 연표로 보여준다.

 

 

2. 새로운 전쟁, 그리고 1·4후퇴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 후에 압록강까지 진격하였으나 중국은 유엔군의 38도선 돌파가 임박한 1950년 10월 8일 한국전쟁에 개입했다. 그 명분은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지키는 것이 가정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 보가위국(保家爲國)'이다.

 

  중국군의 참전으로 전쟁은 새로운 양상을 띠며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대결로 전환되었다. 여기서는 1.4후퇴를 비롯한 전쟁의 진행 상황을 한반도 지도위에 선으로 보여준다.

 

 

3. 전환점의 시작

 

  1950년 12월, 유엔군은 패배의식이 만연해 있었고, 유엔군 지휘부는 한반도에서의 철수까지 검토하고 있었다. 그때 지상군 총사령관이 된 매튜 리지웨이(Matthew Ridgway) 장군은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우려고 공격작전을 계획하면서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중국군의 실체를 파악해 나갔다. 그는 1951년 맥아더가 해임되자 대장으로 진급하면서 연합군 최고 사령관, 유엔사령관이 되어 한국전쟁을 이끌었던 장군이다.   

 

 

4. 기다렸던 승전보, 지평리 전투

 

  지평리 전투는 1951년 한국전쟁 중 미국군과 프랑스군으로 이뤄진 연합군이 중국군의 인해전술 총공세를 막아낸 전투다. 수도 서울을 내어주는 1.4 후퇴 당시인 1951년 2월 13일부터 2월 16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 일대에서였다. 

 

  미국의 폴 프리먼(Paul L. Freeman) 대령과 랄프 몽클라르(Ralph Monclar) 중령, 크롬베즈 대령이 이끈 한·미·불 연합군 5600여 명이 펑더화이가 이끄는 5만여 중국군과 치열한 공방 끝에 성공적으로 격퇴한 방어 전투였다.

 

  연합군의 승리는 1·4 후퇴 이후 최초로 중국군을 맞아 거둔 승리로서 한국 전쟁사에 전세를 역전시킨 전투로 남아 있다. 중국군은 큰 피해를 보고 철수했고, 이 전투로 유엔군이 중국군에 대한 자신감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이후 38도선을 회복하는 반격의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2층, 평화기원실, 영상체험실

 

  2층에는 평화기원실, 영상체험실이다. 이곳에는 6·25 참전국 소개, 평화상징물, 지평리 전투 참전국, 중국군의 유해 발굴, 지평리 전투의 참상, 평화군인 되어 보기, 평화기원, 추모 등으로 꾸며졌다. 특히 이곳에는 전경애 씨가 쓴 시 <지평리의 함성> 액자가 걸려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머나먼 코리아 눈 덮인 지평리/ 자유 깃발 높이 들고 힘차게 달려왔네

하늘빛 사랑으로 지킨 우리들의 평화/ 그날 그 감격 푸른 눈의 친구여

그날 그 함성 ‘지평리를 사수하라’/ 아, 지평리 지평리, 승리의 함성이여

아, 지평리 지평리 승리의 함성이여/ 지평리 들판에 햇빛은 찬란한데

충혼비에 어린 사연 애닯고도 장하다/ 포화 속에 다정했던 잊지 못할 친구여

하늘빛 사랑으로 지킨 우리들의 평화/ 폴 프리먼의 미국군, 몽크레아의 프랑스군

크롬베즈 특별무대, 태극전사들/ 아, 지평리 지평리 승리의 함성이여

아, 지평리 지평리, 자유의 함성이여“

 

 

  계단에 걸린 사진을 둘러보며 3층으로 오르면 전망대다. 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에 서면 지평리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이 펼쳐진다. 앞쪽으로 난 창틀에는 망원경이 설치하여 현장을 자세히 살피도록 하였다.

 

 

지평리지구 전투전적비

 

  기념관에서 나오면 언덕 위에 조성된 지평리 지구 전투전적비 공원을 둘러볼 차례다. 계단을 오르면 평지에 UN군충혼비가 있고. 양쪽으로 참전국 국가의 깃발이 날리는 가운데 지평리 전투 UN(미국)군전승충혼비(오른쪽), 지평리전투 UN(프랑스)군참전충혼비(왼쪽)가 서 있다. 이곳의 충혼비는 2006년 6월에는 육탄용사 호국정신선양회가 건립하였다.

 

  여기서 다시 계단을 오르면 맨 위에 2m 높이의 기단 위에 지평리 지구 전투전적비(2.3m)가 세워져 있다. 이 잔적비는 1951년 2월 지평리 전투에서 치러진 대 중국군 방어 전투의 공적을 기념하고 전사한 장병의 영령을 추모하고자 1957년 7월 15일 국군 제5사단이 건립하였다. 화강암으로 만든 계단 위에 편평한 대지를 조성한 다음 탑을 세우고 철책을 둘러 보호하고 있다.

 

 

◎상세정보

 

►주소 : 경기 양평군 지평면 지평로 357 (지평면 지평리 385-3)

►전화 : 031-771-6625

►관람 : 09:30~17:30

►휴무 : 월요일, 공휴일

►가는 길 : 경의·중앙선 지평역 1번 출구, 도보 16분 / 버스 이용 향교말A 1-13, 1-43, 1-63, 2-6, 7-2, 22, 24, 77-2(도보 3분, 향교말B 1-3, 1-23, 1-33, 1-53, 2-6, 22(도보 3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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