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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東九陵), 서울 동쪽에 있는 조선 왕가의 무덤

by 혜강(惠江) 2022. 5. 11.

 

동구릉(東九陵)

 

서울 동쪽에 있는 조선 왕가의 무덤

 

 

 

 

 

  동구릉(東九陵)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검암산 자락에 있는 조선 시대의 왕릉군(王陵群)이다. 191만 5891㎡에 달하는 구역에는 9개의 능에 17위의 유택이 있다.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9년 2월 27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동구릉이란 도성의 동쪽에 있는 9개의 무덤이란 의미로, 동구릉은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가 사망하자 태종의 명으로 하륜(河崙)에 의해 이곳이 무덤 지역으로 정해졌다. 이후 400여 년에 걸쳐 16기나 되는 유택이 추가되었으므로 조선 왕조 전 시기에 걸쳐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구릉역사문화관

 

  동구릉 관람에 앞서 먼저 동구릉 입구에 있는 동구릉역사문화관을 들러본다. 동구릉 역사문화관에는 동구릉의 역사와 공간 구성, 동구릉의 보물 정자각, 동구릉 석물의 변화 등을 전시물을 통해 보여준다.

 

 

 

 

  전체 42기의 조선 왕릉 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태조의 첫째 왕비인 신의왕후의 제릉과 2대 왕인 정종과 정안왕후의 후릉을 제외한 40기가 남한에 있다. 그중 9기의 능이 조선의 수도 한양 궁궐을 기준으로 동쪽인 동구릉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조선 초대왕인 태조의 건원릉, 문종의 현릉, 선조의 목릉, 영조의 원릉, 현종과 명성황후의 숭릉 외에도 경종의 혜릉, 헌종의 경릉,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휘릉, 추존 문조(순조의 장남)의 수릉으로 구분된다.

 

  당대 최고의 풍수지리학자는 물론, 조경가와 예술가가 만나 꾸민 왕가의 무덤인 동구릉 내에는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아홉 개의 묘에 17위(일곱 분의 왕과 열 분의 왕비)의 왕과 왕후가 안장돼 있다. 조선 왕릉 중 국내 최대 규모로 ‘조선 왕릉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능 이름 왕 (7) 왕비 및 후비 (10)  
1 건원릉(健元陵) 1대 태조(太祖)    
2 현릉(顯陵) 5대 문종(文宗) 왕비 현덕왕후 권씨  
3 목릉(穆陵) 14대 선조(宣祖) 왕비 의인왕후 박씨, 후비 인목왕후 김씨  
4 휘릉(徽陵)   16대 인조 왕비 장렬왕후 조씨  
5 숭릉(崇陵 18대 현종(顯宗) 왕비 명성왕후 김씨  
6 혜릉(惠陵)   20대 경종의 왕비 단의왕후 심씨  
7 원릉(元陵) 21대 영조(英祖) 왕비 정순왕후 김씨  
8 경릉(景陵) 24대 헌종(憲宗) 왕비 효현왕후 김씨, 후비 효정왕후 홍씨  
9 수릉(綏陵) 문조(추존) 신정황후 조씨  

* 문조는 순조의 맏아들이자, 헌종의 아버지이며, 신정왕후 조씨는 헌종의 어머니

 

 

 

 

 

  동구릉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왕릉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무덤을 만들 때 각 무덤에 따른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재실(齋室)을 지었다고 하나 현재 각 무덤에 재실은 없고, 9개 무덤을 하나의 경계지역으로 하여 구릉 남쪽에 재실이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중앙 북쪽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동쪽에 3개, 서쪽에 5개의 무덤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의 왕릉 중 한 지역 내에 왕릉군을 이루고 있는 곳은 서오릉과 서삼릉이 있으나, 동구릉에 가장 많은 무덤이 있다. 조선 왕조 42개의 능의 20%가 포함될 정도로 비중이 남다르다.

 

  동구릉은 조선 왕조 500년의 부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인 데다 교통이 편리해 가족 단위의 소풍객은 물론 학생들도 수학여행지로 많이 찾는다.

 

  동구릉에 들어서면 오랜 세월 왕릉을 지켜냈을 고목들이 허리를 구부린 채 산책길에 도열해 있다. 나무 사이로 볕이 들고 길옆에는 가녀린 시냇물이 흐른다. 여기서 왕릉의 구성을 보면 진입공간, 제향공간, 능침공간 세 구역으로 구분된다.  

 

 

 

 

 

홍살문

 

  정문에서 몇 걸음 걷지 않아도 곧바로 다른 왕릉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살문이 보이기 때문이다. 홍살문은 왕릉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건축적 장치로 몸과 마음을 엄숙히 하고 경건한 예를 갖추라는 의도로 세워졌다. 붉은 칠을 한 둥근 기둥 두 개 위에 가로대를 놓고, 화살 모양 나무 살을 가로대 위에 꽂처럼 꾸몄다. 동구릉에는 입구의 홍살문 외에도 약간 작은 규모의 홍살문이 왕릉마다 설치되어 있다.

 

 

 

 

재실

 

  홍살문을 지나면 우측에 고풍이 서린 한옥 재실이 있다. 재실은 평상시 영(종5품) 또는 참봉(종9품) 등이 능역의 관리를 위해 근무하는 곳이며,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동구릉의 숲길

 

  동구릉은 왕릉에 들어가는 입구와 그 사이사이로 많은 숲길이 있다. 숲에서는 눅진한 풀냄새, 나무의 향기가 느껴진다. 조선의 왕릉은 무덤 이전에 자연으로 말을 건다. 왕릉을 보이기 전에 마음을 씻으라는 이야기처럼. 숲길을 지나치는 동안 산림이 주는 피톤치드의 청량감을 폐부 깊숙이 담아 본다.

 

  갈참나무와 소나무로 이루어진 동구릉 숲길을 지나가면 재실이 나타나는데, 이곳에 9곳의 왕릉으로 가는 갈림길들이 있다. 어떤 왕릉부터 답사해야 하는지는 어렵지 않다. 우측 길은 재실을 거쳐 수릉, 현릉, 건원릉, 목릉, 휘릉, 원릉, 경릉, 혜릉, 숭릉 순이며 좌측 길은 이와 반대 코스다.

 

 

 

 

 

영조의 능인 원릉(元陵)

 

  왕의 숲길을 잠시 걷다 보면 영조의 능인 원릉에 닿았다. 원릉은 조선 왕 중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던 제21대 영조(1694~1776)와 계비 정순왕후 김 씨(1745~1805)의 능이다. 영조는 탕평책으로 정치적 안정을 꾀한 후 제도 개편이나 문물의 정비, 민생 대책 등 여러 방면에 적지 않은 치적을 쌓았다.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고 신문고 제도를 부활하기도 했다.

 

 

 

 

►향로

 

  정자각까지 향로가 길게 뻗어있다. 단을 달리해 신의 길과 왕의 길을 구분 지었다. 높은 쪽인 향로는 제향 시 향과 신명(神)께 고하는 글인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고, 높이가 낮은 어로는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이다. 어로 위를 따라 걷다 보면 제향 공간인 정자각에 도착하게 된다.

 

 

 

 

►정자각

 

  정자각은 한자로 고무래 정(丁)자 모양을 한 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정자각은 제향 음식을 차려놓고 돌아가신 분을 모시는 공간인 정전과 제관들이 서 있는 기둥만 있는 공간인 배위청이 합쳐져 있다. 조선왕릉의 정자각은 대부분 지붕 좌우 측면이 시옷(ᄉ)으로 마주 보는 맞배지붕 형태로 되어 있다.

 

 

 

 

►비각

 

  정자각 앞 좌측으로 세워진 비각은 다른 능에 비해 매우 크며 3개의 표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1776년 정조는 비각을 2칸으로 만들어 '조선국 영조 대왕 원릉'이라 표기한 표석을 세우고 1칸을 비워두었다. 1805년 순조가 비워둔 자리에 '조선국 정순왕후 부좌'라 기록한 표석을 세움으로써 비로소 쌍릉이 완성되었다.

 

 

 

 

►능침 공간

 

  정자각 뒤의 능침 공간에는 봉분과 이를 둘러싼 돌로 만든 장식이 있다. 원릉은 문인석 공간인 중계와 무인석 공간인 하계를 통합하고 높낮이의 등급을 두지 않았으며 장대석으로 경계도 하지 않았다. 고려와 조선 시대 통틀어 문인 공간과 무인 공간의 높낮이를 두지 않은 최초의 능인 것이다. 이후 조선의 모든 능은 중계와 하계를 같은 공간에 통합했다.

 

  문인석과 무인석은 다른 왕릉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으로 문인석은 어깨가 좁고, 무인석은 위풍당당하지만, 입체감이 떨어진다. 평소 검소했던 영조의 유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경릉(景陵)

 

  원릉 곁의 경릉은 제24대 헌종(1827~1849)과 효현왕후 김 씨(1828~1843), 계비 효정왕후 홍 씨(1831~1903)를 모신 능이다. 헌종은 요절해 익종으로 추존된 문조의 아들로 왕가의 정통성을 한 몸에 안고 태어났으며 4세 때 아버지인 효명세자가 급서하자 바로 왕세손에 책봉되었다.

 

  경릉은 보란 듯 세 개의 봉분으로 이루어졌다.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무덤이 나란하다. 조선왕릉 가운데 유일한 삼연릉이다. 정면에서 보아 제일 왼쪽 봉분이 헌종의 능이고 가운데가 효현왕후 오른쪽이 효정왕후의 능이다. 병풍석 없이 난간석이 세 능침을 둘렀다. 유교 예법을 따른 왕릉의 구성은 대체로 비슷하다.

 

 

 

 

 

  오늘은 9개의 능의 순례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느릿느릿 숲을 거닐며 자연을 맘껏 호흡하기로 한다. 걷다 쉬다 또 잠깐은 의자에 앉아 쉬기도 한다. 파란 하늘 위로 흰 구름이 몽실몽실 흐른다. 포근하다. 공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무덤이라는 스산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500년을 이어온 광대한 숲 왕릉에서 느끼는 것은 결국 시간이란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는 또 하나의 통로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것이다.

 

 

 

 

 

  최고의 묘지 신의 정원이자 천혜의 녹지로 된 왕릉의 사이사이를 걷는 것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 서로 연결되는 순환로를 그대로 따라 돌기만 해도 1~2시간 정도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상세정보

 

►소재 :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길 197 (인창동 66)

►전화 : 031-563-2909

►이용시간 : 오전 6시~오후 5시 30분 입장(3~10월), 오전 6시 30분~오후 4시 30분 입장(11~2월)

►가는 길 : 지하철 중앙선 구리역 3번 출구. 마을버스 2, 6번 환승. 동구릉 하차. 곧 암사역에서 구리를 거쳐 남양주 별내역까지 연결되는 별내선이 개통되면 동구릉 역에서 하차할 수 있게 되므로 한결 편리하게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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