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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용흥궁, 궁(宮)으로 바뀐 ‘강화 도령’ 이원범의 집

by 혜강(惠江) 2022. 2. 18.

 

강화 용흥궁(龍興宮)

 

용흥궁으로 바뀐 ‘강화 도령’ 이원범의 집

 

 

글·사진 남상학

 

 

 

 

▲용흥궁 정문

 

 

  강화읍 강화경찰서 왼쪽 담 옆길을 따라 70m 정도 서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용흥궁'이라는 집이 있다. 이 집은 노인들 사이에 ‘원범(元範)이네 집’으로 불리는 곳으로서, 원범은 ‘강화도령’으로 알려진 철종(哲宗, 재위 1849~1863)의 어렸을 때의 이름이다.

 

 

'강화 도령' 이원범

 

 

  ‘강화 도령’ 이원범은 22대 정조(正祖)의 아우 은언군(恩彦君) 인(裀)의 손자로 아버지는 전계대원군 광(壙)이며, 어머니는 용성대부인 염씨(廉氏)이다.

 

  21대 영조의 현손인 그가 강화에서 자라게 된 것은 할아버지인 은언군과 큰형 이원경이 신유사옥 때 역모에 연루되어 1844년(헌종 10) 가족과 함께 교동으로 유배되었다가 곧 강화로 옮겨져 사약을 받고 죽었기 때문이다.

 

  이때 왕족의 예우를 박탈당한 ‘강화도령 이원범’은 둘째 형 이경응과 강화도에서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농사를 지으며 빈궁하게 살았다.

 

 

 

▲용흥궁의 안내판과 철종의 잠저임을 알리는 표지석

 

 

‘강화도령’이 25대 철종 임금이 되다.

 

 

  그러던 중 ‘강화도령’ 이원범의 삶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조선 말기 안동 김씨의 세도가 한창일 때, 24대 헌종이 자손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뜨자, 조정의 대신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똑똑하지 못한 왕족 중에서 후계자를 정하여 정사를 손아귀에 쥐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강화도에서 살고 있던 이원범이 지목되었다.

 

  가난한 농부로 전락한 이원범은 임금으로 봉한다는 대왕대비의 교서도 읽지 못하였다. 한양에서 태어났으나 강화도(교동)로 유배되어 약 5년간 생활하다 25대 임금으로 즉위하면서 강화도를 떠났다.

 

  불과 몇 년간이었지만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젊은이였기에 ‘강화도령’이라 불린 것일 수도 있지만, 혹자는 세도정치 세력이 철종의 자질과 능력이 부족한 임금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백성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만든 별명이라고도 한다.

 

 

▲용흥궁의 건물 배치도

 

 

잠저(潛邸)에서 용흥궁으로 태어나다

 

 

  강화도령 이원범이 살던 이 집은 본래 초가삼간인 잠저(潛邸)였다. 잠저란 조선시대 왕의 장자인 왕세자와 같이 정상적인 법통이 아닌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인해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가리킨다. 이는 주역에서 유래된 말이다.

 

  ‘강화 도령’이 왕위에 오르자 4년만에 강화 유수 정기세(鄭基世)가 보수하여 기와집으로 단장하고 그 이름을 ‘용흥궁’으로 고쳐 불렀는데, 용(龍)이란 왕을 상징하는 글자로서 왕의 탄생을 뜻하는 이름이다. 그뒤 1903년(광무 7)에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이 중건하였다.

 

  좁은 고샅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둔 이 궁의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 낙선재(樂善齋)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에 따라 만들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세월이 흘러 비바람에 헐은 것을 1974년에 보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잠저구기비각(潛邸舊基碑閣) 1동, 내전(안채) l동, 외전(사랑채) 1동, 별전(행랑채) 1동 등이며, 팔작지붕에 홑처마 주심포집이다.

 

  내전은 앞면 7칸, 측면 5칸이며 건평은 90㎡이다. 별전은 앞면 6칸, 측면 2칸인 ‘ㄱ’자형 집으로 건평이 95㎡이다. 비각은 정사각형으로 앞면과 측면이 각각 2.5m로 넓이가 약 6㎡이다.

 

  내전의 오른쪽과 별전의 왼쪽에 각각 우물이 1개씩 있으나 사용할 수 없다. 별전에는 마루 앞으로 작은 정원이 있고, 별전 오른쪽에는 조금 더 큰 규모의 정원이 있었으나 잘 가꾸지 않아 화초가 전혀 없다.

 

  별전 주변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으나, 거의 베어져 밑둥만 남아 있다.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용흥궁으로 들어가는 고샅(골목 진입로)

 

 

▲용흥궁 정문(서쪽)

 

 

▲용흥궁으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협문(남쪽)

 

 

▲정문을 통해 또 하나의 문을 통해 들어오면 내전이다.(우측)

 

 

▲용흥궁의 내전(안채)

 

 

▲내전 앞 마당의 돌절구

 

 

▲내실 부엌의 부뚜막과 부엌 기구들

 

 

▲내전 옆의 우물과 뒤로 보이는 문은 외전(사랑채)로 오르는 협문. 

 

 

▲내실 앞에 자리한 별채(행랑채)

 

 

▲외전(사랑채)로 오르는 협문

 

 

▲외전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내전 굴뚝

 

 

▲외전(사랑채)

 

 

▲외전 옆으로 또 하나의 우물이 있다. 

 

 

▲외전 옆으로 보이는 비각, 별도의 담과 나무 숲에 싸여 있다.

 

 

▲비각으로 들어가는 문

 

 

▲비각

 

 

▲비각 내의 비석에는 '哲宗朝潛邸舊基'라 쓰인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용흥궁식당의 ‘젓국갈비’

 

  시장기를 느낀다면 용흥궁 바로 아래 골목에 있는 용흥궁 식당(032-933-8070)에 가보자. 이 집은 여러 방송에서 소개한 집으로 강화도 향토음식인 ‘젓국갈비’로 이름난 집이다.

 

  젓국갈비는 돼지갈비와 돼지뼈에 채소를 넣고 새우젓의 젓국물을 넣고 끓여낸다. 유일하게 강화도 지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소금으로 간을 하는 대신 새우젓으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반찬도 정갈하고, 특히 주인이 친절하여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든다.

 

 

▲용흥궁식당의 '젓국갈비'

 

 

●상세정보

 

▻용흥궁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 21번길 16-1(관청리)

▻휴관일 : 없음

▻관람소요시간 : 약 30분

▻주차: 주차장은 없으나, 바로 위 용흥궁공원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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