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땅끝순례문학관, 해남 ‘땅끝’에서 키운 시문학의 꽃

by 혜강(惠江) 2022. 2. 9.

 

땅끝순례문학관

 

해남 ‘땅끝’에서 키운 시문학의 꽃

 

 

글·사진 남상학

 

 

 

 

 

  전라남도 땅끝마을 해남은 ‘시문학의 성지’이자 ‘호남 문학의 산실’이라고 불릴 만큼 한국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문인들을 다수 배출한 문학의 고장이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해남에 그들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고 그 성과를 발전시키기 위해 2017년 땅끝순례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땅끝순례문학관은 조선의 시가 문학을 이끈 독보적인 시인, 고산 윤선도의 정기가 깃든 고산윤선도유적지 내에 자리를 잡았다.

 

  문학관 밖에 조성된 야외공원에는 여러 개의 시비가 들어서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한옥과 양옥이 절충된 독특한 외관의 땅끝순례문학관에는 해남에서 태어났거나 연고가 있어 머물렀던 여러 문인의 생애와 다양한 문학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문학관을 들어서면 제1전시실로부터 제8전시실까지 이어진다. 제1전시실에는 해남시문학의 역사와 흐름을 보여준다.

 

 

 

 

해남문학의 흐름

 

  해남 시가문학의 비조(鼻祖)라 할 수 있는 금남 최부(崔溥, 1454년~1504년)부터 호남 시학의 스승인 석천 임억령, 독보적인 기록문학가 미암 유희춘, 옥봉 백광훈, 조선 중기 최고의 가인인 시조 시인 등 조선 시대부터 면면이 그 문학적 전통을 이어왔다.

 

  해남문학의 부흥을 이끈 사람은 고산 윤선도(1587~1671라 할 수 있다. 그는 조선 중기의 시조 시인이자 문신으로, 정철,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시대 삼대 가인(歌人)으로 불린다. 「오우가」, 「어부시시사」 등 주옥 같은 단가와 시조 75수를 남겼다.

 

  이러한 윤선도의 문예 정신은 증손인 공재 윤두서(尹斗緖)에게 이어졌는데, 시서화(詩書畵)에 능했던 윤두서와 다성 초의선사(草衣禪師), 소치 허련(許鍊) 등으로 이어져 왔다.

 

  현대에 와서는 한국 전통 서정시의 진수 이동주, 자연과 삶의 근원을 통찰한 박성룡, 1980년대 민족 문학의 기수 김남주, 한국 여성주의 운동의 선구자 고정희 등이 그 명맥을 계승하였다. 땅끝순례문학관은 이들 시인의 문학적 어적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토속적 서정과 정한의 시인, 심호 이동주

 

 

  해남 출신 이동주 시인(1920~1979)은 영원한 낭만적 방랑시인이다. 1950년 『문예(文藝)』지에 「황혼(黃昏)」, 「새댁」, 「혼야(婚夜)』 등이 미당 서정주에 의해 추천 완료되어 등단했다. 최초의 순문예지 『신문학』 창간(1951) 동인으로 참여했고, 시동인지 『시정신』 간행(1952)했으며, 시집으로 『혼야(婚夜)』, 『강강술래』, 『산조(散調)』, 『산조』, 『산조여록』이 있다.

 

  “금슬(琴瑟)은 구구 비둘기……/ 열두 병풍/ 첩첩 산곡(山谷)인데/ 칠보(七寶)황홀히 오롯한 나의 방석. // 오오 어느 나라 공주오이까?/ 다수굿 내 앞에 받아들었소이다.// 어른일사 원삼(圓衫)을 입혔는데/ 수실 단 부전 향낭(香囊)이 애릿해라.// 황촉 갈고 갈아 첫닭이 우는데/ 깨알 같은 정화(情話)가 스스로워.// 눈으로 당기면 고즈너기 끌려와,혀 끝에 떨어지는 이름/ 사르르 온 몸에 휘감기는 비단이라./ 내사 스스로 의(義)의 장검을 찬 왕자.// 어느 새 누님 같은 아내여/ 쇠갈퀴 손을 잡고 세월이 원통해 눈을 감으면// 그대 다시 살포시 아직 신부고녀.// 금슬(琴瑟)은 구구 비둘기” -이동주의 「혼야(婚夜)」 전문

 

 

▲이동주의 「혼야(婚夜)」 시비

 

 

 「혼야(婚夜)」는 1950년 ‘문예(文藝)’지에 추천된 작품으로, 금실 좋은 부부의 정을 첫날밤의 감회로 돌이켜 노래한 시다. 어느결에 나이가 들어 느끼는 삶의 무상함과 쓸쓸함이 전해온다.

 

  그의 시작품의 특성은 한국적 정서에 기반을 둔 향토적 서정과 정한(情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있다. 절제된 언어와 남도 특유의 가락과 리듬으로 한국적인 서사들을 노래한 ‘강강술래’, ‘새댁’ 등 빼어난 곡조로 감미롭다.

 

  “여울에 몰린 은어 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빙 돈다.// 가아웅 가아웅 수우위얼레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술래// 뉘 누리에 테프가 감긴다./ 열두 살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기폭이 찢어진다./ 갈대가 쓰러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전문

 

  김동주 시인은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를 통한 애상(哀傷)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음악성과 회화성이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의 향토성 짙은 서정시를 읽다 보면 마음 한편에 파도가 일렁이듯 파문이 번져온다.

 

 

 

 

자연과 삶의 근원을 통찰한 서정시인 박성룡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에서 태어난 박성룡(1932~2002)은 1956년 이한직 시인에 의해 「교외(郊外) 1」로 『문학예술』 2회 추천을 받고, 「화병정경(花甁情景)」으로 조지훈의 최종회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60년대 사화집’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1965년 한국일보 차장 근무 중 그만두고 농부로 지냈다.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하고 그를 부를 때에는/ 우리들의 입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 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 박성룡의 「풀잎」 전문

 

 

▲박성룡의 「풀잎」 시비

 

  박성룡 시인의 대표작 「풀잎」은 자연의 생명력을 노래한 싱싱한 느낌을 준다. 참심한 시어로 들려주는 풀잎의 소리는 ‘푸른 휘파람’을 불어도 좋을 만큼 싱그럽다. 박성룡 시인은 자연과 삶의 근원을 통찰한 서정시를 썼다.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 황토에/ 가지들은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흔히 시를 잃고 저무는 한해, 그 가을에도/ 나는 이 과목의 기적 앞에 시력을 회복한다.” - 「과목」 전문

 

  자연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감탄,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한 작품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사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기쁨이 이 시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시집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춘하추동』, 『동백꽃』, 『휘파람새』, 『꽃상여』, 『고향은 땅끝』, 『풀잎』이 있고, 산문집 『시로 쓰고 남은 생각들』을 냈다.

 

  1975년에는 풀잎을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관찰하여 풀잎이 지닌 풋풋함과 강인한 생명력을 노래한 동시 「풀잎」은 1975년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며 널리 회자하였다.

 

  초기 시에서부터 줄곧 이어져 오던 전통과 민족정신에 관한 관심이 더욱 깊어져 『민족문학대계』 18집에 20편의 연작시 「白瓷를 노래함」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성룡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미, 특히 미세한 자연의 물상들 뒤에 숨 쉬고 있는 우주의 근원적 생명을 전통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현대적 미학성을 적절하게 결합한 새로운 서정 시인이었다.

 

 

 

 

1970년대 민족 문학의 기수 김남주(金南柱)

 

  시인, 시민·사회 운동가였던 김남주(1946~1994)는 전남대학교 재학 중 3선 개헌을 반대하는 등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되자 전국 최초로 반유신 지하신문인 『함성』을 제작했는데, 이듬해 제호를 『고발』로 바꾸고 전국에 배포하려다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고 대학에서 제적당하였다.

 

  8개월간 복역한 후 고향에서 농사일하면서 1974년 『창작과 비평』에 「잿더미」와 「진혼가」 등 7편의 시를 발표, 문단에 데뷔하였다.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둘로 쪼개/ 나눠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한 별을 우러러 보며”

 

 

▲김남주의 「사랑은」 시비

 

이 시는 김남주 시인의 「사랑은」이라는 시다. 시인은 모진 겨울을 이겼던 사랑, 봄을 기다렸던 사랑을 노래했다. 그는 80년대 이 땅을 일깨운 민족 시인으로서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며 새 세상을 꿈꿨던 ‘혁명 시인’이다.

 

… 나의 싸움은 허리가 되었다/ 당신의 배꼽에서 구부러졌다/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노라/ 당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신념 나의 싸움은 미궁이 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삽살개가 되라면 기꺼이 삽살개가 되어/ 당신의 발가락이라도 핥아 주겠노라// 더 이상 나의 육신을 학대 말라고/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유일한 나의 확실성이라고//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나는 손발을 비볐다 … 「진혼가」 중에서

 

 

 

 

  1984년 수감 중 첫 시집 『진혼가』 출간되었는데, 여기에 실린 시들은 그가 감옥에서 우유 팩에 날카롭게 간 칫솔대로 눌러 써서 감옥 밖으로 몰래 내보내 출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1988년 12월 그는 형집행정지로 9년 3개월 만에 석방되어 199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 문학연구소장이 되었으나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

 

  시집으로 『진혼가』 외에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사상의 거처』, 『이 좋은 세상에』,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유고집) 등과 시선집 『사랑의 무기』, 『학살』, 『꽃 속에 피가 흐른다』 등이 있고, 산문집 『시와 혁명』, 번역서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 등이 있다.

 

  그의 시는 강렬함과 전투적인 이미지가 주조를 이루며, 유장하면서도 강렬한 호흡으로 반외세와 분단 극복, 광주민주화운동 및 노동 문제 등 현실의 모순을 질타하고 참다운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다.

 

 

 

 

한국 여성주의 운동의 선구자 고정희

 

  역시 해남 출신인 고정희(1948~1991)는 1975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전남일보』 기자, 『여성신문』 주간 등으로 활동했다.

 

  『누가 홀로 술들을 밟고 있는가?』, 『실낙원 기행』, 『초혼제』, 『이 시대의 아벨』 등을 계속 발표하면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쉽게 절망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함께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했다.

 

  “너인가 하면 지나는 바람이어라/ 너인가 하면 열사흘 달빛이어라/ 너인가 하면 흐르는 강물 소리여라/ 너인가 하면 흩어지는 구름이어라/ 너인가 하면 적막강산 안개비여라/ 너인가 하면 끝 모를 울음이어라/ 너인가 하면 내 살 찢는 아픔이어라/ 너인가 하면 지나는 바람이어라” -- 고정희 「그대 생각」

 

  고정희의 「그대 생각」이라는 시다. 그의 시는 정겹고 따뜻하다. 특히,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전통적인 남도 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려 민중의 아픔을 드러내고 위로하는 장시를 잇달아 발표했다. 자신의 시의 모체가 되어온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으로 사망했다.

 

 

 

  위의 시집 외에도 『눈물 꽃』, 『지리산의 봄』,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광주의 눈물비』, 『여성해방 출사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유고시집), 『뱀사골에서 쓴 편지』(유고집) 등이 있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 전문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시비

 

  고정희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여성해방을 노래했다. 어려운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강한 의지로 견디어 나가는 삶의 태도를 형상화한 시다. 고통을 수용하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 인식을 보임으로써 진정한 내면적 성숙의 길을 제시하는 내용이 가슴에 와닿는다.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상 실현을 꿈꾸는 노래로부터 민중에 대한 치열한 사랑과 관심, 여성주의적 시선과 경험에 입각한 선구자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탐구의 편폭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든 시편에서 목숨 있는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노래하였다.

 

 

 

 

  이들 외에도 황지우, 김종태, 윤금초, 이지엽 등 해남 출신 문학인들의 전시 외에도 다양한 성과와 문학 사료의 체계적인 수집·보존·관리를 통해 지역의 문학사를 정립해나가 일이 주요 업무다. 이밖에도 다양한 기획전과 행사 등을 통해 문학의 저변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상세정보

 

▻주소 : 전남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23 (해남읍 연동리 6)

▻전화 : 061-530-5127, 5132)

▻관람 : 09:00 ~ 18:00

▻휴관 : 매주 월요일, 기타 군수가 정하는 날

▻입장료 : 무료

▻주차 : 20대 이상 주자 가능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