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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금아피천득기념관, 금아 피천득의 삶과 문학의 향기를 접할 수 있는 곳

by 혜강(惠江) 2021. 11. 10.

 

피천득기념관

 

금아 피천득의 삶과 문학의 향기를 접할 수 있는 곳

 

글·사진 남상학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수필 「인연」에서

 

 

  수필 「인연」으로 널리 알려진 수필가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 1910~2007)을 기념하는 금아피천득기념관이 서울 잠실 롯데월드 3층(롯데 민속기념관)에 있다.

 2009년 6월 5일 개관한 피천득기념관에서는 금아 피천득의 생애와 유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규모는 좁지만,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깔끔하다. 사람이 없는 시간에 찾아가서인지 그의 삶과 문학적인 자취를 여유 있게 살펴볼 수 있었다.

 기념관 입구는 민속박물관 바로 옆에 있어서인지 전통 한옥 구조로 되어 있다. 입구에는 피천득 선생의 상반신 사진이 크게 붙어 있어서 기념관임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했다.

 

 

  155cm의 작은 체구로 한국 수필 문학의 거장으로 우뚝 선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은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 「인연」, 「수필」, 「은전 한 닢」, 「플루트 플레이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다.

 기념관 내부는 규모는 작지만 그의 대표 저서 18종과 선생의 일생을 담은 연보와 선생의 일생이 사진과 함께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신분증을 비롯한 안경과 필기구와 평소 사용하시던 각종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피천득기념관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금아를 만나다”는 선생의 생애를 담은 전시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선생의 일생을 담은 연보를 통해 선생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두 번째 “금아 이야기”에서는 관련 유물 전시해 놓아 ‘영원한 5월의 소년’으로 살아온 그의 삶을 유물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계절 중에서 봄, 그중에서도 오월을 사랑하고 노래한 금아 피천득 선생은 <오월>이라는 시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라고 했다. 오월의 모습이 맑고 감각적이며 새롭게 다가온다. 새롭게 느낀다는 것은 새롭게 삶을 산다는 뜻이다.

 금아는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라고 노래한다.

 금아 피천득 선생은 오월을 사랑하고 오월에 대한 글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그는 오월(25일)에 돌아갔다. 그를 두고 ‘5월의 영원한 소년’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이어 금아 피천득 선생의 대표 저서들을 전시하여 문학적 삶의 자취를 엿보게 한다. 여기서 잠시 선생의 문학적 삶을 살펴본다.

 ►피천득 선생은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다. 뒤이어 「소곡」(1931), 「가신 님」(1932) 등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 기반을 굳혔고, 또한 수필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1933), 「나의 파일」(1934) 등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1946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영미시(英美詩)를 강의하기 시작한 그는 낭만주의 시와 스피노자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집으로 『서정 시집』(1947)과 『금아 시문선』(1959)을 간행하는 한편 문집으로 『산호와 진주』(1969)를 간행하여 투명한 서정으로 일관한 작품세계를 보였다.

 특히 『산호와 진주』에 실려 있는 그리움을 꿈으로 승화시킨 「꿈」이나 「편지」, 소박하면서도 전통적인 삶의 서정으로 노래한 「사랑」 및 순수한 동심과 자연을 기조로 한 작품이 상당수 실려 있다.

 

 

 ►1976년에는 수필집 『수필』과 번역 시집으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집』을 간행하였다. 특히 『수필』은 수필 형식으로 쓴 수필론으로, 은유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수필의 본질과 특질을 잘 나타낸 그의 대표작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정의했던 그의 글은 실제로도 담백하고 곱다.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를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 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은전 한 닢」,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 「기다리는 편지」 등의 수필에서는 생활에 얽힌 서정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그의 다정다감한 세계관을 주관적인 명상으로 수필화시키고 있다.

 

 

 ►1980년에는 『금아문선(琴兒文選)』과 『금아시선(琴兒詩選)』을 출판하였으며, 1993년에는 시집 『생명』, 『삶의 노래』를 펼쳐 내었다. 1996년 수필집 『인연』을 출간했는데 표제작인 「인연」은 각종 국정교과서에 실리는 등 독자들의 많은 호평을 받아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중에서 「인연」은 잠시 스쳤던 아사코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을 행간에 아름답게 풀어놓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엄마」, 「유순이」, 「아사코」, 「서영이」, 「구원의 여상」 등의 작품에서 여성들을 찬미하고 그리워했던 것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금아의 서재”에서는 선생이 쓰던 작은 침대와 책장, 책상 등 생전에 기거하던 반포동 아파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신록의 모습이 실제처럼 꾸며져 있어 생동감이 넘친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커피를 한잔하며 정담을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푸근하고 인자한 모습이 그대로 느껴진다.

  또 그의 침실에는 침대와 평소에 입던 옷들이 진열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선생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형이 많은 것으로 보아 평소 인형을 좋아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금아를 추억함”에서는 선생의 메시지와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영상관과 사진 촬영 공간, 선생의 명시로 꾸며져 있다.

 

 

 다섯 번째 코너인 “금아의 인연”에서는 어머니, 딸 서영(瑞英), 아사코, 그리고 가까이하던 지인, 문인, 후배들에 관한 이야기로 장식해 놓았다.

 딸 바보였던 선생은 지극히 아끼던 외동딸을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쓸쓸한 마음을 추스를 수 없어 '난영이'란 인형에게 강한 애착을 뒀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난영이를 안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냉정한 이별을 할 수 있나 봅니다. 난영이는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른스러워지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나 아기입니다.  서영이를 떠나보내고 마음을 잡을 수 없는 나는 난영이를 보살펴 주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낯을 씻겨 주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목욕을 시키고 머리에 빗질도 하여 줍니다. 여름이면 엷은 옷, 겨울이면 털옷을 갈아입혀 줍니다. 데리고 놀지는 아니하지만, 음악은 들려줍니다. 여름이면 일찍 재웁니다. 어쩌다 내가 늦게까지 무엇을 하느라고 난영이를 재우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난영이는 앉은 채 뜬눈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는 참 미안합니다. 내 곁에서 자는 것을 가끔 들여다봅니다.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난영이 얼굴에는 아무 불안이 없습니다. 자는 것을 바라보면 내 마음도 평화로워집니다. 젊은 엄마들이 부러운 나는 난영이 엄마 노릇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수필 「서영이와 난영이」 중에서.

 얼마나 보고 싶으면 그랬을까? 딸을 향한 애잔한 모습이 눈에 선해 보였다.

 

 

 피천득은 평생 많은 이들과 인연을 쌓았다. 춘원 이광수 선생부터 주요한과 주요섭, 그리고 로버트 프로스트까지. 금아는 미국 국무청 초청으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연구(1954~1955)하였고, 그곳에 있는 동안 「가지 않은 길」(금아가 번역하여 교과서에 게재)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와 교류했다. 그는 그해 크리스마스 날 밤을 프로스트의 집에서 함께 지내는 등 깊은 우정을 다졌다고 한다.

 

 

  피천득 선생은 2007년 5월 25일 98세의 나이로 서울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피천득의 수필은 간결한 문체로 명징한 사색을 펼쳐 놓음으로써 하나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순수하고 고결한 정신세계를 영롱한 언어로 적어놓은 그의 수필은 운문을 읽는 것처럼 경쾌하며 독특한 글쓰기의 전범을 보였다.

 이양하와 함께 한국 수필 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꼽힌다. 피천득 선생은 한국 현대수필의 기초를 세운 선구자로 평가된다. 피천득의 제자인 심명호 서울대학교 교수는 스승인 피천득에 대해 "인간적인 깨끗한 심성이 바탕이 되어, 글에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지 않고 차분하게 고은 작품을 쓰셨다"라고 평가했다.

 

 

 나는 피천득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문득 학교 재직 시절 여고 국어 시간을 떠올렸다. 선생의 작품 「수필>을 강의하고, 「인연」에 대하여 학생들과 토론해본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추억 속의 ‘아사코’는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리움과 연민으로 남게 될 인연의 끈은 인생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 말이다.

 

◎상세정보

위치 : 롯데월드 민속박물관 입구 (쇼핑몰 3층) / 문의 : 02-411-4760

관람 :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연중무휴) / 무료

교통 : 지하철 2호선 잠실역 4번 출구에서 도보 3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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