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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여행기 및 정보/- 서해

신안 병풍도, 노둣길로 이어지는 ’섬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

by 혜강(惠江) 2021. 10. 15.

 

신안 병풍도

 

노둣길로 이어지는 ’섬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

-  12사도 조각상이 맨드라미 공원을 아름답게 수놓다 -

 

 

글·사진 남상학

 

 

 

 

▲병풍도 보기선착장 앞에 세운 '병풍도' 표지석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어렵게 섬티아고 순례길을 탐방하기 위해 병풍도로 향했다. 5월 하순에 계획한 여행 일정이 강한 폭우와 코로나 감염병으로 두 번 연기되어 10월에 와서야 뜻을 이루게 되었다.

 

  병풍도에 들어가는 배는 두 곳에서 출발한다. 신안군 지도면 송도항에서 떠나는 여객선은 하루 5편(07시, 09시, 11시, 14시, 16시 30분)이다. 25분 정도 걸린다.  또 하나의 방법은 신안 압해도 송공항에서도 하루 4번(6:50, 9:30, 12:50, 15:30) 여객선이 출항한다. 소악도, 대기점도, 병풍도를 두루 들리기 때문에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병풍도로 떠나는 송도항 매표소
▲우리가 탄 송도-병풍도 간을 운행하는 카페리

 

  어디로 들어가든 상관없으나, 우리 일행은 순례길을 차례대로 걷고 고흥으로 가기 위해 먼저 병풍도로 들어가 12사도 조각상을 둘러보고,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으로 이동하며 탐방을 마치고 소악도에서 압해도 송공항으로 나가기로 했다.

 

  아침 8시 반, 서울에서 승용차로 출발한 우리는 오후 1시경 지도읍 송도항에 도착했다. 승용차로 4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송도항여객선터미널 매표소에서 병풍도로 가는 표를 끊고 근처 ’솔섬식당‘에서 서둘러 점심을 먹고, 2시 정각 차량과 함께 슬로시티2호에 올랐다. 송도항에서 병풍도까지의 뱃길은 25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이다.

 

  병풍도는 신안군 증도면에서 속하는 섬으로, ‘섬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이 되는 섬이다. 증도면 소재지에서 동남쪽에 있으며, 면적은 2.5㎢, 해안선 길이 10.72㎞에 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사진출처 '한국일보'

 

 

  병풍도는 해안선 절벽의 병풍바위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신선이 이곳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섬의 이름을 ’병풍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병풍도는 가을이면 바다를 배경으로 약 4만 평의 언덕에 맨드라미 정원에 조성되어 울긋불긋 화려한 색깔로 뒤덮는다. 맨드라미는 옛날 시골 장독대 주변에 흔히 피던 꽃으로 7~8월에 붉은색·노란색·흰색 등 다양한 색깔로 화려한 자태로 핀다.

 

  맨드라미꽃은 잔꽃들이 편평한 꽃줄기 끝에 빽빽이 달려 있고, 중간 아래쪽에 많은 잔꽃이 달려 주름진 모양이 마치 수탉의 볏과 같아 보인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10월 초 해마다 맨드라미 축제가 열릴 정도로 전국에 소문이 자자하다.

 

  정원의 중앙 통로를 따라 맨드라미 정상에 오르면, 주홍색의 작은 ‘놀래라 화장실’과 무인카페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밖에서는 화장실은 내부가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는 통유리로 제작됐다. 통유리 너머 펼쳐진 풍경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그 바로 옆 무인카페는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일상 속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리기에 최적의 장소로 손꼽힌다.

 

 

 

 

  특히 병풍도는 기독교와 인연이 깊다. 신안에서 태어나 주변 섬에 11개 교회를 개척한 문준경 선교사와의 인연 때문이다. 문준경(1891~1950) 전도사는 신안 암태도에서 태어나 여성으로서 경성 성서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이웃 섬 증도로 돌아와 인근 섬을 돌아다니며 활발한 전도 활동을 하다 순교한 인물이다.  증도면 사무소 옆에는 한국전쟁 중 좌익 세력에 의해 피살당한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과 순교 기념비, 그리고 그의 무덤이 있다. 따라서 병풍도는 주민의 80%가 기독교인이다. 

 

  이런 인연으로 맨드라미 정원을 조성하면서 정원 산책길을 따라 예수의 열두 제자의 조각상인 천사조각상을 설치했다. 이들 조각상은 세계적인 성상(聖像) 조각가인 최바오로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다. 화려한 꽃과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색상의 조각상이 정원을 한결 아름답게 한다.

 

  그런데 병풍도에서 노둣길(바다에 돌멩이를 깔아 만든 길)을 따라 이어지는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딴 ‘12사도 예배당’이 조성돼 ‘한국의 섬 티아고’라 불린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비유하여 이 예배당을 순례하는 길을 '섬티아고 순례길‘이라 부른다.

 

  따라서 이 조각상들은 순례자들에게는 ‘섬티아고 순례길’에 앞서 열두 제자의 행적을 되새겨 보며 순례길의 의미를 의미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기독교인의 성지순례가 아니더라도 병풍도는 일반인 누구에게나 드넓은 바다와 물길, 노둣길 옆으로 지천인 갯것들을 바라보며 사색과 명상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인 12사도 조각상◎

 

 

1. 베드로(Peter)

 

 

 

 

  히브리명 시므온, 헬라명 시몬, 아랍명 게바, 게바의 헬라어역은 베드로). 갈릴리호수 벳새다 사람 어부였던 그는 예수의 부름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12사도 중 최연장자였고, 식견도 있어서 대표적 지위를 차지했다. 그는 예수로부터 ‘반석’이라는 의미의 '게바'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예수로부터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았다. 그러나 예수가 로마 군병에게 잡혀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심문을 받을 때 예수를 세 번 부인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하였다.

 

  그는 부활한 예수로부터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받고, 예수 승천 후에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방 땅에까지 선교하다 네로 황제의 대박해로 로마로 압송되어 십자가에 거꾸로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아래 그의 무덤이 있다.

 

  그는 충동적, 활동적, 열정적 성격의 소유자로 언동에 많은 실수도 있었으나 예수에 대한 사랑은 확고한 편이었다. 그는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를 썼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는 그를 가톨릭교회의 설립자(초대 교황)으로 받들고 있다.

 

 

2. 안드레 (Andrew) = 안드레아

 

 

 

 

  그리스어로 ‘안드레아스’. 시몬 베드로의 동생이며 갈릴리 지방 벳새다 사람이다. 그의 형 베드로와 같이 어부였고, 처음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깨닫고 예수를 따랐으며, 예수에게 형 베드로를 인도했다.

 

  형인 베드로에 가려 별로 두드러지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큰 무리가 모였을 때 빵과 물고기를 가진 아이를 예수에게 데려와 오병이어의 기적과 연관되어 있다. 또 예수께 예루살렘성과 성전의 파괴 및 예수의 재림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소아시아, 그리스 등에서 복음을 전하다 X형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그리스, 러시아, 스코틀랜드에서 수호성인으로 모셔지고 있다.

 

 

3. 야고보(James)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이며, 사도 요한의 형이다. 예수의 사촌이었던 것 같으며, 직업은 어부였다. 변화산과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와 같이 있었으며, 요한과 함께 앞으로 예수가 주의 영광 중에 오실 때에, 하나는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앉아 있게 해달라고 청원했으나 예수는 자신이 정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동생 요한과 더불어 그는 '보아너게‘ 즉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는 특유의 불같은 열성을 가졌기 때문인 듯하다. 예수 승천 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사마리아와 유대 지역에서,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복음을 전파하다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순교 당했다.(사도행전 12장 2절)

 

 

4. 사도 요한(John)

 

 

 

 

 세베데와 살로메의 아들로 야고보의 형제. 본래 갈릴리 어부였는데 같이 일하던 형제 야고보와 함께 예수의 첫 제자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예수와 가장 가까운 제자였으며, 예수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던 그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품에 누웠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목격했으며, 베드로와 함께 예수의 무덤으로 달려가 부활의 증인이 되기도 했다.

 

  또,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예수가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키며 “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한 말을 듣고, 후에 에베소에 정착하여 마리아를 모셨다.

 

  초대교회에서 베드로와 함께 복음선포에 앞장서며 중요한 역할을 하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밧모섬에 유배되기도 했다. ‘사랑의 사도’라고 불린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 1서> <요한 2서> <요한 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썼다.

 

 

5. 빌립(Philip)

 

 

 

 

  갈릴리 벳세다 사람으로 베드로와 안드레의 친구였다. 처음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의 부름을 받았다.

 

  나다나엘을 예수께 인도했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오천 명을 먹이는 일, 헬라인의 방문,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을 보게 해달라고 예수에게 청했다가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는 고지식하고 수줍어하면서도 침착한 사람이었다.

 

  빌립은 예수 승천 후, 소아시아의 브루기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히에라블리에서 기둥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6. 바돌로메 (Bartholomew) = 바르톨레메오

 

 

 

 

  신약성서에 네 번(마 10:3-, 막 3:18-, 눅 6:14-, 행 1:13-) 예수의 제자로 언급되었을 뿐, 그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다. 빌립에 의해 예수에게 부름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며,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제자 명단에서 빠져 있고, 그 대신 나다나엘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바돌로메와 나다나엘 두 사람을 동일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전승에 따르면, 바돌로메는 소아시아, 인도 등에서 전도했으며, 다시 아르메니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이교 사제들의 선동을 받은 아스티아제스라는 왕에 의하여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7. 도마(Thomas) = 토마스

 

 

 

 

  갈릴리 출신으로 ‘디두모’라고도 불린다. 예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뒤 예수의 공생애 기간 늘 그분의 곁에 있었으나,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자 의심 많은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생긴 상처를 보기 전까지는 예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 후 부활한 예수가 형벌에서 생긴 몸의 상처를 보여주자 도마는 그제야 매우 놀라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소리쳤다. (요한복음 20:24~29)  2세기의 외경 <도마행전>에 의하면, 멀리 인도까지 가서 전도하다가 그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8. 마태 (Matthaios) = 마태오

 

 

 

 

  갈릴리 태생으로 레위 지파의 후손인 알패오의 아들이며 레위라고도 한다. 본래는 세리(稅吏:세무관리)로서 가버나움 지방에 근무하였는데, 예수의 부름을 받았다.

 

  그 후 스승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과 같이 식사를 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때 예수는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라고 대답하였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를 버리고 도망치는 한계를 드러냈다. 예수 승천 후 에티오피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9. 작은 야고보

 

 

 

 

   알패오와 예수의 무덤을 찾아왔던 마리아의 아들. 세베대의 아들인 사도 야고보와 동명이인이어서 혼동을 피하고자 흔히 ‘작은 야고보’라고 부른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라는 것 외에는 거의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할머니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와 친척 관계였으므로 야고보 역시 예수의 친척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예수의 형제’ 또는 ‘예수의 동생’으로 언급된다.

 

  전승에 의하면,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탁받아 예루살렘의 첫 번째 주교로 선출되어 교회를 다스리며 포교 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또한, 그는 신약성서 <야고보서>를 쓴 장본인이다.

 

그는 바리새파에 의해 성전 꼭대기로 끌려가 배교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배교를 거부함으로써 바리새파에 의해 성전 꼭대기에서 떠밀려 순교했다고 한다.

 

 

10. 다데오 (Thaddaeus) = 유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다대오’로 나오지만, 다른 곳에서는 ‘유다’로 기록돼 있다. ‘작은 야고보’와는 형제 관계이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열렬한 성격의 논쟁가였으며, 성령강림 이후 시몬과 함께 주로 팔레스티나 · 메소포타미아에서 복음을 전파하였고, 시몬 등과 함께 페르시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한다. 신약성서 <유다서>의 저자라는 설이 있으나 분명치 않다.

 

 

 

11. 시몬(Simon)

 

 

 

 

   그는 가나안인으로 열심당원, 혁명당원이었다. 그가 AD70년 이전의 유대 민족주의 단체인 혁명당, 즉 '열심당'의 일원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성서에 그에 관해 자세한 언급은 없으나 아마도 그는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페르시아에 있는 유다 (타대오)와 합류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곳에서 그는 톱으로 몸의 절반이 잘리는 순교를 했다고 전해진다.

 

 

 

12. 맛디아(Matthias)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를 대신하여 제비를 뽑아 열두 사도의 하나가 되었다. ‘맛디아’의 뜻은 히브리어 ‘마티티아’에서 유래되었으며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이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성경에 언급되지 않으나, 전승에 의하면, 그는 사도로 뽑히고서 곧바로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종교를 믿는 여러 나라를 순회하면서 열심히 선교하다가 에티오피아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그의 유골은 베네딕토회 성 마티아 수도원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병풍도를 찾은 일행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선택한 이들 열두 제자들은 초대교회의 기둥 같은 존재들이었고, 하나님 나라 건설의 빛나는 초석이었다.  12사도조각상을 둘러보고 나면 다음 행선지는 노둣길로 이어진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에 자리하고 있는 교회를 차례대로 순례하는 '섬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차례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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