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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by 혜강(惠江) 2020. 10. 31.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끔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혔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을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9) 수록

 

 

◎시어 풀이

*중이염 (中耳炎) : 귀에 생기는 염증. 고열·통증·이명 따위의 증상이 나타남.

*다대기 : 끓는 간장이나 소금물에 마늘·생강 따위를 다져 넣고 고춧가루를 뿌려 끓인 다음, 기름을 쳐서 볶은 양념. 얼큰한 맛을 내는 데 씀.

*투가리 : ‘뚝배기’의 방언(강원, 경북, 전라, 충청).

*흘끔거리다 : 곁눈으로 슬그머니 자꾸 흘겨보다. ‘흘금거리다’보다 센 말.

 

 

▲이해와 감상

 

 이 글은 1996년에 출간된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 실려 있다. 함민복 시인은 인간적인 미를 드러내는 서정시를 창작해 왔는데, 그중에서 <눈물은 왜 짠가>는 어머니의 따뜻하고 깊은 사랑과 이에 대한 화자의 감동을 드러내고 있다.

 

 시를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리듬의 단위를 연이나 행에 두지 않고, 한 문장이나 한 문단에 두어 더욱 순수한 시적 세계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산문으로 엮은 것을 산문시라 할 수 있는데, 이 시는 산문처럼 보이면서도 내재율을 지닌 점에서 산문시라고 볼 수 있다.

 

 산문적인 필체로 과거의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이 시는 아들을 위해 먹지 못하는 고깃국을 먹으면서도 국물이나마 더 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서정적으로 표현한다. 이야기의 형식으로 되어 있어 시적 상황을 구체적이고도 알기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야기는 ‘지난여름’을 배경으로 어머니와의 식사 장면을 추억하면서 시작된다. 아들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어머니를 고향의 이모님에게 모셔다 드리게 된다. 한 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를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는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고깃국을 먹으로 가자고 이야기한다. 어머니의 마음을 읽은 아들은 ‘어머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어머니에 대한 죄송스러움과 안쓰러운 마음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설렁탕을 먹으러 온 어머니는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더 먹어야’ 한다며, 고깃국물이라도 단단히 먹으라고 한다.

 

 어머니는 국물이 짜서 그런다며 주인아저씨에게 국물을 더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주인아저씨가 보지 않는 틈을 타 그 국물을 아들의 ‘투가리’에 부어준다. 이러한 행동에 ‘나’는 당황하였지만, 주인아저씨는 애써 모자의 행동을 외면한다. 그리고 모자가 미안한 마음을 느끼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선다. 그 순간 ‘나’는 눈물을 흘린다.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편히 모시지 못하는 아들로서의 안타까운 죄책감에 더욱 눈물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주인아저씨의 따뜻한 마음도 한몫했을 것이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나는 ‘눈물은 왜 짠가’라고 중얼거린다. 진한 사랑은 아플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가능했으리라.

 

 이 작품은 설렁탕이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애틋한 모자의 정을 그려낸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를 통해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마음이 구체적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는 아들과 주인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이 공유된다.

 

 함민복의 시에서 가난과 슬픔, 고통과 그리움으로 점철된 무자비한 삶은 어머니의 원형적이며 끝이 없는 사랑으로 극복된다. <눈물은 왜 짠가>는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 찡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런 '어머니상'은 그의 에세이집 《눈물은 왜 짠가》(2003)에 실린 작품에서도 중요한 테마로 자리잡고 있다. <어머니의 의술>, <찬밥과 어머니>, <푸덕이는 숭어 한 지게 짊어지고>, <느티나무>, <가족사진> 등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의 근원인 어머니와 돌아볼수록 풋풋한 유년 시절을 밀도 높은 문장으로 그려냈다.

 

 

▲작자 함민복(咸敏復, 1962 ~ )

 

 시인. 충청북도 충주 출생. 1988년 〈성선설〉 등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들을 따뜻하고 진솔한 언어로 끌어안는다서정시를 많이 썼다. 시집으로 《우울씨의 일일》(1990), 《자본주의의 약속》(1993),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9), 《말랑말랑한 힘》(2005), 《꽃봇대》(2011),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 등이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눈물은 왜 짠가》(2003), 《미안한 마음》(2006),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2009)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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