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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광고의 나라 / 함민복

by 혜강(惠江) 2020. 11. 3.

 

 

 

광고의 나라

 

 

- 함민복

 

 

   광고의 나라에 살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와 더불어
   아름답고 좋은 것만 가득 찬
   저기, 자본의 에덴동산*, 자본의 무릉도원*,
   자본의 서방정토*, 자본의 개벽세상-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휴먼테크의 아침 역사를 듣는다 르네상스 리모컨을 누르고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휴먼퍼니처 라자 침대에서 일어나 우라늄으로 안전 에너지를 공급하는 에너토피아의 전등을 켜고 21세기 인간과 기술의 만남 테크노피아의 냉장고를 열어 장수의 나라 유산균 불가리~스를 마신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 누군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을까 사랑하는 여자는, 드봉 아르드포 메이컵을 하고 함께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꼼빠니아 패션을 입는다 간단한 식사 우유에 켈로크 콘프레이크를 먹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명작 커피를 마시며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할말은 하고 쓸 말은 쓰겠다는 신문을 뒤적인다 호레이 호레이 투우의 나라 쓸기담과 비가 와도 젖지 않는 협립 우산을 챙기며 정통의 길을 걸어온 남자에게는 향기가 있다는 리갈을 트럼펫 소리에 맞춰 신을 때 사랑하는 여자는 세련된 도시감각 영에이지 심플리트를 신는다 재미로 먹는 과자 비틀즈와 고래밥 겉은 부드럽고 속은 질긴 크리넥스 티슈가 놓여 있는, 승객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제3세대 승용차 엑셀을 타고 보람차고 알찬 주말을 함께 하자는 방송을 들으며 출근한다

 

   제1의 더톰보이가 거리를 질주하오
   천만번을 변해도 나는 나
   제2의 아모레 마몽드가 거리를 질주하오
   나의 삶은 나의 것
   제3의 비제바노가 거리를 질주하오
   그 소리가 내 마음을 두드린다
   제4의 비비안 팜팜브라가 거리를 질주하오
   매력적인 바스트, 살아나는 실루엣
   제5의 캐리어쉬크 우바가 거리를 질주하오
   오늘 봄바람의 이미지를 입는다
   제5의 미스 빅맨이 거리를 질주하오
   보여주고 싶다 새로운 느낌 새로운 경험
   제7의 라무르 메이크업이 거리를 질주하오
   나의 색은 내가 선택한다
   제8의 주단학세렉션의 거리를 질주하오
   나의 색은 내가 선택한다
   제9의 캐리어가 거리를 질주하오
   남자의 가슴보다 넓은 바다는 없다
   제10의 마리떼프랑소아저버가 거리를 질주하오
   거침없는 변혁의 몸짓
   제11의 파드리느가 거리를 질주하오
   지금 그 남자의 지배가 시작된다
   제12의 르노와르 돈나가 거리를 질주하오
   오늘, 이 도시가 그녀로 하여 흔들린다
   제13의 피어리스 오베론이 거리를 질주하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자연은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 아니라 후손에게 차용한 것이라고 말하는 공익광고협의회의 저녁 빰에서 행굼까지 사랑이란 이름의 히트 세탁기를 돌리고 누가 끓여도 맛있는 오뚜기 라면을 끓이려다가 지방은 적고 단백질이 많은 로하이 참치를 끓인다 그리운 사람에게 사랑이란 말은 더 잘들리는 하이폰 전화 몇 통 식후 은행잎에서 추출한 혈액순환제 징코민 한 알 미련하게 생긴 사람들이 광고하는 소화제 베아제 광고가 나오는 대우 프로비젼 티브이를 끄고 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의 고민을 하는 중생들이 우습다는 소설 김삿갓 고려원을 읽다가 많은 분들께 공급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썸씽스페샬을 한잔 하고 그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가 패션의 시작 빅맨을 벗고 코스코스표 특수형 콘돔을 끼고 잠자리에 든다

 

   아아 광고의 나라에 살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와 더불어
   행복과 희망만 가득 찬
   절망이 꽃피는, 광고의 나라.

 

 

- 시집 《자본주의의 약속》(1993) 수록

 

 

◎시어 풀이

 

*에덴동산 :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야훼가 지은 세상, 곧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 :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선경(仙境). 세속을 떠난 별천지.

*서방정토(西方淨土) :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 극락.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자본의 전략인 광고에 파묻혀 사는 현대인의 모습을 부각하여 광고의 허구적 성격을 비판하면서 광고와 소비에 물든 현대인의 삶을 풍자하고 있다.

 

  광고는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적 행위이다. 그런데 상품을 소비하게 하려면 소비자의 욕망을 부추기고 쓸모없는 필요를 만들어야 한다. 광고를 비판적으로 보자면 헛된 욕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이미지이다. 따라서 ‘광고의 나라’는 헛된 욕망으로 가득 찬 세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운문과 산문이 교차하기도 하고, 이상 시에 대한 패러디가 등장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식의 실험을 하고 있다. 이 시는 모두 5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연들은 모두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변화가 심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1연은 3음보 중심의 운문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2연은 산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3연은 이상의 시 <오감도 제1호>를 패러디하고 있으며, 4연은 다시 산문의 형식을, 마지막 5연은 3음보와 4음보의 운문 형식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형식들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광고의 무소불위 힘을 고발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것이 조장하는 행복과 유토피아의 이미지들이 지닌 허구적 성격을 파헤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고 문구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여 사실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반어적 어투를 사용하여 우리의 욕망을 조작하는 상업주의의 성격을 비판하고, 특정 시어의 반복을 통해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1연에서는 광고의 속성과 헛된 욕망의 세계를 풍자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은 광고 속에만 존재한다는 말이 있듯이, 광고는 지상낙원의 이미지를 조장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광고는 광고 속의 상품을 사용하면 놀라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며, 낭만적인 감정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소비자들의 욕망을 자극해서 상품에 대한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므로 광고는 상품 속에 유토피아적 이미지를 투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광고란 자본이 만들어낸 ‘에덴동산’이자 ‘무릉도원’이며, ‘서방정토’이자 ‘개벽세상’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둘째 연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에 출근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달콤하게 유혹하는 광고에 젖어 사는 현대인의 일상을 산문 형식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설정은 광고가 현대인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연에서는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 시 제1호>를 패러디하며 광고를 통해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욕망을 실현해줄 것 같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상품들이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 톰보이’, ‘아모레 마몽드’, ‘비제바노’ 등의 다국적 상품이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을 통해 시인은 광고로 각인된 상품에 의해 지배되는 현대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화자는 패러디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그러한 상품의 질주가 현대인들에게 불안과 고독의 정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넷째 연은 퇴근해서 잠들기까지의 과정에서 광고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역시 특별하고 놀라운 세계를 경험할 것이라는 광고의 이미지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모습이 부각된다.

 

  마지막 다섯째 연에서는 첫 번째 연의 내용을 반복하면서 변주를 가하여 광고에서 약속하는 유토피아가 허구에 불과한 것임을 비판한다. 즉 ‘행복과 희망만 가득 찬/ 절망이 꽃피는, 광고의 나라’라고 진술함으로써 행복과 희망의 이미지로 가득 찬 광고의 세계가 곧 현대인들에게 상실감과 박탈감을 야기하여 오히려 절망의 근원일 수 있음을 고발한다. 이러한 고발은 광고가 구축한 이미지가 결국 환상이며 허구라는 사실을 담고 있다.

 

  함민복 시인의 시들은 비속한 자본주의적 세계의 비인간적인 폭력과 부조리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면서도 소외된 현대인에 대해서는 따스한 손을 내밀고 그것을 감싸는 포용력을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이 작품은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의 다양한 환상과 물신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자 함민복(咸敏復, 1962 ~ )

 

   시인. 충청북도 충주 출생. 1988년 〈성선설〉 등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들을 따뜻하고 진솔한 언어로 끌어안는 서정시를 많이 썼다. 시집으로 《우울 씨의 일일》(1990), 《자본주의의 약속》(1993),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9), 《말랑말랑한 힘》(2005), 《꽃봇대》(2011),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 등이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눈물은 왜 짠가》(2003), 《미안한 마음》(2006),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2009) 등이 있다.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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